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사령의 탑 -1 >
훈이와 카노엘에게 갈취(?)한 영혼석을 전부 합치자, 이안의 인벤토리에는 무려 85개나 되는 타르베로스 영혼석이 쌓였다.
이것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지만, 이안은 좀 아쉬운 표정이었다.
‘음, 전투 기여도에 따라 획득하는 영혼석 숫자가 달라지는 건가? 세 사람 합치면 백 이십 개 정도는 쌓일 걸로 봤는데….’
이안이 획득한 타르베로스의 영혼석이 총 41개였고, 훈이가 획득한 영혼석은 28개. 카노엘이 획득한 영혼석이 16개였으니, 얼추 전투 기여도와 연관이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훈이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 대신에 베히모스의 가죽은 온전히 나한테 주는 거다?”
“알겠어 인마.”
흑마법사인 훈이에게, 마수 영혼석은 하등 쓸모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런 잡템(?)을 무려 베히모스의 가죽의 지분과 거래한다고 생각하니 남는 장사라고 생각된 것이다.
물론 훗날, 타르베로스의 영혼석이 개당 50만골드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땅을 치며 후회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훈이는 흡족한 거래라며 만족하고 있었고, 카노엘도 별 불만은 없어 보였다.
“뭐, 형이 지금까지 나 챙겨준 게 얼만데. 이 정도 쯤이야.”
“크으, 역시 노엘이는 클라스가 다르다니까. 항상 말하지만, 훈이 너도 좀 본받으면 안 되냐?”
이안의 핀잔에 훈이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아 왜 자꾸 금수저랑 비교하는데.”
한편 훈이와 이안이 실랑이하는 동안, 일행의 재정비는 전부 끝이 났다.
이제는 사령의 탑 깊숙한 곳으로 움직일 시간이었다.
‘이 탑 안에 타르베로스가 수십 마리 서식하는 거면 정말 행복하겠는데….’
이안 일행이 타르베로스 다섯 마리를 사냥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
전투를 마치고 30~40분 정도의 정비시간이 필요했던 것 까지 감안한다면, 사냥속도는 정말 극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얻는 부수입이 너무 짭짤했으니, 이안은 진심으로 타르베로스가 계속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천천히 안으로 움직이자.”
“알겠어 형.”
“흠, 근데 설마 계속해서 전설등급의 마수가 등장하는 걸까? 아무리 히든 던전이라고 해도 그건 좀 오반데….”
훈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타르베로스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네.”
“이번에 아예 완성하고싶어서 그러지?”
“당연한 말씀.”
훈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소환수도 충분히 많으면서…. 타르베로스 완성한다고 해도 형 통솔력이 부족할 걸?”
하지만 이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노노, 그럴 리가. 마수를 소환하는 데는 통솔력이 필요 없는 걸?”
“엥?”
훈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지금까지 이안이 마수를 부리지 않는 이유가, 통솔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마수를 소환하는 데 필요한 코스트는 ‘마기’야. 전설등급의 마수 정도면 한 1만~2만 정도의 마기가 소모되지 않을까? 레벨에 따라서도 달라지긴 하겠지만….”
“음? 소모된다고?”
이번에는 카노엘이 대답했다.
“소모되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통솔력이랑 비슷하게 적용되는 거야. 이안형 마기가 5만이라고 가정하면, 마기 1만짜리 마수를 다섯 마리까지 소환할 수 있는 거지.”
“아….”
훈이가 다시 의아한 표정이 되어 이안을 쳐다보았다.
“그럼 형, 왜 마수 안 쓰는 거야? 형 마기 5만도 넘잖아. 상급이나 최상급 마수라도 몇 마리 쓰는 게 좋지 않아?”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어줍잖은 마수 써 봐야 별로 도움도 안 되고, 경험치만 가져가잖아. 지금 내 파티에서 1인분 하려면… 최소 전설등급은 돼야 해.”
“아하.”
