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76화 (397/1,027)

< (1). 파괴의 발록 -1 (17권 시작) >

로터스 길드의 정복전쟁 이후.

퓰리오스 길드는 무려 세 개의 영지를 로터스에게 빼앗겼으나, 그 이후 삼개월동안 다시 그 이상의 영지를 수복함으로서 10대 길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터스 길드의 도움이 가장 컸다.

유신이 이안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알게 모르게 로터스 길드에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거리가 가까운 파이로 영지에서는 무상으로 용병을 파견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헤르스와 피올란이 자선사업을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여기에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이다.

“일처리가 빨라서 좋군요.”

“후후, 시간 끌어서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 빨리빨리 움직여야 바로 치고 나가죠.”

파이로 영지의 영주집무실.

피올란과 헤르스의 앞에 왠 사내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단정한 파란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마치 ‘학자’같은 느낌을 풍기는 특이한 인상의 남자.

그는 바로 퓰리오스 길드의 참모인 리벨리였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피올란이, 가볍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텐데…. 마스터 유신께서는 뭐라 하시던가요?”

피올란의 말에, 리벨리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사실 이 모든 게 마스터의 뜻 아니겠습니까. 실무를 제가 보는 것 뿐이지요.”

“그런가요? 후후.”

유신은 화려한 컨트롤과 상황판단능력 등, 전투에 필요한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난 랭커이다.

100레벨도 안 되는 저 레벨 시절부터 유명세를 탔을 정도로, 팬덤도 제법 갖고 있는 유신.

그리고 퓰리오스 길드는 그런 유신을 중심으로 모인 길드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신은 길드 운영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굵직굵직한 방향성만 제시하면, 참모인 리벨 리가 알아서 길드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퓰리오스를 운영해 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유신은 이안과 앞으로 노선을 함께 하고 싶다는 의중을 리벨리에게 내비췄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퓰리오스 공국이 로터스 왕국의 예하로 들어가게 된 것.

사실 지금까지 카일란에는 예하길드라는 개념이 없었다.

왕국선포를 하기 전에는, 타 길드를 예하로 둘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로터스가 왕국 선포를 하면서 예하길드 라는 컨텐츠가 오픈되었고, 퓰리오스 공국이 로터스 왕국 소속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일반 유저들에게는 무척이나 바보같아 보일 수도 있는 결정.

로터스가 왕국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갓 왕국선포를 한 수준이었고, 퓰리오스 길드도 조금만 더 세력을 키우면 얼마든지 왕국 선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벨리는, 지금의 결정이 무척이나 영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로터스는…. 결국 왕국을 넘어 제국까지 성장할 게 분명해. 그렇다면 그 때 가서 로터스의 속국으로서 왕국 선포를 하면 되겠지.’

정복전쟁을 거쳐 합병된다면, 길드의 이름 자체가 존속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동맹 형식으로 머리를 조금 숙이고 들어가면, 오히려 로터스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리벨리의. 퓰리오스 길드의 목표는, 바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였다.

로터스 하나만을 위에 두면, 나머지 모든 길드를 굽어볼 수 있게 되는 위치.

‘나쁘지 않아.’

헤르스와 피올란, 그리고 리벨리의 대화는 거의 한시간 가까이 이뤄졌다.

예하길드로 편입되는 절차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그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의논하는 데 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모든 절차가 끝나자, 리벨리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헤르스님. 피올란님.”

헤르스와 피올란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희도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길드연합파티도 구성해서 던전공략도 같이 하도록 하죠.”

“저야 환영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세 사람의 시야에 연이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띠리링-!

[‘로터스’ 길드와 ‘퓰리오스’ 길드의 길드단위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퓰리오스’길드는 ‘로터스’길드의 예하길드로 편입됩니다.]

[‘퓰리오스 공국’이 ‘로터스 왕국’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퓰리오스’길드 소속의 모든 유저들이 ‘로터스 왕국’의 관료로 편입됩니다.]

[이제부터 특정 조건을 만족할 시, 국왕 ‘이안’이 퓰리오스 길드의 유저들에게 공작 이하의 작위를 하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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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족한 표정으로 시스템 메시지들을 쭉 읽어 내려가던 헤르스가, 문득 리벨리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리벨리님.”

