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듀오의 활약 -2 >
* * *
정령왕의 심판의 부재로, 이안은 어쩔 수 없이 서브로 가지고 다니던 대궁을 사용하게 되었다.
마룡 칼리파를 사냥하고 얻은 신화등급의 활이라면 또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것은 노블레스가 되어야 착용가능한 아이템.
이안이 지금 착용중인 아이템은, 평범한(?) 전설등급의 대궁이었다.
그렇기에 이안은, 플레이 스타일을 조금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카르세우스, 뿍뿍이! 둘은 함께 움직이고, 라이랑 핀이 날 엄호해!”
“알겠다, 주인.”
명령을 받은 소환수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안은 활 시위를 연신 잡아당겼다.
핑- 피핑-!
정령왕의 심판을 쓸 수 있었다면 적들의 탱커부터 무대뽀로 도륙해 버렸을 테지만, 화력이 부족하니 철저히 후방딜러들을 노리는 것이다.
[퓰리오스 길드의 궁사 ‘한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한슨’의 생명력이 124090만큼 감소합니다.]
[퓰리오스 길드의 궁사 ‘한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한슨’의 생명력이 119987만큼 감소합니다.]
[퓰리오스 길드의 궁사 ‘한슨’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영지전의 기여도가 104만큼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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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연사에 당해 순식간에 까만 재가 되어 사라지는 퓰리오스 길드의 딜러들!
물론 레벨이 200도 채 되지 않는 저레벨의 NPC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활질 두 세 방에 한 명씩 제거해 내는 모습은 정말 신기에 가깝다 할 만 했다.
- 뭐지? 이안 궁사로 전직했나요?
- 진짜 미쳤네 ㅋㅋㅋ 저 빠른 할리 위에서 연사를 다 맞추는 게 말이 됨?
- 크, 시작부터 팬티 갈아입어야겠네요.
- 윗님, 준비성이 좀 부족하신 듯.
- 네?
- 이안갓 전투영상 보기 전에는 원래 기저귀부터 차고 시작하는 거라고 배웠슴다.
- 후, 여긴 진짜 이안 빠돌이들만 모였군.
- [‘유신님찬양해’님이 강퇴당하셨습니다.]
- [‘유신님찬양해’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아니 이 멍청이들아. 가만히 서서 스킬 캐스팅하는 NPC 못 맞추는 게 장애인이지!
- [‘유신님찬양해’님이 강퇴당하셨습니다.]
- [‘유신님찬양해’님이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셨습니다.]
- 역시, 우리 매니저님 대응 칼 같아서 좋단 말이야.
- 어휴 저런 ㅃㅅ들이 아직도 있다니. 답 없네. 어떻게 저 미친 플레이를 보고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이안이 원거리에서 딜러들을 계속 사냥하자, 퓰리오스 길드에서도 대처에 나서기 시작했다.
“저기, 이안이다! 이안부터 노려라!”
“탱커들 압박하고! 원거리 딜러들, 조져!”
쾅- 콰쾅-!
여기저기서 이안을 발견한 마법사들과 궁사들이 투사체를 날려댔으나, 날랜 할리가 그 공격을 허용할 리 없었다.
타탓- 탓-!
그간 이안과 함께 사냥하면서 전투AI가 상승한 할리는, 이안이 따로 명령하지 않더라도 어지간한 투사체는 여유롭게 피해 내었다.
크아아앙-!
그리고 근접해서 달려드는 유저들의 귀싸대기를 날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퍼억- 퍼퍽-!
덩치 큰 호랑이답지 않게, 엄청난 공격속도로 냥냥펀치를 연상시키는 앞발공격을 구사하는 할리!
[소환수 ‘할리’가 퓰리오스 길드의 길드원, ‘레이든’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레이든’의 생명력이 98977만큼 감소합니다.]
[‘레이든’의 생명력이 108283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할리의 연속공격에 당한 유저가 정신 차리지 못하자, 그를 구하기 위해 마법사들이 재빨리 둔화효과를 걸었다.
[퓰리오스 길드의 길드원, ‘리청’님이 슬로우 마법을 시전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움직임이 10초간 30%만큼 감소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아니 잘못된 선택이었다.
