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마수 연성 레시피 -1 >
이안은 지금까지 획득했던 영혼결정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연성에 사용해 버렸었다.
끽해야 유일~영웅 등급의 영혼석들이었고, 그것들은 어차피 최상급 이상의 마수들을 연성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영혼결정이 하는 역할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잡템처럼 그냥 사용해 버렸던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안은 과거 데빌 드래곤을 사냥했을 때 얻었던 몇 조각의 영혼석들이 떠올랐다.
‘혹시 영혼석과 영혼결정에도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이안은 곧바로 세르비안에게 물었다.
“세르비안님, 혹시 영혼석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가요?”
세르비안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영혼석은 영혼결정만큼 희귀한 아이템은 아니야.”
그 말에 이안은 조금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이안이 가지고 있는 영혼석들은, 중상급의 마수들을 사냥해서 얻었었던 영혼결정들과는 달리 전설등급의 마수를 사냥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렇죠?”
“영혼석은 전설등급 이상의 마수만이 드랍하는 아이템이지. 대신 드랍율은 50%도 넘었던 걸로 기억해.”
“아하….”
“내 기억에 수백 조각을 모아야 전설등급 마수 하나를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으니… 드랍율마저 낮다면 그건 좀 너무한 거지.”
영혼석에 대한 설명을 짧게 마친 세르비안은, 다시 영혼결정이 얼마나 희귀하고 값진 물건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냥 최대한 쉽게 말해 주겠네. 신화등급 마수의 영혼결정은, 전설등급 마수 두 마리를 연성에 성공하기만 하면, 무조건 신화등급의 마수가 탄생하게 해 주는 물건이라는 말이네.”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긴 하네요.”
“그렇지. 내가 수백 년이 넘게 마수연성을 연구했지만, 지금껏 신화등급의 마수 연성에 성공한 것은 단 한번 뿐이야.”
“칼리파요?”
“그렇지. 그것마저도 불완전한 성공이었지. 놈은 내 통제를 벗어났고, 날 마정 안에 가둔 뒤 폭주했으니 말이야. 그런데 네놈은, 그 물건 하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신화등급의 마수를 만들 수 있을 테니… 내가 배가 안 아픈 게 이상하지.”
이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에… 그런데 아까는 무조건 신화등급의 마수가 만들어진다고 하셨었는데… 이번에는 왜 100%가 아닌 매우 높은 확률인가요?”
세르비안이 투덜거리며 대답해 줬다.
“그야 연성 자체가 실패할 확률이 있으니까 그렇지. 연성에 성공했을 때 무조건 신화등급의 마수가 나오게 해 주는 아이템이라는 말이지, 연성까지 무조건 성공시켜주는 아이템은 아니야.”
“아하…. 연성에 실패하면 영혼결정도 사라지나요?”
세르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으… 그럼 어떻게든 성공률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상태에서 연성을 시도해야겠네요.”
“당연하지. 연성을 시도하기 전에, 연성술 숙련도는 무조건 10레벨 맥스로 찍어야 하고, 전설등급의 마령석도 최소 30개 정도는 모아놔야 할 거야.”
마령석은 마수를 분해해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마수 연성에 투입할 시, 연성술의 성공률을 높여주는 소모아이템이었다.
이안은 당연히 알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가장 원론적인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세르비안님.”
“응?”
“최고의, 최강의 마수를 연성하기 위해선, 제가 무슨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안의 물음에 잠시 벙찐 표정으로 있던 세르비안은, 곧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크하하핫, 역시, 내가 제자 하나는 확실히 잘 둔 것 같단 말이지. 좋아, 좋아. 나 세르비안의 제자라면 그 정도의 포부는 있어야지.”
“물론이죠. 게다가 이렇게 사기적인 재료도 얻었는데, 이런 물건이 주어져도 최강의 마수를 못 만든다면 연성술사 접어야죠.”
이안의 패기(?)에 감복한 세르비안은, 그를 적극적으로 돕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안 자네….”
“예?”
“지금 마수 연성술의 숙련도는 몇 레벨까지 올렸는가? 내 생각에 아직 5레벨도 못 찍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동안 차원전쟁도 있었고, 이것저것 바쁜 일이 많았을 텐데… 그렇다면 일단 숙련도부터 올리는 게 어떤가?”
이안이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지금 9레벨 12%까지 올렸는데요? 한 달 내로 10레벨 100%까지 찍어 오면 되는 거죠?”
“…?!”
* * *
마계에서 열심히 노가다중인 이안과는 별개로, 헤르스와 피올란은 로터스 길드의 왕국선포를 위한 물밑작업을 분주히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단계인 랭커길드 흡수는, 생각보다 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더러 로터스 길드에 흡수되라는 말입니까?”
“그래요. 우리 로터스 길드는 곧 길드전쟁을 시작할거예요. 그리고 그 때 불필요한 소모전을 하고 싶지 않아요.”
“으음….”
길드 마스터였던 마틴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마계로 빠져나간 뒤, 현재 스플렌더 길드의 1인자는 광전사 클래스 랭킹 1위로 유명한 유저인 ‘세이조’ 였다.
그리고 피올란은, 스플렌더 길드의 알짜배기 랭커들을 흡수하기 위해, 세이조를 직접 찾은 것이었다.
“세이조님 쯤 되시면, 저희 로터스 길드의 실질적인 전력이 드러난 게 다가 아니라는 정도는 아마 아실 거고….”
