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마수의 알 -3 >
* * *
“셀리파를 부화시킨 방법… 말인가?”
“그렇습니다.”
“오호? 그게 왜 궁금한거지? 설마 같은 알을 하나 더 구하기라도 한 겐가?”
이안의 질문에 눈을 반짝이는 그리퍼.
이안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같은 알은 아니고요, 제게 전설의 마수알이 몇 개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 봐도 부화할 기미가 보이지를 않아서요. 셀리파를 부화시킨 방법이라면 혹시 제 알도 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흐음, 그렇군.”
헛기침을 한번 한 그리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셀리파를 부화시킨 방법을 안다고 해서, 그 알을 부화시킬 수는 없을 걸세.”
단정짓듯 딱 잘라서 말하는 그리퍼를 보며,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예에…?”
그리퍼가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전설등급 마수의 알 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죠.”
“내가 알기로 전설등급 이상인 모든 마수의 알은, 제각각 다른 부화방법을 가지고 있거든.”
“…!”
그리퍼의 말을 들은 이안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기분이랄까.
하지만 실망도 잠시.
이안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전설등급 마수 알의 부화방법이 제각각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건…. 생각보다 마수에 대한 그리퍼의 지식이 더 박식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이안이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그리퍼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알이 어떤 전설의 마수 알인지 알고 있는가? 어떤 마수의 알인지 알고 있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는데 말이지.”
그리퍼의 말을 들은 이안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았다.
이안은 재빨리 대답했다.
“전설의 마수, 베히모스의 알입니다. 베히모스를 처치하고 얻은 알이니, 90%이상의 확률로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흐음, 베히모스라….”
그리퍼는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이안에게 손짓했다.
“이 쪽으로 와보시게, 이안. 오랜만에 한번 고문서들을 뒤져봐야겠어.”
이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리퍼의 뒤를 따랐다.
* * *
마탑 구석진 곳에 있는 먼지 쌓인 골방.
그 안에서도 무척이나 구석에 있는 낡은 서적을 꺼내 든 그리퍼가 책장을 넘기며 흥미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베히모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했더니, 태초의 마수 중 하나의 이름이었군.”
그리고 처음 듣는 ‘태초의 마수’ 라는 말에,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태초의 마수요? 그게 뭐죠?”
그리퍼가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마계에는, 그 종류를 전부 세기도 힘들 정도로 수 많은 종의 마수가 있다네. 자네도 마계에 가 봤으니 알겠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그렇죠?”
“그리고 아마 자네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마수들이 전부 창조신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들이라 알고 있을 테지.”
이안은 완전히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우선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죠.”
그리퍼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네. 그 수 많은 종의 마수들 중에서도, 창조신이 직접 창조한 마수는 채 스무 종이 되지 않거든.”
“그럼 나머지는…?”
“마수들끼리의 이종교배에 의해 탄생한, 쉽게 말해 신의 직접적인 창조에 의해서가 아닌, 자연적으로 생겨난 종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퍼의 이야기는 제법 길었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덕분에 이안은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뭐, 마수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쯤 얘기하기로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
이안은 더욱 귀를 쫑긋 세웠고, 그리퍼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기 시작했다.
“마신이 태초에 베히모스를 창조할 때, 함께 창조한 두 종의 마수가 더 있다네.”
그리퍼는 말을 하며, 오른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자리에 마치 홀로그램처럼 영상이 떠올랐다.
이안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한 마리의 마수와, 완전히 처음 보는 다른 두 종류의 마수.
세 마리의 마수가 영상 속에 떠올라 이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기세에, 이안은 살짝 움찔했다.
‘아오 깜짝이야.’
그리고 이안이 놀라건 말건, 그리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태초의 마수들은 각각 상징성을 담고 있는데, 이 세마리는 형제 격이라 할 수 있는 마수들로, 각각 대지, 바다, 하늘을 상징하지. 그 중 베히모스가 담고 있는 상징성은 대지라네.”
그에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대지라….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지축이 흔들리는 듯 한 이펙트를 가지고 있던, 베히모스의 고유능력인 진동파.
거기에 바위같이 단단했던 녀석의 표피를 생각하면 대지를 상징하는 마수라는 이야기가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그리퍼는 나머지 두 마수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었다.
“저기 보이는 저 머리 일곱 개의 수룡같이 생긴 녀석은 레비아탄인데, 녀석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바다. 마해(魔海)를 상징하는 녀석이며….”
잠시 숨을 고른 그리퍼가, 하늘에 떠 있는 그리핀을 닮은 녀석을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저 마수는 ‘지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짐작했겠지만 마계의 하늘을 상징하는 녀석이지.”
베히모스와 관련된 마수설화는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그와 비례해서 이안의 기대감도 올라갔다.
단지 전설의 마수인 줄로만 알았던 베히모스가, 생각보다 더 특별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막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해 놓고……. 설마 부화시킬 방법이 없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떠오른 불안감을 애써 눌러 삼킨 이안은, 문득 궁금증이 생겨 그리퍼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그리퍼.”
