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영혼소환술 -1 >
- 어어! 뭐지? 훈이가 갑자기 죽었어요!
- 뭐야?! 님들! 방금 이안이 훈이 PK함. 이거 무슨 일이죠? 훈이랑 이안 사이 좋은 거 아니었나요?
이제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긴 훈이.
독특한 컨셉(?) 때문에, 흑마법사 유저들 사이에서는 팬도 제법 많이 생긴 훈이였다.
그렇기에 이안의 팬이라면 훈이가 이안의 충복(?)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었고, 때문에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 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훈이 지금 이안한테 팽 당하는 건가?
- 미친 안 되는데?! 우리 훈이찡!
훈이의 죽음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채팅창.
그런데 그 와중에, 예리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지닌 유저도 있었다.
- 잠깐, 님들. 지금 이상한 거 발견했음.
- 왜요! 또 뭔데요?!
- 방금 분명히 이안이 훈이 공격해서 죽였잖아요.
- 그렇죠?
- 그런데, 이안 PVP모드 안 떠있어요.
- 어…?! 정말이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PVP모드는, 한 번 띄우고 나면 30분이 지나거나 다른 맵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되돌릴 수 없게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다.
악성PK범들이나 비 매너 유저들. 혹은 개념이 부족한 어린 유저들이, 시스템을 악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PVP모드로 전환한 뒤 아군을 공격하고, 재빨리 되돌려 자신은 공격받지 않는 등의 트롤링(Trolling) 행위를 방지하는 차원이랄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이안이 훈이를 PK한 것이라면 이안의 이름 옆에 붉은 해골 표시가 떠올라 있어야만 했다.
PVP모드가 아니고서는 PK를 하는 게 불가능했을 테니까.
한데, 지금 이안은 누가 보아도 PVP모드 상태가 아니었다.
-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뭐지? 버그 걸린 건가?
- 노노. 조금만 더 생각해 보세요, 님들. 이안이 PVP모드를 하지 않고도 훈이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 음…. 그런 방법이 있나요? 뭐지?
- 아! 한 가지 있네요! 훈이가 PVP모드가 되면 되는 거죠…!
- 오오, 그러네? 그 쉬운 방법을 왜 생각 못 한 거지?
대단한 걸 발견이라도 했다는 듯 다시 시끌벅쩍해 진 채팅방.
그런데 그 때, 이 의문을 제기했던 유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죠. 자 이제 그럼, 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 음? 그러게. 훈이는 갑자기 왜 PVP모드를 했을까? 훈이가 먼저 이안 통수 치려고 한 건가?
- 그러네요. 그거 아니면 답이 없는데…?
- 엥, 만약 그런 거면, 어떻게 훈이보다 이안이 먼저 반응한 거임?
- 맞네. 이거 진짜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이어진 누군가의 말에, 오해는 깊어져만 갔다.
- 이게 다 이안느님의 전략인거죠.
- 음? 이안느님의 전략이라뇨?
- 훈이가 이안이랑 짜고 일부러 죽어준 거 아닐까요?
- 응? 대체 왜?
- 왜긴 왜겠어요, 저 퓨전클래스 스킬로 훈이 살려내서 본인이 다 컨트롤해서 쓸어버리려는 거겠죠. 저게 아마 영혼소환술 이라는 스킬이었나?
- 아! 맞네. 제가 커뮤니티에서 본 건데, 영혼소환술로 되살려낸 유저는 전투능력 버프도 꽤 많이 받더라고요. 그렇다면 그걸 위해서…?!
오해가 쌓여 엉뚱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달되었고, 이 추론은 설득력을 얻어 거의 모든 채팅방에 공론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 역시 이안갓…!
- 크으, 클라스가 다르네. 어떻게 거기서 훈이 희생시킬 생각을 한 걸까?
허술한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닌 추론이었지만, 이안의 인기에 힘입은 탓인지, 반론들은 금방 금방 묻혀 버렸다.
게다가 전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으니, 다들 이안의 컨트롤을 감상하기 위해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오늘도 이안의 인기는 높아져만 갔다.
* * *
한편 훈이는, 자신의 캐릭터가 사망하는 과정을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 저 무자비한 형…. 진짜 망설임 없이 죽여 버리네. 흑흑.’
자신의 AI를 응원하던 훈이는, 일말의 희망조차 부숴버리는 이안의 대처에 절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이 상황에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 근데 왜 난 로그아웃 안 되는 거지? 캐릭터 죽었는데…?’
그리고 이어서 시야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띠링-!
[캐릭터가 사망하였습니다.]
