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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안의 마수 연성 노가다는, 한 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연성술에 마룡 칼리파의 영혼을 담기 위해서는 10레벨이라는 연성레벨이 필요했고, 그것은 거의 연성술의 정점을 찍는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안이라도, 6레벨이었던 연성술을 순식간에 10레벨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10레벨이 지금 드러나 있는 최고 레벨인데… 오히려 지금 숙련 경험치 채우는 속도가 느린 게 아니라 빠른 건지도.’
사실 정말로 10레벨이 연성술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면, 이안이 이렇게 속성으로 레벨업 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경험치가 필요해야 했다.
하지만 이안은 한달여 만에 무려 9레벨을 찍는 데 성공했고, 이제 보름 정도만 더 노가다를 하면 10레벨도 가능할 것 같은 페이스였다.
‘그 뒤에 뭐가 있든, 일단 10레벨을 찍고 전설, 혹은 신화등급의 마수를 만들어 내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하니까.’
소환술도 그렇고, 검술, 궁술 등의 전투클래스 숙련도는 마스터를 찍은 후에도 계속 숙련레벨이 올라간다.
마수 연성술도 아마 10레벨까지 찍고 나면 뭔가 다른 경지가 나타나리라.
그러나 연성술 9레벨을 찍고 이틀 정도가 지나자, 이안은 10레벨의 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하급~상급의 마수들을 잡아다 연성하는 것으로는 숙련도가 잘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하급마수의 연성은, 경험치를 아예주지 않았다.
이안은 마수 연성으로 획득한 숙련도 경험치를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으음… 그런데 여기 이 케이스랑 저 케이스는, 둘 다 상급마수를 연성한 건데 경험치가 왜 이렇게 많이 차이나는 거지?”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지금껏 연성해 보지 못한 새로운 마수를 연성했을 때 경험치를 훨씬 많이 주는구나. 등급이 높은 마수일수록 획득하는 경험치 상승폭도 더 올라간 것 같고.”
이러한 숙련도 경험치 변동은, 9레벨이 된 이후에 생긴 변화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했다.
이제는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더 안쪽으로 내려가야 하겠어.’
이안이 말하는 안쪽이란, 더 낮은 번호대의 마계 구역.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이안이 100번대의 마계구역에서 비교적 약한 마수들을 연성하며 숙련도를 올린 것에는, 효율이 좋다는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차원전쟁이 끝난 지금, 인간계 유저가 마계 안에서 마족 유저들이나 파괴마에게 발각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안은, 현재 마족들의 숙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이안은 하린을 먼저 중부대륙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하린아.”
“응?”
“나 이제 좀 더 위험한 곳으로 가야 해서, 너 먼저 중부대륙에 돌아가 있을래?”
하린의 표정이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힝, 꼭 그래야 해?”
이안이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이제 여기서 숙련도가 잘 안 오르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이안은 곧바로 차원의 구슬을 통해 차원문을 열었고, 대충 정리를 마친 하린이 차원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차원문에 들어서기 직전.
하린은 뭔가 생각났는지, 이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맞다. 진성아.”
“응?”
하린이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너, 나 없다고 수업 빼먹고 그러면 안 돼? 내가 유현이한테 다 물어볼 거야.”
이안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려갔다.
“아, 알겠어.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1학년때 구멍난 학점이 너무 많아서, 2학년땐 어느정도 메워 볼 생각이라….”
이안의 말을 들은 하린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좋아! 그럼 한번 믿어 볼게.”
하린이 차원문을 통해 사라진 뒤, 이안은 소름이 돋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내일 오전 VR시스템 수업 빼먹으려 했었는데… 대체 어떻게 안 거지?’
하린의 통찰력(?)에 감탄한 이안은, 걸음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향한 곳은, 세르비안의 연구소였다.
* * *
“오, 이안!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세르비안은 이안을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이안 또한, 오랜만에 보는 세르비안이 반가웠다.
이안의 카일란 인생에, 세르비안만큼 이안과 죽이 잘 맞았던 엔피씨도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세르비안은 이안에게 있어서 게임연구의 소울메이트라 할 수 있었다.
“그러게요. 그간 좀 바쁜 일이 많았네요.”
이안은 피식 웃으며 날짜를 세어 보았다.
‘거의 몇 달 만인가?’
한달 전 노가다를 하러 처음 마계에 왔을 때.
이안은 원래 ‘칼리파의 영혼결정’에 대해 묻기 위해, 세르비안에게 가장 먼저 들르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차피 연성술 숙련도 10레벨이 되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고, 그랬기에 노가다부터 먼저 한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노가다로 10레벨을 먼저 찍은 뒤 이곳에 오려고 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깊은 마계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먼저 세르비안을 찾은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이안을 보며, 세르비안이 실소를 흘렸다.
“자네 바빴던 것이야 아주 잘 알고 있다네.”
“예에?”
세르비안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이안은 벙찐 표 정이 되었다.
세르비안의 말이 이어졌다.
“마계 변방의 연구소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해서, 바깥소식에 대해 모를 것 같은가?”
“으음….”
“천신의 군대까지 움직인 데다, 심연의 힘을 다시 깨워내고, 그거로도 모자라 내 역작인 칼리파까지 처치한게 바로 자네라지?”
세르비안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이안은, 순간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거 뭐라고 얘기해야 해? 반마 출신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세르비안도 마계에 터전을 가진 어엿한 마족의 일원인데….’