“음…?”
“제가 마계를 제법 돌아다녀봤지만, 마계에서 바다는 본 적이 없거든요. 마해라는 곳은 마계 몇 구역에 있는 곳인가요?”
이안의 궁금증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처음 마계에 진입했을 때 들어갔던 127구역부터 시작해서 13층까지, 무려 100개 지역이 넘는 마계를 들쑤시고 다닌 이안이었는데, 그 와중에 단 한번도 ‘바다’라고 할 만한 맵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마해를 본 적이 없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네. 마계의 바다는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바다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일세.”
“다른 개념이라면….”
“마계의 바다는, 마계의 수 많은 구역들이 담겨있는 거대한 하나의 그릇. ‘마계’라는 차원계 그 자체를 의미하니까 말이지.”
“으음…?”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고, 그런 그를 보며 그리퍼가 실소를 머금었다.
“후후, 아마 언젠간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니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네.”
“뭐, 알겠습니다. 사실 지금 중요한 건, 베히모스의 알을 부화시키는 거니까요.”
“그래, 이제 그 방법에 대해…. 여기 고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알려주도록 하지.”
이 모든 이야기의 본론이자, 가장 중요한.
베히모스 부화에 대한 이야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 * *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다행히 베히모스를 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거기에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할 뿐.
그리고 그 준비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었다.
첫째가 바로, 극렬한 열기를 가지고 있다는 마계의 불씨인, ‘극마염(極魔炎)’.
그리퍼의 설명에 의하면, ‘극마염’은 모든 전설등급 이상의 마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였다.
일반적인 마수의 알들은 기본적인 마염(魔炎)만을 가지고도 충분한 마기를 느껴 부화하지만, 전설등급의 마수들에게는 더욱 강한 마기와 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이 극마염은, 마신의 제단에 마기를 공양하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둘째로 필요한 것은, 베히모스의 영혼마력(靈魂魔力)이 봉인된 봉인석이었다.
이 조건이 바로 베히모스만이 가진 특별한 부화조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사실상 이게 무척이나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베히모스의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어미의 영혼마력을 흡수해야만 한다고 여기 쓰여 있군. 하지만 아마도… 자네가 가진 알들의 어미는 이미 자네의 손에 죽었겠지.”
“그, 그렇죠?”
“그래서 필요한 게 이 봉인석일세.”
이안은 그리퍼로부터 ‘영혼마력 봉인석’이라는 아이템을 건네받았고,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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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마력 봉인석 -
분류 - 잡화
등급 - 영웅
차원의 마도사 그리퍼가 자신의 마도공학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물건으로, 특정 몬스터의 영혼을 봉인할 수 있는 아티펙트이다.
만약 몬스터의 영혼이 봉인되어있는 봉인석을 가공하면, 해당 몬스터의 영혼석을 획득할 수 있다.
* 하나의 영혼만을 봉인할 수 있으며, 한번 사용하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는 일회성 아이템입니다.
* 봉인석을 가공할 시,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 까지의 영혼석을 랜덤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인간, 혹은 인간형 종족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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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템 정보창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오호, 이거…. 그냥 이 아이템 자체로도 제법 쓸모가 있겠는데?’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나 되는 영혼석을 추출할 수 있는 봉인석.
마수를 처치했을 때 많아봐야 10개 전후의 영혼석이 드랍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아티펙트임이 분명했다.
어쨌든 봉인석을 받아 든 이안은 조심스레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고, 그리퍼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봉인석에 베히모스의 영혼을 담아오시게. 그럼 알을 부화시킬 수 있을 게야.”
이제 다 되었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하는 그리퍼.
하지만 아직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한데…. 베히모스의 영혼은 어떻게 담아야 하는 건가요?”
이안의 질문에, 그리퍼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거야, 간단해. 베히모스를 사냥한 뒤, 그 사체에 대고 봉인석을 발동시키면 알아서 영혼마력이 추출될 걸세. 대신 죽은 지 1분이 지나지 않은 사체여야만 하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마계에서 베히모스를 찾을 수 있었다면, 굳이 알을 부화시키려 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힘들더라도 베히모스를 지속적으로 사냥해서, 영혼석을 모아 만들어 냈을 것이었다.
이안의 표정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마계를 아무리 뒤져봐도… 베히모스가 없으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그리고 이안의 그 물음에 그리퍼의 표정이 처음으로 움찔 했다.
“으음…. 태초의 마수가 희귀한 개체이기는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을 텐데?”
“… 아예 없다고 가정하면, 방법이 없을까요?”
그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그리퍼.
이안은 초조한 표정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고, 잠시 후 그리퍼의 주름진 두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하군.”
“어, 어떤 방법이죠?”
이안은 반색하며 되물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리퍼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가 직접 명계(冥界)로 가서, 그곳을 떠돌고 있을 베히모스의 영혼을 찾는 것이지. 쉽게 말해, 저승에 있을 베히모스의 영혼을 그 봉인석에 담아오면 되는 것일세.”
이안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 (4). 마수의 알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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