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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388화 (408/1,027)

< (5). 어둠 속의 음모 -1 >

‘명계라…. 존재하기는 하는 곳이겠지?’

그리퍼에게 해답 아닌 해답을 전해들은 이안은, 차원의 마탑을 나와 영지로 향했다.

베히모스의 알을 부화시키는 방법은 알아내었으나, 그 재료를 구할 방법이 없는 상황.

그리퍼조차도 명계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 뿐, 어떻게 가는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의미심장한 단서를 하나 전해줬을 뿐이었다.

[흐음…. 명계로 가는 방법이라. 사실 나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네. 명계라는 곳이 존재하며 갈 방법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지. 분명히 고대에는 이승과 저승을 오갔던 이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말일세.]

[그게 끝……? 무슨 단서라도 없습니까?]

[아! 확실한 것은 아니네만, ‘사령의 군주’라면 그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사령의 군주를 찾는 것 보다는 마계에서 다른 베히모스를 찾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를 테지…. 껄껄껄.]

그리퍼와의 마지막 대화를 상기시킨 이안은, ‘사령의 군주’라는 단어를 기억 속에서 열심히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 보아도, ‘사령의 군주’에 대한 기억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이안의 입에서 한숨이 살짝 새어 나왔다.

“후우, 뭔지도 모르는 걸 대체 어디서 찾으라는 거야…?”

구시렁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안.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뇌리에서 문득 기억의 조각 하나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마계에서 리치 킹 샬리언의 봉인을 풀었던 곳 이름이 사령의 탑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자 자연스레 생각이 확장되어 이어진다.

‘그렇다면 그 꼭대기에 봉인되어있던 리치 킹이 혹시 그리퍼가 말한 사령의 군주인 건가?’

100%확신할 수는 없으나, 제법 그럴싸한 추론.

사령의 군주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는, 결국 리치 킹 샬리언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있을 샬리언을 만나기 위해서는 루이세이로부터 받은 연계 퀘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샬리언의 야욕에 희생되어 대륙 곳곳에 감금되어있는 루스펠 제국의 충신들.

그들을 찾다보면 결국 샬리언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으음…. 차라리 잘 되었네. 어차피 헬라임만큼은 무조건 찾아내려 했었는데….’

루스펠 제국의 황실기사단 단장이자, 카이자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전투형 NPC인 헬라임.

다른 NPC들은 몰라도, 헬라임만큼은 찾아서 가신으로 삼고 싶었다.

“읏차, 지금쯤이면 레미르 누나랑 유신이도 영지에 와 있을 테고….”

이안과 함께 연계 퀘스트를 받은 레미르와 유신.

둘 외에 훈이도 퀘스트를 받았지만, 따로 할 일이 있는지 파티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훈이를 생각한 이안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후후, 녀석 설마 삐진 건 아니겠지?”

뇌옥에서 어쩔 수 없이(?) 훈이를 죽인 일이 아직도 미안한 이안은, 시야 한쪽 구석에서 천천히 깜빡이고 있는 작은 메시지 창을 슬쩍 응시했다.

[공유받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습니다.]

‘아마도’ 뇌옥에서의 퀘스트를 훈이가 클리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메시지 창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뭐, 뒤끝 있는 녀석은 아니니까….”

걸음을 옮겨 어느새 영주 성 앞까지 도착한 이안은, 흥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          *          *

“자, 나가 여왕의 비늘 개당 13500골드! 쌉니다, 싸요! 시세보다 최소 천 골드는 싼 값입니다요!”

“그리핀의 수호깃창 팝니다! 저렴하게 220만골드에 모십니다!”

“홀루스 지하 던전 가시는 탱커 한 분 빠르게 구합니다! 레벨 230이상, 방어력 5천에 생명력 150만 이상이신 분으로 구해봅니다!”

시장통을 연상케 하는 시끌벅적한 유저들의 외침.

로터스 왕국과 바로 인접해있는 작은 도시인 케이튼 영지는, 수 많은 유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케이튼 영지는 엘리카 왕국 소속의 백작령이었는데, 최근 들어 많은 유저들이 거점으로 삼기 시작한 도시였다.

로터스 왕국의 수도인 파이로 영지와 가까운 데다, 미개척 던전이 많이 발견되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유저 길드소속의 영지가 아닌, NPC가 영주로 있는 영지라는 것도 이 영지의 장점이었다.

소속 길드가 없더라도 작위를 받아 영지의 관료가 될 수 있고, 영주로부터 녹봉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유저가 세운 왕국에 의해 영지가 점령당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소속이 엘리카 왕국에서 해당 길드로 바뀌게 되는 것 뿐, 이미 받은 작위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 케이튼 영지 소속의 귀족 유저들은, 엘리카 왕국과 로터스 왕국이 전쟁을 일으키기를 바라기도 했다.

케이튼 영지가 로터스 소속이 된다면, 영지 소속의 귀족이었던 유저들은 자연히 로터스 길드의 길드원으로 편입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예길드원이 아닌 권한이 거의 없는 일반길드원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메리트가 있었다.

로터스 길드는 몇 달째 부동의 길드랭킹 1위인, 그야말로 꿈의 길드였으니까.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 덕에, 하루가 다르게 유저들이 많아지고 있는 케이튼 영지.

