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어둠의 소환수 -2 >
* * *
모든 어둠소환수들을 처치한 이안은 다시 게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그 전까지 작동하지 않던 게이트는, 기다렸다는 듯 이안 일행을 빨아들였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이 게이트의 활성화조건이었던 듯 했다.
후우웅-
공간이 뒤틀리더니 이안의 눈 앞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뭐지… 여긴 왜 이렇게 밝아? 아예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건가?’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은 헛바람을 집어삼켜야 했다.
이안 일행이 밟고 있는 바닥은 아래가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했고, 그 아래로 데이드몬의 신전이 까마득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훈이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거 뭐야! 함정 아니야?!”
“시끄러워 인마. 좀 조용히 해봐. 나도 무서우니까.”
이안은 조심스레 발을 딛어 투명한 바닥을 건드려 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자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인데.’
이안은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선을 절대 아래로 움직여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어떤 놀이기구를 탈 때 보다 공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기서 추락하더라도 핀이 살려주겠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난데없이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이안 일행의 시선은 자동으로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움직였고, 그 곳에는 처음 보는 마족 하나가 서 있었다.
“흥미롭군. 그대들이 오랜만에 내 무료함을 달래주었어. 예상을 깨는 존재란, 언제나 내게 즐거움을 선사하지.”
이안은 그가 누군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네가 이 신전의 대신관… 이라고 했던 녀석 인가?”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족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일행의 눈 앞에서 불쑥 나타났다.
이안은 더욱 긴장했다.
‘뭐야 이건, 블링크도 아니고….’
이안의 바로 앞에 다가온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반마 주제에 무슨 깡으로 이 신전에 들어왔나 했더니… 인간으로서의 능력이 더 뛰어난 녀석이었군.”
대신관, 샤를론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좀 건방지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날 재미있게 해 줬으니 넘어가 주도록 하지.”
이안의 시선이 슬쩍 마족의 머리 위로 향했다.
[ 대신관 샤를론 / Lv 456 / 노블레스 ]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정말 괴물 같은 놈이네.’
만약 이 놈과 싸움을 해야 한다면, 필패일 것이었다.
등급도 노블레스인데다 레벨이 무려 450.
같은 노블레스라고는 해도 350레벨 정도인 노블레스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평균 레벨이 250 정도인 이안 일행이, 결코 상대할만한 적이 아닌 것.
하지만 이렇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300레벨대의 적들이 등장하던 맵에서, 보스급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450도 넘는 적이 등장할 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문득 궁금한 게 생긴 이안이, 대신관 샤를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샤를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태평한 표정으로 뜬금없는 말을 하는 이안을 보며, 샤를론은 기가 차다는 표정이 되었다.
보통 상급 마족 정도의 계급을 가진 이가 자신을 만나면, 주눅이 들어 움츠러들기 마련인데, 이 이상한 녀석은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샤를론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는지 생각해 보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방금의 전투를 다 지켜본 바, 절대로 자신의 상대가 될 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었더라면, 방금 이안 일행이 상대했던 그런 ‘장난감들’ 정도는 순식간에 지워버릴 수 있었을 테니까.
‘대체 뭐하는 놈이지? 예상보다 강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애송이에 불과한 수준인데….’
흥미가 동한 샤를론이 이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 궁금한 게 뭔지나 들어보도록 하지.”
이안이 곧바로 물었다.
“네 마계 서열이 어떻게 되지?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어떤 노블레스보다 강력한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니, 내가 봤던 노블레스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 보이는군.”
이안이 이것에 대해 물어본 이유는 간단했다.
마계 서열에 따른 전투력에 대한 데이터를, 어느정도 적립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샤를론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더니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정말 생각지도 못 했던 질문.
이 녀석은 마치, 자신을 친구 대하듯 대하고 있지 않은가?
마신의 신전을 지키는 대신관은, 마계 안에서는 그야말로 지고한 신분.
