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영혼소환술 -3 >
* * *
흑마법사 켈스와 이안 파티의, 20분 정도에 걸친 전투영상.
그 안에서도 실질적인 전투는 10분이 안 되는 짧은 수준이었지만,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당시 게임을 플레이 중이던 모든 유저들은 생방송으로 영상을 봤었지만, 접속 중이지 않던 유저들은 차후에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수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퍼 나르기 시작하자, 카일란을 플레이하지 않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야, 이 영상 혹시 봤냐? 이거 무슨 영화 트레일러 영상이야?”
“영화는 무슨. 카일란 플레이 영상이라고.”
“카일란? 그 가상현실게임 카일란 말하는거야?”
“그래. 그 카일란 말이야.”
덕분에 LB사 홍보팀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캬, 이번 홍보영상은 따로 제작할 필요도 없겠어. 이 영상이나 좀 편집해서 퀄리티 높이고, 그대로 배포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에요. 다음 주에 홍보팀 전원 워크샵 가도 되겠는데요, 팀장님?”
“흐흐 좋아! 이거 영상편집 이번 주 내로 다 끝내면, 다음 주에 워크샵 결제 한번 받아본다!”
물론 이안이 등장하는 영상을 직접적으로 홍보영상으로 쓰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인센티브를 이안에게 지급해야만 했다.
그 액수가 결코 적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홍보효과대비 비용으로 계산해보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으니까.
한편 같은 LB사의 직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안 때문에 울상인 직원들도 많았다.
이안 덕분에 에피소드의 방향 자체가 바뀌어버렸고, 그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추가 컨텐츠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개발팀과 디자인팀, 기획팀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 * *
위이잉-!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뇌옥 안.
조용하고 거대한 동공의 한복판에, 공명음과 함께 파란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로그인 이펙트.
“휘유, 빨리 접속하고 싶어서 혼났네.”
모든 이벤트가 끝나 아무도 남지 않은 뇌옥에 접속한 인물은, 다름 아닌 훈이였다.
“흐으, 이안형한테 해명도 해야 되고 경험치 두 배도 얼른 먹어야 되고, 할 일은 많지만…!”
침을 꿀꺽 삼킨 훈이는, 갑자기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부처님 하느님. 아니, 임모탈님…! 제발 무기상자나 퀘스트 중 하나로 뜨게 해주세요!”
그야말로 간절함이 담긴 훈이의 기도!
정성스레 기도를 마친 훈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먼저 퀘스트 창을 열었다.
‘전직 퀘! 제발 전직퀘!’
속으로 연신 중얼거린 훈이는 눈 앞에 떠오른 퀘스트창을 빠르게 훑었다.
하지만 퀘스트 창 어디에도, 훈이가 바랬던 새 퀘스트가 생성되었음을 알리는 ‘N’이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크윽…!”
훈이는 잠시 휘청했지만,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래, 내 운이 원래 좀 나쁘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거야. 그동안 액땜을 너무 많이 했잖아?’
훈이가 원하는 보상이 걸릴 확률은 2/4.
즉, 정확히 50%.
이미 전직 퀘스트는 아니라는 것이 확정되었으니, 남은 확률은 1/3이었다.
“제바알…!”
훈이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인벤토리를 오픈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템 창을 확인한 훈이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아이템창의 가장 위쪽에, 처음 보는 황금빛 상자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자자자잣! 아잣!”
훈이는 빠르게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신화 등급 무기상자 (흑마법사 전용)]
‘크으! 심지어 직업전용이야! 횡재했다!’
훈이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으로, 무기상자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었다.
흑마법사 전용 무기가 확정되어있는 무기상자인 이상, 절대로 쪽박을 찰 일은 없었다.
“자, 어디…. 그럼 뭐가 들어있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싱글벙글한 표정을 한 훈이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무기상자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이것이 훈이의 첫 번째 신화등급 아이템이었으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훈이가 아이템 상자를 오픈하려던 바로 그 때.
휘이잉-!
어디선가 어두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훈이의 앞으로 모여들어 기이한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
그에 당황한 훈이는 얼른 무기상자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긴장한 표정이 되어 재빨리 전투자세를 취했다.
과연 랭커다운 순발력있는 움직임이었다.
