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46화 (368/1,027)

< (6). 최초의 퓨전스킬 -1 >

“크크큭. 크하하핫!”

검정색 로브를 뒤집어 쓴 훈이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호탕하게(?) 웃어댔다.

훈이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건지, 몸까지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그에 옆에 있던 카노엘이, 눈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크크큭이 뭐냐, 오그라들게. 이상한 컨셉 좀 잡지 말라니까.”

훈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아 왜. 흑마법사는 사악하게 웃어야 하는 법이라고. 방금 나 되게 사악해 보이지 않았어?”

카노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후, 내가 말을 말아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카노엘을 보며, 이안이 피식 웃었다.

“걔 그러는 거 하루 이틀이냐. 영상이나 보자. 이거 진짜 꿀잼이네.”

이안의 말에, 카노엘과 훈이가 다시 옹기종기 모여 들었다.

훈이가 이안의 등에 매달리며 히히덕거렸다.

“크크큭, 역시 이안형이 제일 사악하단 말야. 형도 흑마법사를 했어야 했는데.”

카노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랬으면 너 랭킹 2위로 내려갔을 걸?”

훈이의 입이 다시 댓 발 튀어나왔다.

“우씨….”

잠시 실랑이를 벌이던 세 사람은, 다시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러앉은 세 사람의 중심에는, 어두운 기운이 흐르는 커다란 수정구가 하나 두둥실 떠 있었다.

세 사람이 둘러앉아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훈이의 흑마안이었던 것이다.

“아, 이거 칼라지원 안되나. 칼라였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훈이의 투덜거림에, 카노엘이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카카 색맹수술 해주던가.”

“할 수 있으면 진짜 해 주고 싶다. 이 재밌는 걸 흑백으로 봐야 하다니.”

그들이 공유 받고 있는 시야는 역시, 흑백으로 된 카카의 시야.

흑마안으로 생성된 수정구 안에는, 일단의 마족 무리들이 발록 한 마리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그 마족무리들은, 이라한과 마틴의 길드연합파티였다.

숨 막힐 정도로 처절한 마족 유저들의 사투!

역시 강 건너 불구경이야말로,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설계했지만 좀 불쌍한데…?”

이안의 중얼거림에, 훈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할래, 형?”

“아냐, 이래봬도 난 마음속에 항상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고.”

“노엘이형이 물약 아끼는 소리하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수정구를 지켜보던 카노엘이 이안을 불렀다.

“형, 이제 끝나 가는 거 같은데? 어쩔까. 좀 더 지켜봐?”

이안이 수정구를 잠시 지켜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군들, 이제 슬슬 내려갈 준비 하자고.”

그에 카노엘과 훈이도,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케이!”

“좋아, 수확하러 가 볼까?”

어차피 이라한과 마틴의 파티가 전멸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고, 그렇다면 타이밍을 맞춰서 내려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발록이 회복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잊혀진 영혼의 무덤 2층에 숨어있던 이안 일행은, 수정구를 회수한 뒤 1층으로 이어진 게이트를 향해 조심스레 움직였다.

*          *          *

‘제, 제길! 움직일 수가 없어!’

이라한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 마다 무참히 튕겨나가는 적(?)들의 신형!

다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움직임이며, 상대가 사실은 적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이라한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거 대체 지속시간이 얼마나 긴 거야?’

이라한이 휘두르는 검에, 같은 다크루나 길드원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제길! 마법사들 뭐해! 캐스팅 빨리 해 보라고!”

“앞에서 버텨주는 사람이 있어야 캐스팅을 성공할 거 아냐! 계속 마기가 쏟아지는데 무슨 수로 캐스팅을 해!”

“사제! 사제들은 다 어디갔어!”

“전멸이야!”

“젠장!”

발록을 상대하던 파티의 70% 이상이 이미 전멸했다.

게다가 남은 인원의 절반도, 발록의 ‘영혼잠식’에 당해 아군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혼잠식에 당한 아군들을 죽일 수라도 있으면 좋겠건만, 그들은 심지어 ‘무적’ 상태였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발록의 생명력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으나, 마지막에 발동된 영혼잠식 때문에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버렸다.

특히 파티에서 가장 강한 랭커인 이라한이 영혼잠식에 당했기 때문에, 아예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

콰아앙-!

발록이 휘두른 앞발에, 다크루나 길드 마법사 한명이 튕겨나가 새카만 재로 변했다.

이라한은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상황을 볼 수는 있었기에, 더더욱 짜증나고 괴로웠다.

‘제길! 발록한테 미친 버프를 16중첩이나 시켜놓은 게 대체 누구야?’

아직도 버프가 3~4중첩은 남아있는 발록을 응시하며, 이라한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라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 길드원까지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볼 밖에.

귀환 스크롤이라도 찢고 싶었지만, 광역 귀환스크롤이 이라한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것조차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그야말로 외통수라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사망해버린 마틴보다는 자신이 조금 더 낫다는(?) 부분이었다.

‘으… 처음에 방심하지만 않았어도 잡을 수도 있는 녀석이었는데…!’