[AI 통제 하에 캐릭터가 사망하였으므로, 사망 패널티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60분 뒤 사망한 위치에서 다시 로그인하실 수 있습니다.]
[60분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재접속 시 60분간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경험치와 재화가 2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퀘스트 실패에 대한 보상으로, 퀘스트 성공보상 중 하나가 랜덤으로 지급됩니다.]
[시나리오 시청 모드로 전환됩니다.]
[영상이 끝날 때 까지 시나리오 시청 모드가 유지되며, 강제로 접속을 종료할 시 이벤트가 끝날 때 까지 게임에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훈이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 이건…!’
그리고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뻔 했다.
시스템 메시지의 뒤편에서 후광이 비치는 느낌이 들 정도랄까.
‘역시 카일란은 갓 게임 이었어 흑흑.’
퀘스트를 강제한 것에 대해 속으로 카일란 운영진을 수백 번 욕하고 있었던 훈이는, 예상치 못했던 훈훈한 보상에 속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험치와 재화 보상도 충분히 감격스러운 것이었지만, 사상 최악의 난이도였던(?) 퀘스트의 보상까지 하나 랜덤으로 주겠다니!
‘앞으로 더 열심히 게임 할게요. 갓 카일란님. 크흑.’
그리고 재빨리, 퀘스트의 보상이었던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보상이 총 네 개 있었지? 명성이나 친밀도만 안 걸리면 진짜 대박인데…!’
시스템의 개입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퀘스트인 ‘샬리언의 권능 계승’ 퀘스트.
퀘스트의 보상은 총 네 개였고, 그 목록은 다음과 같았었다.
리치 킹 샬리언과의 친밀도 30 상승.
히든 클래스, ‘리치 메이지’ 전직퀘스트 부여.
신화 등급 무기상자.
명성 15만.’
‘전직퀘나 무기상자 중 하나만 먹으면 이득이야…!’
이쯤 되자 시스템의 개입이 오히려 감사한 수준이었다.
어차피 시스템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퀘스트를 진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을 테니까.
잠깐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훈이는, 싱글벙글하며 영상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안이 자신의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컨트롤하는지 마음 편히 구경할 시간이었다.
* * *
“아니…! 이 저주받은 능력이 대체 어떻게…?!”
카르가 팬텀이자 이안의 노예인 카카의 고유능력, 꿈꾸는 악마.
꿈꾸는 악마가 발동되자마자 전장에 깊게 깔린 어둠의 대지를 보며, 켈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켈스는 꿈꾸는 악마 스킬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꿈꾸는 악마가 펼쳐지며 생성된 어둠의 대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흑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광역 버프 스킬이자, 최악의 저주받은 디버프 스킬.
이 어둠의 대지는, 켈스가 알기로 그의 주인인 리치 킹 샬리언의 권능이었다.
덕분에 샬리언과 함께 제국의 기사들을 상대할 때, 이 어둠의 대지를 이미 경험해 본 것이었다.
물론 그 때는, 디버프가 아닌 버프로서의 어둠의 대지였지만 말이다.
“젠장! 뒤로 빠져! 어둠의 대지가 끝날 때 까지 싸워서는 안 된다!”
켈스는 다급히 소환된 소환수들과 다른 흑마법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그것은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새카만 두 마리의 하르가수스가, 허공을 날아 퇴로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키히이이잉-!
뇌옥 안에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하고 기괴한 말의 울음소리.
그에 시선을 휙 돌린 켈스는, 더욱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고 말았다.
두 마리의 하르가수스 중, 한 녀석 위에 올라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흑마법사는 아닌데…?’
흑마법사가 아니라면 하르가수스의 위에 오를 수 없다.
그것이 켈스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의문의 사내는 하르가수스 위에 올라 타 있었고, 그에게서는 흑마법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노옴! 고작 둘이서 이 켈스님의 앞을 가로막다니! 간덩이가 부은 게로구나!”
하지만 의문의 사내는, 대답 대신 하르가수스를 달려 켈스에게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켈스의 스컬 완드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죽어라 이놈…!”
쾅- 콰쾅-!
400레벨이 훌쩍 넘는 초 고레벨의 흑마법사답게, 거의 캐스팅 시간이 없는 즉발 공격스킬을 마구잡이로 난사하는 켈스.
이어서 이안과 훈이가 탄 두 마리의 하르가수스가,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탓- 탓-!
쿠콰콰쾅-!
수십 갈래의 어둠광선 사이로, 대부분의 피해를 무효화시키며 뛰어드는 하르가수스!