‘뭐지? 몬스터가 아직 남아있었나? 그럴 리는 없는데…?’
눈을 반쯤 게슴츠레하게 뜬 훈이는, 어두운 그림자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켈스가 죽었을 때 나타난 그 녀석이잖아?’
켈스가 죽은 뒤, 새하얀 빛들이 빠져나가고 마지막에 허공에 떠올랐던 새카만 원혼.
지금 훈이의 눈 앞에 나타난 그림자가, 바로 그 원혼과 똑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의 입에서 천천히 말이 흘러나왔다.
[네 녀석은 나와 동류(同流)로군. 너에게서 무척이나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칼칼한 목소리를 들은 훈이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레벨을 비롯한 아무런 정보조차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아, 싸워야 할 몬스터는 아닌 듯 했다.
상황 판단이 전부 끝나고 나자, 훈이는 오랜만에(?) 상황극에 몰입했다.
“크큭, 확실히 그렇군. 그대 또한 어둠의 군주.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의문의 그림자는, 훈이의 대사를 무척이나 흡족하게(?) 받아주기 시작했다.
[어둠의 군주라….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다. 나는 그 일부에 불과할 뿐이니.]
훈이는 뒤집어 쓴 후드의 끝에 살짝 손을 올려 당기며, 거만한 표정으로 한 쪽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이, 내게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인데…. 망설이지 말고 한번 말 해 보라고. 난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이니까 말이야.”
누군가 들었다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몸 둘 바를 몰랐을 만한 대사를,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투척하는 훈이.
하지만 의문의 그림자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네 녀석으로부터 느껴지는 어둠의 기운…. 확실히 보통은 아니군. 좋다, 제안을 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훈이의 눈 앞에 돌연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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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치 킹 샬리언의 제안 (히든)(듀얼) -
리치 킹 샬리언은, 흑마법사 켈스의 심장에 자신의 원혼 일부를 떼어 심어놓았다.
그것은 자신의 권능을 켈스에게 빌려줌과 동시에, 그를 감시하기 위한 조치.
하지만 켈스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원혼의 조각은 뇌옥 안에 고립되고 말았다.
리치 킹 샬리언은, 당신이 이 영혼의 조각을 수습하여 자신을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그의 제안을 수용한다면, 당신에게 ‘리치 메이지’가 되는 길을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리치 메이지의 길은, 어둠의 군주 임모탈의 뜻에 반(反)하는 길.
당신이 리치 메이지의 길을 택한다면, 강력한 리치의 흑마법을 얻는 대신, 임모탈의 권능이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이제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리치 메이지의 힘을 얻고 싶다면 그의 제안을 수용해야 하며, 임모탈의 유지를 받들고 싶다면 그의 영혼을 파괴하라.
퀘스트 난이도 : S / SSS
(유저의 선택에 따라 퀘스트의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퀘스트 조건 :
300레벨 이상의 흑마법사.
리치 킹 샬리언의 영혼조각 발견.
‘지하 뇌옥 탐사 Ⅰ’ 퀘스트를 진행 중이던 유저.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리치 메이지’ 전직 퀘스트 / ‘사령의 군주’ 전직 퀘스트
(유저의 선택에 따라 퀘스트의 보상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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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창을 찬찬히 읽어 내려간 훈이의 한 쪽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 * *
퀘스트를 마치고 왕국으로 돌아온 이안은, 새로 얻은 NPC들을 왕국의 신하로 등용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가신으로 등록해 볼까도 생각했으나, 그것은 효율이 좋지 못했다.
왕국의 신하이건 이안 자신의 가신이건, 필요할 때 데려다 쓰는 데는 별 차이가 없는데, 왕국의 신하로 등록되어 있어야 다른 유저들까지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 이안에게, 너무 많은 가신은 오히려 짐이었다.
“샬리언의 목걸이라…. 이건 훈이에게 줘야겠지?”
루이세이의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샬리언의 목걸이’ 아이템.
제법 값이 나갈 만한 전설등급의 목걸이였지만, 이것은 훈이에게 양보하기로 결정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훈이를PK한 데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접속하면 알아서 연락 오겠지.”
