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80화 (14/1,027)

< (2). 리치 킹 샬리언의 야욕 -2 >

*          *          *

카일란을 플레이 중이던, 모든 유저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췄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첫 번째 숨겨진 에피소드가 오픈됩니다.]

[‘리치 킹 샬리언’의 야욕이 드러났습니다.]

[대륙의 영웅, ‘뮤란’의 안배가 발동합니다.]

[대륙 곳곳에, 리치 킹 샬리언의 언데드 군단이 창궐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흑마법사 전직소에, 히든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레벨 제한 : 300)]

[지금부터 에피소드 인트로 영상이 시작됩니다.]

사냥터에서 열심히 사냥중이던 유저들은, 난데없는 시스템 메시지에 당황했다.

하지만 시간이 아예 멈춰 버린 것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유저들 뿐 아니라 모든 npc들과 몬스터들의 시간도 함께 멈춰버렸다는 점.

그리고 조금씩, 유저들의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시청 모드입니다.]

[채팅 서버 2798에 접속하였습니다.]

[영상이 끝날 때 까지 시나리오 시청 모드가 유지되며, 강제로 접속을 종료할 시 이벤트가 끝날 때 까지 게임에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카일란이 오픈한 뒤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그에 처음에는 모든 유저들이 당황했지만, 적응하는 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 있는것과 다를 것 없는, 무척이나 익숙한 인터페이스였기 때문이었다.

- 오오…! 카일란 개발팀에는 외계인이라도 있는 건가? 어떻게 매번 새로운 시스템이 생기는 거지?

- 크으, 이런 건 또 신선하네요. 진짜 준 외계인 급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하는 듯.

- 그리고 그 외계인들은… 퇴근도 못 하고 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갈리고 있겠죠. ㅠㅠ

- 그나저나, 이거 무슨 스토리인거죠? 대충 보니까 감옥 같은데.

- 뭐 보다보면 알게 되지 않을 까요?

유저들이 적응하고 나자, 채팅창은 시끌벅적해 지기 시작했고, 뇌옥 전체를 보여주고 있던 영상은 움직여 진영 가운데 마주 선 두 사람을 커다랗게 확대했다.

거대한 묵빛 대검을 빼어 든 백발의 전사와, 칠흑같이 새까만 로브를 걸친 흑마법사의 대치.

어둑어둑한 장내와 어우러진 이 광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흑마법사 따위가, 감히 폐하의 앞을 가로막는가!”

대검을 치켜든 채 호통을 내지르는 백발의 전사.

카이자르의 주변으로 기의 파동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으며, 그의 망토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안은 감격했다.

‘폐하라니…! 카이자르에게 폐하 소리를 듣다니…!’

즉위 이후에도 줄곧 영주놈아 라며 이안의 속을 긁던 카이자르.

이제 영주가 아니라며 핀잔을 줘 봐야 ‘주인놈’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던 카이자르가, 드디어 폐하라는 호칭을 입에 올린 것이다.

뭔가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만 적용되는 일시적인(?) 호칭인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안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후후, 카이자르. 그대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여도, 오늘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음산하게 울려 퍼지는 흑마법사 켈스의 음성.

그와 동시에, 이안 일행과 흑마법사들의 진영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          *

LB사의 기획팀과 모니터링팀.

그리고 개발팀은 무척이나 분주해 졌다.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시스템이 발동되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장 긴장한 부서는 바로 기획부였다.

하필 숨겨진 에피소드를 발견한 유저들이, 최상위 클래스의 랭커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기획팀의 유명한 골칫덩이 이안도 어김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쾅-!

거칠게 문을 열어젖힌 김의환 팀장이, 허겁지겁 모니터링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안에서 열심히 모니터링 중이던 나지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야, 지찬아. 이거 왜 이렇게 된 거야? 아까 오전에만 해도 에피소드 발견한 유저는 레미르 혼자였잖아?”

쉴 새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김의환을 보며, 나지찬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그러게요. 저도 일 좀 하다가 모니터링실 와보니, 이안에 유신. 훈이까지 몰려와 있더라구요.”

“하아…. 설마 쟤들이 켈스 죽여 버리는 건 아니겠지?”

“글쎄요. 이안갓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텐데…. 하필 흑마법사 천적인 이안이 저기 끼어있어서….”

“으으….”

숨겨진 에피소드인 ‘리치 킹 샬리언의 야욕’.

이 에피소드가 발동되면서 시작되는 전투인 ‘뇌옥의 전투’는, 사실 어느 쪽이 이기던 시나리오 진행상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전투가 너무 압도적인 양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흑마법사인 ‘켈스’가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 전투에서 살아서 도망가야, 샬리언에게 보고를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것.

김의환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나대리, 빨리 방법 좀 찾아봐. 나 지금 똥줄 타서 미치겠어.”

김의환은 커다란 스크린을 응시하며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스크린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는데, 김의환이 보기에도 이안 일행의 전력이 너무 막강해 보인 탓이다.

만약 켈스가 죽기라도 한다면, 미리 기획해 두었던 이후 스토리를 전면 수정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 자리에서 슬쩍 일어난 나지찬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팀장님.”

