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85화 (405/1,027)

< (4). 마수의 알 -1 >

‘맞아, 그러고 보니…! 또 다른 전설 알의 주인이 있었어!’

이안의 뇌리에 붉은 마수의 알이 번뜩 떠올랐다.

베히모스의 알과 무척이나 흡사한 생김새와 질감을 가진 붉은 알이, 순간적으로 베히모스의 알과 겹쳐져 보인 것이다.

과거 그리퍼에게서 차원마력 충전기를 받으며 그 대가로 건네주었던 마수의 알.

그리퍼에게 건네준 뒤 잊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알도 분명 전설의 마수가 잉태되어있던 알일 것이었다.

‘그리퍼는 부화 방법을 찾았을까?’

더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열어두었던 차원문이 닫히기 전에, 다시 인간계로 돌아가야 했다.

“세르비안,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는 겐가? 항상 오면 일주일 정도는 있다가 가더니….”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제 알들 잘 보살펴주세요.”

“그거야 뭐….”

세르비안이 뭔가 말할 새도 없이, 이안은 후다닥 달려 연구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목적지는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차원의 마탑이었다.

*          *          *

백색과 흑색, 그리고 회색.

마치 흑백사진 속에 갇히기라도 한 듯 완벽한 모노톤의 풍경 속에, 거대한 묵빛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하얀 눈이 내려앉아서인지 탑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협곡마저 무척이나 황량해 보였고, 탑의 주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해골들이 쌓여있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북부대륙과 중부대륙을 잇는 금지(禁地).

이번 업데이트로 처음 오픈된 지역인 이곳은, 아직 그 어떤 유저의 발길도 닿지 않은 곳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들어설 수 없는 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높은 첨탑이 바로, 리치 킹 샬리언의 마탑이었다.

“크으윽, 감히 일개 흑마법사 따위가 나 샬리언의 제안을 거부하다니….”

마탑의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석좌에, 시커먼 로브를 뒤집어 쓴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온 몸으로 음울한 기운을 뿜어내는 어두운 남자.

그는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을 움켜쥔 채, 고통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후우, 잃어버린 영혼의 파편을 복구하려면… 또 일 주일은 움직일 수 없겠군.”

남자, 샬리언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분노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감히…. 간지훈이라고 했던가. 오늘의 그 선택,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지.”

지금껏 스승인 임모탈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샬리언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 임모탈마저도, 샬리언이 리치킹의 힘을 얻고 나서는 함부러 대하지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근본도 없는 인간 흑마법사 따위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로 인해 손해 본 시간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으드득-!

차가운 첨탑 내부가 작게 울릴 정도로 으스러져라 이를 간 샬리언은, 갑자기 한쪽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을 중심으로, 시커먼 기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라- 카므로엘!”

샬리언의 차갑고 칼칼한 음성이 첨탑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의 앞에 칠흑같이 까만 연기가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다섯 구의 그림자가 바닥에서부터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들 중, 가운데에 나타난 그림자가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샬리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괴한 형태의 흉갑을 걸치고 시커먼 도끼창을 등에 멘 남자.

“부르셨습니까, 왕이시여.”

그는 리치 킹의 권능으로 다시 태어난, 죽음의 기사였다.

샬리언이 석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기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어서 샬리언의 두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흩어진 영혼의 파편을 전부 모아오도록 하라.”

죽음의 기사, 카므로엘이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          *          *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정원.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표현이 과하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자라나는 정원의 풍경은 마치 천국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정원의 중심에는, 한 마리의 아름다운 용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새파란 하늘빛과, 푸른 초원의 빛이 반사되는 아름다운 비늘을 갖고 있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비룡.

푸릉- 푸르릉-!

그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연신 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감겨 있던 비룡의 두 눈이 번쩍 뜨여졌다.

뭔가 이질적인 기운이 그의 잠을 깨운 것이다.

푸릉-?

거대한 몸을 일으킨 비룡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었던 이질적이고 강렬한 느낌.

분명 ‘주인님’이 아닌 누군가가 이 정원에 나타난 것이었다.

한 차례 몸을 털어 낸 비룡은,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쏴아아-!

비룡이 파란 하늘로 날아오르자, 그의 거대한 몸체가 완벽히 푸른 빛깔로 물들었다.

누군가 보았더라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비룡의 자태!

그는 커다란 날개를 펼쳐 마탑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비룡에게는, 맛있는 밥도 잘 주고 재밌게 놀아주기도 하는 ‘주인님’을 지켜야 할 사명이 있었다.

*          *          *

차원의 마탑의 뒤쪽에는, 그리퍼의 몬스터 사육장이 있다.

일전에 이안이 고대 아르노빌 제국에서 가져와 복원시킨, 고대 몬스터들의 교배를 위해 만들었던 사육장.

