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54화 (375/1,027)

< (1). 셀라무스의 절대자 -1 (16권 시작) >

여덟 절대자와의 싸움.

이제 퀘스트의 윤곽은 확실히 드러났다.

이안의 호기심(?)으로 인해 난이도가 조금 더 올라갔을지언정, 시간을 질질 끌어야 할 퀘스트는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어찌 됐든 여덟 번의 전투만 지나가면 퀘스트는 끝나게 되는 것.

‘그래, 전투 여덟 번 정도면, 오늘 내로는 끝나겠지. 충분히 영지전에는 합류할 수 있겠어.’

그거면 충분했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살짝 올라간 정도는, 이 관문을 통과한 유저들에 대한 정보를 얻은 대가로 퉁 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우우웅-!

[앞으로 10초 뒤, 첫 번째 상대가 등장합니다.]

[전투를 준비해 주십시오.]

[상대해야 할 사막부족 첫 번째 절대자는, 마젤란 부족의 절대자인 ‘카이젝’입니다.]

메시지를 본 이안은 심호흡을 한 번 하며 등장할 상대를 기다렸다.

딱히 전투를 위해 준비할 것도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정령왕의 심판’ 단 하나 뿐이었으며, 사용할 수 있는 스킬 또한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 뿐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마젤란 이라는 이름은 왠지 낯이 익은데….’

이안은 금세 ‘마젤란’이 낯이 익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젤란은, 중부대륙에 처음 입성했을 당시 다크루나 길드가 등에 업고 있던 사막부족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막부족인 마젤란 부족.

‘마젤란 부족의 절대자라… 그렇다면 클래스는 전사나 암살자일 확률이 높겠군.’

마젤란 부족을 수 없이 많이 상대해본 이안은, 등장할 상대에 대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새하얀 빛과 함께 소환된 상대는, 쌍수단도를 역수로 거머쥔 전형적인 암살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셀라무스의 후예여. 내게 그 힘을 증명해 보라!]

후우웅-!

울려 퍼지는 거친 음성과 함께,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회백색의 연무(煙霧).

이안은 긴장한 채 상대의 움직임을 살폈다.

‘암살자라. 가장 까다로운 클래스가 처음부터 나왔군.’

카카와 함께 할 때라면 무서울 이유가 없는 클래스가 암살자였다.

카카의 고유능력은, 암살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은신’을 아예 무용하게 만들어버리니까.

하지만 지금 이안에게는 카카가 없었고, 그렇기에 그런 가정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레벨과 기본정보도 전부 비공개로군. 일단은 조금 사려 봐야 하나?’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상대를 파악하는 동안, 암살자, ‘카이젝’이 빠르게 이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탓-!

물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이안은, 곧바로 그에 반응할 수 있었다.

깡- 까강-!

카이젝의 쌍수단도와 이안의 장창이 빠르게 부대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얹혔다.

‘뭐야, 생각보다 약하잖아?’

창에 부딪친 카이젝의 단도에서 느껴지는 힘이, 생각보다 많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한층 자신감이 붙은 이안의 창극이, 빠르게 허공을 휘젓기 시작했다.

까가강- 퍽-!

경쾌한 울림과 함께, 단검을 뚫고 카이젝의 한쪽 어깨에 정확히 파고드는 이안의 창.

애초에 월등한 실력차이가 아니라면, 사정거리의 이점을 가진 이안이 쌍수단검을 든 암살자에게 밀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창이 파고드는 순간, 카이젝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파팟-!

하지만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가 암살자인 이상, 이 정도의 변수는 이미 생각해 뒀기 때문이었다.

‘뒤…!’

카이젝이 방금 사용한 스킬은, 이안도 잘 아는 기술이었다.

그것은 바로, 많은 암살자 유저들이 갖고 싶어 하는 히든 스킬 중 하나인 공간격(空間隔).

피해를 입는 순간 발동시키면 짧은 공간을 격해 원하는 위치로 이동할 수 있게 되는 스킬인데, 테크니컬한 전투스타일을 선호하는 암살자들이 선호하는 기술이었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짧고 소모 값이 적기 때문에, 컨트롤 능력만 좋다면 연달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이 기술의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상대의 동체시력이 좋다면 이동할 위치를 파악당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스킬이 발동되는 순간, 잔상이 흔들리는 방향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렇게.