만약 이안이 친구목록을 확인했더라면 훈이가 이미 접속해있음을 알 수 있었겠지만, 이안은 친구목록을 거의 열어보지 않는 유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루이세이에게 받은 새로운 연계 퀘스트도 곧 시작해야 했고, 그 전에 찾아가 봐야 할 곳도 있었다.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오랜만에 차원의 구슬을 꺼내었다.
그리고 차원문을 열어 어디론가 이동했다.
* * *
마계 107구역, 세르비안의 연구소.
오랜만에 연구소에 도착한 이안을, 세르비안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오, 이안! 오랜만이군.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 자주 좀 오시게. 늙은이 혼자 연구소에 박혀 있는 건 생각보다 외롭단 말이지.”
그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심심하시면 제자를 또 받으라니까요? 제가 여러 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핫, 그럴 순 없네. 자네를 이미 가르쳐 본 이상, 그 누구도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띄워주실 필요 없습니다요.”
이안은 세르비안이 너스레를 떠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과장 하나 없이, 이안만큼 만족스러운 제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암, 그렇고말고. 내 연구철학을 이만큼 따라와 줄 녀석을 어디서 또 찾아.’
이안과 같은 변태(?)는 인간계와 마계를 통틀어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세르비안은 확신했다.
어쨌든 이안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는 세르비안은, 그를 연구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자네, 지난번에 맡겨 둔 마수 알 때문에 찾아온 게지?”
“그렇죠. 역시 스승님은 척 하면 척이시네요.”
“후후, 일단 이쪽으로 좀 와 보게나.”
세르비안을 따라 연구실의 안쪽으로 들어온 이안은, 연구실 깊숙한 곳에 굳게 잠겨있던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곳은, 뜨거운 열기와 함께 시뻘건 염화(炎火)가 가득한 곳이었다.
“어후, 여긴 여러 번 와도 적응이 안 됩니다.”
금새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이안이 중얼거리자, 세르비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밖에. 마염의 기운은 인간 뿐 아니라 어지간한 마족들도 견디기 힘든 열기를 가지고 있으니 말일세.”
이안은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쭉 돌아보았다.
시뻘건 마기와 염화 위에 진열되어있는 수 많은 마수의 알들.
마수의 알은 일반적인 몬스터의 알과 달라서 그 종류나 부화도에 따라 색상이 가지각색이었는데, 때문에 수많은 알이 모여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방의 구석으로 가자, 이안이 세르비안에게 맡긴 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이안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으음… 역시 베히모스의 알은, 아직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군요.”
세르비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여전히 전설등급 이상의 마수 알은 부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어. 뭔가 특별한 재료나 방법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빨갛게 타오르는 마염(魔炎) 속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세 개의 푸른 알들.
마치 유리알 같은 신비로운 질감을 가진 알을 보며, 이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베히모스만 있으면 왠지 신화등급 마수를 연성할 수 있을 것도 같은 데 말이죠.”
이안의 말에 세르비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는 이미 신화등급이나 다름없는 마수 연성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크르르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나조차도 아직 자네의 ‘크르르’ 정도 되는 마수는, 칼리파 이후로 연성에 성공한 일이 없다네. 그 정도면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돼.”
이안은 베히모스의 알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 파란 알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크르르도 충분히 훌륭한 마수이기는 하지만, 이 녀석들만큼은 꼭 마수연성에 써 보고 싶었는데….”
이안은 지금까지, 마계에서 발견한 대부분의 전설등급 마수를 마수연성의 재료로 실험해 보았다.
발록은 물론이고 타르베로스부터 시작해서 데빌 드래곤까지.
마계 10구역대에 등장하는 모든 전설등급의 마수를 닥치는 대로 사냥해서, 영혼석을 모아다가 계속해서 실험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를 뒤져도 구할 수 없는 영혼석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베히모스의 영혼석이었다.
베히모스 만큼은 사령의 탑을 지키던 녀석을 제외하고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안의 중얼거림에 세르비안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걱정 마시게. 내가 어떻게든 저 녀석들을 부화시킬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세르비안. 세르비안이라면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씨익 웃어보인 세르비안은, 의자에 걸터앉아 땀을 닦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어디 전설등급 마수 알을 부화시킨 선례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리 기록을 뒤져봐도 그런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그런데 그 때.
세르비안의 말을 들은 이안이 뭔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3). 영혼소환술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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