이 케이튼 영지의 광장에, 검정색 로브를 뒤집어 쓴 흑마법사 하나가 나타났다.

“으, 복잡해 죽겠네. 아니 여기는 변방에 있는 작은 영지 주제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연신 툴툴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남자.

그는 다름 아닌, 훈이였다.

“분명 이 광장 어딘가에 카데스 신의 신전이 있다고 들었는데….”

훈이가 이 케이튼 영지에 나타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금 훈이는 ‘어둠의 신 카데스’의 신전을 찾고 있었고, 카데스 신전이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가 바로 이곳 케이튼 영지였기 때문이었다.

로터스 왕국의 국교는 전쟁의 신 마레스를 모시는 ‘마레스교’로 지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카데스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엘리카 왕국의 영지로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인데다 무척이나 번잡한 환경으로 인해 한참을 헤맨 훈이는, 결국 20여 분 만에 카데스 신전을 찾을 수 있었다.

*          *          *

쿠르릉- 쿵!

묵직한 진동음과 함께, 거대한 신전의 닫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신전 벽을 따라 보랏빛의 불길이 줄지어 피어오른다.

어둠의 신인 카데스의 신전답게, 무척이나 어두운 신전의 내부.

검보랏빛으로 피어오르는 기이한 분위기의 불빛들이, 앞을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의 조도를 만들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저벅- 저벅-

고요한 신전의 한가운데, 훈이의 발소리만이 낮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잠시 후, 훈이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정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신관의 목소리.

하지만 훈이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건방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둠의 신, 카데스님을 알현하고 싶다.”

그리고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훈이의 건방진 어투에, 신관이 잠시 당황한 탓이었다.

“으음, 그대 또한 나와 같은 어둠의 아들이군요. 용건은….”

훈이가 신관의 말을 끊었다.

“크큭, 나는 위대한 어둠의 군주. 임모탈의 계승자인 내가 한낱 신관 따위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할 의무는 없을 텐데.”

계속해서 NPC가 가진 AI의 예측범위를 벗어나는 훈이의 대사.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없었기에, 신관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 확실히 그렇군요. 제(祭)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신관은 훈이를 신전의 안쪽으로 안내하기 시작했고, 훈이는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 분 정도를 걸었을까?

거대한 보랏빛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어둠의 제단이 훈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제단의 불길을 보며 훈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흐음, 카데스 신전은 정말 오랜만이군. 카데스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제단 앞에 도착한 훈이는, 인벤토리에서 어둠의 서(書)를 꺼내어 신관에게 넘겼다.

어둠의 서는, 신에게 제를 지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소모성 아이템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어둠의 군주이시여.”

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카데스님께, 매우 중대한 일이 생겼다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화륵- 화르륵-!

신관은 훈이에게서 받은 어둠의 서를 펼쳐 든 뒤, 그 위에 완드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얀 백지 위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제단으로 빨려 들어가 보랏빛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제단의 위로 회백색의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갔다.

정확히 훈이의 두 배 정도 됨직한 커다란 키에, 새카만 망토를 두른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자.

낯익은 사내의 모습을 확인한 훈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요, 카데스님.”

그리고 훈이를 발견한 카데스 또한,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오랜만이군, 애송이. 일전에 보았을 땐 일개 어둠술사에 불과했었던 것 같은데…. 용케도 임모탈의 힘을 잘 이어받았군.”

뭔가 삐딱한 어조로 말하는 카데스.

그것을 느낀 훈이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뭐지? 이건 적대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우호적인 반응은 아닌데?’

훈이가 카데스를 찾아 온 이유는 간단했다.

‘리치 킹 샬리언의 야욕 저지’ 퀘스트에 쓰여 있던 하나의 문장 때문.

샬리언의 야욕이 ‘인간계의 조화와 균형을 수호하는 다섯 신들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그 문장에서 힌트를 얻어, 카데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카데스 또한 다섯 신 중 하나이니, 당연히 샬리언의 야욕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훈이는 샬리언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임모탈’의 힘을 계승한 유저였다.

그러니 훈이가 예상했던 대로라면, 카데스가 자신을 반겼어야 하는 것이다.

더해서 카데스가 원래 까칠한 성격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전에 카데스에게 퀘스트를 받았을 때는, 분명히 우호적인 태도였었다.

‘확실히 뭔가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건을 접은 채 돌아 나갈 이유는 없었다.

카데스가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신’인 이상 인간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으니, 무서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훈이와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눈 카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후후, 그래서 용건은? 이 신전까지 찾아와 제까지 올린 것을 보면… 제법 중요한 용건이 있는 듯 한데 말이지.”

그에 훈이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물론, 중요한 용건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훈이는 무척이나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카데스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카데스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내 힘이라…? 어둠의 군주씩이나 되는 녀석이, 내 도움이 필요하다…?”

훈이화 카데스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어서 훈이가 말했다.

“인간계의 조화와 균형. 그것을 해치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존재이지요.”

훈이의 말이 끝나자,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른다.

카데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거 재밌군, 차원계의 조화와 균형을 해치는 무리라…. 그게 대체 누구지?”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되묻는 카데스.

그런 그를 응시하며, 훈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리치 킹 샬리언. 그가 인간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 (5). 어둠 속의 음모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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