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정복전쟁의 시작 -1 >
팡- 팡-
[아 시끄러.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빨래 털고 있다.”
[집이야?]
“응.”
한쪽 어깨로 스마트폰을 받친 채, 진성은 열심히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너머에서는, 유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빨래? 야 니가 집안일도 하냐?]
“그럼 안 하냐?”
[아니 청소하는 것도 한 번도 못 봤으니까 하는 말이지.]
“한 달에 한번 정도 해.”
[뭐?]
“청소, 빨래 등등. 한 달에 한번 몰아서 한다고.”
[그걸 말이라고….]
유현이 어이없다는 듯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진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안일도 한 번에 몰아서 해야 효율이 좋은 법.”
[효율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아예 몇 달 더 모아서 한 번에 하지 그러냐?]
“마음 같아선 한 일 년씩 모아서 한번에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하린이한테 차일 것 같아서.”
어처구니없어진 유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후우, 말을 말자.]
전화로 유현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던 진성은, 곧 화제를 돌렸다.
“야, 그런데 갑자기 전화는 왜 한 거야? 뭔 일 있어?”
진성의 말에, 즉각 유현의 대답이 들려왔다.
[뭔 일이야 있지. 지금 영지전 준비 중 이잖아 인마.]
“그건 알고 있어.”
[무튼 그래서 말인데, 너 참전 못하는 거냐?]
“아무래도 당장은 힘들 것 같아. 그런데 상대가 레드크로우라며?”
[응.]
“나 없어도 어차피 이기잖아.”
[너도 알잖아. 이기는 것 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기느냐도 중요하다는 거.]
진성은 곧바로 유현의 말을 알아들었다.
“다른 길드들 연합하는 걸 걱정하는 건가?”
[그렇지.]
지금 로터스길드는, 레드크로우 길드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만 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안을 제외한다면 유저 전력이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양성해 놓은 병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근에 육성가능해진 병력인 와이번 라이더들의 경우에는, 한 기 한 기가 어지간한 랭커 유저 급의 위력을 발휘하는 수준이었다.
아마 로터스 길드가 전력을 다한다면, 레드 크로우는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 버리리라.
‘하지만 그렇게 이겨버리면… 곧바로 다른 랭커길드들의 합공을 받게 되겠지.’
어지간한 랭커 길드들이 연합하더라도 로터스가 쉽게 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점령전을 벌이고 덩치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로터스 길드가 왕국을 선포하더라도, 루스펠 제국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이안은 다시 스마트폰에 귀를 기울였고, 유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피올란님이랑 세운 전략이, 우리 영지군 전력은 최대한 감추고, 유저들만 가지고 영지전을 해 보자는 거였거든. 조금 위험할 수는 있어도 그만큼 얻을 수 있는게 많으니까.]
“그렇게 해서 아슬아슬하게 이기면, 확실히 많은 부분 감출 수 있겠네.”
[그래서 보험으로 네가 필요했던 건데…. 어쨌든, 레드크로우 길드랑 세인트빌 길드만 짜르고 나면, 그 뒤엔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버리려고.]
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괜찮은 생각이야. 유저들이야 어차피 죽어도 부활하니까.”
유저들과 달리, 영지에서 육성한 npc병력들은, 한번 사망하면 그대로 소멸한다.
최대한 유저들만으로 전쟁을 진행한다면, 길드 전력을 최대한 숨김과 동시에, npc병력을 아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너 언제쯤 합류할 수 있어?]
“음… 훈이 퀘스트 도와주고 같이 합류할 생각이니까, 한 일이주일 정도면 되지 않을까?”
[확실한 건 아니네.]
“아무래도 그렇지? 기간이 정해진 퀘스트는 아니니까.”
[알겠어. 그럼 일단 넉넉히 한달 잡고 계획 짜볼게.]
“오케이, 그러자.”
몇 가지 전략에 관한 이야기를 더 나눈 뒤, 진성은 전화를 끊고 빨래를 마저 널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제, 왕국 선포를 할 때가 되긴 했지.’
대영지를 선포한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심지어 왕국 선포를 위한 조건 또한, 이미 오래전에 달성해 놓은 상태.
이제껏 왕국 선포를 미뤄왔던 이유는, 사실 루스펠 제국 때문이었다.
왕국을 선포한다는 것은, 루스펠 제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였으니까.
물론 매달 조공품을 상납하며 속국과 같은 스탠스를 취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왕국을 선포한 다음 순서는, 루스펠제국의 깃발을 꺾고 로터스 제국을 선포하는 것이었으니까.
‘시작했으면 단숨에 뿌리 뽑아야지. 적어도 북동부는 전부 장악해야 루스펠과 한번 해볼 만 할 거야.’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구상을 해 보며, 진성은 남은 빨래들을 마저 널었다.
“흐으, 이것도 못할 짓이네. 골드 좀 환전해서 건조기라도 하나 장만해야겠어. 지난번에 홈쇼핑에서 봤을 때 주문해놓을걸….”
가사노동(?)에 지친 진성은, 한 차례 기지개를 켜더니,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딱 한 시간만 뒹굴다가 접속해야지.”
그리고 문득, 이안의 뇌리에 잊고 있던 훈이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훈이 녀석은 잘 하고 있으려나…?”
* * *
“오오! 여기!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한님!”
“무슨 일인가?”
“저기 처음 보는 광물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곧바로 가 보도록 하지!”
이제는 제법 광산다운 구색을 갖춘, 이안의 마력광산.
이안의 신임을 받아 광산의 총 책임자가 된 드워프 한은,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이안은, 한에게 조수도 하나 붙여 줬는데, 그는 토마슨 이라는 이름의 인간종족 광부npc였다.
“토마슨, 어느 쪽인가?”
“C섹터 채굴지역입니다.”