두 마리의 하르가수스는, 피할 수 있는 공격은 거의 다 피해 내었고, 꼭 필요한 상황에만 강하를 발동시켜 피해를 흡수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차라리 묘기에 가까웠다.
- 도랏ㅋㅋㅋ 지금 이안이 둘 다 컨하고 있는 거 맞지?
- 강하 컨 두개를 저렇게 할 수 있다고?ㅋㅋㅋ 이거 뭔가 이상한데. 혹시 영혼 소환술 쓰면 소환된 영혼은 AI로 움직이는 거 아님?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는데.
- 윗분, 저렇게 정교하게 움직이는 유저 AI 본 적 있음? 보스급 몬스터라면 몰라도….
- 아니 다 필요 없고, 지금 이안 캐릭터랑 훈이 캐릭터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잖아. 저것만 봐도 이안이 컨하고 있는 건 확실함.
- 아, 그러네. 하…. 진짜 돌았다. 이안 쟤는 뇌가 여러 개 있는 게 분명해. 뇌가 좋을지 안 좋을지는 몰라도 숫자는 확실히 여러 개 일거야….
- ㅇㅇ 뇌 한개로 저렇게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 ㅋㅋㅋ진짜 이안 머리 한번 해부해 보고 싶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안과 훈이의 하르가수스는 거의 쌍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한 사람이 컨트롤하는 것 처럼 보일 수준.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상황에 따라 슬쩍슬쩍 움직임이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컨트롤의 효율성을 위해 두 마리의 하르가수스를 묶어서 컨트롤하기는 하지만, 필요할 때는 변화를 줘서 다른 움직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르가수스의 위에 앉은 훈이의 영혼은, 무언가 고위 마법임이 분명한 흑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그것이 고위마법이라는 사실은, 벌써 캐스팅 시간이 1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마법이 발동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안의 엄청난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만 허용하더라도 캐스팅이 풀리게 되는데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며 이런 고위 마법을 캐스팅한다는 것은, 캐스팅 시간동안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 와 개꿀잼! 갑자기 시나리오모든지 뭔지 떠서 사냥하다가 짜증났었는데…. 이런 생방송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임ㅋㅋㅋ
- 크으, 이안 날아다니는 것 봐. 훈이 컨 하는 와중에 자기는 잡몹들 다 쓸어 담고 있네.
- 그런데 이안갓도 조금 벅차기는 한가봐요.
- 뭐가요?
- 훈이 마법까지 난사하고 그러지는 못하네요. 훈이는 그냥 계속 공격만 피하고 있음.
- ㅋㅋ 님, 시력검사 좀 다시 하셔야 할 듯.
- 지금 훈이 캐릭터 마법 캐스팅 중이잖아요. 뭘 캐스팅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30초도 넘은 듯.
- 30초가 뭐임. 1분? 아니, 2분은 된 듯.
유저들은 신나서 떠들어대며 전투 상황을 제각각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통찰력이 뛰어난 랭커 유저나 카일란 전문가들의 발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특히 이번 영상을 통해 처음 공개된, 이안의 소환마수인 ‘크르르’에 대한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 와…. 이안갓 대체 언제 발록까지 테이밍했냐. 지린다 진짜. 쟤는 하루 48시간 게임함?
- 근데 저 발록 내가 봤던 발록들이랑 좀 다르게 생겼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좀 틀려, 확실히.
- 윗님, 랭커인 척 오지네요. 발록을 봤다고요?
- 아니, 직접 안 봐도 영상에서 많이 보잖아. 저거 확실히 틀리게 생겼다고.
그리고 그 관심에 걸맞게, 크르르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크르르! 크아아오!]
전장을 뛰어다니며, 디버프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언데드들을 파괴하고 다니는 크르르.
특히 크르르의 고유능력인 파괴광선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데다 이팩트도 화려하고, 무엇보다 이 전장에서 가장 고효율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좁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뇌옥 맵의 특성상 크르르의 파괴광선은 미친 듯이 구조물에 반사되며 튕겨 나가고 있었는데, 이것이 그 이펙트를 몇 배 화려해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크르르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붉고 화려한 빛줄기가 허공을 어지러이 수놓는 광경은, 그야말로 압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오!
200레벨 대 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스켈레톤들은 마치 짚단처럼 무너져 내렸으며.
쾅- 콰드득!
400레벨에 가까운 흑마법사들도 스플레쉬 데미지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스하아아아-!
스산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마염(魔炎)의 열기가, 전장을 집어삼킨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오랜 시간 캐스팅 중이던 훈이의 오른 손에서, 눈부시게 밝은 보랏빛의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 (3). 영혼소환술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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