촤라락-!

이안은 공간격이 발동했다는 것을 느낀 순간, 그대로 창대를 거꾸로 쥐며 창극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뒤를 돌며 강하게 내려쳤다.

카이젝이 이동한 위치는 이안의 바로 뒤쪽이었고, 그것을 정확히 예측한 이안의 창은, 그대로 그 위에 내려 박혔다.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이어진 연속동작.

그것을 카이젝이 피할 방법은 전무했다.

콰아앙-!

[사막의 절대자 ‘카이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이젝’의 생명력이 275090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의 창에 강하게 피격당한 카이젤은, 그대로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너무 정확한 일격을 허용한 탓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둘 이안이 아니었다.

타탓-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오른 이안의 신형이, 그대로 카이젝을 따라 쏘아졌다.

이대로 정신없이 몰아붙이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까강-!

하지만 카이젝은 그렇게까지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절대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빨리 밸런스를 회복한 카이젝은, 찔러오는 이안의 창극을 강하게 쳐 내며, 순간적으로 파고들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매끄러운 동작.

이안은 살짝 당황했으나, 창대를 들쳐 올리며 침착하게 대처했다.

창대의 아랫부분으로, 카이젝의 단검을 막아낸 것이다.

퍼억-!

나무재질의 창대에 단검이 빗겨 맞자,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거리가 순간적으로 벌어졌다.

공격에 실패한 것을 느낀 카이젝이, 거꾸로 공중제비를 돌며 거리를 벌린 것이었다.

거의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응시하며 빈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카이젝이 돌연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과연 절대자의 시험에 도전할 만한 전사로다.]

이안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카이젝의 말이 이어졌다.

[그대는 혹시, 셀라무스의 절대자가 에오스 이후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카이젝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안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클립스로부터 들었던 말이 기억났다.

“그렇습니다. 셀라무스 부족에는 지금껏 단 한명의 절대자만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군요.”

[그렇다면 다른 부족에는 지금까지 많은 절대자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가? 우리 마젤란 부족만 하더라도, 나 이후로 벌써 다섯 명의 절대자를 배출했다네.]

“아, 그건 몰랐던 사실입니다.”

[셀라무스 부족을 제외한 다른 부족들은, 지금까지 최소 두 명 이상의 절대자가 있었지. 아, 세릴의 후예는 얼마 전에 처음 나왔군.]

일단 이안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상태로 카이젝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절대자씩이나 되는 상대가 대화 중 기습을 하는 얕은 수를 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셀라무스의 절대자만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다네. 지금껏 오랜 세월동안, 소환술사들은 본신의 전투능력을 늘리기보단 테이밍한 소환수들의 전투력 발전에 신경써왔기 때문일세.]

“아하….”

[그 결과, 사제들로 이루어진 부족인 일리에나 부족보다도 두 번째 절대자의 등장이 더 늦어진 것이지. 이 천공의 관문은, 오로지 본신의 전투능력으로만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니 말이야.]

“결국 이 관문 자체가, 소환술사에게 불리한 관문이라는 말이 아닌지요?”

[그건 아니네. 마법사나 사제도 소환술사와 다를 게 없지. 그들 또한 이 관문 안에서는, 대부분의 스킬을 봉인당하니까 말이야. 전사나 기사, 혹은 암살자 클래스가 유리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소환술사만이 가장 불리하다는 말은 틀렸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이안은 이 카이젝이라는 녀석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카이젝의 입에서 본론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자네만은 다른 것 같군.]

“뭐가… 말입니까?”

[자네는 지금껏 이 관문에 도전했던 어떤 소환술사보다도 뛰어나다는 말일세.]

그리고 카이젝은, 양 손에 들고 있던 쌍수단도를 검집에 꽂아 넣었다.

“…?”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 모양을 지켜보자, 카이젤이 말을 이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지만…. 이제부터 전력을 다하겠네. 전력을 다한 나를 이기지 못하더라도, 그대 정도의 실력이면 앞으로의 시험에서 세 번 정도의 승리는 쉽게 채울 수 있을 테지.]

