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활약, 그리고 위기 -2 >
* * *
샤크란은 강력했다.
이안이 기대했던 수준 이상으로, 샤크란의 무력은 대단했다.
‘역시… 내가 성장하는 동안 다른 랭커들도 놀고 있던 건 아니었어.’
마계 컨텐츠와 마우리아 제국의 컨텐츠 등.
최근 들어 많은 컨텐츠들을 선점하면서, 이안은 이제 랭커들을 따라잡는 것을 넘어 확실히 앞질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샤크란의 위용을 보니,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안은, 자신이 샤크란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샤크란을 확실히 뛰어넘었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레미르나 레비아의 경우에는, 워낙 포지션이 다른 클래스의 유저이다보니 그 수준이 잘 가늠 되지 않았다.
하지만 캐릭터의 전투방식만큼은 이안과 비슷한 샤크란의 경우에는, 좀 더 그 실력이 와 닿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안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샤크란이 이 정도였다니… 어쩌면 발록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현재 샤크란이 길드마스터로 있는 타이탄 길드는, 공식적인 랭킹1위의 길드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다.
본래 타이탄 길드와 1,2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던 다크루나 길드가, 이라한과 함께 마계로 넘어가면서 그 세가 확 줄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던 배경에는, 샤크란의 강력한 무력이 뒷받침 되어 있었을 것이다.
콰쾅- 쾅-!
샤크란이 만들어낸 적갈색의 분신들이 발록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안은, 그 상처들 위에 추가로 공격을 퍼부었다.
[‘일점공격’을 성공시키셨습니다!]
[추가 공격으로 인해 전설의 마수 ‘발록’의 패시브 스킬인 ‘마기재생’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전설의 마수 ‘발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발록’의 생명력이 169840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까던 곳만 계속 까는 게 진짜로 아픈 법이지.’
일단 ‘마기재생’ 패시브를 파훼할 방법을 찾은 이안과 샤크란은, 온 힘을 다해 발록을 협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록은, 이안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기재생 이외에도 까다로운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주변 마수들의 마기를 끌어다 쓸 수 있는 능력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욕이 나올 수준이었다.
‘제기랄, 처음에 진출하느라고 핀이랑 카르세우스 광역기를 다 써 버렸는데…!’
마기를 끌어다 회복하고, 또 공격에 사용하는 발록.
이 괴물같은 능력에 대응하려면, 광역기로 주변의 잔챙이 마수들을 전부 날려버려야 한다는 것이 이안의 판단이었다.
샤크란도 그것을 느꼈는지 범위 피해를 줄 수 있는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대인 공격에 더 특화되어있는 탓인지 그렇게 효과가 좋지는 않았다.
‘어쩐다, 전류증식 같은 스킬로는 턱도 없을 것 같은데….’
전격의 정령인 ‘짹이’와, 정령마력을 사용해 쓸 수 있는 공격스킬인 전류증식.
150레벨이 넘어서면서 부터였을까?
이안은 정령마력을 이용한 스킬들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야 당연하겠지만, 별로 효과가 좋지 않아서였다.
그나마 아직 사용하고 있는 스킬이 ‘전류증식’이었는데, 이 스킬도 적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느낌 보다는 ‘마비’와 같은 상태이상을 걸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발록과 같은 고위 몬스터의 경우에는, 상태이상 저항력도 어마어마해서 그마저도 무용한 상황이었다.
“아재, 내가 잠깐 빠져나가서 주변 잡몹들 좀 잡아볼까요?”
이안의 말에 눈살을 살짝 찌푸린 샤크란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한번 그래 보던가. 하지만 나 혼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거다.”
“알겠어요.”
샤크란과의 간단한 의사교환이 끝난 이안은, 곧바로 걸음을 돌려 주변 마수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그 순간.
“이안님, 잠깐!”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에서 어마어마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잉걸불…!”
화르륵-!
작전대로라면 보호막 안쪽에 있었어야 할 레미르가, 어느새 나타나 광역스킬을 시전한 것이었다.
