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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309화 (332/1,027)

< (1). 각성 -2 >

멋들어지게 늘어뜨린 백발에, 커다란 핏빛대검을 등에 대각선으로 걸쳐 멘 사내.

‘카이자르…!’

이안은 걸음을 옮기는 카이자르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카이자르의 주변으로 기의 폭풍 같은 것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이자르가 마레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척-

그리고는 절도 있게 예를 취해 보이며,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레스님.”

마레스가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구나, 카이자르.]

스르릉- 퍽-!

카이자르는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뽑아 들어 바닥에 박아 세우고는, 마레스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카이자르의 목소리 또한, 마레스의 음성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게 남겨진 마지막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마레스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래, 3천 년 전의 못 다한 임무를 오늘 완수한다면, 내 직접 너의 족쇄를 풀어주도록 하겠노라.]

[감사합니다.]

[제법 괜찮은 주인을 만났더구나.]

[제 마지막 영혼의 조각을 찾았습니다, 마레스님. 이젠, 제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신의 사자로서 모든 사명을 완수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레스와 카이자르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놀라운 것이었다.

‘카이자르가 신의사자…?’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의 눈 앞에 또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가신 ‘카이자르’ 의 각성을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이안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어… 어라?’

[가신 ‘카이자르’가, ‘전설’ 등급에서 ‘신화’ 등급으로 각성합니다.]

파앗-!

카이자르의 주변에 흐르던 기의 폭풍이, 순간 그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신에 기의 폭풍이 맴돌던 자리에는, 핏빛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이안은 감격을 넘어 이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뿍뿍이에 카르세우스. 거기에 카이자르까지 각성한거야?’

한순간에 거의 1.5~2배 가까이 늘어난 이안의 전력.

가신 하나와 소환수 둘이 강해졌다고 해서 두 배로 강해졌다는 말은, 어쩌면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비약이나 과장이 아니었다.

신화등급은, 다른 티어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격이 다른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때.

살아남은 인간계 진영의 몇몇 유저들과 npc들이 각기 다른 신들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원래 전장에 없었던, 새로운 유저들이 신의 권능을 통해 소환되기도 하였다.

그들 중에는 레미르나 레비아와 같은 랭커도 포함되어있었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유저도 있었으며, 처음 보는 특별한 npc들도 있었다.

대륙 각지에 숨어있던 신의 사자와 신의 권능을 얻기 위한 퀘스트를 진행 중이던 유저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이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나만 차원전쟁과 관련된 퀘스트를 하던 게 아니었어. 다른 유저들도 다른 신들로부터 퀘스트를 부여받았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가장 빠르게 모든 임무를 완수해 낸 이는 이안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안은 뿌듯함을 느끼며 마계 진영 쪽에 묵묵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여섯 마왕을 응시했다.

‘이제, 끝인가?’

누가 보더라도 압도적인 전력차이를 알 수 있는 상황.

그런데 그 때, 태양의 신 헬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이제는 모든 것을 끝낼 시간이다, 마졸들이여.]

하르세인이 헬레나의 말을 비아냥거렸다.

[그렇다면 얼른 끝내시오. 무엇이 두려워 그리 꾸물대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하르세인의 비아냥에도, 헬레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마왕이여, 저 차원의 벽 뒤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악의 근원을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가.]

퍼어엉-!

그녀의 손에서 거대한 불길이 쏘아져 나갔고, 그것은 하르세인을 스쳐 지나가 뒤쪽의 공간을 강하게 때렸다.

콰지직-!

그리고 그것을 본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뭐지? 분명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저런 충격음이 나는 거지?’

그리고 하르세인의 다음 말을 들은 순간, 이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후후…. 역시, 절대자의 이목은 속일 수 없군. 결국 제어할 수 없는 미완성의 마룡을 내 손으로 풀어놓아야만 하는가….]

말을 마친 하르세인은 돌연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쪽에 있던 공간이 일렁이면서,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뭐지 저건…?’

정확히 말하자면 풍경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지형은 그대로인 상태로, 비어있던 공터에 시커멓고 거대한 무언가가 생겨난 것 뿐 이었으니까.

하르세인은 환영마법을 통해, 그들의 뒷 공간을 잠시 숨겨두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 거대한 무언가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낼 수 있었다.

‘마룡 칼리파. 저건 오래 전 오클리에게서 들었던 미친 마룡이 분명해!’

시커멓고 거대한 용이 두 발을 땅에 내딛었다.

쿵- 쿵-!

다섯 신룡들, 그리고 어비스 드래곤과 비교하더라도 압도적으로 거대한 괴물 같은 몸집.

차원전쟁의 시발점이 된 존재인 마룡 ‘칼리파’가, 전장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르세인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대들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칼리파는 마신들조차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괴물 같은 존재니까 말이야.]

그의 말에, 마레스가 짧게 대답해 주었다.

[저런 잡종 도마뱀 따위가, 감히 신의 권능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말을 시발점으로, 양측 진영 모두가 마지막 전투를 위해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척- 처척-!

다섯 신들은 각기 가진 신의 권능을 사용하여, 자신이 불러낸 신의 사자들에게 힘을 나누어 주었다.

[전쟁의 신 마레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대지의 신 샌디애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태양의 신 헬레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

:

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유저들은 어마어마한 전투 능력치 버프가 생성됐고, npc들 또한 훨씬 더 강력해졌다.

그리고 모든 의식이 끝나자, 다섯 신들은 허공으로 떠올라 서서히 그 모습이 희미해졌다.

그것을 본 이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가는 거야? 왔으면 직접 싸우지, 왜 기껏 왔다가 버프만 걸어주고 그냥 가는 건데?’

