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06화 (329/1,027)

< (8). 전멸전 -1 >

이제는 모든 전쟁의 결과를 결정해 줄 최후의 전투.

그렇기에 유저들이 전투에 임하는 자세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는 전쟁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공적치와 생존이 최우선이었다면, 오늘만큼은 모두가 전쟁에서의 승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결코 유저들에게 전체를 위하는 ‘이타심’같은 것 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종족에게는, 그에 따른 특전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우선 공적치에 따라 배분되는 명성과 골드가, 패전종족에 비해 1.5배 가까이 많았으며, 승리한 진영 소속의 모든 유저들에게 ‘전쟁영웅’ 이라는 칭호가 주어지게 된다.

전쟁에 이기는 순간 지난 30일간의 보상이 1.5배 강화되는데다, 제법 훌륭한 옵션을 가진 유니크 칭호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유저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고, 그 결과 정말 처절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그리고 대장군으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이안은, 전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인간계 진영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밀리면 더 이상 뒤는 없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생명력 절반 이상 빠진 탱커분들은 뒤쪽으로! 광역보호막 쳐서 한 타임만 버팁시다!”

“2분 정도 뒤면 제 광역 힐 재사용 대기시간 돌아옵니다! 타이밍 맞춰서 생명력 관리 잘 해주세요!”

그것은 강철체력인 이안조차 체력에 부칠 정도로 힘든 역할이었지만, 그는 힘든 것 조차 잊을 정도로 전투 지휘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강력한 npc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음대로 움직여 보겠어?’

천룡군의 대장군인 백휘수에게 지휘권을 넘겨받았다는 것은, 당연히 천룡군 전체가 이안의 말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천룡군의 병력을 마구잡이로 부려먹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은 천룡군을, 신주단지 모시듯 무척이나 아꼈다.

‘결국 최후에는 이 천룡군이 하나라도 더 남아야 전쟁에 이길 수 있어. 유저들이 더 희생하더라도 이 녀석들이 살아남아야 해.’

그 결과, 무려 한 시간이 넘는 제법 긴 시간동안 전투가 진행되었에도, 백여명 정도의 천룡군들 중 희생된 숫자는 두셋 정도 뿐이었다.

그것은 이안이 피나는 노력을 한 데 대한 결과물이었다.

‘후우, 이기자. 이길 수 있을 거야.’

전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마계 군대의 물량에 힘에 부치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안은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기의 천룡군을 살려내기 위해 직접 데빌드래곤과 사투를 벌이는 등, 이안의 활약은 말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랭커들의 활약이 묻힌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샤크란이나 레미르와 같은 최정상의 랭커들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보다는 한 단계 떨어지지만 그래도 최상위의 랭커인 피올란과 같은 유저들의 활약도 정말 대단했다.

특히 어마어마한 회복스킬들과 보호, 저항스킬 등을 보유한 레비아의 활약.

그것은 이안만큼은 아닐지언정, 랭커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두드러질 정도로 뛰어났다.

이안은 전투를 지휘하는 와중에도, 전쟁의 승리를 위해 끝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지금 보니까 천룡군 한 기가 발록 두 기를 당해내기는 힘들어. 서포팅이 있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전투가 진행될수록 전쟁에 투입된 새로운 존재들의 전투력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이안은 그것을 기반으로 전략을 운용하고 있었다.

‘반면에 데빌드래곤은 상성이 좋아서 그런지… 혼자서 두 기 정도는 거뜬히 잡아 내는 것 같고.’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의 시선은, 전장 여기저기서 인간계의 병력들을 학살하고 있는 마왕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안의 미간이 좁아졌다.

‘변수는 마왕들과 대장군 백휘수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전투 데이터를 가지고도 전혀 능력치가 파악이 안 돼.’

아직까지는 각 진영의 허약한 개체들이 죽어나가는 소모전이었고, 그렇기에 대장격인 마왕들과 천룡대장군 백휘수가 무기를 맞댈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들의 상대는 그들의 기준에서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잔챙이’ 정도였을 뿐.

그들의 진짜 능력을 보기 위해서는, 그들끼리의 맞대결이 시작되어야만 했다.

청백색의 뇌전이 흐르는 천룡대장군의 삼지창.

그 거대한 신병(神兵)이 허공을 가르면 십 수 마리의 마수들이 새카만 재가 되어 허공에서 사라졌고, 심지어 발록이나 데빌드래곤과 같은 전설등급의 마수들도 일 분을 채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반대로 마왕의 마기가 한번 폭발할 때도 역시, 150레벨 정도인 npc병사들이 소대 단위로 지워지고 있었다.