“응?”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

방법이 있다는 나지찬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김의환이 후다닥 그의 앞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그가 아는 나지찬은, 평소에 좀 변태같은(?) 구석이 있기는 해도, 실 없는 소리는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게 뭔데! 지금 전투 시작까지 1분도 채 안 남았다고. 빨리 얘기해봐, 빨리!”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든 나지찬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미리 대책을 하나 세워 뒀었습니다.”

“으음…?”

이어서 나지찬의 한쪽 손가락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가 가리킨 위치에는, 멍한 표정으로 전투를 준비 중인 훈이가 서 있었다.

“저 녀석을 좀 이용해 보도록 하죠.”

*          *          *

‘뭐지?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지?!’

이안의 오더에 따라 흑마법을 캐스팅하던 훈이는, 갑자기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라, ‘샬리언의 권능 계승’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퀘스트 진행을 위해, AI가 발동됩니다.]

훈이는 분명 퀘스트를 수락한 적이 없었다.

‘분명 퀘스트 창을 그대로 꺼버렸는데…!’

한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강제로 샬리언의 권능 계승 퀘스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게다가 심지어, 캐릭터의 통제권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훈이는 자신의 캐릭터가 전투하는 것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안감에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오해로 인해 이안에게 찍혔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AI가 설마 이안형을 공격하거나 하진 않겠지? 제발 얌전히 켈스인지 뭔지 저 놈이나 공격하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캐릭터 AI발동은, 그야말로 유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

만약 자신의 AI가 활약해서 샬리언의 권능 계승 퀘스트를 클리어하기라도 하면, 그게 진정한 베스트 시나리오 일 수도 있었다.

배신하지도 않고 실리는 챙길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상황이 아니던가!

훈이는 마음속으로 빌기 시작했다.

‘제발…! 퀘스트 진행할 거면 무조건 이겨라…! 괜히 나대다가 죽지나 말고….’

신화등급의 무기상자와, 상위 티어 히든 클래스일 게 분명한 리치 메이지가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한 훈이.

정면으로 맞부딪힌다면 훈이가 합세해도 결과에 큰 차이가 없었을 수 있지만, 지금의 훈이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훈이에게 히든 퀘스트가 발동한 것을 이용하여 이안 일행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기획팀의 전략은, 정말 괜찮은 한 수 였던 것이다.

훈이로서는 희망을 가질 만하며, 기획팀으로서는 안도할 수 있을 만한 상황.

그런데 훈이도, LB사의 기획팀도.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          *          *

쾅- 콰쾅-!

“유신! 앞에서 어그로 좀 끌어 줘! 곧 뿍뿍이 힐로 지원할게!”

“오케이!”

전체 면적 자체는 무척이나 넓지만, 중간중간 들어 서 있는 옥사(獄舍)들로 인해 복잡하고 좁은 구조를 가진 지하뇌옥의 최하층.

뇌옥의 골목골목에서, 흑마법사들과 이안 일행의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누나! 후방으로 가서 보조마법 위주로 지원 좀!”

“공격마법은?”

“어차피 딜은 안 부족해. 그리고 맵 구조상 광역기 효율이 너무 떨어져!”

“알겠어!”

“훈이 너는 언데드로 좌측 통로 좀 틀어막고!”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전장의 선두에 선 이안.

그는 쉴 새 없이 오더를 내리며, 여느 때 처럼 전장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훈이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오호… 이것 봐라…?’

이안의 오더를 따르고는 있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훈이의 움직임.

훈이와 하루이틀 손발을 맞춰 본 것이 아닌 이안으로서는, 사소한 컨트롤의 차이도 대번에 눈에 거슬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안이 훈이의 움직임을 주시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것은 바로 이안의 시야 한쪽 구석에서 천천히 깜빡이고 있는 작은 메시지 창.

[공유받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습니다.]

바로 훈이로부터 공유받은 퀘스트 창이었던 것이다.

카이자르가 파기하지 않은 탓에,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훈이와 이안의 주종관계!

이안이 벌써 몇 달 째 훈이의 퀘스트를 공유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훈이조차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변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훈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나지찬이 생각해 낼 수 있었을 리는 없었다.

아무리 준 스토커 급의 이안 광팬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훈이 이녀석이 설마 뒤통수를 치려나…?’

훈이에게 생성된 퀘스트를 대략적으로 읽은 이안은, 만약 자신이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갈등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훈이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역시나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저 녀석이 갈등하느라 컨트롤이 둔해진건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더를 내려도 대답을 아무 대답을 않고, 움직이기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오더를 정확히 수행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뭔가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랄까?

이안이 자신의 바로 앞에서 스켈레톤 워리어를 상대하고 있던 라이를 조심스레 불렀다.

“라이, 이리 와 봐.”

[불렀는가, 주인.]

“지금부터 훈이 근처로 가서 그를 엄호해 주도록 해.”

[그러도록 하겠다, 주인.]

“그리고….”

이제 전투가 좀 더 무르익으면, 카카의 광역디버프를 발동시킬 것이고 전장에 짙은 어둠이 깔릴 것이다.

그리고 라이는, 어둠 속에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소환수.

게다가 이안의 소환수들 중 최상위권의 민첩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수상한(?) 훈이를 견제하기에 가장 적합한 녀석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것은 무척이나 낮고 은밀한 목소리였다.

“내가 신호하면, 곧바로 훈이를 죽여.”

< (2). 리치 킹 샬리언의 야욕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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