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77화 (398/1,027)

< (1). 파괴의 발록 -2 >

*          *          *

“야, 그 빨간색 광선 같은 거 있잖아.”

“응?”

“그 막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빨간 광선.”

“아… 크르르 고유능력?”

“응, 그거.”

칠흑의 골렘을 쓰러뜨리고 뇌옥의 안쪽으로 진입한 레미르와 이안.

붉은 마기를 내뿜으며 뒤따라오는 크르르를 보며, 레미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었다.

“대체 그 스킬, 공격계수가 몇이야? 아무리 발록이라고 해도 250레벨 대 마수가 그런 괴랄한 딜이 나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이안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3700%정도 돼.”

“…?!”

레미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3700이라고? 쿨 2~3분짜리 공격스킬 계수가 뭐 그리 높아?”

레미르의 물음에, 이안이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아, 원래 재사용 대기 시간은 7분이야. 다른 고유능력 중에 재사용대기시간 빨리 돌아오게 하는 스킬이 따로 있어서 그래.”

“아아….”

이안은 파령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제야 수긍한 레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의 스킬 중에도 파령섬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던전에 입장한 두 사람은, 마치 뒤뜰에 산책이라도 나온 양 여유 있게 1층을 쓸고 지나갔다.

레미르 혼자서도 몰이사냥을 할 수 있었던 수준의 사냥터였기에, 이것은 사실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는 이안을 보며, 레미르가 한 마디 했다.

“여유 부리지 마.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단단히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이안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그래?”

“응. 지하층부터는 여기랑 차원이 다르더라고. 일반등급 잡몹들 레벨도 최소 380부터가 시작이야.”

“오오…!”

레미르의 말에, 이안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는 최근 350레벨이 넘은 뒤, 레벨 업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잡몹이 최소 380이라니…! 이거 완전 꿀이잖아?!’

물론 지금까지 이안이 사냥해 왔던 던전들에도, 380레벨은 물론 많게는 420레벨이 넘는 몬스터가 등장했었다.

하지만 일반등급 잡몹의 레벨이 380이상인 경우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등장 몬스터들의 최소레벨이 350이상이었던 잊혀진 영혼의 무덤의 경우에는, 아예 일반등급의 몬스터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등급 몬스터의 레벨대가 높은 것이 왜 중요한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경험치 효율이 좋기 때문.

카일란에서는 같은 레벨의 몬스터라도 등급차이에 따라 사냥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몬스터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는, 등급차이보다는 레벨차이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시스템이 이렇다보니, 낮은 레벨의 높은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보다 높은 레벨의 일반등급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경험치 획득에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80레벨 일반등급 몬스터라봐야 350레벨 희귀등급 몬스터보다 약할 거고….’

폭업을 할 생각에 신이 난 이안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던전 아래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시야에 생각지 못 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어둠의 뇌옥’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유저 ‘레미르’와 파티 상태이므로, 던전의 최초발견 버프 효과가 공유됩니다.]

[‘리치 킹 샬리언’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영웅, 뮤란의 안배’가 발동됩니다.]

메시지를 읽은 이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이게 뭐지?”

“뭐가?”

“누나는 시스템 메시지 안 떴어?”

“음…? 던전 입장했다는 메시지?”

“아니 그거 말고.”

하지만 이안보다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인 레미르.

레미르의 눈에는, 이안의 시야에 떠오른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이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뮤란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그리고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레미르가 곧바로 핀잔을 주었다.

“바보야. 뮤란이면 루스펠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 이름 아냐? 여기서도 멀지 않잖아. 그런데 뮤란은 갑자기 또 왜?”

그리고 레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루스펠의 수도 뮤란 뿐 아니라 하나의 기억이 추가로 떠올랐다.

“아…!”

이안이 히든 클래스 ‘테이밍 마스터’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바로 그 아이템!

‘그래, 뮤란의 크리스탈. 그걸 왜 잊고 있었지?’

궁사 랭커였던 이안이 캐릭터 초기화를 결심하게 되었던 계기이자, 히든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 유명한 뮤란의 크리스탈.

뮤란이라는 이름이 낯이 익었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루스펠의 수도 뮤란도 그렇고, 뮤란의 크리스탈도 그렇고…. 과거 루스펠 제국의 영웅인 뮤란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어졌다고 했었어…!’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럼 레미르 누나에게는 메시지가 안 뜨고 나에게만 뜬 것은…. 뮤란의 크리스탈과 관련이 있는 건가?’

‘뮤란의 안배’ 라는 말.

이것이 어쩐지 뮤란의 크리스탈과 관련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이안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레미르에게 물어보았다.

“누나.”

“응?”

“혹시 누나는, 히든 클래스 처음 얻을 때 어떤 경로로 얻었어?”

“음… 그건 일급비밀인데….”

“아니, 그럼 이것만 말해줘. 혹시 누나 뮤란의 크리스탈을 통해서 히든 클래스를 얻은 거야?”

그리고 레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노노. 그건 아니야. 조금만 말해주자면, 내 히든 클래스는 태양신 퀘스트쪽이랑 관련이 있어.”

“아하….”

레미르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자신의 추측에 조금씩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이거 흥미진진한데…? 여기서 영웅 뮤란의 이름이 나올 줄이야. 그렇다면 뮤란과 샬리언은 또 어떤 관계인 거지?’

이안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던전 여기저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대한 어떤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특별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고, 계단실을 전부 매려가자 널찍한 밀실이 이안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곳에는, 수 없이 많은 언데드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미르가 보유하고 있는 버프스킬들을 전부 다 캐스팅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전력을 다 해야 하니까, 너 소환수 빨리 전부 다 소환해.”

“알겠어, 누나.”