게다가 레미르의 바로 뒤쪽에는, 레비아까지 있었다.
“허얼….”
당황한 이안이 멈칫한 사이, 최강의 광역화력을 자랑하는 레미르의 잉걸불이, 주변의 하급 마수들을 전부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치직- 치지직-!
이안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레미르님, 마법사들 공격오더는 어쩌고 이쪽으로 나오셨어요?”
이안의 물음에, 레미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피올란님께 맡겼어요.”
“네에?”
“지금 안쪽에서 보니까, 저랑 레비아님이 합류하면 충분히 발록 잡을 각이 보이더라고요. 안쪽에서 있는게 더 안전하긴 하겠지만… 지금 발록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이득이잖아요?”
레미르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사실 이안도 마음 한 켠에, 레미르의 광역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달려드는 발록의 공격을 한 차례 피해내며, 레미르와 레비아를 향해 소리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소 세 마리 정도는 잡아 보죠!”
“오케이!”
“알겠어요!”
두 사람은 대답하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포지션을 잡았다.
그리고 난전 한복판에서, 각 클래스 최고 랭커들의 ‘발록사냥’이 시작되었다.
* * *
‘발록이… 둘이나 죽었어…?’
협곡의 치열한 전투현장에는, 발록들과 마병들을 인솔해 온 이라한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전장의 규모가 워낙 거대했고, 그렇기에 아직까지 이안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 뿐.
한 마리 한 마리 각개격파당하는 발록을 보며, 이라한은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 머저리 같은 마왕놈은 대체 왜 발록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는 거야?’
이라한은 지금 상황이 너무도 답답했다.
‘자기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발록끼리 힘을 합쳐서 저 이안놈부터 잡으라고 해야 할 것 아냐!’
답답하기는 했지만, 이라한에게는 발록에 대한 통제권이 없었다.
이 전장에서 마계진영의 모든 지휘권은 마왕에게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못마땅했다.
‘후, 이 어마어마한 화력을 가지고 대체 왜 광역 쉴드 하나 못 뚫는지도 모르겠고….’
이라한은 불안한 표정으로, 허공에서 전장을 관조하고 있는 마왕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이라한과는 달리, 마왕 하르세인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이라한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뭐지? 저 녀석은 대체 왜 저렇게 여유로운 거지?’
마치 하나의 유희라도 즐기는 듯한 하르세인의 모습.
잠시 후 이라한은, 그 여유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 * *
결국 즉흥적으로 짜여진 이안의 발록사냥 파티는, 성공리에 임무를 마치고 보호막 안쪽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일곱 마리의 발록 중 사냥에 성공한 발록은 무려 다섯 마리.
물론 이안의 발록 사냥이 진행되는 동안, 인간계 유저들의 피해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다섯 마리의 발록을 사냥한 것은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그리고 인간계 유저들의 사기가 올라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크으…! 이거 진짜 여기서 막아낼 수도 있겠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중부대륙 전장이 메인 전장인데… 여기만 막아내면 북서부랑 북동부 정도는 내어 줘도 이득이잖아?”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고 샤크란님도 중부대륙으로 넘어오신 게 아닐까?”
한 차례의 기습공격을 성공시킨 유저들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
마족들의 화력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제 석상과 보호막의 내구력에도 충분한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이안의 오더 하에 보호막이 몇 사이클 돌고 나니, 따로 오더가 없어도 방어벽이 알아서 유지되었다.
차원전쟁에 참여한 유저들은 모두가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는 랭커들이었고, 그들 또한 랭킹에 걸맞는 게임센스를 가진 유저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됐어. 이 정도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고.’
이안은 마계 진영의 한복판에서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있는 마왕을 슬쩍 응시했다.
사실 마왕만 아니었다면, 아예 발록들을 전부 잡고 역으로 밀고 올라가는 전략도 시도해볼 만 했다.
