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정복전쟁의 시작 -3 >
* * *
마계의 지역은, 누구나 알다시피 단위수가 내려갈수록 더 강한 마수들이 등장하게 된다.
특히 10단위가 바뀔 때면, 그 전 단계의 구역보다 그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20구역에 발을 들인 이안은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건 좀 심한데…?’
이안 일행이 게이트를 넘어오자마자 발견한 일단의 마수 무리들.
새카만 가죽에 붉은 눈과 이빨을 가진 거대한 ‘다크 하운드’들이 이안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실 다크 하운드는 상급 마수로, 이안이 지금까지 쉽게 사냥해 왔던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형, 조심해야할 것 같아. 350레벨짜리도 있어.”
“보고 있다.”
350레벨이라는 무지막지한 레벨도 문제였지만, 더 문제인 것은 그런 녀석들이 열 마리도 넘게 무리지어 있다는 부분이었다.
‘전설 마수는커녕, 시작부터 전력을 다해야겠는데?’
현재 이안의 레벨은 267이었다.
신화등급인 뿍뿍이와 카르세우스, 그리고 카이자르 덕에 사냥 속도가 배 이상 빨라졌고, 덕분에 레벨업 속도가 어마어마해진 탓이었다.
레벨업이 가장 쉬운 클래스라는 흑마법사 클래스의 랭킹 1위인 훈이가, 이제 245레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압도적인 레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안을 제외한다면 220레벨도 달성한 소환술사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350레벨이라는 수치와 비교한다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레벨.
‘하나씩 잘라먹어야 돼.’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전력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스킬운용과 컨트롤이 필요했다.
“노엘아, ‘드래곤의 대지’스킬 활성화 됐어?”
이안의 물음에 카노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재사용 대기 시간은 돌아왔는데… 지금 그것까지 써야할까요?”
“응, 써야된다. 이놈들 극딜로 빨리 못 잡으면, 좀비같이 계속 회복하는 놈들이야.”
“알겠어요 형.”
드래곤의 대지는, 현재 카노엘이 가진 모든 스킬들 중 최상위 버프스킬이었다.
30분동안 모든 드래곤 타입의 소환수들의 능력치를 30%만큼 뻥튀기시켜주는데다, 드래곤 브레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50%만큼 감소시켜주는 스킬.
거기에 드래곤 소환수에 한해서 입힌 피해의 10%를 생명력으로 환원시켜주는 흡혈버프까지 추가로 걸어주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려 10시간이었기에, 무한정 쓸 수 있는 스킬은 아니었고, 그렇기에 카노엘이 지금 사용해야할지 물어본 것이었다.
“드래곤의 대지 까지 쓸 거면, 나는 스킬 좀 아낄게 형.”
훈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드래곤의 대지가 깔리게 되면, 전장은 이안이 지배하게 될 것이었다.
카노엘의 이 스킬은, 이안과 함께할 때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내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소환수인 카르세우스와 뿍뿍이가, 이 드래곤의 대지 위에서라면 말 그대로 미쳐 날뛸 수 있었다.
크아아오-!
이안 일행이 의견을 교환하는 동안, 그들을 발견한 다크 하운드 한 마리가 커다랗게 포효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하운드들의 시선도 이안 일행을 향해 돌아왔다.
‘다크 하운드 열넷. 그리고 싸우다보면 근처에서 다른 녀석들도 몰려오겠지.’
이안이 정령왕의 심판을 만지작거렸다. 하루에 두 번도 사용하기 힘든 ‘드래곤의 대지’ 스킬을 활성화시킨 이상, 최대한 뽕을 뽑아내야 했다.
“카르세우스, 뿍뿍이. 브레스 준비해.”
“알겠다, 주인.”
카노엘도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레이크, 카르덴, 용용이. 너희도 준비!”
크르릉-!
카노엘의 말을 들은 이안이 문득 고개를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노엘아 근데 용용이 쟤는 왜 아직까지 데리고다니는거냐?”
카노엘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왜요?”
차마 성장치도 평균이하인 녀석을 왜 그렇게 애지중지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안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아니 뭐….”
그에 카노엘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제일 정이 많이 든 녀석이라 그래요.”
이안이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뭐, 통솔력만 부족하지 않다면 사실 상관없지.”
* * *
“힘을 합쳐보자…?”
“그런 셈이지. 저 허접한 호왕길드가 벌써 몇 주 째 마계길드 랭킹1위를 차지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마계 100구역.
분노의 도시 외곽에 있는, 다크루나길드의 길드거점.
두 남자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은 다크루나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이라한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림롱, 네놈이 강한 건 알고 있지만… 힘을 합친다는 말을 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지 않나?”
“뭐가?”
이라한의 말에 림롱이 바로 반문했고, 곧바로 이라한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넌 지금 혼자고, 내게는 다크루나길드가 있지. 힘을 합치자는 얘기는 동등한 조건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네놈이 내 밑으로 들어와야 하는 거겠고.”
림롱은 이라한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현재 마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였다.
암살자 랭킹 1위인 림롱.
후발주자인 암살자 클래스를 가지고 림롱이 이렇게 최상위 랭커들과 급을 나란히 하게 된 데에는, 림롱의 실력이 뛰어난 이유도 있었지만 암살자 클래스의 ‘간접버프’가 가장 컸다.
‘마족’ 종족 오픈과 함께 가장 득을 많이 본 클래스가 암살자인 것이었다.