“으음? 거기는… 흑마법사 꼬마 놈이 채굴중인 곳인데…?”
토마슨을 따라 움직인 드워프 한은, 멀리서부터 흘러나오는 새하얀 광채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호오, 이 정도의 백광(白光)이라면…!”
그리고 빛이 흘러나오던 곳의 앞에는, 퀭한 표정으로 곡괭이를 들고 서 있는 훈이가 있었다.
한을 발견한 훈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땅딸보 왔냐.”
드워프 한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땅딸보 아니다, 꼬마놈아.”
“아니긴! 나보다도 키가 작은 주제에.”
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후우, 뭘 모르나본데, 내가 우리 우르크 집안에서 신이 내린 비율로 통했던 미남 드워프다.”
“푸훕…!”
순간 사례가 들린 훈이가,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광산 여기저기서 피어오른 흙먼지 때문에, 훈이의 기침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컥, 커컥…!”
하지만 한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내 자로 잰 듯한 완벽한 3등신은, 뭇 여성드워프들의 마음을 빼앗곤 했지.”
“후우….”
가까스로 기침을 멈춘 훈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됐으니까, 이거 광물이나 좀 봐봐. 이거 내가 캐려고 했더니, 저 돌덩이가 막잖아.”
훈이가 손가락으로 옆에 있던 고르 일족 광부를 가리켰다.
훈이와 비슷한 키에, 바위로 만들어진 둔중한 몸집을 가진 미니골렘.
그는 바윗소리를 내며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드륵- 드르륵-
그러자 한이 반색하며 말했다.
“오오…! 훌륭한 판단이군.”
그리고 훈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 녀석은 흑마법사 맞냐?”
“또 왜 시비냐.”
“어떻게 마법사라는 녀석이 뇌도 없다고 알려진 고르 일족보다 머리가 나빠?”
“후우….”
“채굴스킬도 없는 네녀석이 이걸 캘 수 있을 리 없잖아?”
한은 한심하다는 듯 훈이를 쳐다보았다.
이안이 훈이가 저지를 뻔 한 참사를 이미 한 차례 저지른 것을 알았더라면, 한의 친밀도가 10포인트 정도는 내려갔으리라.
훈이와 몇 차례의 실랑이를 더 한 뒤, 한은 조심스레 광물을 향해 다가갔다.
훈이를 괴롭히는(?) 것도 충분히 재밌었지만, 희귀한 광물을 채굴하는 재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미스릴 곡괭이를 들고 광물의 앞에 다가간 한은, 광물을 찬찬히 살피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이 정도라면…! 못해도 상급 이상의 마령석이군!”
훈이와 실랑이할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
프로 광부 한의 곡괭이질 소리가, 광산 내부에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깡- 깡- 깡-
* * *
마계와 인간계간의 대규모 차원전쟁.
그 후 한 달 가까이 조용하던 카일란 공식 홈페이지가, 최근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크으, 로터스 길드 언제 칼 뽑아드나 궁금했는데, 드디어 파이로 요새 밖으로 기어 나오네요.
- 그러니까요. 레드크로우 vs 로터스라니, 이거 리얼 꿀잼인데요?
- 님들, 어디가 이길까요? 지금 배팅카일란 사이트 가서 확인해 봤는데, 배당률 거의 반반이던데.
배팅카일란은, 카일란 내에서 벌어지는 길드전이나 결투장 등, 일정이 정해져 있는 매칭의 결과를 예측하는 일종의 스포츠 토토 같은 사이트였다.
- 최근 길드전 전적만 봐서는… 레드 크로우가 압승이긴 한데, 그래도 로터스라서 함부로 판단을 할 수가 없네요.
- 그렇죠? 아무래도 그 이안이 있는 길드인데… 로터스가 진다는 건 상상이 되질 않네요.
- 하긴, 차원전쟁때 봤던 이안의 전투력이라면…. 이안을 막을 만한 대항마가 레드 크로우엔 없죠.
- 그럼 대체 왜 배당률이 반반인거지?
- 그 이유라면 제가 알고 있죠.
- 오, 그게 뭔데요?
- 이번 점령전에 이안이 참전 안한다는 찌라시가 있더라고요. 신빙성도 제법 있고….
- 오, 정말요?
- 네. 리얼임. 최근 로터스 길드가 길드전에서 연패한것도 그 때문이라는 말이 많아요. 차원전쟁 이후로 벌서 길드전만 10회 가까이 했는데, 그 사이에 이안은 단 한 번도 참전하지 않았어요.
- 오호…? 제가 길드전은 잘 안 챙겨봐서 그건 몰랐네요. 그런데 참전은 왜 안한답니까?
- 뭐 이안이 지금 중요한 퀘스트를 하고있다던가, 어떤 이유가 있어서겠죠?
- 흐음, 그래도 이번 점령전엔 참여하지 않을까요? 길드전이야 단순히 길드명성이랑 순위에만 영향을 미치는 거고… 영지전은 패배하는 순간 거점 하나를 뺏겨버리는 중요한 전투인데….
- 그거야 모르죠. 그래서 배당율이 반반인 거 아닐까요?
- ㅋㅋㅋ그것도 그럴 듯 하네요. 이안이 영지전에 등장할 확률 반, 등장하지 않을 확률 반 인건가…?
사실 몇 달 전이었다면, 고작 ‘영지전’이 이렇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이안이 속해있는 로터스 길드의 영지전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거의 한 달이 넘게 사건사고 없이 평화로웠던 카일란이기에, 이번 영지전은 무척이나 큰 이슈가 되었다.
각종 게임 방송사에서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방영할 만한 컨텐츠가 부족하니,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 속에서, 드디어 두 길드간의 영지전이 시작되었다.
* * *
< (7). 정복전쟁의 시작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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