화르륵-!

카이젝의 전신에서, 시커먼 흑염(黑炎)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는, 허리춤에 꽂아 넣은 단검 대신, 등에 메어져 있던 쌍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이안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니 그냥 원래대로 해 주면 안 됩니까?”

카이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심지어 허공에서 웅웅 울리던 목소리가 아닌, 입에서 나오는 진성(眞聲)으로.

“그럴 수는 없지. 오랜만에 내 호승심을 끌어 낸 상대를 만났으니 말이야. 하지만 자네가 처음은 아니니 너무 억울해 말게.”

저벅- 저벅-

기세 자체가 달라진 카이젝이, 이안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다 생각하지만, 날 이기기라도 한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도 주도록 하지.”

카이젝의 쌍검에 휘감긴 흑염이, 더욱 거칠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30대의 평범한 직장인인 배철훈은, 오늘도 야근에 모든 기력을 빨린 뒤 터덜터덜 퇴근하는 중이었다.

축 늘어진 어깨로 지하철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두들기는 배철훈.

하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어쩐 일인지 생기가 돌고 있었다.

“후우, 요즘은 이게 유일한 낙이란 말이지.”

철훈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스마트폰에 떠올라 있는 화면은, ‘배팅 카일란’ 어플이었다.

카일란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영지전이나 길드전의 승패를 맞추는 방식의, 일종의 스포츠 토토 어플.

그리고 최근 배철훈은, 이 배팅 카일란으로 최근 적지않은 수익을 올렸다.

정부에서 공인된 합법 토토인 만큼 최대 배팅액은 30만원에 불과했으나, 배철훈이 지난 이주 동안 벌어들인 돈은 무려 800만원이 넘는 수준이었다.

배당이 높은 길드전의 승패를 연달아 맞춘 탓이었다.

‘크으, 로터스 길드 덕에 토토로 두 달 치 월급 뽑는구나!’

사실 철훈은, 지금껏 배팅으로 큰 이득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고배당을 좋아하고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 탓에, 대부분 확률이 낮고 배당이 높은 종목에만 돈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번 배팅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유저들의 이목이 모인 로터스 길드의 영지전.

철훈은 지금까지 7회 연속 로터스 길드에 돈을 걸어온 것이다.

배당이 10배가 넘어가는 6연승부터는 철훈조차도 손이 떨렸지만, 결국 로터스에 걸었고 덕분에 엄청나게 땄다.

그리고 오늘은 내일 있을 8차 영지전의 배팅이 있는 날.

철훈은 또다시, 망설이지 않고 30만 캐쉬를 로터스에 배팅했다.

무려 15배가 넘는 배당률이었고 유저들의 여론도 좋지 않았지만, 철훈은 꿋꿋했다.

‘뭐 시바, 6차전 7차전은 로터스가 이길 줄 알았나?’

이미 5차전 이후부터는, 로터스가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웹상에 팽배한 상태였다.

로터스를 얕보는 것이 아니라, 연속된 영지전으로 인해 이미 너무 많은 병력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로터스 길드 내부에서도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으니, 배당이 더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철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아예 8차전부터 12차전까지 한 방에 묶어버리자고.’

30만캐쉬를 배팅하려던 철훈은, 잠시 멈춘 뒤 다른 창으로 넘어갔다.

예정된 12번째 영지전까지, 모든 경기를 한 번에 묶어서 배팅해버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물론 12차전까지 모든 경기를, 로터스의 승리로 배팅해 버린 것.

근거는 없었다.

그냥 왠지 로터스가 이길 것만 같았다.

이렇게 묶어서 배팅해 버리면, 단 한 경기라도 로터스가 질 경우 돈을 한 푼도 회수할 수 없게 되지만, 만약 모든 경기를 로터스가 승리할 경우, 정말 천문학적인 배당률이 나오게 될 것이다.

“크으.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쫄깃한 맛이 있지!”

배팅 버튼을 꾹 누른 철훈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배팅에 성공하기만 하면, 30만원으로 천 만 원도 넘는 거액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도박의 신이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 같았다.

*          *          *

< (1). 셀라무스의 절대자 -1 (16권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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