할리의 고유능력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범한 실수인 것이다.
퍼억-!
[‘레이든’의 생명력이 95982만큼 감소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고유능력, ‘후려치기’가 발동하여, ‘레이든’이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후려치기’ 능력발동을 성공하여, 연계되는 ‘백호의 분노’ 고유능력이 발동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모든 상태이상 효과가 해제됩니다.]
[소환수 ‘할리’의 움직임이 10초 동안 50%만큼 상승합니다.]
크허어엉-!
이안이 신화등급의 카르세우스나 뿍뿍이가 있음에도 할리를 타고 다니는 가장 큰 이유.
자체적으로 상태이상을 해제해 버릴 수 있는 ‘백호의 분노’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미친 호랭이 왜 슬로우 거니까 더 빨라지는 거야?!”
“버그다!! 뒤로 빠져!”
슬로우에 이어 공격마법들을 연계시키기 위해 마법을 캐스팅 중이던 마법사들은, 서둘러 캐스팅을 취소하고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이안이 아니었다.
푸슛- 푸슛-!
어느새 날아들어 정확히 심장을 꿰뚫는 이안의 화살!
이안을 노리던 세 명의 마법사 유저 중, 하나가 순식간에 게임아웃 되고 말았다.
“지원 바란다! 동남쪽 일차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
“이안이 나타났다! 랭커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널따란 전장의 동남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견고하다 생각했던 일차 방어선이 너무도 손쉽게 뚫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거의 이안 혼자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퓰리오스 길드의 지휘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뿍뿍이와 카르세우스의 브레스를 비롯한 온갖 광역기를 힐과 보호막으로 겨우 버텨내고 나면, 이안이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을 화살 한두 방으로 얄밉게 사살해 버리니, 방어선에 계속해서 균열이 생기게 되는 것.
게다가 그 균열을 라이와 카이자르, 폴린 등, 300레벨에 육박하는 강력한 딜러들이 파고드니, 순식간에 초토화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290레벨 정도인 라이나, 300레벨 초반대인 폴린 보다는 단연 카이자르가 압권이었다.
신화등급으로 진화한데다 무려 350레벨이라는 어마어마한 레벨에 도달한 카이자르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위용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깡패가 따로 없었다.
쿠콰콰쾅-!
전황을 한번 둘러본 이안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성문까지는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겠군.’
이안이 뒤를 향해 손짓하자,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충차(衝車)가 천천히 굴러오기 시작했다.
드륵- 드르륵-
충차를 안전히 성문까지만 접근시킬 수 있다면, 영지전은 배 이상 쉬워지게 된다.
충차의 어마어마한 공성 공격력으로, 성문은 순식간에 박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충차다! 충차를 접근시켜선 안 된다!”
“화염마법 캐스팅해 어서! 태워버려야 돼!!”
수성전의 특성 상, 방어군은 성벽 안에서 적들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한데 퓰리오스 길드에서 성 바깥에도 병력을 배치한 이유가 뭘까?
이 충차와 같은 강력한 공성병기들의 존재가 바로 그 이유였다.
공성병기들은 내구도와 방어력이 약해 약한 공격으로도 쉽게 파괴할 수 있는 반면, 공성에 한해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 공성병기들이 성문 앞까지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성 밖에 병력을 배치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 안에서 원거리 공격으로 공성병기를 파괴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사제클래스와 마법사 클래스의 쉴드연계로, 공성병기 한두 개 정도는 원거리 공격으로부터 충분히 지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안으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공성병기가 등장하자, 퓰리오스 길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공성병기부터 최우선 적으로 파괴하라!”
“병력 모아서 방어선 다시 구축해!”
“중급 이하 병사들이라도 전부 모아! 시간이 없어!”
여기저기서 오더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실시간으로 퓰리오스 길드의 병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유신님이 지원하러 오신다!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자!”
“유신님이 오시면 저 이안도 잡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퓰리오스 길드는 인해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안의 소환수들은 이미 광역기를 전부 사용했으니,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시간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이안을 제외하면 로터스의 주요랭커들은 전부 서쪽진영에 있음을 확인했으니, 퓰리오스의 입장에서는 탁월하다고 평할 만 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었다.
