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활약, 그리고 위기 -1 >
* * *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유저는 한국서버만 수십, 수백만에 이른다.
그리고 아무리 대규모 전투라고 하지만, 차원전쟁에 참여중인 인원은 전체인원의 5%도 채 안 되는 수준.
차원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150레벨 이상은 되어야 했으니, 저레벨들이 참여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사실 150레벨도 어떻게 비벼보기라도 하기 위한 최소한의 레벨일 뿐. 제대로 활약하려면 180레벨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차원전쟁이 한참인 동안,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유저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100레벨도 되지 않는 초보들에게, 차원전쟁은 크게 와 닿지 않는 이벤트였다.
그들은 평화로운 동부대륙의 초보 사냥터에서 토끼를 잡거나, 북부대륙의 숨겨진 던전을 찾고 행복해 하는 등.
각자의 게임플레이를 해 나갈 뿐이었다.
그러나 차원전쟁의 마지막날.
이 날 만큼은 대부분의 유저들의 관심이 차원전쟁으로 쏠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게임 방송사들이 대대적으로 차원전쟁 방영을 홍보했으며, 차원전쟁의 결과 만큼은 앞으로 초보 유저들에게도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님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서요?
- 결과 어떻게 될 것 같음?
- 어떻게 되긴요. 지금 완전 막상막하예요. 원래 마족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이안님 비롯해서 랭커들 합류하면서 밸런스 맞춰졌어요.
- 오…! 대박! 지금 완전 꿀잼이겠는데요?
- ㅇㅇ맞음. 그래서 오늘은 저도 퀘스트 진행 좀 멈추고 YTBC 방송이나 좀 보려구요.
- 크, 이제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방송 시작이죠?
- 네. 아마 그렇겠죠? 차원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방송 오픈한다고 했으니…. 그런데 10시간도 넘게 진행되는 방송을 전부 다 보시게요?
- 제가 이안님 팬이거든요. 이번에 YTBC에서 채널 하나를 통째로 이안님 영상 위주로 방영한다고 해서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10시간이 아니라 20시간이라도 끝까지 다볼 듯 하네요. 중간에 이안님 사망하지만 않으면요.
- 오…! 정말요? 편성표 안 봐서 몰랐네요. 그렇다면 저도 오늘은 종일 방콕 확정입니다. 크크
중부대륙에서의 대규모 전쟁 이후 정말 역대 급의 시청률이 나오기 시작했고, 특히 발록과 마왕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시청률이 게임 방송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발록과 마왕이 나타나서 날뛴다는 소식을 듣고, 카일란을 플레이하던 유저들이 방송을 보러 대거 접속종료를 하는 사태도 발생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유저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이안은 정말 신들린 것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 * *
“지금부터 전사클래스, 기사클래스 유저들은 저와 함께 방어막 바깥으로 나갑니다.”
“괜찮을까요? 진동파라도 맞으면 전부 몰살일 텐데요.”
“그래서 지금 나가야만 합니다. 지금이라면 아직 진동파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 전에 빨리 치고 빠져야 해요.”
“아예 나가지 않는 방법은요?”
“우리가 나가서 시간을 좀 끌어 주지 않으면, 보호막이 곧 끊길 겁니다. 벌써 파티가 보유한 보호막의 70%를 소진했어요.”
이안은 소환해제했던 소환수들까지 전부 다 소환하며 보호막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지금 유저들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은, 레비아가 가진 최상위 광역방어 스킬인 ‘천신의 가호’였다.
‘천신의 가호는 앞으로 2분 안에 깨지겠지.’
그 전에는 근접클래스 유저들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족들을 공격하러 나가야 했다.
이안은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갑시다!”
발록들과 마왕의 위용이 너무 압도적인 탓인지, 유저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고, 그것을 본 이안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나라도 먼저 나서야겠어.’
타탓-
지면을 박차고 올라 할리의 등 위에 탄 이안이,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카르세우스, 핀! 광역딜로 선두부터 밀어내자.”
“알겠다, 주인.”
꾸루룩- 꾸꾹-!
본체로 현신한 카르세우스의 입에서 검붉은 기류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허공에 떠오른 핀이 거친 날개짓을 시작했다.
콰아아아-!
[강력한 광역 공격이다, 뒤로 물러서!]
마왕의 명령에 따라 발록들과 마병들이 20~30M정도 뒤로 빠져 나왔고, 그 틈을 타 이안이 빠르게 보호막의 범위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그러자 이안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유저들도, 다급히 이안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뛰어 나가야 돼! 이안님 사망하면 어차피 곧바로 뚫려버릴 거야!”
“젠장, 될지 안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보자!”
전사 클래스의 유저들과 기사 클래스 유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보호막 바깥으로 뛰쳐 나갔고, 의외의 상황에 마족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놈들이 겁 없이 기어 나왔다. 본때를 보여줘라!]
캬아아오오-!
발록을 비롯한 마수들이 포효하며 유저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렇게 돌발적인 난전이 시작되었다.
챙- 채채챙-!
할리 위에 올라탄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맹렬히 휘두르며 마수들과 마족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한 이십분 정도만 버틸 수 있으면 보호막 한 사이클이 다시 돌아올 텐데…!’
이안은 눈 앞의 적을 공격하랴,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랴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싸우는 동안에는 보호막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차핫-!