‘역시… 당연한 거겠지만, 오늘만큼은 마계 진영에서도 쉽게 물러나지 않는군.’

지금까지는 마계 진영에서도 너무 피해가 크다 싶으면 무리하여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공격을 하더라도 ‘내일’을 위해, 병력을 최대한 보존하며 싸워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차원전쟁에는 이제 ‘내일’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모든 병력을 소진하더라도, 이겨야만 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협곡을 가득 채우던 양 측의 병력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잠시 마왕들을 응시하던 이안이, 시선을 돌려 대장군을 확인하고는 씨익 웃었다.

‘그래. 너만 믿는다…! 내가 이 고생을 했는데, 여기서 져 버리면 너무 아깝잖아?’

입을 굳게 다문 이안이, 다시 정령왕의 심판을 휘두르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이안은 이제 잠시도 쉴 생각이 없었다.

*          *          *

카일란의 생존형 게이머 중 한명인 상민.

차원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그는, 오늘도 집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사실 오늘‘도’ 라기 보다는, 오늘‘은’ 무조건 TV앞에 앉아있어야만 하는 날이었다.

바로 차원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방영되는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거실의 TV앞에 있는 쇼파에서, 그는 그의 와이프인 예림과 거의 4시간 째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와그작-

“아, 좀 조용히 먹어요. 지금 캐스터 목소리 놓쳤잖아요.”

“아… 그, 그래. 미안.”

심지어 TV를 시청하는 동안 먹기 위해 준비한 과자조차도, 몇 조각 먹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

오늘 방영되는 최후의 전투는, 정말 한 눈 팔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했다.

잠시 후, 정적을 깨고 예림의 입이 열렸다.

“여보.”

“응?”

“이제 어떻게 될까요?”

“으음…?”

두 사람의 시선은 대화하는 동안에도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들의 시선이 닿아있는 스크린에는, 멋들어진 황금빛 갑주를 입은 장수가 마왕과 마주 서 있었다.

주변은 이미 거의 초토화된 상태였고, 아직까지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인원은, 양 측 진영을 통틀어서 이제 오백도 채 되지 않는 수준.

침을 한 차례 꿀꺽 삼킨 상민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글세… 지금까지 인간계 진영 유저들이 정말 잘해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왜요?”

“왜기는. 지금 딱 봐도 마족 진영의 병력이 더 많이 남아 있잖아. 게다가 마족들의 수장인 여섯 마왕들도 전부 살아 있다고.”

“그렇게 따지면 저기 천룡대장군도 멀쩡하게 살아있잖아요? 그 뒤로 천룡군들도 많이 남아 있구요.”

“글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 마왕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천룡대장군만큼 강력해 보였어. 하지만 마왕은 여럿인데 비해, 대장군은 하나잖아?”

“그건 그렇지만….”

상민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자기는 인간계 진영을 응원하는 거야?”

예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죠?”

“왜?”

“그거야… 원래 스포츠 경기도 그렇고…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법이잖아요?”

상민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처음에 마족을 응원했던 유저였지만, 오늘은 어느새 인간계 유저를 응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상민의 시선이, 대장군의 뒤쪽에서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는 이안을 향했다.

‘오늘 방송이 전부 끝나고 나면… 우선 이안 팬 카페부터 가입해야겠어.’

*          *          *

콰아앙-!

대장군 백휘수의 삼지창이, 굉음을 내며 바닥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삼지창이 박힌 지점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이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천룡대장군과 마왕의 격돌인가…?’

이안은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정신력과 에너지를 소모했다.

‘난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 이 정도면 처음에 목표했던 것 보다 천룡군도 많이 살려 놓았고, 마계 병력도 최대한 줄인 것 같아.’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히려 가슴이 후련해졌다.

이제는 만약 전쟁에 패배하더라도, 후회 한 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백휘수와 마왕 하르세인이 서로를 마주보며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백휘수의 입이 열렸다.

“마계의 절대자인 그대들은, 왜 항상 안주하지 못하고 이계를 침공하려 하는가.”

그 말에, 하르세인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파괴와 정복. 그것은 우리 마족의 본성과도 같은 것. 이것은 우리에게 먹고 자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그것을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군.”