이안은 곧바로 할리와 빡빡이 등, 소환하지 않고 있던 소환수들을 전부 다 소환했다.

그리고 제법 넓은 밀실에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언데드들을 보며, 정령왕의 심판을 고쳐 쥐었다.

이안이 보기에도, 얕잡아볼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들은 아니었다.

‘경험치도 경험치지만… 히든 퀘스트의 냄새가 물씬 난다는 말이지.’

한편 이안 일행을 발견한 언데드들도,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크르륵-!”

“켈켈, 침입자다…! 침입자를 공격하라!”

“케에에엑! 맛있게 생긴 영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밀실 구석에 있던 거대한 바위가,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그극- 그그그극-!

이안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곳을 향해 움직였고, 바위가 움직인 자리에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나타났다.

그에 이어, 어둠 속에서 짙게 빛나는 한 쌍의 보랏빛 눈동자.

[이 곳엔… 그 누구도 들일 수 없노라….]

또각- 또각-

하르가수스의 위에 올라탄 묵빛 갑주의 기사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설등급의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

죽음의 기사가 이안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          *          *

마계 20구역의 깊숙한 곳.

데이드몬의 신전의 꼭대기에 새카만 기운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마치 신전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강렬히 휘몰아치며 신전의 주변으로 빨려드는 강렬한 어둠의 기운!

그러자 그 근방에서 사냥하던 마계의 유저들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질렀다.

“와, 20구역에서 사냥한지도 벌써 일 주일은 넘은 것 같은데 저런 현상은 처음 보네.”

“오오…! 저거 뭐지? 이펙트 엄청난데요? 저거 뭔지 아시는 마령사님 계신가요?”

마령사는 쉽게 말하면, 마족들의 사제클래스 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신의 신전은, 마족 유저들이 마령사로 전직할 수 있는 전직소와도 같은 곳.

신전을 중심으로 생성된 신기한 이펙트이기에 유저들이 마령사를 찾는 것이었다.

한 마령사 유저가 입을 열었다.

“아, 저거. 신탁 내려올 때 발생하는 이펙트예요.”

“신탁… 이요?”

“네. 마신 데이드몬이 무슨 신탁을 내렸나봐요.”

“엇! 혹시 히든퀘스트라도 생성되려나…?”

“글쎄요. 저도 신탁이 내려오는 걸 직접 본 건 이게 두 번째라서요. 그나저나 좀 특이하긴 하네. 지난 번에 신탁이 내려올 땐 어두운 기운이 아니라 붉은 빛이었던 것 같은데….”

유저들이 웅성거리는 것과는 별개로, 뻗어 내려오는 묵빛의 기운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검정색 망토를 등에 두른 한 남자가 신전의 앞에 나타났다.

이어서 신전의 문이 열리더니 남자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신전 주변에 휘몰아치던 기운은 차츰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

무슨 일인지 궁금한 유저들이 신전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아직까지 신전의 주변에 남아있는 검은 기운이, 유저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남자 위에 떠 있던 이름을 읽어낸 한 유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데스라….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기는 한데, 설마 유저는 아니겠지?”

*          *          *

흑마법사들의 로망이자, 최강의 언데드 소환물로 알려진 죽음의 기사.

이안과 레미르의 앞에 나타난 죽음의 기사는 전설등급인데다 무려 420레벨이었고, 그에 걸맞는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이안은, 정말 오랜만에 아찔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쾅- 쾅-!

이안의 황금빛 창과 데스나이트의 묵빛 창이 맞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타격음에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를 뭉텅이로 잘라내었다.

‘아오, 막았는데도 이런 미친 데미지가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누군가가(?) 이안의 창을 막아내며 했을 생각을 그대로 하고 있는 이안.

하지만 뭉텅이로 깎여나간 이안의 생명력은, 또다시 빠르게 차올랐다.

이안이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투사체를 피해낼 때 마다 생명력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령왕의 심판에 붙어있는 ‘초월옵션’의 위력.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안을 힐끗 본 레미르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뭐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플레이하는 거야? 위험할 것 같으면 차라리 탱커 하나 더 구해서 리트라이 오면 되는 건데.’

레미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는, 20%~90%까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데스나이트의 공격패턴이 눈에 익은 이안은 점점 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출렁이던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는 안정되었으며, 이제 슬슬 데스나이트의 생명력 게이지도 깜빡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격노한 데스나이트가 묵창(墨槍)을 더욱 격렬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안에게 기회였다.

공격 하나하나의 위력은 더 강해졌지만, 그만큼 동작이 커졌기 때문에 피하기 쉬워진 탓이다.

이안은 마치 다람쥐처럼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내며 유효타를 누적시켰다.

퍽- 퍼퍽- 퍽!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레미르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안아! 뒤쪽!”

스켈레톤 위저드가 쏘아낸 위력적인 보랏빛 마력의 구체가 이안의 등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피해내기 힘들어 보이는 절묘한 각도!

레미르는 투사체가 날아드는 위치로 다급히 쉴드 마법을 캐스팅했지만, 시간상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젠장, 잘하면 이안이 게임 아웃될 수도 있겠는데?’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레미르는 쉴드 마법 캐스팅을 취소하고, 오히려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력의 구체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그렇다면 이안이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데스 나이트를 공격하는 게 더 나은 선택지였으니까.

하지만 다음순간, 레미르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콰아앙-!

이안의 지척까지 날아들었던 거대한 마력의 구체가, 돌연 허공에서 터져나간 것이었다.

“…?!”

그리고 그 자리에는, 마치 거북의 등껍질같이 생긴 반투명한 푸른빛의 물체가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          *          *

< (1). 파괴의 발록 -2 > 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