이안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창을 뻗자, 중급 마수 한 마리가 시커먼 잿더미로 변하며 증발했다.
[중급 마수 ‘히키리온’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전부 이 놈 같이 허약하면 얼마나 좋아?’
자신의 앞을 막는 저급 마수들을 빠르게 학살한 이안이, 전방에서 날뛰고 있는 발록 한 마리를 향해 뛰어 들었다.
‘기왕 시간 끄는 김에… 딱 한 마리만 잡아보자, 한 마리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이안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데빌 드래곤을 상대할 때도 레미르라는 최상급의 랭커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랭커 중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변에 200레벨 전후의 전사유저와 기사유저가 몇몇 있기는 헀지만, 그들로는 턱 없이 부족할 게 분명했다.
콰아앙-!
발록이 주먹을 휘두르자, 방패로 그것을 받아 낸 기사 유저 하나가 거의 10M가까이 퉁겨져 나갔다.
“으아악-!”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서 이안이 발록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콰콱-!
마치 속에 시뻘건 용암을 품고 있는 새까만 바윗덩이 같은 발록의 표피.
그것을 뚫고 이안의 창이 틀어박히자, 발록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 감히 하찮은 인간 따위가!]
이안은 발록에게 들어간 피해량을, 시스템 창을 통해 곧바로 확인해 보았다.
[전설의 마수 ‘발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발록’의 생명력이 287059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뭐지? 발록이 원래 방어력이 좀 약한 편인가? 생각보다 딜이 엄청 잘 들어가네?’
이안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중급마수나 상급 마수를 상대할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데미지가 발록에게 박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캬아아오오!]
생각지도 못 했던 추가 메시지가 상태창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전설의 마수 ‘발록’의 패시브 스킬인 ‘마기재생’ 이 발동합니다.]
꾸득- 꾸득-!
이안의 공격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발록의 옆구리에서, 붉은 용암 같은 것이 새어나오더니 그대로 그 뚫린 구멍을 메워 버렸다.
[마수 ‘발록’의 생명력이 212512만큼 회복됩니다.]
“허얼….”
피해량의 거의 70~80% 정도를 일순간에 회복해 버리는 발록.
게다가 자연치유능력도 있는지, 남은 피해마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뭔데? 이걸 어떻게 잡으라는 건데?’
한편 이안이 어이없어 하는 동안, 이안을 발견한 발록이 분노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인간!]
콰콰쾅-!
발록의 손에서 뻗어나온 붉은 기운이, 이안을 향해 쇄도해 왔다.
하지만 할리를 탑승한 이안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해낼 수 있었다.
‘제기랄, 저런 거 한두 대 맞으면 바로 게임아웃 이겠지?’
스플레쉬 데미지로 인해 주변에 있던 유저들의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양을 확인한 이안은, 더욱 긴장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발록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회복되기 전에 같은 자리를 연이어서 공격해야 하나?’
하지만 이안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레미르나 레비아 급은 되는 컨트롤을 가진 근접딜러가 이안과 함께 협공을 해 줄 때나 겨우 가능할 법한 이야기였다.
이안이 이를 악물었다.
‘제길 결국 시간이나 끌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런데 그 때.
이안의 귓전으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꼬마야. 힘들어 보이는 데 한 손 거들어 줄까?”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순간, 이안은 쾌재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샤크란이 어떻게 여기에…!’
이안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쌍수검을 들고 나타난 전사클래스의 유저.
그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북서부 지역으로 참전했다고 들은 전사클래스 랭킹1위의 유저, 샤크란이었다.
이안이 샤크란을 향해 마주 웃어보였다.
“잡담 할 시간 있으면 빨리 좀 도와 봐요. 지금 힘들어 죽겠으니까.”
“엄살 떨긴….”
샤크란은 일전에 적으로 몇 번 맞부딪혀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안이 적으로 상대해 본 유저들 중에 유일하게 인정하는 인물이었다.
‘그래, 샤크란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이안이 샤크란과 함께 합을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아재, 그 전에 썼던 분신술 같은 거 있잖아요, 그것 좀 써 봐요.”
이안의 말에 샤크란이 발끈했다.
“아재라니! 이 버르장머리가!”
“그럼 아재한테 아재라고 하지 뭐라 해요!”
일전에 적으로 만났을 때는, 이안 또한 샤크란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최초의 만남은 파스칼 군도에서의 만남이었는데, 심지어 그 때는 샤크란이 NPC인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저인 줄 알았더라도 존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안은 기본적으로 적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찌 됐던 지금은 같은 편에서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고, 딱 봐도 이안보다 열 살 이상은 많아 보이는 샤크란에게 반말을 찍찍 하기는 조금 껄끄러웠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샤크란과 같은 전력의 합류는, 정말 천군만마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안이 선택한 호칭은 아재.
이안은 자신의 센스에 무척이나 만족했다.
‘아재가 뭐 어때서. 정감있고 좋기만 하구만.’
그리고 그렇게, 과거에 적이었던 두 유저의 합공이 시작되었다.
“환린참격…!”
붉은 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샤크란의 장검.
콰아아아-!
샤크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줄기의 검기다발이, 발록을 향해 빨려들어가듯 쇄도하기 시작했다.
< (7). 활약, 그리고 위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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