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73화 (394/1,027)

< (7). 뉴 에피소드 -3 >

*          *          *

길드 거점의 등급이 ‘왕국’이 된다는 것.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변화였다.

대영지에서 공국으로 승격시킬 때도 충분히 큰 변화가 있었지만, 그때와는 또 한 번 격이 달라진 것이다.

가장 처음 놀랐던 부분은 바로 세금.

‘왕국’에서 한 달에 걷히는 세금은, 무려 2백억 골드에 육박했다.

이는 ‘공국’이었을 때에 비해 3배이며, ‘대영지’였을 때에 비해 6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진짜 엄청나네. 이거 다 꿀꺽 하면 대박일텐데….’

하지만 물론, 2백억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그대로 길드의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내정에 최소한의 골드만 투자하더라도, 전체 세금의 80%인 160억 골드는 기본적으로 지출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여유 있게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180억 이상의 세금이 필요했고, 지금같이 건국 초기에는 왕국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했다.

거기에 길드원들 몫으로 활동비를 다 떼어줘야 하니, 실질적으로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안과 헤르스의 앞에는, 1억골드라는 소박한(?) 금액이 남아 있었다.

“이건 길드 자본으로 남겨 둘까? 아니면 수뇌부 유저들이 나눠서 조금씩 가져갈까?”

헤르스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왕국 내정에 다 때려 박자.”

“그, 그럴까?”

“응. 어차피 수뇌부끼리 나누고 나면, 한사람 당 천만 골드도 안 돼.”

“하긴, 지금 우리 길드 수뇌부 중에 자금에 쪼들리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맞아. 게다가 지금은 경쟁에서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 그렇다고 우리가 수뇌부 유저들 덜 챙겨준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하긴….”

벌써 일 년이 넘게 길드 내정을 함께 운영해 온 헤르스와 이안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길드를 운영해 나가는 데 있어서, 두 사람의 역할은 항상 나뉘어 져 있었던 것이다.

헤르스가 길드 내정을 담당하는 살림꾼이라면, 큰 그림을 그리고 외적인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역할이 이안인 것.

게다가 두 사람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길드원들까지 있으니, 로터스 길드의 추진력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으음… 그럼 길드 자금 운용은 한동안 이렇게 변동없이 가도록 하고…. 진성이 넌 이제 뭐 부터 할 생각이야?”

헤르스의 물음에 진성이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뭐 부터라니? 이미 결정했잖아. 엘리카 왕국부터 복속시키는 방향으로.”

헤르스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 시작할 건지를 묻는 거야. 영지전처럼 무턱대고 선제공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

이번 에피소드로 인해 두 개의 강대한 제국은 무너졌지만, 새로 생겨난 왕국이라고 해서 만만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규모가 작을 뿐, 기사단이나 병력의 질 자체는 제국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일례로, 로터스가 눈독들이고 있는 엘리카 왕국의 기사단장만 해도, 400레벨에 육박하는 괴물이었다.

이안이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아아, 물론 그렇지. 주변의 중소 영지들부터 먼저 복속시키는 게 내 계획이야.”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야금야금 주변을 잠식해 나가면, 왕국의 주력 병력을 분산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어찌되었든, 당장 전쟁 시작인가?”

헤르스의 반문에, 이안의 한쪽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아니. 그건 아니야.”

“…?”

“공짜로 주워 먹을 수도 있는데, 굳이 출혈을 감수할 필요는 없잖아?”

*          *          *

이안은 새로 생긴 왕국컨텐츠의 전반을 누구보다도 꼼꼼하게 분석한 유저였다.

그리고 그 결과.

그가 눈독들이게 된 부분은, ‘외교’라는 부분이었다.

사실 업데이트 이전에도 외교라는 컨텐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크게 기능이 없었으며, 제국 위주의 세계관이었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길드끼리의 알력다툼은, 외교라는 컨텐츠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지.’

우선 외교 컨텐츠의 가장 큰 변화는, ‘외교관’과 ‘세작’이라는 인재를 등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특히 대영지 이하의 작은 세력들은, 외교를 잘만 한다면 출혈 없이 로터스 왕국의 소속으로 병합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소영지를 복속시킨다는 것은, 외교 능력치가 최상급인 인재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안은 자신만만했다.

“슬슬 움직여 볼까…?”

로터스 왕성의 뒤편 공터에 선 이안은, 카르세우스를 소환했다.

캬아아오오-!

크게 한 차례 포효한 카르세우스가, 이안의 앞에 내려앉았다.

[소환에너지가 회복되니, 칼같이 소환하는군. 또다시 사냥 시작인가.]

소환에너지란, 소환수를 재소환하기 위한 재사용 대기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카르세우스의 말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지금은 아니다.”

[놀랄 일이군. 벌써 세 시간째 사냥을 하지 않고 있다니…. 주인답지 않다.]

“할 일이 좀 있어. 뮤란까지 날 좀 태워줘.”

이안을 등 위에 태운 카르세우스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동쪽으로 날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과거 루스펠 제국의 수도였던, 하지만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뮤란.

카르세우스의 등 위에 앉은 이안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피소드 영상을 끝까지 집중해서 보길 잘했단 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뮤란으로 향하는 이안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화르륵-!

거대한 화염의 소용돌이가 동공(洞空) 전체를 가득 휘감으며 퍼져나간다.

빠르고 날카롭게 몬스터들을 헤집으며 뿜어지는 나선형의 불꽃세례!

보기만 해도 몸이 녹아내릴 듯 한 강렬한 불길의 향연이 지나가자, 그 위로 작은 불꽃들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쩌렁쩌렁한 여인의 목소리가 던전 안쪽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폭염의 광기! 연속폭발!”