시작하자마자 근접딜러와 탱커 6명이 죽어버린 게, 너무도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희생은 컸을지언정 사냥에 실패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분하다…!’

그런데 그 때, 이라한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태이상 ‘영혼잠식’의 지속시간이 60초 남았습니다.]

[영혼의 고통으로 인해, 시야가 조금씩 흐려집니다.]

이라한이 쓰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또 1레벨 날리는 건가….’

영혼잠식에 당한 대상은, 잠식이 끝나는 순간 ‘무적’ 상태가 풀리며 생명력이 ‘1’남은 상태로 바닥에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3분 동안 ‘스턴’ 상태가 지속되는데, 이 때 컨트롤이 좋은 사제 클래스 유저가 있다면 문제될 게 없었다.

‘영혼잠식’ 상태이상과 달리 ‘스턴’은, 사제의 해제 스킬로 회복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상태이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컨트롤이 좋은 사제가 재빨리 해제 스킬과 회복스킬을 걸어주면 곧바로 회생이 가능한 것.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라한의 파티에 사제가 단 한명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영혼잠식이 풀리고 스턴에 빠지는 순간, 그대로 발록의 발에 짓밟혀 사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혼잠식’의 지속시간이 21초 남았습니다.]

[‘영혼잠식’의 지속시간이 20초 남았습니다.]

:

:

이라한은 완전히 체념해 버렸고, 아예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이 발록을 잡으러 올 계획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15구역까지 다시 오는 것은 이제 식은 죽 먹기였고, 발록의 공격패턴도 익혔으니 다음에는 희생 없이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트라이할 때엔, 쓸모없는 호왕길드 녀석들은 데리고 오지 말아야 겠어.’

그리고 곧 영혼잠식이 풀리며 이라한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쿵-

[‘영혼잠식’이 해제되며, 그 충격으로 인해 3분 동안 ‘스턴’ 상태가 됩니다.]

이라한은 이제 발록의 손에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명력은 고작 ‘1’포인트가 남아있었고, 뭐에라도 스치면 그대로 사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그 때, 뒤쪽에서 알 수 없는 타격음 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파티는 전부 전멸했을 텐데…? 지원군이라도 온 건가?’

현재 이라한의 시야에는, 던전의 돌바닥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개가 거의 바닥에 처박힌 상태로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스턴’ 때문에 고개를 돌릴 방법도 없어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발록은 지금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이라한은 발록과 싸우고 있는 누군가나, 다크루나 길드의 지원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지원군이 온 거야! 분명해!’

그리고 만약 지원군(?)이 발록을 처치할 수만 있다면, 극적인 드라마가 쓰여지게 될 것이다.

이라한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예쁜 짓을 한 거지? 헤밀슨인가? 아니면 카리온? 누군지는 몰라도 지원군을 계획한 녀석에게 큰 상을 내려야겠어. 얼마 전에 획득한 전설등급 아뮬렛이라면 충분하겠지.’

콰쾅- 쾅-!

“라이, 카이자르! 마무리 하자!”

크아아오!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성들.

이라한은 어떤 길드원의 아이디인지 열심히 추측했다.

‘라이자르가 누구지? 처음 듣는 아이디인데….’

그리고 잠시 후.

이라한의 간절한 마음이 그들에게 전달되었는지, 거대한 발록이 쓰러지는 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쿠웅-!

그 소리를 들은 이라한은,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물론 ‘스턴’ 때문에 실제로 손이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됐어! 이제 얼른 날 회복시켜 달라고!’

어차피 50초 정도 후면 ‘스턴’이 풀리게 되지만, 이라한은 빨리 일어나서 쓰러진 발록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원파티에 사제 클래스가 없기라도 한 것인지, 아무도 이라한을 회복시켜주지 않았다.

이라한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 길드 지원군이 아니라… 호왕길드놈들의 지원군인가?!’

그런데 그 때.

멀찍이서 기묘한 소리가 이라한의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뿍- 뿌북- 뿍-

그에 무슨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라한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이상한 소리는!’

그리고 그 기묘한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뿍- 뿍뿍-!

이라한은 본능적으로, ‘스턴’의 지속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스턴’의 지속시간이 23초 남았습니다.]

‘아, 안 돼! 23초만 기다려 줘!’

뿍뿍거리는 소리의 정체가 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이라한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척까지 다다른 뿍뿍거리는 소리가 멈추더니, 이상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아! 얘 살아있는 것 같뿍!”

“그래? 살아있다고?”

“그렇뿍! 살아있다뿍!”

이라한은 절규했다.

‘그래, 나 살아있다고! 살려달라고!’

그러나 다음 순간, 이어지는 대화에 이라한은 절망해야만 했다.

“그럼, 밟아!”

“알겠뿍!”

그리고 이라한의 시야에는, 그대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뿍-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모두 소진되어, ‘사망’ 상태에 빠집니다.]

:

:

그렇게 이라한은 영문도 모른 채,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말았다.

< (6). 최초의 퓨전스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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