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사령의 탑 -2 >
* * *
“미친! 저게 뭐야!”
사방에 시뻘건 불덩이가 피어오르며,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거대한 마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본체로 현신한 카르세우스나 뿍뿍이와 비교해도 2배 이상은 더 거대해 보이는 몸집을 가진 마수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이안 일행을 압도했다.
“코뿔소…?”
카노엘의 중얼거림에 훈이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저렇게 괴상하게 생긴 코뿔소가 어딨어!”
머리에는 돋아 있는 우악스런 세 쌍의 뿔과, 콧등에 솟아 있는 붉고 두툼한 뿔.
안면 자체는 코뿔소를 연상케 하는 외모였으나, 등줄기를 따라 꼬리까지 돋아있는 커다란 돌기들 때문인지, 고대의 공룡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안 일행은, 오래지 않아 이 괴 생명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크아아오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거대한 포효소리와 함께,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마수.
[베히모스 / Lv 406]
마수의 정체는 바로, 이안 일행이 지금껏 찾고 있었던 전설 등급의 마수 베히모스였다.
베히모스는 차원전쟁때도 등장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안 일행은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훈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움직임은 좀 느려 보이지?”
이안이 베히모스를 찬찬히 살피며 입을 떼었다.
“그건 그런데, 무슨 가죽 질감이… 철갑 같은 느낌이야. 물리저항력 엄청날 것 같아.”
이안은 손에 들고 있던 창극을 힐끔 쳐다보았다.
비상식적인 공격력을 가진 ‘정령왕의 심판’ 이었지만, 저 무식한 가죽을 찢어발길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300레벨 후반대만 되었어도 이렇게 위압적이진 않았을 텐데….’
그래도 확실한 것은, 450레벨에 육박했던 대신관에 비해서는 훨씬 약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어떻게 비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이, 노엘이. 일단 살짝 뒤로 빠져 봐.”
“왜? 덩치가 큰 놈이니까 좁은 데서 싸워야 오히려 유리한 거 아니야?”
훈이의 반문에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밝은 데로 끌어내게. 그리고 저 녀석에 대한 정보가 아예없는 마당에, 선공할 순 없잖아?”
“하긴, 알겠어.”
이안과 훈이, 카노엘은 서로 빠르게 의사소통을 하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이안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 녀석을 못 잡으면, 다음 트라이에라도 잡을 수 있게 최대한 정보를 많이 뽑아내야 해.’
워낙 강력한 상대다보니, 전투에 패배할 경우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패배하더라도 녀석에게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언제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찢을 생각이었다.
순간이동스크롤이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랭킹1위인 이안의 1레벨 다운에 비견될 건 아니었으니까.
쿵- 쿵- 쿵-
베히모스가 육중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이안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굵기의 다리통이 한 발짝 움직일 때 마다, 던전 전체가 진동했다.
“내가 신호하면, 공격 시작해, 알겠지?”
“오케이!”
이안은 초 긴장 상태로 녀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지금은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이동중인 녀석이었지만, 언제 변칙적인 공격을 해 올지 모르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됐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안은 못해도 녀석의 전신이 전부 어둠 밖으로 빠져나오면, 공격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어둠 속에 놈의 무기가 있다면 대비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크르르-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세 사람을 한번씩 응시한 베히모스가, 돌연 걸음을 돌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뭐, 뭐지? 쟤 어디 가는 거야?”
“그러게,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떡할까? 공격해 형?”
카노엘이 당황해서 이안을 쳐다보았고, 훈이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의아한 것은 이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격적 성향이 무척이나 짙은 ‘마수’가 이렇게 등을 보이는 것은, 이안이 마계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본 것이기 때문이었다.
‘뭐지? 왜 돌아가는 거지?’
게다가 녀석의 레벨이 이안 일행보다 100레벨 이상이 높은 상황이었으니, 상황이 더욱 이해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멍한 표정으로 베히모스의 뒷모습을 보던 훈이가, 이안을 보며 말했다.
“형 혹시….”
“음?”
“저 녀석이 그 어둠의 보주 라는 것을 지키려고 저러는 게 아닐까?”
훈이의 그럴싸한 가정에, 이안이 반색했다.
“오호?”
그러자 신이 난 훈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 베히모스라는 녀석의 임무가 어둠의 보주를 지키는 것이라면, 멀리 안 나오고 되돌아가는 게 설명이 되잖아.”
“확실히 그러네. 오랜만에 훈이가 옳은 말을 했어.”
“오랜만이라니! 난 항상…!”
훈이의 반발을 가볍게 무시한 이안이,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이안의 가늘게 뜬 눈이 베히모스가 사라지고 있는 어둠을 향했다.
‘훈이의 의견…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야. 저 안에 어둠의 보주가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가정일 뿐이었다.
그것을 전제로 작전을 짜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이안이 입을 열었다.
“확인해 보자.”
“뭘?”
“저 안에 보주가 있는지 말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이안이 시선을 돌려 자신의 옆에 동동 떠 있던 카카를 응시했다.
“이 녀석 이라면 가능할 거 같은데…?”
