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셀라무스, 그 두 번째 시험 -1 >
비룡을 탄 이안은, 말 그대로 정신없이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어떤 놀이공원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중부대륙의 창공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이안의 비명소리!
이안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비룡의 등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었다.
그나마도 출발 전에 비룡의 목에 메어져 있는 고삐 같은 것을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이미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서 추락사 했으리라.
“대체 언제까지 올라갈 거냐고오!”
비명을 꽥꽥 내지르던 이안은, 궁금한 마음에 실눈을 떠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구름까지 뚫고 올라온 것인지, 발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까마득한 높이.
이안의 등을 타고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미, 미친…!!”
하지만 이안의 외침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비룡은 계속해서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푸르릉-!
그렇게 삼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안의 진이 거의 다 빠질 때 쯤, 비룡의 속도가 천천히 느려지더니 이내 어디엔가 멈춰 섰다.
이안은 쥐가 날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던 고삐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뭐지?”
이안이 당황한 것은 당연했다.
분명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는데 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널따란 대지와 초목(草木)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마침 그 때, 이안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천공의 대지, ‘셀라무스 군도’를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15만 만큼 증가합니다.]
:
:
[셀라무스의 잊혀진 소환수들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천공의 대지라고? 그럼 여기가 하늘 위에 떠 있는 섬이라도 된다는 말인 건가?’
비룡의 등에서 내려온 이안은, 고개를 휙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바로 뒤쪽에, 하얀 뭉게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이안이 걸음을 돌려 열 발자국 정도만 걸어간다면, 아마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리라.
그런데 이제껏 가만히 이안을 지켜보던 비룡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예의 그 웅혼한 목소리가, 또다시 이안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날 따라오도록. 늦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으응…?”
그리고 비룡은, 어리둥절해 하는 이안을 뒤로한 채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으로 또다시 솟구쳤다.
그에 이안은 입을 쩍 벌리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 뭐야? 나보고 어떻게 따라가라고!’
소환수들을 소환할 수 있는 상태였더라면 핀이나 카르세우스를 타고 어떻게 따라가 보겠건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상황.
“설마… 내리면 안 됐던 건가?”
하지만 이안은 금세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날아오른 비룡이, 천공의 대지 한가운데 우뚝 솟은 탑의 꼭대기로 날아가 그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천공의 섬이 아닌 이 대지 위에 솟아있는 탑이라면, 두 다리로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띠링-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제한시간 내에, 셀라무스의 탑 10층에 있는 비룡의 방에 도달해야 합니다.]
[남은 시간 : 02:59:59]
[제한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시, 자동으로 퀘스트에 실패하게 되며, 퀘스트는 소멸하게 됩니다.]
메시지를 읽은 이안은,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곧바로 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무려 트리플S 등급의 퀘스트였다.
제한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져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 * *
“전부 다 모였나요?”
파이로 영지의 대회의실.
상석에 앉아있는 길드마스터 헤르스가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피올란이 대답했다.
“아직 이안님이 안 오셨네요.”
“메시지는 보내 봤어요?”
“네. 수신거부 되어 있는 게, 아마도 또 퀘스트같은 걸 하러 가신 게 아닐까….”
이안을 떠올린 헤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 정도는 쉬면서 정비할 법도 한데, 그 새를 못 참고 또 퀘스트를 하러 움직인 것이다.
그래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미리 얘기가 되지 않았으면 모르되, 약속 하나 만큼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지키는 이안이었으니까.
그리고 남은 영지전에 대한 병력분배와 같은 굵직한 전략은 함께 의논해 놓은 상태였기에, 딱히 이 자리에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좌중을 한번 쭉 둘러본 헤르스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래도 누군가 올 사람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그게 누구였더라….’
그런데 그 때.
끼이익 소리를 내며 대회의실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
그에 회의장 안에 있던 로터스 길드 수뇌부들의 시선이 곧바로 그 문을 향했고, 열린 문 사이로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데 이상한 것은, 발소리만 들릴 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뭐, 뭐지? 은신술인가?!”
하지만 헤르스는, 누가 들어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훈이 왔냐?”
헤르스의 물음에, 반쯤 접힌 어두운 빛깔의 마법사 모자가, 탁자 위로 불쑥 튀어 올라왔다.
“후후…. 최강의 어둠술사인 나 간지훈이가, 드디어 전장에 합류하게 되었군.”
손발이 사라질 것 같은 말을 태연스레 하며 빈 자리를 찾아가 앉는 훈이!
근처에 있던 길드원 중 하나가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헤르스를 보았다.
“마스터, 우리 길드에 이런 꼬맹이도 있었습니까?”
그 물음에 헤르스는 낄낄 웃었고, 훈이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꼬맹이라니…! 난 최강의 흑마법사. 어둠의 군주 임모탈의 전승자다!”
“…?”
너무 당황해서 아예 말을 잃어버린 길드원들.
그도 그럴 것이, 길드원들 중에도 훈이를 아는 이들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훈이가 길드에 가입한지는 제법 시간이 흘렀으나, 공식적인 자리에 나온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길드원들은, 헤르스와 피올란에게 답변을 원하는 눈빛을 보내왔고, 헤르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 길드원이 맞습니다. 더해서 이 자리에 참석할 만한 역량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유저이죠.”