쾅- 콰콰쾅-!

작지만 셀 수 없이 많았던 불씨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어마어마한 열기가 또 다시 퍼져나갔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광역 공격마법의 연계.

던전 안의 수 많은 몬스터들은, 단숨에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후훗, 여기 이렇게 꿀 같은 던전들이 생겼을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홍염의 군주’ 라는 최상급 티어의 히든 클래스를 가진 유일한 화염계 마법사 유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하위 클래스인‘홍염의 마도사’ 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최강의 여성 마법사 랭커.

레미르의 입가에 웃음이 만연해 있었다.

이제 곧 마의 350레벨을 뚫게 생겼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 들어 이렇게 경험치가 짭짤했던 던전은 처음 인 것 같은데….”

그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던전에 쓰러진 수 많은 언데드들의 사체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의 종류는 200레벨 후반대부터 300레벨 중반대 까지, 무척이나 다양했으며 많았다.

“캬, 역시. 에피소드 영상을 집중해서 보길 잘 했다는 말이지!”

어쩐지 이안과 거의 같은 대사를 읊조리는 레미르!

그녀는 기다란 동공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는 던전을 끝까지 사냥하며 휩쓸었고,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동공의 끝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지만, 왜인지 그 아래로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다음 티어 히든스킬을 습득하기 전엔… 아무래도 무리겠지?’

레미르는 입맛을 다시며 던전을 돌아 나갔다.

사실 던전의 하층부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본 하층부 던전은, 충분한 매리트도 가지고 있는 사냥터였다.

던전 곳곳을 지키고 있는 300레벨 후반대의 데스나이트 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랜만에 파티플이라도 한번 시도해 봐야 하나…? 탱킹 되는 최상급 랭커 한두 명 정도만 섭외하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 할 것도 같은데….”

대부분의 사냥에서 솔로플레이만을 고집하는 레미르가 파티사냥을 언급할 정도로, 하층부 던전의 매력은 엄청났다.

그런데 다음 순간, 레미르의 고운 아미가 살짝 일그러졌다.

누군가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아냐, 그래도…. 그 녀석 만큼은 안 돼. 차라리 1층만 계속 솔플하는 게 낫지…. 사냥하다 정신 잃을 일 있어?’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동안 다시 기분이 좋아진(?) 레미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던전을 돌아 나갔다.

이 던전이 짭짤한 이유는, 던전의 구성 몬스터 자체의 훌륭함 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다.

던전에 등장하는 언데드만 계속 사냥해도 추가로 경험치와 골드를 획득할 수 있는, ‘무제한 인스턴트 퀘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리트였던 것이다.

“자, 이제 다시 할배를 만나러 가 볼까.”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헤이스트 마법까지 걸어가며 빠르게 던전을 나서는 레미르.

그런데 그 때.

그녀의 양 손이 순간적으로 움직이며 급작스럽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조용하기 그지없던 던전 바깥쪽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인비저블리티…!”

마법사가 150레벨에 다다르면 배울 수 있는 중급 마법인 인비저블리티.

캐스팅과 동시에 레미르의 신형이 순식간에 투명해졌다.

이것은 일반적인 마법사 유저들이 봤더라면 놀랄만한 광경이었다.

아무리 중급 마법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캐스팅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명화 마법을 사용해 몸을 숨긴 레미르는, 조심스레 던전의 바깥으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발소리를 숨기기 위해, 플라이 마법까지 더블캐스팅 한 상태였다.

‘뭐지? 누굴까…? 여길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 거야?’

에피소드 영상을 정말 꼼꼼히 보지 않았더라면 결코 찾을 수 없는 던전.

그랬기에 혼자만의 던전이 되리라 생각했던 레미르는, 아쉬움과 동시에 궁금증이 일었다.

이곳을 찾아낸 유저가 누군지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유저의 얼굴을 확인한 레미르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지금쯤 로터스 왕성에 있어야 될 녀석이 대체 왜 여기에…?!’

*          *          *

대도시 뮤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산맥이 있다.

원래는 15~20레벨 정도의 저레벨 초보들이 애용하던 사냥터인 뉴란 산맥.

과거 이안도 이 산맥에서 열심히 반달곰을 잡은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뉴란 산맥은, 과거의 뉴란산맥이 아니었다.

콰쾅- 쾅-!

이안과 카이자르, 그리고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한 카르세우스는 전력을 다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와, 무슨 뮤란 산맥 몹들 레벨이 300대가 넘냐?”

이안이 혀를 내두르자, 카이자르가 짧게 대꾸했다.

“그래 봐야 조무래기 언데드들일 뿐.”

그에 이안이 피식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물론 전력을 다해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들은 아니었다.

단지 빨리 이동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던 것이었다.

이안은 지금 이 산맥에서, 한 ‘노인’을 찾고 있었다.

‘헬라임의 책사 루이세이. 그가 분명해.’

루스펠 제국은 멸망했지만, 제국과 관련된 NPC들까지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최후까지 제국을 위해 항전하던 기사단장 헬라임을 비롯해, 수 많은 네임드급 NPC들이 대륙 전역에 뿔뿔히 흩어진 것.

에피소드 영상에도 그들 대부분의 행방은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단서는 제법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 단서 중 하나인 루이세이가 뉴란산맥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에피소드 영상에서 똑똑히 확인한 바 있었다.

“분명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루이세이를 찾는 이안.

그런데 그 때.

이안의 시선이 한 자리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에, 살짝 이채가 떠올랐다.

‘어라? 이것 봐라…?’

< (7). 뉴 에피소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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