그제야 이해가 된 훈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 일행은 다시 사령의 탑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의 기대와는 다르게, 탑의 1층에서는 더 이상 타르베로스가 등장하지 않았다.
필드에 서식하던 상급~최상급 마수들이 계속해서 등장할 뿐.
물론 던전 최초발견 보상 덕에 획득하는 경험치는 엄청나게 짭짤했지만, 이안은 아쉬웠다.
타르베로스를 한 마리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 한 마리는 완성할 만큼 조각을 모아야 하는데….’
타르베로스 한 마리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조각은 총 200개.
5마리를 처치하여 80조각정도를 벌었으니, 8~9마리 정도가 더 등장한다면 200조각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형, 저기 게이트야.”
“그러네. 다음 층으로 가 볼까?”
2층으로 이어진 게이트를 발견한 이안 일행은, 빠르게 정비를 한 뒤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카일란의 공식 커뮤니티 홈페이지는, 어떤 포털사이트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고 트래픽량이 어마어마했다.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페이지에 즐길만한 컨텐츠가 무한하다는 것도 크게 한 몫 한 것이다.
게임 내의 무수히 많은 컨텐츠들이 그 성격에 맞게 분류되어있음은 물론, 게임캡슐과의 직접적인 연동까지 지원하니,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구조.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공식 커뮤니티 자체를 LB사에서 직접 팀을 따로 꾸려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대리! 오늘 메인 A파트에 뭐 띄우기로 했었지?”
“잠시만요! 일정 확인해보겠습니다!”
“빨리 찾아봐!”
“음…남부대륙 신규던전 오픈기념 이벤트 페이지 뜨기로 되어있었네요.”
“그거 며칠간 걸리기로 되어 있던 건데?”
“오늘부터 3일 동안 일정 잡혀 있습니다.”
“당장 취소해! 이번 주 내내 동부대륙 길드전 홍보배너 걸어야 하게 생겼어. 아니 어쩌면 다음 주 까지도 쭉!”
“예에? 그거 지지난주 내내 걸려있었잖아요. 길드전도 다 끝난 걸로 아는데요?”
“방금 기획부에서 연락 왔어. 로터스 이 미친놈들이 갑자기 동부지역 길드에 랭킹순으로 차례대로 영지전 싹 다 걸었대.”
“헐, 대박! 길드전도 아니고 무려 영지전이요?”
“그렇다니까! 이거 메인에 안 띄웠다간 홍보부에 항의메일 수백통 날아올지도 몰라.”
LB사 홍보본부의 커뮤니티 관리본부는, 사내 어떤 부서들보다도 일이 많기로 소문난 팀이었다.
그리고 그 관리본부의 본부장인 임진현은, 요즘 아주 죽을 맛이었다.
최근 들어 갑자기 역대급으로 일이 많아진 탓이었다.
‘한달 내내 차원전쟁 할 때가 차라리 속 편했는데….’
커뮤니티 관리본부는, 오히려 대규모 업데이트같이 확실히 큰 이벤트가 진행될 때가 일이 적었다.
대 배너 몇 개, 굵직한 영상 컨텐츠 몇 개만 공들여 만들어 놓으면, 페이지 컨셉 바꿀 일 없이 최소 한달은 날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플레이 영상도, 한번 연동해 놓으면 쭉 이어갈 수 있는 것.
하지만 요즘은 그런 큰 이벤트가 없다보니, 사건 하나 터질 때 마다 수시로 페이지를 관리해야했다.
물론 그에 비례해 보너스도 충분히 많이 나오지만, 요즘 같아서는 돈 안 받고 일 덜하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디자인팀, 20분 뒤에 전부 회의실로 모이도록!”
“보, 본부장님… 지금 5시 50분인데… 헤헤….”
“시끄러! 지금 퇴근하게 생겼어? 당장 내일 A파트 배너부터 시작해서 죄다 교체해야 되게 생겼는데…!”