훈이와 카노엘은 이안의 말을 대번에 이해했다.
“오…! 확실히 카카라면!”
“그러네, 내가 흑마안까지 쓰면 완벽하겠어.”
베히모스가 신성계열의 고유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카카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카카라면 아무 위험 없이 저 어둠 속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흑마법사인 훈이가 가지고 있는 ‘흑마안(黑魔眼)’이라는 스킬을 사용한다면, 파티원 전체가 카카의 시야를 공유받을 수 있게 된다.
모두의 시선이 카카를 향했고, 카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다, 주인. 내가 다녀오도록 하겠다.”
* * *
포롱- 포롱-
카카가 날갯짓을 시작하자, 특유의 거슬리는 효과음(?) 같은 것이 작게 울린다.
그에 이안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야, 날갯짓 하지 말라니까?”
“날개를 움직여야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든다 주인아.”
“닥치고, 날개 좀 가만히 있어.”
“흑….”
울상이 된 카카가 날갯짓을 멈췄지만, 역시 비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어후 답답해. 쟤 왜 이렇게 느려?”
“내 말이.”
카카가 한참을 날아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훈이가 스컬 완드를 치켜들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흑마안이여… 내게 세 번째 눈을 허락하라!”
위이잉-!
그러자 훈이의 완드로부터 검 보라 빛의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일행의 앞에 커다란 구슬이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구슬에는, 마치 흑백영화를 연상시키는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물론 카카의 시야가 보이는 것이었다.
이안이 훈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꼭 그런 오그라드는 영창을 해야 하는 거야?”
“오그라들다니! 형이 그래서 안 되는거야. 아무리 컨트롤을 잘 하면 뭐해. 이런 걸 오그라든다고 생각하니까 간지가 안 나는거야.”
“어련하시겠어….”
세 사람은 훈이가 소환한 수정구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관찰하던 카노엘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야, 훈아. 이거 지난번에 흑마안 발동시켰을 때는, 분명 풀 컬러 영상이 나왔던 것 같은데… 왜 흑백으로 바뀐 거냐? 성능이 다운그레이드 됐는데?”
그에 훈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성능이 다운그레이드 된 게 아니고, 지금 보이는 이게 카카의 시야인거야.”
“뭐?”
“카카가 평소에 보는 세상이, 이렇게 흑백이었던 거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이안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하…? 오, 그러고 보니… 어둠 속이 엄청 선명하게 보이잖아?”
“엇, 그러네?”
어쨌든, 덕분에 어둠 속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 세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구슬을 통해 보이는 영상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카카는 대답하게도, 엎드려 있는 베히모스의 바로 옆을 지나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몸집이 작은 카카의 눈으로 베히모스를 보니, 괴수가 아니라 거의 큰 바위언덕처럼 느껴졌다.
“이제 꼬리인가? 드디어 끝이 보이네.”
훈이의 중얼거림처럼, 카카의 정찰은 이제 거의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은, 눈에 불을 켜고 어둠의 보주를 찾기 위해 화면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 때.
“어, 잠깐. 저기 저거…! 저건가?”
카노엘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와 동시에 훈이와 이안의 시선도 고정되었다.
베히모스의 거대하고 기다란 꼬리가, 희미하게 빛나는 어떤 물체를 조심스럽게 휘감고 있었던 것이다.
카카도 그것을 발견했는지 그 물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세 사람은 그 물체의 모습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물체는, 한 개가 아니었다.
총 세 개의 매끈한 유리알같은 물체들이, 서로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기이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야…? 이건 어둠의 보주가 아닌데?”
훈이의 말에, 카노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 그러게? 나 방금 퀘스트 창 열어서 어둠의 보 주 생김새 확인해 봤는데, 이거랑은 너무 다르게 생겼어.”
“이건 마치… 알 같잖아?”
“아냐, 그런데 알이라기엔… 표면이 너무 매끈하고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잖아. 무슨 보석 같은 게 아닐까?”
그 뒤로 카카가 주변을 더 돌아다녀 보았지만, 다른 물체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황상, 베히모스는 이 의문의 물체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노엘과 훈이는 물체의 정체에 대해 열심히 추측하기 시작했고, 이안은 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게 뭘까? 왜 난 저걸 어디서 본 것 같지?’
이안은 카카의 시야가 흑백인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만약 색상이 입혀져 있는 화면을 확인했더라면, 분명 그 물체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낯이 익어. 분명 어디선가 봤던 물건인데….’
이안은 열심히 기억을 끄집어 내 보았다.
‘카르세우스의 영혼이 담겨 있던 신룡의 알 질감이 약간 저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생긴 모양은 또 다르고.’
신룡의 알은, 여느 알과 마찬가지로 아래가 더 볼록한 ‘알’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베히모스가 품고 있는 세 개의 물체는, 거의 대칭에 가까운 타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지? 으… 미치겠네,’
이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카카의 시야에 다시 들어온 의문의 물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때.
물체의 표면을 타고 은은한 빛이 좌르륵 흐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은 그 물건을 어디서 봤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 (3). 사령의 탑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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