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05화 (328/1,027)

< (7). 활약, 그리고 위기 -3 >

*          *          *

마계와 인간계의 차원전쟁.

처음 LB사에서 개발할 때 정해진 시나리오는 간단했다.

첫째, 마계의 차원계가 열리며 인간계와 마계의 교류가 생긴다.

둘째, 마계의 컨텐츠들을 유저들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난 뒤, 차원전쟁의 시작인 몬스터 웨이브가 발동한다.

셋째, 차원전쟁 중에 ‘마족’이라는 새로운 종족이 오픈되며, 마족의 강력함을 어필함과 동시에 많은 유저들을 마족으로 끌어들인다.

넷째, 인간계 유저들이 차원전쟁에서 패배하지만, 마우리아 제국의 퀘스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주병신보를 이용해, 인간계의 대지 중 일부만을 내어준 상태에서 마계의 군대를 막아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다섯째, 용신의 제단을 공략해서 여의주를 얻은 유저가 나타나면, 다섯 신과 신룡의 힘이 한데 모이며 마계의 군대를 인간계에서 다시 전부 몰아내게 된다.

그리고 여의주를 얻은 유저가 나타나기 전 까지의 그 기간 동안, 개발사에서는 새로운 차원계와 컨텐츠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계와 인간계가 공존하는 새로운 대륙을 오픈할 예정이었던 것.

‘하지만 이안이라는 비상식적인 유저가 등장하면서 많은 부분이 엎어지고 말았지.’

차원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나지찬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일단 첫 번째로 잘못 끼워진 단추는, 이안이 마우리아제국의 퀘스트를 너무 빨리 클리어 해 버렸다는 부분에서 만들어졌다.

원래 주병신보가 인간계 유저의 손에 들어가는 시점은, 차원전쟁이 인간계의 패배로 끝나고 한달 정도의 뒤 정도가 되어야 했다.

그 정도의 시간을 벌어줘야 마족으로 전향한 유저들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아예 차원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주병신보를 가지고 돌아와 버렸다.

그 어떠한 버그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을 이용해서.

그리고 두 번째로 잘못 끼워진 단추는, 여의주와 뿍뿍이를 이안이 들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아직 완전한 여의주는 아니었지만, 용신이라는 존재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노릇이었고, 이게 발동하는 순간, 다음 컨텐츠를 업데이트할 시점이 3개월~반년 앞당겨지는 것이었다.

나지찬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이, 앞으로 있게 될 야근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 신탁으로 게임 내에 간섭하는 것 조차 별로 내키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윗선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안한 것이었다.

신탁에 압력을 넣는 것이, 그나마 게임의 자유도에 영향을 덜 미치는 개입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신탁이 없었더라도, 서열 10위인 마왕 마하뮤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마왕들과 마병들을 보냈을 것이고, 단지 개발사의 개입으로 인해 마지막 웨이브의 힘이 조금 더 강해진 것 뿐 이었으니까.

‘조금은 아닌가? 대충 봐도 병력이 1.5배는 더 많아진 것 같은데….’

그리고 지금, 나지찬의 눈 앞에 있는 스크린에는, 강렬한 위용을 내뿜는 천신의 군대가 강림하고 있었다.

나지찬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하군.”

데이터 상으로는, 아무리 천신의 군대가 합류한다 해도 지금의 마계군을 인간계 유저들이 이기기는 힘들었다.

메인 컴퓨터에서 분석한 인간계의 승률은, 20% 미만이었으니까.

“이변이… 또 일어나려나?”

나지찬의 시선이 화면 한 켠에 보이는 이안을 향해 움직었다.

그는 진심으로, 이안을 비롯한 인간계 유저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          *          *

위잉- 위잉- 위이잉-!

인간계 진영 곳곳에서, 새하얀 빛의 줄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눈부신 빛줄기가 떨어져 내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무슨 일이지?”

유저들은 당황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고, 공격을 준비중이던 마왕들 마저도 잠시 멈춘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인간계 진영의 안쪽에 있던 이안의 신형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안님이다!”

“역시 무슨 히든카드가 있는 거였어!”

“그래, 이대로 죽으라는 법은 없지.”

유저들은 저마다 희망찬 어조로 떠들기 시작했고, 허공으로 떠오른 이안의 앞에는, 황금빛의 운무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휘이잉-!

그 황금빛 운무는 곧 황금빛 갑주의 형태로 변하였고, 늠름한 위용을 가진 신장(神將)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웅- 우웅-

협곡의 하늘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왕께서 보내신, 천룡군(天龍軍)의 대장군 백휘수다.]

소란스럽던 장내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만큼 조용해 졌고, 그의 말이 다시금 이어졌다.

[그것은 성왕의 지고하신 권능이 담긴 보패(寶牌)…. 그리고 절대로 함부로 사용되어는 안 되는 고귀한 힘….]

대장군 백휘수의 시선이 이안의 시선과 맞부딪쳤다.

[너는 이 힘을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

그리고 이안이,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의 ai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계의 침공으로부터 내 영토와 내 백성, 그리고 내 가족들을 지키고자 합니다.”