대장군, 백휘수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그것은 그대들 자신이 한 합리화일 뿐. 결코 그런 본성을 가지고 창조된 피조물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백휘수의 노호성에도, 하르세인은 전혀 위축되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미 우리는 적으로 만났고, 여기서 결판을 내어야 하는 것을.”

하르세인이 오른손을 들며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손 위에서, 강렬한 마기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하르세인의 날카롭게 찢어진 두 눈이, 백휘수를 노려보았다.

“확실히 천룡군을 이끄는 대장군이라면… 내가 상대하기는 벅찬 힘을 가지고 있겠지.”

하르세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한 마디 덧붙였다.

“마계라면 얘기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인간계니까 말이야.”

그 말에, 백휘수가 그를 비웃듯 말했다.

“만약 여기가 천계였다면, 네놈들 전부가 덤비더라도 나 혼자서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르세인이 대답했다.

“후후… 그러시겠지.”

백휘수가 바닥에 꽃혀 있던 창을 뽑아 내어, 하르세인을 향해 창극을 내뻗었다.

“여기서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이대로 물러감이 어떠한가, 마왕이여.”

하르세인이 마기가 머물지 않는 왼손을 쥐락펴락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건 오히려 내가 할 이야기다, 천룡대장군.”

그의 말이 끝나자 뒤쪽에 서 있던 다른 마왕들이 하르세인의 뒤쪽으로 도열해 섰고, 백휘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그대라 할지라도, 우리 전부를 상대하기에는 힘이 턱도 없이 부족할 터.”

화르륵-

하르세인의 손을 휘감고 있던 마기가 온 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하르세인의 전신은, 붉은 마기로 뒤덮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대야말로 이쯤에서 천계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한가.”

“크음…!”

“이 정도면 저 인간 애송이가 가지고 있던 ‘권능’에 대한 도리는 다 한 것 같은데 말이지.”

양측 간에 흐르는 잠시간의 정적.

하지만 백휘수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그럴 수 없다, 마왕이여.”

“어째서 그렇지? 너에게도 인간이라는 종족은, 단지 하찮은 미물일 뿐 아닌가.”

백휘수는 계속해서 하르세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여기서 물러난다는 것은, 성왕의 긍지에 누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르세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결국 벌주를 마시겠다는 건가.”

하르세인 또한 백휘수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자, 둘 중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천신의 가호가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다시금 격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쾅- 콰쾅-!

마왕들의 마기와 하르세인의 신력이 맞부딪히며, 굉음을 일으켰다.

이안을 비롯해 살아남은 인간계의 유저들과 마계의 유저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마지막 전투를 시작했지만, 그것은 마왕의 싸움에 가려져 무색할 지경이었다.

콰르릉-!!

경천동지(驚天動地)란, 이런 것일까?

천지가 요동치는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고, 유저들은 그 여파에 밀려 제대로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이안은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했다.

‘계속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저런 괴물들도 사냥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걸까?’

유저들은 결국 전투를 멈추고 마왕들과 하르세인, 그리고 살아남은 천룡군들간의 전투를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그 전투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윽…!”

이십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

대지가 울리는 격렬한 전투 끝에, 여섯 마왕은 결국 모든 천룡군을 쓰러뜨리고 백휘수마저 제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쩌저정-!

마왕들 중 하나의 언월도가 백휘수의 흉갑을 베어 갈랐고.

털썩.

절대자의 위용을 뽐내던 백휘수의 신형이, 차가운 대지 위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하아….”

그것을 지켜보던 유저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짧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끝인가….’

이안의 입가에도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이안의 시선이, 시야의 상단에 보이는 시간을 향해 움직였다.

차원전쟁이 종료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한 시간여 정도.

이제 여섯 마왕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인간계 진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안의 입가에 걸려있던 쓴웃음은, 금방 옅은 미소로 바뀌었다.

‘그래도 괜찮아. 충분히 재밌었잖아?’

이제 이 차원전쟁이 끝나면, 또 다시 새로운 컨텐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새카만 재로 변하기 전.

백휘수의 시선이 잠시 이안을 향했다.

“미안하구나, 연자여. 그대의 용맹에 보답하지 못했노라….”

살짝 당황한 이안이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

백휘수를 비롯해, 쓰러져 있던 모든 천룡군의 신형들 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그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마왕군의 앞에 백여명도 채 되지 않는 유저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휴우.”

누군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고, 그것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가 포기했던 그 순간.

휘이잉-

협곡 어디선가, 청량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 (8). 전멸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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