마왕을 제외하고도 자신을 이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녀석이 존재한다는 것이, 샤를론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래, 좋아. 궁금하다니 가르쳐 주도록 하지.”
샤를론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마계 서열은, 107위다. 당연히 네가 만났던 어줍잖은 노블레스들과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
그리고 이안은, 궁금증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마계 서열 107위라면… 노블레스 중에는 서열 7위라는 이야기. 마왕에 근접할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군.’
그렇다면 레벨이 450이나 되는 것도 이해할 만 했다.
샤를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묻겠다.”
이안을 비롯한 일행의 시선이 샤를론의 입을 향했다.
그리고 샤를론의 입이 다시 열렸다.
“네놈들은 무슨 일로 이 데이드몬님의 신전에 찾아온 거지? 데이드몬님께서 ‘잡종’들을 증오하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찾아온 것 같은데….”
여기서 잡종이란, 반마를 의미하는 것일 터.
마신 데이드몬은, 진마가 아닌 마족을 인정하지 않는, 파괴마의 성향에 가까운 신이었던 것이다.
데이드몬을 모시는 대신관인 샤를론 또한 당연히 반마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안 일행을 시험해 본 것이었다.
만약 이안 일행이 반마가 아닌 진마였다면, 어둠의 소환수들과 싸울 일 없이 곧바로 샤를론을 만날 수 있었으리라.
의아한 표정이 된 이안이 훈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훈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대충 눈치를 챈 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훈이.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아니 그게… 나도 몰랐다고 하면 안 믿겠지?”
“너 같으면 믿겠냐?”
“….”
훈이는 데이드몬이 파괴마의 성향에 가까운 마신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퀘스트 창에 떡 하니 쓰여 있었으니까.
훈이의 퀘스트는 애초에 대신관 샤를론을 만나는 것이었다.
샤를론을 만나 어둠의 증표를 전달하고, 데이드몬의 서를 읽어보는 것이 훈이가 진행중이었던 퀘스트 내용.
하지만 대신관이 순순히 반마를 만나줄 리 없었고, 그렇기에 보험 삼아서 이안을 데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안을 데려온 것은 베스트 초이스였다.
이렇게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샤를론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대신 이안의 분노(?)를 사게 되었지만, 그것은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이안의 눈치를 슬금슬금 본 훈이가 샤를론을 향해 걸어 나왔다.
“대신관 샤를론님을 뵙습니다.”
그에 이안을 응시하던 샤를론의 시선이, 훈이를 향해 돌아갔다.
“네놈은 뭐지?”
“어둠의 신, 카데스님의 사자로 이곳에 온, 간지훈이라고 합니다. 데이드몬님께 전해드릴 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샤를론의 시선이 훈이의 면면을 쭉 훑었다.
“간지훈이라, 어쩐지 기분 나쁜 이름이군. 그래, 가져온 물건이라는 것은 뭐지?”
훈이는 살짝 울컥(?)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 말을 이었다.
이 퀘스트는 훈이에게 있어서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둠의 징표. 신단에 올린다면 데이드몬님께서 신탁을 내리실 것이라 했습니다.”
샤를론은 훈이의 손에 들린 기이한 문양의 석패를 응시했고, 그것을 천천히 받아들었다.
어둠의 징표를 여기저기 뜯어 본 뒤, 샤를론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확실히 기묘한 힘을 지니고 있는 신물이로군. 여기서 잠시 기다려 보라.”
샤를론은 말을 남긴 뒤 어디론가 사라졌고, 잠시 후 일행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한 줄 떠올랐다.
띠링-
[‘어둠의 신 카데스의 심부름 Ⅲ’(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그것을 본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둠의 신 카데스라면 인간계의 다섯 신 중 하나인데… 이게 그런 거물급 퀘스트였어?’
게다가 이미 많이 진척이 되었는지 세 번째 연계 퀘스트의 완료였고, 무려 히든 퀘스트였다.
‘훈이 이놈이 퀘스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물고 다니네.’