이안을 제외하고도 강력한 광역기를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이 한명 더 남아있었던 것.
사실 이것은 퓰리오스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범해야 했던 실수였다.
이안 말고도 특급 랭커가 한 명 더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로터스 길드원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몰랐으니까.
결과적으로 퓰리오스의 인해전술은, 정말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소울 디케이(Soul Decay)…!”
싸아아아-!!
허공에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더니, 파랗던 하늘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악취를 풍기며 보랏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는 새하얀 원혼들!
흑마법사가 가진 최강의 광역기술 중 하나이자, 현재까지 알려진 카일란의 모든 스킬 중 캐스팅 시간이 가장 길다는 소울 디케이가 펼쳐진 것이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보랏빛의 불꽃에, 수많은 퓰리오스의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이 미친! 원딜러들 뭐 한 거야! 어떻게 소울 디케이가 뜰 때 까지 모를 수가 있어!”
채팅창에서도 난리가 났다.
- 와 나 지금 소름 돋은 거 보임?
- 니가 소름 돋은 걸 우리가 어떻게 보냐 ㅋㅋㅋ
- 아니 미쳤네? 저 소울 디케이 실전에서 쓰는 흑마법사 처음 봄 ㅋㅋㅋ 아니, 캐스팅 시간 5분 짜리 기술을 어떻게 쓸 생각을 하지?
- 뭐 캐스팅시간 줄여주는 템 둘둘 발랐나보죠.
- 아니, 아무리 템으로 쳐 발라도, 소울 디케이 캐스팅 시간은 최소 3분은 나올 거란 말이죠. 최상위 랭커들 득실득실한 퓨리오스 상대로 어떻게 저걸 쓸 생각을 하지?
- 어떻게긴, 이안갓 믿고 말뚝 박았나보죠. 어쨌든 저렇게 성공했으니 된 거 아님?
- 그나저나 소울디케이 쓸 정도로 고레벨 흑마법사가 로터스에 있는 줄은 몰랐네.
- 그것도 그러네요. 소울 디케이 최소 280레벨은 되야 배울 수 있다던데, 그 정도면 못해도 20위권 안에는 들어가는 흑마법사일텐데….
- 크으, 퓰리오스 유저들 당황한 거 보소 ㅋㅋㅋ 이제 진짜 똥줄 타겠네. 이대로면 5분 내에 성문까지 뚫릴 듯.
- 에이 그래도 5분은 좀 힘들걸요. 퓰리오스 쪽 지원군도 올 텐데. 난 한 10분 예상!
그런데 모두가 놀라고 있던 이 순간.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훈이가 돌연 허공으로 뛰어오르더니, 할리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이다.
“어둠 소환술!”
그러자 할리의 몸에서 보랏빛 기분이 뿜어져 나오더니, 훈이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훈이의 앞에 또 한 마리의 할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어둠 소환술’을 사용하여, 이안 유저의 소환수 ‘할리’를 복제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복제된 소환물은 15분간 지속되며, 본체의 50%만큼의 능력치를 갖습니다.]
[복제된 소환물이 가진 모든 고유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이 난 훈이는, 곧바로 할리의 고유능력인 바람의 수호자를 사용했다.
그러자 복제된 할리의 네 다리에 새하얀 바람이 휘감기기 시작한다.
“달리자! 할리!”
크아앙-!
할리의 어마어마한 속도에 더욱 흥이 난 훈이는, 그대로 전면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훈이가 뛰어든 곳은, 그의 ‘소울 디케이’ 스킬로 인해 초토화된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체더미의 위로 뛰어올랐다고 해야 할까.
타탓-!
할리의 등을 박차고 뛰어오른 훈이가, 스컬 완드를 치켜들며 준비해두었던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애니메이트 데드(Animate Dead)…!”
그러자 힘없이 사라져 가던 수많은 시체들이, 기괴한 소리를 흘리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이어서 훈이의 완드에서 뿜어져 나온 보랏빛의 기운이 시체들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그로인해 까맣게 변했던 병사들의 생기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방금 전 로터스를 막아서고 있던 수백의 퓰리오스 병력들이, 순식간에 훈이의 하수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2). 듀오의 활약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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