암살자 클래스의 스킬 중에는, 짧은 시간동안 치명타 확률을 비롯한 타격시 발동하는 모든 추과효과를 100%로 만들어주는 스킬이 있었는데, 그게 마기 발동률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 암살자들의 육성메타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기존에는 최대한 공격력을 뻥튀기 시켜서 단 한방에 적의 숨통을 끊어놓는 전투방식이 성행했다면, 최근에는 공격속도를 극대화시키는 전투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마족이 되어 마기량을 최대한 늘려놓고, 공격속도와 항마력관통이 붙은 아이템들을 최대한 도배한 뒤, 암살자 클래스의 고유능력인 ‘그림자의 춤’을 발동시키는 것.
‘그림자의 춤’은 5초 남짓의 짧은 지속시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마기를 3만정도 보유했다고 가정할 때, 5초동안 10~20회 정도 타격이 가능하다면, 순식간에 30만~60만의 극딜이 들어가는 것.
이 메타의 창시자이자 가장 강력한 암살자인 림롱의 경우에는 순식간에 100만에 가까운 피해를 입히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라한도 림롱과 일대 일 승부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그를 인정하고 있었다.
거기에 최초의 노블레스 마족유저도 림롱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라한은 그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라면 얘기가 달랐다.
다크루나 길드 전체를 등에 업은 이라한이, 림롱에게 자신과 동등한 대우를 해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라한의 말에 림롱이 피식 웃으며 품 속에 손을 집어 넣었다.
“누구 마음대로 내가 혼자지?”
“…?”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라한의 눈 앞에, 림롱은 품 속에서 꺼낸 적동패(赤銅牌)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이제껏 여유만만한 표정이던 이라한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적동패라… 게다가 천살(天殺)…? 천살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네놈이었나?”
림롱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천살길드의 길마가 바로 나지. 어때, 이제 좀 대화할 마음이 생겼나?”
이라한은 삐딱하던 자세를 고쳐앉았다.
림롱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혼자일 때는 의미가 없었지만, 천살길드의 길드마스터라면 얘기가 달랐다.
‘어쩐지… 그런 길드가 갑자기 하늘에서 툭 튀어나왔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
천살길드는 카일란의 모든 길드들을 통틀어봐도 가장 특이한 길드 중 한 곳이었다.
모든 길드원이 ‘암살자’로만 구성된 길드였던 것이다.
구성원이 서른명도 안 되는 소수정예였기에, 길드랭킹은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암살자 랭커들이 소속되 있는 곳이었기에 랭커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길드였다.
이라한이 입을 열었다.
“그래, 천살길드의 마스터라면 얘기가 다르지. 나는 제대로 협상할 준비가 됐어.”
림롱의 입 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갔다.
* * *
‘여기가… 마신 데이드몬의 신전?’
마계 20구역은 무척이나 넓었다.
21구역과 비교하면 거의 3~4배 정도는 됨직한 넓이.
데이드몬의 신전은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덕분에 이안 일행이 그곳에 도달하는데 까지는 무려 5일이 꼬박 걸렸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 형?”
훈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쫄따구가 말했던 외형이랑 거의 비슷하긴 하네.”
이안의 말에, 훈이의 옆에 있던 데스나이트 발람이 발끈했다.
“난 명예로운 기사, 데스나이트 발람이다. 그런 저급한 호칭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안은 가볍게 무시해 주었다.
“역시, 쫄따구들은 주인을 닮는 건가.”
“….”
둘의 대화를 듣던 뿍뿍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난 쫄따구가 아니라서 주인을 닮지 않은것같뿍.”
카이자르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확실히 나도 그런 것 같군.”
이번에는 어이없어진 이안이 할 말을 잃었다.
“….”
일행을 한번 둘러본 이안이, 천천히 신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서 들어가 보자.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정신들 바짝 차리고.”
“알겠어, 형.”
“오케이.”
훈이와 카노엘이 동시에 대답했고, 일행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높다랗게 솟아오른 새하얀 신전.
그 안으로 이안 일행이 조심스레 진입하기 시작했다.
* * *
쿠르릉-
마치 천둥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한 진동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진다.
거의 수 십 미터는 되어 보일 정도로 높다란 층고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문양이 잔뜩 새겨져 있는 웅장한 공간.
게다가 붉은 섬광들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며 신비로움마저 연출하고 있는 이 곳은, 마신의 신전, 그 가장 깊숙한 심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울려퍼지던 커다란 진동소리가 멎어들자, 허공에 피어오르던 붉은 기운들이 공명하기 시작한다.
우우웅-
그 강렬한 붉은 기운들은 하나의 회오리를 만들어내더니 허공으로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높은 단상 위로 움직여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단상 위에서 알 수 없는 기이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알라카룸바…!”
콰아아-!
어둡던 장내를 환한 붉은 빛으로 가득 메울 정도로 강렬해진 빛의 회오리는, 단상 위에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쏴아아-!
그리고 잠시 후.
사내의 뒤편에 마치 용의 형상을 한 어둠의 그림자가 스르륵 하고 나타났다.
크르르-
낮지만 사나움을 담고 있는 포식자의 울음소리가 허공에 진하게 깔렸다.
그에 단상 위에 서 있던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타는 듯이 붉은 홍안(紅眼)에, 기다란 적발을 늘어뜨린 사내.
그가 용의 그림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침입자가 있단 말이지…?”
크르릉- 크릉-
그는 마치 용의 그림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알겠다, 내 직접 마중해 보도록 하지. 후후….”
남자의 입술이 살짝 비틀리며, 그 사이로 스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7). 정복전쟁의 시작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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