‘후, 저 녀석을 어떡하지? 얼마나 강한지도 잘 가늠이 안 되니….’
이안은 품 속에서 주병신보를 만지작거렸다.
‘남은 시간은 3시간 15분…. 이제는 주병신보를 사용해야 할 타이밍인가…?’
모르긴 몰라도 주병신보를 사용한다면, 저 거치적거리는 마왕 하나쯤은 깔끔하게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더 아껴서 뭐해. 어차피 오늘 쓰려고 그 고생을 해 가며 얻어낸 물건인데.’
이안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병신보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아이템을 사용하기 직전.
갑자기 전장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 거칠고 묵직한 음성이, 이안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어리석은 녀석들…. 그렇게 발버둥 쳐 봐야 아무 소용없음을 왜 모른단 말인가….]
고막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마왕 하르세인의 목소리.
“저 녀석은 또 뭔 짓을 하려고 저러는 거야? 불안하게….”
이안의 옆에 있던 레미르가 투덜거렸고, 다음 순간 유저들은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곳에 새로운 마계의 하늘이 열릴 것이다!]
벼락같은 하르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 말도 안 돼.”
“이게 뭐야 대체…?!”
쿠르릉- 콰콰쾅-!
새파랗던 하늘이, 천천히 붉은 빛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 * *
새로운 마계의 하늘이 열린다는 하르세인의 말.
그 말 그대로, 새파랗던 하늘이 쩍 쩍 갈라지며, 시뻘건 마계의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라진 공간의 틈 사이로, 수많은 마물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안조차도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이게 대체….”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마수들과 마족들을 응시했다.
“저, 저거 전부… 발록이죠?”
레비아의 물음에 이안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그러네요.”
한눈에 보아도 수십 기는 되어 보이는 흉포한 발록들의 위용.
게다가 협곡의 하늘에는, 거대한 드래곤들 또한 십 수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기 데빌드래곤도 있네요, 이안님.”
레미르의 말에,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핫, 하하….”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샤크란이 레미르에게 물었다.
“데빌 드래곤은 또 뭐지?”
레미르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발록과 같은 전설등급의 마수예요. 일전에 이안님과 함께 사냥해 본 적이 있죠.”
샤크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놈은, 발록보다 강한가?”
“대답하기 좀 애매하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발록보단 상대하기 편할 거예요.”
두 사람의 대화를, 피올란이 잘랐다.
“그럼 뭐해요. 수십 마리가 떼거지로 날아다니는데.”
“….”
레미르는 말을 잃었다.
사실 피올란의 말에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이 갈라진 공간의 틈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 뭔가 또 내려오는데요?”
“뭐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미 게임아웃은 결정되었다는 듯, 유저들은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마족들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고, 갈라진 공간의 틈 사이로는 다섯의 인영이 추가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마왕 하르세인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왔는가, 형제들이여….]
정체불명의 다섯 마족은, 놀랍게도 하르세인과 비슷한 서열의 ‘마왕’들이었던 것.
하르세인을 포함한 총 여섯의 마왕이 전장의 한복판에 두둥실 떠올랐고, 그들의 주위로 붉은 마기의 폭풍이 거칠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안은, 손에 들고 있던 주병신보를 서둘러 치켜들었다.
‘그래, 망할 땐 망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이안은 망설임 없이 주병신보를 사용했다.
[전륜성왕의 칠보(七寶) 중 하나인 주병신보(主兵臣寶)를 사용합니다.]
우우웅-
보패를 치켜 든 이안의 주변으로,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하는 오색 빛깔의 광채.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당황하여 이안에게 물었다.
“뭐, 뭐에요 이안님?”
“이건 또 무슨 아이템이예요?”
이안은 뭐라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안의 몸이, 또다시 AI의 통제 안으로 들어가 버린 탓이었다.
이안은 마음 편히 자신의 모습을 관조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의 눈 앞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띠링-
[성왕의 권능으로, 천신(天神)의 군대를 소환합니다.]
< (7). 활약, 그리고 위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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