한 차례 뜸을 들인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전륜성왕께서는 정법(正法)에 의해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 그런 성왕이시라면, 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그 힘을 빌려주실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안의 말을 들은 백휘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대는 영웅(英雄)의 자질을 지녔도다.]

백휘수의 시선이 움직여 마계의 군대를 한번 응시했다.

[저들은 분명 파괴와 학살을 일삼는 무뢰배의 종족들. 나는 그대를 도와 야만적인 침략자들을 무찌르는데 앞장설 것이다.]

이안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대장군이시여….”

그리고 다시 백휘수의 말이 이어졌다.

[비록 적들이 강력하기는 하나, 천룡군(天龍軍)이라면 상대해 볼 만 하겠지.]

말을 마친 그의 신형이, 점차적으로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던 그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지면에 착지했다.

쿵-

[지금부터 우리 천룡군은, 여기 이 소영웅을 도와 저들과 싸울 것이다. 나 백휘수는, 여기 이안에게 모든 지휘권을 넘기도록 하겠다.]

백휘수의 마지막 말이 전장에 울려퍼지며, 여기저기서 지면이 울리는 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쿠쿵-!

하얀 빛이 내려앉은 자리로, 각기 멋들어진 은백색 갑주를 착용한 용장(勇壯)들이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천룡군의 앞길에는 승리뿐!]

수십, 수백에 가까운 신장들이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계의 군대에 합류했고, 그들을 본 순간, 인간계 진영의 사기는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와…! 이거 뭔데? 전륜성왕은 대체 누구야?”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해 인마, 너 그러다가 저 무지막지한 대검에 한 대 맞고 골로 갈 수도 있어.”

“전륜성왕이 누군지가 뭐가 중요해! 우리에게도 저 괴물들에 비견될만한 우군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특히 저 앞에 있는 대장군 봐. 솥뚜껑만한 손으로 한 대 후려갈기면 발록도 한방에 지워질 각이야.”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신들을 천룡군이라 명명한 용장들의 위용은, 그 외견(外見)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천룡수호군(天龍守護軍) - Lv 425]

천룡수호군 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있는 이들의 평균 레벨은, 400이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발록들이나 데빌드래곤들의 레벨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이었고, 질적인 면 뿐 아니라 병력 자체도 이제 밀릴 것이 없었으니, 모두가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특히, 이들의 대장격 NPC인 듯 보이는 백휘수의 레벨은 지금껏 듣도보도 못 한 수준이었다.

[천룡수호대장(天龍守隊長) 백휘수 - Lv 500]

적들인 마왕들의 레벨은 비공개 처리되어 있었기에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500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보다 높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세등등해진 유저들은 각자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스킬들과 장비들을 점검했고, 이제 차원전쟁은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나는 기필코 마계의 무리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이안이 아닌 이안의 ai가 한 대사였고, 유저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퀘스트 진행 도중 이러한 상황을 겪었던 적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두의 가슴에 울컥 하는 감정이 순간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뭔가 짠한데…?”

“이안님이 이렇게까지 판을 짜 주셨는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겠지?”

인간의 감정이란 무척이나 복잡한 것이지만 때로는 단순하기도 해서, 주변의 분위기와 상황이 어우러져 맞물리면, 순간적으로 격해지곤 하는 것이었다.

전장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이안이 서 있었다.

이안의 입에서 마지막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전원, 공격…!!”

그리고 피가 끓어오른 유저들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

“마계 놈들 전부 박살내 버리자!!”

둥- 둥- 둥-

차원전쟁에 속해있는 NPC전고병(戰鼓兵)들이 힘차게 북을 울리기 시작했고, 마계와 인간계의 대군이 협곡에서 격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AI의 통제를 벗어난 이안도, 서둘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어, 이정도 전력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 해…!”

희망이 생긴 이안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런 대규모 전쟁일수록, 전쟁에 이길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싸워서는 안 된다.

그것만큼 바보 같은 짓이 없다는 걸, 이안은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          *          *

“후후, 천룡군이라… 생각보다 강적이 등장했어….”

마왕 하르세인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바로 옆에 있던 다른 마왕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봐, 켄딜란. 내가 뭐라고 했나. 신탁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하지 않았나.”

켄딜란은 하르세인과 서열이 하나밖에 차이나지 않는, 그와 절친한 마왕이었다.

그는 처음 인간계로 파견나올 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 아니냐며 투덜대었고, 그랬기에 하르세인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켄딜란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과연 그렇군. 이 정도의 강적이라면 우리의 군대를 전부 보내신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스르릉-

돌격해 오는 인간계의 대군을 보며, 마왕들도 각기 자신의 무구를 꺼내어 들었다.

기다란 언월도를 치켜 든 마왕도 있었으며, 대검부터 시작해서 활, 단검, 그리고 박도까지.

제각각 다른 무기를 손에 쥔 마왕들이, 선봉에 달려오는 천룡군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선 하르세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전원… 돌격! 천계의 머저리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

< (7). 활약, 그리고 위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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