“네, 헤르스님.”

“혹시, 정말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유신님은… 아직도 이안이랑 듀오로 계속 사냥하고 계신 겁니까?”

그에 리벨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마도…요?”

피올란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대단한 분이시군요….”

리벨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정합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지, 오늘은 아직 접속을 안 하시네요. 대규모 업데이트 끝나고 서버 열린지 벌써 한나절은 훌쩍 지났는데….”

*          *          *

“흐아아암…!”

창을 타고 스며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포근한 기운에, 슬며시 눈을 뜬 유신은 기지개를 켜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흐음. 오랜만에 정말 푹 잤군. 대규모 업데이트를 꿀이라고 생각할 날이 올 줄이야….”

매일같이 이안에게 혹사당하던 유신은, 대규모 업데이트 덕에 오랜만에 꿀 같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신규 에피소드가 오픈되면서 그와 관련된 영상을 여섯 시간이나 방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잠을 택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개운한 느낌을 받고 나니,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개운한 걸 보니, 이제 슬슬 서버 오픈할 시간이려나…?”

서버 오픈 예정시간은 오전 9시.

전날 오후 6시에 잠에 든 유신은, 밝아오기 시작한(?) 창 밖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날이 밝기 시작한 것을 보니(?), 아침 7시쯤 된 듯 했다.

“후후, 알맞게 일어났군.”

한 차례 기지개를 켠 유신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스마트 폰을 열어 보았다.

마치 어제 만난 소개팅녀의 메시지를 확인하기라도 하는 듯, 조심스러운 손길!

그리고 역시나.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메인 화면에 예상했던 인물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이안 님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유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후, 이 놈은 정말, 로봇인 게 분명해….”

그런데 스마트폰의 잠금을 풀고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유신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메인에 떠 있던 메시지 전에, 몇 개의 메시지가 더 와 있었던 탓이었다.

[AM - 08:07]

[이안 : 유신, 설마 서버 오픈이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아직까지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AM - 08:48]

[이안 : 오픈 10분 전이야. 얼른 일어나 유신!]

[AM - 08:59]

[이안 : 유신, 실망이야. 이렇게나 나태할 줄은 몰랐어…!]

생각지 못 했던 상황에, 당황한 유신은, 다급히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PM - 03:27]

[이안 : 일어나는 즉시 뉴란 산맥으로 튀어오도록.]

유신의 스마트폰 구석에 떡 하니 떠올라 있는 PM 06:59 라는 문구.

그의 동공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이… 오전 일곱시가 아니라, 오후 일곱시였어…?”

침대에서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 유신은, 마치 훈련소의 신병처럼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안을 더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빨리 접속해서 사냥터로 튀어가야 했다.

*          *          *

쿠웅-!

열 댓 마리의 크고 작은 골렘들이 한 순간에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새까맣던 칠흑의 골렘들의 위에, 빨간 기운이 덧입혀지기 시작한다.

우우웅-!

멀찍이서 광역마법을 발동시킨 후 이안을 돕기 위해 전장으로 달려가던 레미르는 벙찐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걸 노린 거였어?”

발록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이자, 상대하기 지극히 까다롭기로 유명한 고유능력인 영혼잠식.

발록과 여러 번 전투를 겪어 본 레미르는, 이 영혼잠식이라는 스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소환술사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수나 발동조건 같은 것은 알지 못했지만, 생명력이 낮은 적들의 영혼을 잠식시켜 일정시간동안 조종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이라는 정도는 아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춰 발동시키다니…!’

영혼잠식 스킬을 생각해 내는 것 까지는, 사실 어지간히 게임센스가 있는 랭커들이라면 다들 가능한 수준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총 열 다섯 마리의 골렘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잠식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안이 이 급박한 순간에도 모든 적들의 생명력 게이지를 정확히 체크했다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칠흑의 골렘이 까다로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칠흑의 골렘을 네임드 몬스터로 만들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유능력인 ‘땅의 맹약’이 완벽히 무력화 되어 버린 지금.

칠흑의 골렘은 그저 맷집만 좋은 360레벨의 잡몹에 불과하게 되어버렸으니까.