그리고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길드원 목록에서 간지훈이라는 아이디를 본 적도 있는 것 같아. 뭐 저런 중2병 걸린 아이디를 쓰는 녀석이 있나 싶었는데….”
길드원들은 잠시 웅성거렸지만, 이어진 헤르스가 설명에 쥐죽은 듯 조용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훈이는, 비공식이지만 흑마법사 랭킹 1위 유저이기도 합니다.”
“…!”
* * *
콰쾅- 쾅-!
거대한 석탑의 내부에서, 커다란 타격음이 연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바윗덩이가 쪼개지는 듯 한, 그런 파열음이었다.
“비켜라, 이것들아! 형이 시간이 없다고!”
타탓- 탓-!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빙글빙글 휘두르며, 앞을 가로막는 바윗덩이들을 사정없이 깨부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윗덩이는 아니었다.
그것들은 셀라무스 비룡의 탑을 지키고 있는 가디언들.
바로 200레벨 초반대의 몬스터인 ‘포레스트 골렘’ 들이었다.
콰앙-!
이안은 달려드는 포레스트 골렘의 머리를 가차 없이 박살내 버린 뒤, 입 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오케이, 재사용 대기 시간 돌아왔고….’
이안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스킬인,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 스킬을 확인했다.
셀라무스 부족의 시험이 시작되면서, 부족의 스킬을 제외한 모든 스킬들이 봉인 당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스킬은 오직 이것 하나 뿐 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이 스킬만 해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상황이었다.
‘트리플S등급 퀘스트가 뭐 이리 허접한 거야? 아직 도입부라서 그런 것 뿐인가?’
레벨이 200~210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공의 대지의 몬스터들.
그들은 이안의 공격 한 번에 짚단처럼 쓰러질 수 밖에 없는 허약한 몬스터들일 뿐이었다.
그 증거로 이안은, 아직 세 시간의 제한시간 중 30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탑의 정상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니면… 200레벨제한이었던 퀘스트를 거의 300레벨이 다 되어서 왔으니 당연한 건가…?’
그러나 이안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항상 한계를 시험하는 무지막지한 퀘스트만 진행해 오다가 손쉬운 퀘스트를 하게 되니, 신나기 이전에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잊혀진 셀라무스의 가디언, ‘포레스트 골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포레스트 골렘’의 생명력이 497098만큼 감소합니다.]
[‘포레스트 골렘’을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경험치가 879500만큼 증가했습니다.]
쿠웅-!
탑의 9층 마지막 복도를 지키고 있던 골렘까지 가볍게 처치한 이안은, 한 차례 숨을 고른 뒤 최상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의 위쪽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햇살!
그리고 그 너머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안은 그것이 비룡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안은 비룡 대신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 * *
“오랜만이군, 이안.”
어딘지 모를 낯익은 목소리에,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이안은, 그가 누군지 금방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이클립스…! 오랜만입니다.”
새하얀 백발에 백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박도를 등에 멘 노인의 모습은, 이 카일란에서도 충분히 특이한 비주얼이었으니까.
이안은 이클립스를 발견하자마자, 습관적으로 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이클립스 / Lv285 / 셀라무스 부족 소환술사]
그리고 씨익 웃었다.
‘뭐야, 이제 내가 레벨이 더 높잖아?’
이안의 웃음의 이유는 바로, 285라고 쓰여 져 있는 이클립스의 레벨.
처음 이클립스를 만났을 때의 레벨차이는 100레벨도 넘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이안의 레벨이 더 높아진 것이다.
그동안 이클립스의 레벨이 35레벨 정도 증가한 반면에, 이안의 레벨은 150 가깝게 상승한 것.
이안은 이 퀘스트가 생각보다 훨씬 쉽게 끝날 것임을 직감했다.
이클립스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그때 보았던 자네의 잠재력이라면, 이보다 훨씬 빨리 비룡의 제단에 도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에 잠시 멈칫 했던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게 대답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늦었습니다. 유일한 계승자로서, 셀라무스의 선조들을 실망시켜드려서는 안되니까요.”
사실과는 조금(?) 다른 변명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퀘스트가 많아서 차일피일 미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안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이클립스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자네라면 나는 물론, 선조들의 기대를 져 버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네.”
“고맙습니다, 이클립스.”
그리고 그 순간,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음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이안의 눈 앞에 떠올랐다.
띠링-
[비룡의 제단 첫 번째 시험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소요시간 : 00:39:27 / 03:00:00]
[클리어 등급 : SSS]
[SSS의 등급으로 클리어 하셨으므로, 그에 맞는 등급의 보상이 부여됩니다.]
[‘셀라무스의 비전이 담긴 스킬북’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을 25만 만큼 획득하셨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Max수치의 클리어등급이 나오자, 이안의 입에는 함박웃음이 걸렸다.
명성도 명성이지만,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셀라무스 비전 스킬북은, 이미 이전 퀘스트에서 얻었던 적이 있는 아이템이었던 것.
이안에게 ‘셀라무스 전사의 의지’라는 전설등급의 전투스킬을 얻게 해 준 최고의 스킬북이 바로 이 아이템인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행복(?)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규격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셨습니다.]
[셀라무스 선조들이 당신의 잠재력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셀라무스 부족의 시험(히든, 연계)’퀘스트가 상위 티어로 진화합니다.]
[‘셀라무스 부족의 절대자’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함박웃음이 걸려있던 이안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 (8). 셀라무스, 그 두 번째 시험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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