이안은 슬쩍 훈이의 퀘스트에 한 발 걸쳐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 *
“지체할 시간이 없다! 빠르게 움직여! 2,3조가 시간을 끄는 동안 세이런의 알만 빠르게 챙겨서 튄다!”
얀쿤의 퀘스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마틴은 무려 호왕 길드의 3개 조를 끌고왔다.
사실 이 정도의 전력이면 세이런의 군락과 전면전을 벌여도 되는 수준이었지만, 호왕길드는 그러지 못했다.
세 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게 짧은 제한시간 때문이었다.
세이런을 전부 처치하고 나면, 세 시간이 아니라 아예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제길 이게 무슨 손해야. 시간만 많았어도 전부 사냥했을 텐데.’
최상급 마수인 세이런들을 사냥했다면 얻을 수 있었을 경험치와 아이템들.
그것을 생각하자 마틴은 열이 뻗치는 것을 느꼈다.
제한시간 때문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길드원들만 죽어나갔기 때문이었다.
아마 알을 전부 챙겨서 빠져나갈 즘이면, 시간을 끌던 병력들의 30%정도는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후, 일단 퀘스트부터 완수해 내는 게 중요하니까.’
이런 언벨런스한 퀘스트를 만든 LB사에 대한 분노까지 치밀 정도.
어쨌든 치밀하게 움직인 덕에 시간 내에 세이런의 알을 확보하는 것은 성공했고, 마틴과 체이스는 다시 얀쿤의 앞에 돌아왔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얀쿤님.”
속이 어쨌든 마틴은,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얀쿤에게 세이런의 알들을 넘겼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 든 얀쿤은 아직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흐음… 임무를 완수하기는 했군.”
그에 표정관리를 하던 마틴은, 다시 똥 씹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아니, 완수하기는 했다는 말은 대체 뭐야?’
그리고 얀쿤의 말이 이어졌다.
“마틴, 그대는 내가 준 임무를 정확히 기억하는가?”
이 근육돼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마틴은 퀘스트 창을 열어 쓰여 있는 대로 대답해 보았다.
“얀쿤님께서는 제게, 최대한 많은 세이런을 사냥하고 그 알을 30개만큼 채집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얀쿤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랬지! 그런데 자네들은 내 임무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
“세이런의 알이야 서른 개 정확히 채집해 왔으나… 처치한 세이런은 고작 열 마리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제야 얀쿤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은 마틴은, 울상이 되었다.
‘아니, 그게 최대한 많이 처치한 거라고 이 못생긴 놈아!’
하지만 그 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고, 마틴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좀 더 많은 세이런을 처치했어야 했는데….”
마틴의 사과(?)에 조금 누그러진 얀쿤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무척 실망스럽기는 하나, 어쨌든 시간 내에 세이런의 알을 채취했으니, 임무를 완수하기는 했군.”
그리고 이어서, 마틴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노블레스 얀쿤의 시험 Ⅰ’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클리어 등급 : D]
[클리어 등급이 낮은 관계로, 획득 경험치와 금화가 80%만큼 감소합니다.]
마틴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개떡같은 상황이야! 퀘스트 조건 다 충족시켰으면 B등급은 줘야지!’
하지만 마틴이 억울한 것과는 별개로, 얀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 주인이 보고 싶군. 주인이었다면 세이런의 군락까지 완벽히 궤멸시키고 돌아오셨을 텐데 말이지.”
그 말을 들은 마틴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네놈 주인이 마왕 릴리아나라며. 마왕이랑 나를 비교하면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마틴의 오해였다.
지금 얀쿤이 말하는 주인이란, 이전에 모시던 주인인 이안을 얘기하는 것이었으니까.
“어쨌든 임무를 완수했으니 다음 임무를 줘야 하기는 할 텐데….”
얀쿤은 마틴을 응시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별로 기대는 되지 않지만, 어떤가. 다음 임무도 도전해 보겠는가?”
마틴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이 근육돼지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를 특별히 타고난 것 같았다.
< (1). 어둠의 소환수 -2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