당연하겠지만 이안은 자신이 마족들의 공적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달리 선택지는 없었다.
어차피 세르비안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
“뭐…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반마이기는 하지만, 이전에 인간이니까요. 마족에 터전을 잡으신 세르비안님과는 다르게 저는 인간계에서 살아갈 예정이거든요.”
이안의 말에 오히려 의아한 표정이 되었던 세르비안은, 곧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핫, 난 또 무슨 말을 그리 거창하게 하나 했네.”
“예?”
아직도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얼굴로, 세르비안이 입을 열었다.
“자네, 이 마계라는 거대한 차원계에 제 1순위로 통용되는 법칙이 뭔지 알고 있는가?”
“음….”
이안이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세르비안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것은 바로 ‘강자존’의 법칙일세.”
“강자존이요?”
“그래.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마계에서는, 힘이 곧 법이야.”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헌데 그게 무슨 관련이….”
이안의 말을 끊으며, 세르비안이 설명했다.
“그리고 마족들은 또한 무척이나 개인주의적이야.”
“음…?”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신경조차 잘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일세.”
이안은 세르비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그의 설명을 경청했다.
“그러니까 더 쉽게 말하면, 자네가 아무리 차원전쟁에서 마족들과 마수들을 도륙한 전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차원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마족들은 자네 얼굴은커녕, 이름조차도 모를 것이란 말일세.”
“아하….”
“그리고 안다고 하더라도 자네에게 해코지를 한다거나 보복을 하고 싶어 하는 녀석들도 없을걸?”
“그건 좀 신기하네요.”
“아마 어떤 마족이 자네에게 시비를 건다면, 그것은 자네에게 보복 같은 것을 하려는 것이라기 보다, 순수한 호승심 때문일 확률이 더 높다는 말이지.”
세르비안의 얘기를 들으며, 이안은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세르비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좀 더 운신의 폭을 넓혀도 되겠어.’
이안은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만약 고위 마족에게 정체를 들켜 다굴이라도 맞으면 이안으로서도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적어도 그럴 염려는 이제 없다는 것이었으니까.
‘마족 유저들만 조심하면 되겠어.’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마족 유저들도 별로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마족 유저들 중에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고 해봐야 이라한 정도일 텐데, 이제 이라한 정도는 두셋이 한 번에 덤벼도 별로 무섭지 않았던 것.
“그런데 이안 자네, 여기는 어떻게 온 건가?”
“예?”
“아니, 나는 인간계로 통하는 차원이 전부 닫혔다고 들었거든. 자네가 마왕급의 권능을 가진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차원계를 넘어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서 말이지.”
“아, 그건… 제게 대현자로부터 받은 아티펙트가 있거든요. 그게 있으면 한정적으로 차원이동도 가능해요.”
“아하, 그렇구만.”
세르비안은 그에 대해 더 캐묻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이안에게,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기 때문이었다.
세르비안은 자신의 작품인 칼리파와의 전투, 이안이 지금까지 연성에 성공한 마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했고, 그 궁금증을 모두 풀어준 이안은,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세르비안님.”
“말씀하시게.”
“제가 칼리파를 사냥하고, 그로부터 얻은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물건?”
세르비안의 주름진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알기로, 고금을 통틀어 최강의 반열에 오른 마수였던 마룡 칼리파.
그런 칼리파를 사냥하고 얻은 물건이라면, 대단한 물건일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꺼내어 든 영혼결정을 확인한 순간, 세르비안은 더욱 경악했다.
“이, 이건…!”
“왜 그러십니까?”
세르비안이 이안을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 정말 운이 좋구만!”
“예?”
이안의 반문에도 아랑곳 않고, 세르비안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영혼결정이라니. 그것도 신화등급의 영혼결정…. 이런 물건을 살아생전 보게 될 줄이야.”
더욱 궁금해진 이안은, 세르비안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 물건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요?”
이안이 묻자마자, 세르비안이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하,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세르비안이, 차분히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안 자네, 지금까지 마수들을 몇 마리정도 사냥한 것 같나?”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안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음… 천마리는 확실히 넘었을 테고… 3천? 4천?’
이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세르비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 천 마리는 넘게 사냥했을 거야. 그렇지?”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세르비안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지금까지 마수들을 사냥하면서, 마수의 영혼결정이 드랍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몇 번 정도 있는가?”
이안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확실히 일전에도 다른 마수의 영혼결정을 획득해 본 경험이 있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한 서너 번 정도 있는 것 같네요. 등급은 유일등급이나 영웅등급이었던 것 같군요.”
이안의 말에 세르비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그랬겠지. 영혼결정은 중급 이하의 마수들은 드랍하지 않는 아이템이니 말이야.”
세르비안은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자네가 사냥한 마수들 중, 상급 이상의 마수들만 추려도 천 마리는 족히 넘을 거야. 그렇지?”
“예, 아마 2~3천 마리는 되지 않을까요?”
“정확히 몇 마린지는 중요하지 않고… 어쨌든 자네는 천 마리가 넘는 마수들을 사냥해서 지금까지 영혼결정을 3~4회 밖에 획득하지 못했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안은 세르비안이 왜 이렇게 흥분한 건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낮게 잡아서 내가 상급 이상의 마수를 천 마리 사냥했다고 가정해도, 영혼결정의 드랍률은 끽해야 0.3%~0.4%정도… 그런데 그 드랍률이 마룡 칼리파를 사냥할 때 터진 거라면….’
< (2). 일단락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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