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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381화 (401/1,027)

< (2). 리치 킹 샬리언의 야욕 -3 >

*          *          *

홀로 모니터링실에 남은 나지찬은, 화면을 응시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뭐야, 설마 알아차린 건가?’

이안과 짧게 대화를 나누더니, 은근슬쩍 훈이의 주변으로 움직이는 라이.

그것을 발견한 나지찬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그저 파티원을 돕기 위한 파티플레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지찬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낀 것이다.

“아무리 이안이라도 이건…!”

카일란의 AI 기술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유저 AI의 경우, 평소 유저의 플레이 스타일과 패턴을 빅 데이터로 모아 반영하기 때문에, 그 정교함은 유저 본인이 아니고서는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

물론 의심을 갖고 자세히 본다면 어색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만, 지금 화면 속의 상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아무리 이안이라고 하더라도, 저런 난전 속에서 훈이의 변화를 알아차렸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지, 진짜 미쳤다.”

나지찬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안의 게임감각에 두려움이 일 정도.

사실 이안에게 퀘스트가 공유됐다는 것을 모르는 이상, 이것은 당연한 반응인지도 몰랐다.

물론 공유된 퀘스트를 발견한 것 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유추해 낸 것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지찬이 자신의 테블릿을 다급히 꺼내들며 기획서를 열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설마설마 했는데, 플랜B까지 써야 될 줄이야….”

화면을 다시 응시하던 나지찬은, 이안이 알아차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혹시나 해서 세워두었던 계획을 실행해야 할 때인 것이다.

자리에 벌떡 일어난 그가 황급히 모니터링실을 벗어났다.

조금이라도 빨리 기획실로 돌아가야 했다.

“안 그래도 훈이에게 좀 미안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것, 선물을 하나 줘야겠어.”

기획실로 향하는 나지찬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얹혀 있었다.

항상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안의 존재는, 그에게 있어서 큰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카일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스킬들은, 논 타깃팅(Non Targeting) 방식을 가지고 있다.

논 타깃팅 방식이란, 특별하게 타깃을 정하지 않고 캐릭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스킬을 발동시키면, 해당 방향의 스킬발동 범위 안에 있는 적들이 피해를 입는 공격방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범위 내에 아군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외가 되는 PK존 같은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군은 범위 안에 들어간다 한들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쉽게 말해 ‘실수로 하는 팀킬’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대규모 전쟁을 가정한다면, 같은 진영 소속의 모든 유저들은 아군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같은 편의 범위공격에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다.

그럼 ‘팀킬’을 하기 위해서 가장 처음 해야만 할 일은 뭘까?

그것은 바로 PVP모드 활성화.

PVP모드가 활성화되면 피아에 관계없이 유저를 공격할 수 있게 되고, 자신 또한 모든 유저들의 공격에 노출되게 된다.

하지만 PVP모드를 활성화한다고 해서 시스템 메시지로 알려준다거나 어떤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머리 위에 떠있는 유저 이름 옆에, 작고 붉은 해골 모양이 깜빡거릴 뿐.

그렇기에 이안은, 전투를 계속하면서도 훈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만약 훈이의 이름 옆에 붉은 해골이 깜빡이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훈이가 사망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한편 이안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져만 갔다.

“유신님! 쉴드 얼마 안 남았어요! 살짝 뒤로!”

“괜찮습니다, 아직 여유 있어요!”

쾅- 콰쾅-!

뇌옥은 전체적으로 보면 제법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국 중앙으로 모이면 세 개의 좁다란 통로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그 세 개의 통로를 각각 훈이와 이안, 유신이 맡아서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레미르는, 세 개의 통로가 동시에 보일 정도로 조금 더 뒤쪽으로 떨어져서 세 사람을 서포팅하고 있었다.

레미르의 주 무기인 광역마법의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된 것이다.

레미르가 답답한지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아, 그냥 뒤쪽으로 빠져서 넓은 데서 싸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냐, 그러기엔 적들 숫자가 너무 많아.”

물론 또 다른 이유도 하나 있었다.

‘넓은 맵으로 가면 훈이를 견제하기도 힘들어지고 말이지.’

뒷말을 삼킨 이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라이와 훈이를 다시 한 번 번갈아 보았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조심스러워야만 했다.

레미르도 조금 아쉬워 보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수긍한 채 서포팅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전방에서 커다란 흑마법 주문이 울려 퍼졌다.

“라- 포라디움!”

쿠우우웅-!

뇌옥 여기저기에 박혀있는 굵직한 쇠창살들이 마치 사시나무 떨듯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뇌옥 바닥 여기저기에 생성되기 시작하는 보랏빛의 마법진들!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뭐지? 소환마법…?! 완전히 처음 보는 마법인데…!’

이안은 소환술사이기는 하나, 다른클래스 유저들의 스킬들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빠삭한 편이었다.

아무리 컨트롤이 좋고 뛰어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 한들, 상대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풀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로는, pvp에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파티플레이로 던전이나 보스급 몬스터를 공략할 때에도, 타 클래스의 스킬을 모른다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한데 지금 켈스라는 저 흑마법사 npc는, 이안이 완벽히 모르는 스킬을 구사하려 하고 있었다.

이안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으…! 좀 더 참아봐야 하나?’

여기저기에 생긴 마법진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뿌연 회백색의 연기.

그리고 어둠속성의 스킬일 것이 분명한,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마법.

그에 대비하기 위해선, 당연히 카카의 고유능력인 꿈꾸는 악마를 발동시키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이안이 참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훈이를 잡기 전까지는 참아야 하는데…!’