그리퍼는 그 사육장을 아직까지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리칸에게 먹이를 주던 그리퍼가 이안을 발견하고는,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줬다.

“아니 이게 누구야. 차원전쟁의 영웅 이안대공 아닌가!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시다니, 이거 황송하구만 그래.”

점잖은 외견과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떠는 그리퍼를 보며, 이안이 피식 웃었다.

그리퍼와의 친밀도는 최대치까지 찍은 지 오래였으니, 이러한 반응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하하, 이안대공이라뇨. 저 이제 대공 아닙니다.”

이안의 말에 그리퍼가 주름진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어허, 그럼? 건국이라도 해서 왕좌라도 얻은 겐가?”

이안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빙고. 정확하시네요. 돗자리 펴셔도 되겠습니다.”

그리퍼는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지만, 크게 동요하지도 않았다.

“헐헐, 제국이 망하고 나니 결국 그렇게 되었구만.”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그리퍼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련한 표정으로 이안을 응시했다.

“처음 자네를 만났을 땐 이안 남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넨 정말 대단하단 말이지. 허허.”

굳이 정확하게 따지자면, 그리퍼의 신분은 평민이나 다름 없었다.

과거에 제국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기는 하였으나, 이미 제국이 멸망했기 때문에 무효화 된 것이다.

하지만 그리퍼는 이미 일반적인 인간의 범주에 들어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차원의 중재자라는 중임을 맡고 있는 그에게, 속세의 지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안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이 늙은이를 다 찾은 겐가? 자네같이 바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이 곳에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퍼가 이렇게 운을 띄워 주니, 말을 이어가기가 더욱 편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그리퍼님, 혹시 예전에 제가 드렸던 붉은 마수의 알 기억하십니까?”

이안의 물음에, 그리퍼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알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기억한다네.”

그 대답을 들은 이안은, 한 차례 침을 꿀꺽 삼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알 말입니다. 부화시키는 데 성공하셨습니까?”

질문을 던진 이안의 시선은, 그리퍼의 주름진 입에 고정되었다.

그의 대답여하에 따라 오랜 숙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으니, 이안이 긴장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리퍼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대신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침 저기 오는구먼.”

“예?”

“자네, 알을 찾지 않았나.”

“그랬지요.”

그리퍼가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준 그 알이 저쪽에서 날아오고 있다네.”

“…?”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이안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지만, 일단 그리퍼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두 눈이 휘둥그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퍼가 가리킨 하늘에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하늘빛의 드래곤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처음 보는 드래곤임이 분명한데도, 생김새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이안은 멀찍이 날아오는 드래곤에 안력을 집중시켜, 머리위에 떠올라 있는 정보를 확인하였다.

[셀리파 - Lv 125]

“셀…리파?”

이안의 중얼거림에, 그리퍼가 경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오…! 녀석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역시 대륙 최고의 소환술사인 자네는 뭔가 다르군!”

하지만 지금 이안에게는, 그리퍼의 목소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씩 다가올수록 더욱 익숙해지는 드래곤의 외모, 그리고 무척이나 익숙한 셀리파라는 이름의 어감.

이안은 셀리파의 외형을 어디서 봤는지, 결국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칼리파…! 마룡 칼리파랑 완전 똑같이 생겼잖아?! 비늘 질감이랑 색상만 다르지 완전 판박이야!’

사실 이름까지도 대놓고 비슷했으니, 이안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칼리파와 다른 것이라곤, 검붉고 투박했던 비늘의 질감이, 마치 유리거울같이 반짝이는 질감으로 변했다는 것 뿐.

이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퍼에게 물었다.

“저 녀석이… 제가 드렸던 그 알에서 나온 녀석이라는 거죠…?”

이안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퍼는 푸근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다네. 자네 덕분에 저렇게 아름다운 마수도 얻어서, 요즘 이 구석진 마탑에 틀어박혀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다네. 가끔 내가 키우는 몬스터들을 잡아먹어서 골치가 아프기는 하네만, 요즘은 말귀도 제법 잘 알아 듣게 되어서 그런 일이 없어.”

점점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이안!

이안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무시하며 그리퍼를 향해 다시 물었다.

“혹시 저 녀석…. 등급은 무슨 등급이던가요?”

그리고 그리퍼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자네가 내게 준 알이니, 대충은 짐작하고 있을 것 같네만….”

쿵-!

어느새 그리퍼의 옆으로 날아와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안을 노려보는 셀리파.

푸릉- 푸르릉-!

그리퍼는 푸근한 표정으로 셀리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셀리파는 무려 신화등급의 마수라네.”

대답을 들은 이안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          *          *

< (4). 마수의 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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