한편 레미르가 감탄하는 동안에도, 이안은 쉬지 않고 오더를 내리며 소환수들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이제 이안의 손아귀에 들어온 열 다섯 마리의 미니미 골렘들이, 동시에 모체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쾅- 콰쾅-!

거대한 바윗덩이들이 강하게 부딪히자, 여기저기서 굉음이 울려 퍼진다.

미니미 골렘들의 공격은 느릿했지만 육중한 덩치의 모체가 피해낼 수 있을 리 없었고, 어마어마한 골렘의 생명력 게이지가 차츰 차츰 깎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분노한 모체 골렘이 억울한 듯 허공을 향해 포효했다.

그어어어-! 크어어-!

칠흑의 골렘이 가진 즉발 광역기술 중 하나인, 어둠의 파동.

콰콰쾅-!

어둠의 파동은 범위가 넓지 않은 대신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가진 기술이었지만, 이안에게는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칠흑의 골렘’의 고유능력인 어둠의 파동으로 인해, ‘칠흑의 소형 골렘1’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마수 ‘크르르’의 ‘영혼잠식’ 고유능력으로 인해, ‘칠흑의 소형 골렘1’은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칠흑의 소형 골렘1’의 생명력이 0만큼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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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잠식에 당한 개체들은 지속시간동안 ‘무적’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이안의 다른 소환수들은, 이미 골렘의 동작만을 보고 빠르게 범위 바깥으로 빠져 나간 상태였다.

쿵- 쿵- 쿠쿵-!

십 수 마리의 소형 골렘들이, 모체의 둔중한 육체를 쉴 새 없이 두들긴다.

그리고 모든 영혼을 완벽히 잠식한 ‘크르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안의 시선이 날카롭게 움직였다.

어느새 절반 이하로 떨어진 골렘의 생명력 게이지.

“누나! 단일화력 전부 집중해줘!”

“오케이!”

이안과 레미르의 집중포화가 시작되었다.

쾅- 콰콰쾅-!

그야말로 완벽한 프리딜.

그리고 두 탑급 랭커가 프리딜을 하기 시작하자, 아무리 강력한 멧집을 가진 칠흑의 골렘이라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둘러싼 소형골렘들에 의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자, 크르르의 최강의 공격기술인 파괴광선에도 그대로 직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콰아아아-!

[소환마수 ‘크르르’의 고유능력인 파괴광선이 발동합니다.]

[소환수 ‘크르르’가 ‘칠흑의 골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칠흑의 골렘’의 생명력이 479830만큼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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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차이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3700%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계수 덕에, 파괴광선은 괴랄한 데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극- 그그극-!

골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바윗덩이들이 서로 부대끼며 애처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이제는 20%도 채 남지 않은 골렘의 생명력 게이지.

이안의 마무리 오더가 이어졌다.

“크르르, 파령섬!”

[크르르르!!]

파괴의 발록 크르르의 두 번째 고유능력인 파령섬.

크르르의 손끝에서 강렬한 마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새빨간 화염은 골렘의 전신을 빠르게 휘감기 시작한다.

[소환수 ‘크르르’의 고유능력인 ‘파령섬’이 발동됩니다.]

[‘칠흑의 골렘’의 생명력이 10978만큼 감소합니다.]

[파령섬의 흡혈 효과로 인해, 소환수 ‘크르르’의 생명력이 6038만큼 회복되었습니다.]

[소환수 ‘크르르’가 가진 모든 고유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2초’만큼 회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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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령섬은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히는 도트 공격스킬이지만, 사실상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스킬은 아니었다.

공격 계수 자체가 워낙 낮기 때문.

하지만 파령섬으로 인해 회복되는 재사용 대기 시간은, 크르르의 Dps(Damage Per Sec)가 상승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준다.

파령섬이 지속되는 동안 모든 고유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당 3초만큼씩 줄어들게 되니, 재사용 대기 시간 7분짜리 스킬을 거의 2분 만에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바로 이렇게.

콰아아아-!

크르르의 커다란 입이 쩍 하고 벌어지며, 그 가운데서 강렬한 붉은 기운이 또 다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쿠웅-!

마치 산처럼 거대한 칠흑의 골렘의 육체가, 회백색으로 산화하며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5분만의 일이었다.

< (1). 파괴의 발록 -1 (17권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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