“지난번에 썼던 이미지 그대로 갖다 쓰면 안 될까요? 어차피 메인은 똑같이 로터스 길드잖아요. 상대 길드 차트만 슬쩍 바꿔다 끼면….”
디자인팀 유팀장의 말에, 임진현이 인상을 팍 쓰며 대꾸했다.
“네가 이사님께 보고 직접 들어가던가!”
그리고 유팀장은, 울상이 되어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팀 소집하겠습니다.”
* * *
크허어엉-!
어둡고 음침한 장내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포효성!
이어서 거대한 그림자가 바닥에 쓰러지며, 탑 전체가 흔들리는 듯 한 진동이 바닥으로부터 퍼져 나왔다.
쿠웅-!
“나이스 샷! 적응되고 나니까 이놈도 상대할 만 하네!”
훈이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노고를 치하(?)했다.
“훈이, 방금 데스헨드 타이밍 굳.”
카노엘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훈이가 스킬 끊어줘서 쉽게 잡았네.”
훈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으쓱거렸다.
“에헴, 내가 바로 간지훈이라고. 이 정도 컨트롤은 껌이지 껌.”
일행의 앞에 쓰러져 있는 두 마리의 거대한 마수.
그들은 다름 아닌 타르베로스였다.
1층에서는 다시 볼 수 없었던 타르베로스였지만, 층을 하나 오를 때 마다 타르베로스가 두 마리씩 등장한 것이다.
지금 이안 일행이 올라와 있는 곳은, 사령의 탑 8층.
1층에서 5마리, 나머지 각 층에서 2마리씩.
벌써 총 스무 마리가 넘는 타르베로스를 사냥한 것이다.
물론 영혼석은 전부 이안의 차지였고, 덕분에 모인 타르베로스 영혼석은 340개였다.
“형 근데 타르베로스 언제 소환할거야. 200개는 아까 넘지 않았어?”
훈이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넘었지. 그런데 지금 소환해 봐야 의미 없으니까, 퀘스트는 클리어하고 나서 소환하려고.”
“왜? 타르베로스 정도면 우리 파티에 엄청 큰 힘이 될 텐데.”
이안 대신 카노엘이 대답했다.
“소환하면 아마 1레벨일 텐데?”
“에…?”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소환수나 마수의 알이 부화하면 무조건 1레벨의 몬스터가 소환되는데, 영혼석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긴, 그러면 쓸 일은 없겠지.”
훈이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이 피식 웃으며 타르베로스들의 사체를 수습했다.
“흠… 이제 최상층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두 층 정도만 더 올라가면 베히모스를 만날 수 있으려나?”
이안의 중얼거림에, 카노엘이 대답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내 생각에도 10층을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런데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갑자기 탑 전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투둑- 투투툭-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사령의 탑.
전체가 석재로 만들어진 석탑이었기에, 흔들릴 때 마다 허공에서 돌가루도 조금씩 떨어졌다.
“이거 뭐지? 지진이라도 난 거야?”
이안이 주변을 살피며 침착히 대꾸했다.
“지진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조심해. 위에서 떨어지는 바윗덩이에라도 맞으면 바로 즉사할지도 몰라.”
그리고 때 마침 일행의 앞에 떨어지는 묵직한 바윗덩이.
콰앙-!
세 사람은 기겁하며 뒤쪽으로 빠르게 물러났고, 진동은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노엘이형, 이동스크롤 찢을 준비 하자.”
카노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 속에서 순간이동 스크롤을 꺼냈다.
몬스터와 전투중에 사망하는 거라면 몰라도, 자연재해로 인해 게임아웃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를 발견한 이안이 한쪽 손을 들어 둘을 제지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어둠 속을 가리켰다.
“잠깐, 저쪽에 뭐가 있어.”
“음…?”
카노엘과 훈이의 시선이 동시에 이안의 손끝을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크르르르-
붉은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눈동자가, 세 사람을 향해 희번뜩 거리고 있었다.
< (3). 사령의 탑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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