“그렇죠. 최소한 루스펠 제국 소속 길드 중에는, 이제 로터스 길드와 맞먹을 만한 세력을 가진 길드는 없을 겁니다.”
“잘 아시네요. 이야기가 편하겠어요.”
피올란이 입 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스플렌더 길드가 우리 로터스에 병합된다 하여도, 본래 가지고 있던 영지들은 기존의 영주께서 그대로 통치하게 해 드릴 겁니다. 또, 그 능력만 확인된다면, 기존의 길드원들과 차별 없이 그에 맞는 직책과 보상을 드릴 거구요.”
“흠, 확실히 괜찮은 제안인 것 같군요.”
세이조는 이전의 길드마스터인 마틴과 비교하더라도, 크게 그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최정상급의 유저였다.
하지만 그는 길드와 같은 단체를 운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저 편히 몸담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피올란의 제안이 솔깃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스플렌더 길드에는 그러한 랭커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제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아마 후회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세이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서 길드원들을 한번 설득해 보도록 하죠.”
피올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만약 길드 여론이 여의치 않는다면, 개별적으로 넘어오셔도 됩니다. 저희 로터스 길드의 문은 열려있으니까요.”
세이조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연락 드리도록 하죠.”
루스펠 소속의 다른 랭커 길드들 또한, 스플렌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특히 ‘사무엘진’이 길드마스터로 있었던 오클란 길드는, 거의 대부분의 실질 수뇌부가 전부 마계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더욱 쉽게 피올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스플렌더, 오클란… 그리고 벨리언트 정도만 흡수하면, 그 이상은 사실 필요 없지.’
피올란은 최대 다섯 개 정도의 랭커길드 정도만 합병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그 이상은 무리였다.
‘어중이 떠중이들 받아봐야 도움도 안 될 거고….’
그나마 이렇게 대규모 합병이 가능한 이유도, 곧 로터스 길드가 공국을 선포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로터스 길드의 등급인 ‘대영지’ 등급만 하더라도 충분히 규모가 큰 편이었지만, ‘공국’ 등급으로 랭크업이 되면, 대영지에 비해 2~3배 가까운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단숨에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는 것.
‘공국도 이 정도인데, 왕국 선포에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
아직 ‘왕국’이 되었을 때의 길드스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최소 ‘공국’이 되어야 그 다음 티어인 ‘왕국’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이었는데, 아직 공국을 선포한 길드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스펠 제국 소속의 길드 중에는 ‘공국’ 등급의 길드가 아예 없었고, 카이몬 제국에 두 개 정도의 길드가 얼마 전에 공국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좋아, 이렇게 해서 공국 선포까지 끝내고… 공국으로 성장 가능한 최대 스펙까지 단숨에 끌어 올리면…!’
그렇게 된다면 그 다음 차례는, 당연히 왕국 선포를 하고 루스펠 제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 * *
세르비안과의 긴 토론 끝에, 이안은 최강의 마수를 연성해 내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본체가 될 전설 등급의 마수….”
그리고 그 모든 준비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본체가 될 마수를 어떤 녀석으로 쓰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역시 최강의 마수 하면, 발록 부터 떠오르는데….”
차원전쟁에서 수 많은 발록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사실 발록은 그렇게 지천에 널려있는 마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안으로서도 쉽게 볼 만한 마수가 아니었다.
‘이제 신화등급인 뿍뿍이가 생겼으니 한두 마리 정도는 혼자 상대할 수 있겠지만….’
사실 두 마리도 버거울 지도 몰랐다.
차원전쟁 당시 뿍뿍이는 신들의 가호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뻥튀기되어있던 상태였고, 지금은 그러한 버프를 받을 수 없었으니까.
물론 발록은 전설등급이고 뿍뿍이는 신화등급이다.
하지만 레벨도 생각해야 했다.
뿍뿍이의 레벨은 220언저리였고, 아마 필드에 등장하는 발록은 350레벨을 가볍게 넘는 괴물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아마 카이자르와 얀쿤까지 가세한다면, 서너 마리 정도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러고 보면 신들이 걸어준 버프가 진짜 대박이긴 했어. 모든 능력치를 거의 두 배로 뻥튀기 시켜줬으니….’
모든 능력치가 두 배 라는 이야기는, 레벨이 두 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었다.
버프를 받은 이안은 400레벨도 훌쩍 넘는 스텟을 가지게 된 상태였고, 그러니 발록들을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이안은 ‘발록’에 제법 끌리는 것을 느꼈다.
‘50번대 구역까지 내려가서 최상급 마수들을 연성하면서 경험치를 쌓고… 전설등급의 마수들을 찾아서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하나?’
50구역에도 전설등급의 마수인 데빌드래곤이 서식한다.
하지만 데빌드래곤은 별로 끌리지 않았다.
‘데빌드래곤으로 연성하면 또 칼리파가 나올지도 몰라. 칼리파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마룡이 만들어지겠지.’
기왕 신화등급의 마수를 연성하는 것이라면, 이미 남이 한번 만들어 낸 마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마계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마왕에게서 발록의 서식지를 들었던 것 같은데….’
돌연 마왕 ‘레카르도’와의 대화를 떠올린 이안은, 그 내용을 기억해 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해 주었던 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발록이라면 아마… 마계 15구역, ‘잊혀 진 영혼의 무덤’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걸세.]
< (3). 마수 연성 레시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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