훈이가 배신할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미리 꿈꾸는 악마를 발동시켰다가는 훈이의 언데드들에게 버프를 주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훈이가  PVP모드를 활성화시킨 후 발동시킨다면, 오히려 훈이의 언데드들은 꿈꾸는 악마로 인해 디버프를 먹게 될 것이었다.

이것은 충분히 전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만한 커다란 차이였다.

그런데 그 때.

“…!”

이안의 시야에 기다렸던(?) 이펙트가 눈에 들어왔다.

공격마법을 캐스팅하던 훈이의 이름 옆에, 붉은 해골이 떠오른 것이었다.

‘옳거니!’

지금까지 이 상황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안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훈이를 선공해서 죽인다면 악명 패널티를 쌓게 되겠지만, 명성이 넘쳐났기 때문에 별로 무서울 것도 없었다.

이안은 동시다발적으로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라이! 카카!”

“알겠다, 주인.”

이안의 명령을 이행함에 있어 비교적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진 라이는, 한 치의 의심 없이 훈이의 등에 발톱을 찔러 넣었고 그것은 정확히 훈이의 공격마법이 발동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콰악-!

무방비 상태에서 완벽한 근접공격을 허용한 훈이!

이어서 하늘 높은 곳으로 빠르게 날아오른 카카가, 두 눈을 감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둠이 내려앉는다.”

[노예 ‘카카’의 ‘꿈꾸는 악마’ 고유능력이 발동되었습니다.]

[‘어둠의 지배’가 지속되는 동안, 모든 파티원의 공격력이 5%만큼 상승하게 되며, 모든 어둠 속성 피해가 50%만큼 감소하게 됩니다. 또한 반경 안의 모든 은신상태의 적이 시야에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에 훈이의 AI는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AI인만큼 당황하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으나, 인공지능이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라이의 공격에 캐스팅중이던 스킬이 무효화 되었으니, 잠시 동안 벙 찐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라이의 공격으로 인해 입은 피해도 제법 치명적인 상황.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순간을 놓칠 이안이 아니었다.

“공간왜곡!”

훈이. 정확히 말하자면 훈이의AI는, 라이에게 완벽히 등을 내어 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안과 라이의 위치가 바뀌자, 훈이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외통수랄까.

그리고 이안의 정령왕의 심판이, 가차 없이 훈이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콰아앙-!

순간적으로 약점포착까지 발동시킨 이안은, 한 치 어긋남 없이 치명타를 꽂아 넣었고.

[유저 ‘간지훈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간지훈이’의 생명력이 498079만큼 감소합니다.]

콰콰쾅-!

연이어 두 차례의 공격이 훈이의 상체를 난자했다.

[‘간지훈이’의 생명력이 343888만큼 감소합니다.]

[‘간지훈이’의 생명력이 560162만큼 감소합니다.]

현존 최강이라 해도 손색없는 양손무기에 제대로 된 타격을 세 방이나 허용한 훈이.

기사 클래스가 아닌 이상 버텨낼 수 없는 데미지가 순식간에 터져나왔고, 훈이의 몸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모든 클래스 중 생명력과 방어력이 가장 약한 흑마법사 클래스가 이런 무지막지한 피해를 견뎌낼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털썩-!

그리고 뒤늦게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인지한 레미르와 유신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아, 뭐 하는 거야?”

“훈이를 왜 공격했어!”

하지만 이안은 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시간이 없었다.

“있다가 설명해 줄게! 일단 막아!”

훈이의 반란(?)을 무사히 진압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손에서, 새카만 어둠의 기운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후우웅-!

이안이 지금 사용하려는 스킬은, 퓨전스킬인 ‘영혼 소환술’.

사망한 지 10초가 지나지 않은 대상에게만 발동시킬 수 있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휘이잉-!

이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기운이 쓰러진 훈이를 감쌌다.

그리고 훈이의 온 몸이,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유저 ‘간지훈이’에게, 퓨전스킬 ‘영혼소환술’을 사용하셨습니다.]

[유저 ‘간지훈이’의 영혼이 소환됩니다. (영혼은 대상 유저의 전투능력치의 125%만큼을 가지게 됩니다)]

[간지훈이의 영혼이, ‘블러드러스트’ 상태가 되었습니다. (움직임이 60%만큼 증가합니다.)]

[이제부터 ‘간지훈이’ 유저의 모든 스킬과 고유능력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간지훈이’ 유저의 모든 소환물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가신의 경우 제어할 수 없습니다.)]

:

:

그야말로 ‘순식간’이랄 수 있는 짧은 시간 만에 일어난 전장의 변화.

이안은 이 모든 오더를 채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완벽히 해 내었음에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제 훈이가 했어야 할 컨트롤까지 이안의 몫이 되었으니까.

눈 앞에는 어둠의 대지가 깔렸고, 이제 완벽한 판이 깔렸다.

그리고 훈이의 영혼이 언데드들을 차례대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어둠의 대지는, 언데드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어둠의 대지에서 일어선 언데드들은, 생명력이 300%만큼 빠르게 회복합니다.]

[언데드에 한해 ‘꿈꾸는 악마’고유능력의 버프효과가, 5%가 아닌 35%로 적용됩니다.]

[모든 언데드들의 소환유지 마나소모량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안의 두 눈이 켈스를 노려보았다.

훈이의 영혼을 컨트롤할 수 있는 5분이라는 시간.

‘그 안에 목을 따 주도록 하지.’

전장의 흐름이, 또다시 일변했다.

*          *          *

< (2). 리치 킹 샬리언의 야욕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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