이안이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차원의 중재자인 어비스 드래곤이 있다 하더라도 신이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신의 사자들을 통해 자신의 권능을 발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과율을 어긴 충분히 무리한 관여였다.

신들이 온전히 모습을 감추기 전.

마지막으로 바람의 신 ‘미로’가, 들고 있던 뿔피리를 입에 가져다 대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악룡을 오늘 소멸시킬 수 있다면, 앞으로 마계의 침공을 걱정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웅들이여, 모두 전력을 다하여 저들을 처단하라!]

뿌우우-!!

미로의 뿔피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 순간 협곡은 커다란 함성으로 메워졌다.

“와아아…!!”

“전쟁을 끝내자!!”

그리고 온전히 정신을 차린 마룡 칼리파가 괴성을 지르며 포효했다.

[캬아오오! 내 눈 앞의 모든 존재들을 소멸하리라!]

콰앙- 쾅-!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먼저 원거리 포격을 시작했고, 이안도 창대를 휘두르며 선두에 있는 마수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마룡 칼리파와 여섯 마왕들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지만, 다섯 신룡과 어비스 드래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3천년 전의 빚을 갚아주마, 칼리파.]

카르세우스의 말에, 칼리파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웃기는 소리. 오늘은 아예 영혼까지 소멸시켜주마, 카르세우스.]

칼리파가 거대한 꼬리를 거칠게 휘둘러 카르세우스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 순간, 솟구치는 물의 장막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퍼엉-!

그것은 과거 뿍뿍이의 고유능력이었던 물의 장막!

뿍뿍이가 칼리파를 향해 말했다.

[3천년 전. 만약 이 자리에 카르세우스가 있었다면, 영혼까지 소멸되는 것은 바로 네놈이었을 것이다, 칼리파.]

[후후….]

과거 카르세우스는, 차원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북부대륙에서 칼리파에 의해 먼저 목숨을 잃었었다.

그래서 3천년 전에는, 전쟁의 신룡을 제외한 네 마리의 신룡과 어비스 드래곤만이 칼리파와 마왕들을 상대했었던 것.

칼리파와 뿍뿍이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원전쟁의 마지막에 걸 맞는,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의 전투.

신의 가호를 받아 강력해진 유저들은, 발록들을 비롯한 전설등급의 마수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또한 다섯 신룡들과 어비스 드래곤은, 칼리파와 마왕들을 상대로 팽팽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의 균형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이안과 카이자르였다.

신화등급으로 각성한 카이자르는, 신룡에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쟁의 신 마레스의 가호를 받은 이안이, 발록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신이 내린 권능은, 원래 가지고 있던 전투능력을 배 이상으로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어마어마한 버프였다.

‘운동선수가 도핑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이안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신이 나서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조금씩 힘의 균형이 무너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계진영은 완전히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피해가 쌓이고 쌓여 스노우 볼이 굴러가기 시작하자, 마치 봇물 터진 것처럼 진영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마계 진영은, 거의 모든 전력이 몰살당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전투가 재개(再開)된지 고작 20여분 정도 만에, 마계 진영에는, 두 명의 마왕과 마룡 칼리파, 그리고 십여기 정도의 발록 뿐이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마족 진영의 유저들은, 이미 몰살당한 지 오래였다.

차원전쟁이 종료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1분 30초.

시간을 확인한 순간, 이안의 뇌리에 충동적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만, 차원전쟁이 끝나면 마족들이 전부 역소환되잖아?’

이것은 오늘이 차원전쟁의 마지막 날 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매일 차원전쟁 시간이 끝날 때면, 모든 마족들은 다시 마계로 역소환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오늘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었다.

이안이 돌연, 신룡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칼리파를 향해 돌진했다.

‘그럴 수 없지. 신화등급 보스몬스터를 이대로 보낸다고? 얘가 무슨 아이템을 떨굴지 알고 그냥 보내? 경험치는 또 얼마나 줄지 알고?’

이안은 마지막 힘을 다해 칼리파를 향해 몸을 날렸다.

칼리파의 생명력은 거의 실금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고, 행성파괴 무기가 제대로 박히기만 하면 막타를 치는 것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제발, 유종의 미를 한번 거둬 보자!’

사실 아무리 신의 버프를 부여받은 이안이라 하더라도, 칼리파와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칼리파의 발톱에 한번만 잘못 걸려도, 이안은 그대로 시커먼 화면을 맞닥드려야 할 것이었다.

이안은 온 정신을 집중하며 자기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바위는 이미 거의 다 부서진 썩은 바위잖아? 그리고 나도 날계란보다는 단단한 삶은 계란 정도는 되겠지.’

분주한 몸놀림으로 악착같이 신룡들의 협공을 막아내는 칼리파.

칼리파의 신경이 분산된 덕분에, 이안은 무사히 칼리파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은 이 무모한 시도가 반쯤은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탓-!

이안은 망설임 없이 칼리파의 거구를 타고 그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칼리파는 이안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크아아! 뭐냐, 이 벌레 같은 인간은!]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이안의 몸이 칼리파의 머리 위까지 솟구친 상태였다.

“고맙다, 내 경험치보따리.”

높이 뛰어오른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거꾸로 틀어쥔 채 그대로 칼리파의 정수리를 향해 쇄도했다.

푸욱-!

그야말로 깔끔하기 그지없는 경쾌한 소리!

[마룡 ‘칼리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칼리파’의 생명력이 265980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이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그의 눈 앞에 떠올랐다.

[마룡 ‘칼리파’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 (1). 각성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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