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298화 (321/1,027)

< (5). 집요한 추격자 -2 >

*          *          *

이안의 등장은, 차원전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밀리고 있던 인간계가 단숨에 역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기울어 있던 균형의 추가 어느 정도 맞춰진 것일 뿐.

인간계의 진영이 잃었던 지역들을 조금씩 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족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커뮤니티의 자칭 게임연구가들은, 이안과 이라한의 격돌을 계속해서 분석했고, 결국 이안의 승리요인이 항마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경매장에서는, 항마력 옵션이 붙은 아이템은 죄다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머지 옵션이 너무 나쁘지만 않으면, 4%이상의 항마력 옵션이 붙은 장비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또한, 항마력 아이템보다 좀 더 희귀한 ‘항마력 관통’ 아이템은, 그야말로 초 고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 항마력 43% 인증샷. 마족들 딜 이제 들어오지도 않음.

- 헐, 윗분 43% 대체 어떻게 맞춘 거임? ㄷㄷㄷ

- 전에 어떤 분은 50% 넘기신 분도 계시던데.

- 와… 저 나름 300위권 랭커인데 25%도 겨우 맞췄는데… 괴물같은 분들 많네요.

- 하지만 이안 앞에선 다 서민이죠. 이안 추정 항마력 최소 60%라던데.

- 허헛… 이안갓은 예외로 칩시다.

커뮤니티는 아이템 옵션의 조합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로 활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또, 이제야 마계와 인간계의 균형이 맞는다며, 많은 유저들이 기뻐했다.

밸런스가 완벽하다며 카일란의 개발사인 LB사를 찬양하는 유저들도 많을 정도.

하지만 정작 LB사의 기획팀은, 입 안이 바짝 바짝 마르는 중이었다.

*          *          *

“주병신보가 열리기도 전에, 양 진영 전투 벨런스가 맞춰져 버렸다고?”

기획팀 전체를 총괄하는 기획팀장 김인천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부하직원들이 보고를 위해 띄워 놓은 밸런스 프레젠테이션이 올라와 있었다.

피티를 발표중이던 나지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팀장님. 현재 전쟁 양상을 보면, 인간계 진영이 조금씩 마계 진영을 밀어 올리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인간계가 더 전력이 강한 것은 아니고, 현재 유리한 진영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일정 선상까지 전선이 올라가고 나면, 그 곳에서 고착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김인천이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지금 이안 그놈이 갖고 있는 주병신보가 열리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나지찬의 말이 이어졌다.

“주병신보가 열리는 순간, 아마 차원포탈 하나는 파괴될 겁니다. 전륜왕의 군대를 막아내려면 최소 하위 마왕급이라도 몇 이상 등장해야 할 텐데, 현재 기획 상으로는 마지막 웨이브 때 각 게이트에 마왕이 한 명씩 등장하는 정도니까요.”

잠시동안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이 회의에 참가한 인원들은 전부가 카일란 초창기부터 기획을 함께 해 온 이들이었고, 그 누구보다도 현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김인천이 아무 말 않고 생각에 잠겨있자, 나지찬이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상황에서 괜찮은 선택지는 하나 정도밖에 없습니다, 팀장님.”

김인천이 대답했다.

“말해보게.”

나지찬은 팀 내 직위는 낮았지만, 모두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제법 영향력이 있었고, 모두가 존중해 주었다.

나지찬이 입을 열었다.

“시스템 권한을 이용해, 마신의 신전에 신탁을 내리는 겁니다.”

카일란은 기본적으로, AI에 의해 모든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어있는 하나의 세계였다.

그렇기에 아무리 개발진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세계관에 인위적으로 어떤 개체를 창조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티 나지 않을 정도의 개체추가는 큰 상관이 없었지만, 차원전쟁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줄 만한 추가개입은, 분명히 뒷 탈이 있을 것이었다.

세밀한 알고리즘으로 짜여있는 인과관계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LB사에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바로 ‘신탁’이었다.

신탁은 NPC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고, 그것으로 게임 내부의 인과관계에 자연스레 간섭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지찬이 말을 이었다.

“현재 차원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고 있는, 온건파 마족들을 마신의 신탁으로 움직이면 얼추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회의실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오오….”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로군.”

그렇게 한다면, 확실히 큰 무리 없이 마족 진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었다.

기획팀 인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생각에 잠겼고, 나지찬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쯤 되면, 아마 신의 군대가 소환되더라도, 마족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 서열 30위 내의 마왕들도 개입을 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김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군. 지금까지 중에 가장 괜찮은 생각이야.”

“그렇습니다. 결과는 까 봐야 알겠지만, 온건파들이 파괴마들을 돕는다면, 마족들이 인간계에서 머물 수 있는 최소한의 터전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김인천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나지찬을 응시했다.

“그렇군. 한데 이안 유저에게 크리티컬한 변수가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나지찬은 김인천이 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지찬이 살짝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의주라는 변수… 정확히 말하자면 어비스 드래곤 이라는 변수죠.”

김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떻게 할 건가?”

나지찬이 낮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건… 용신 세카이토에게 달렸습니다.”

“음…?”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용신 세카이토의 ai는… 좀 종잡을 수 없어서….”

동그란 뿔테 안경을 한 차례 까딱인 남자.

그가 바로 용신 ‘세카이토’라는 캐릭터를 기획한 기획자였다.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세카이토가 이안을 여의주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그 순간 전쟁은 아마 끝날 겁니다.”

“막을 방법은?”

뿔테 안경을 낀 기획자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음…?”

“그것은 메인 시나리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건드릴 수는 없는 부분이죠.”

김인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가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자, 장내의 인원들은 모두 숨죽이고 그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오늘 이 회의는, 앞으로 한달 간의 기획팀의 업무강도(?)를 결정하는 회의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눈을 뜬 김인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언했다.

“기획팀 전원, A 프로젝트 끝날 때 까지 11시 전 귀가 금지다.”

순간 나지찬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 우울함이 내려앉았다.

*          *          *

이안이 다시 한번 압도적으로 이라한을 농락한 그날 이후.

이안은 이라한이 좌절했을 것이라 여겼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안을 다시 찾아왔다.

“템 빨이 실력인 줄 아는 머저리. 오늘이야말로 쓴 맛을 보여주마.”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아이템 옵션을 세팅하는 건, 템빨이 아니라 전략이다, 멍청아.”

이라한은 어디서 구했는지, 항마력 관통 아이템을 둘둘 두르고 나타났다.

이안은 이라한으로부터 들어오는 데미지를 보고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번 보다 거의 1.7~1.8배 정도 딜이 들어오는군. 이 정도면 항마력 관통을 한 20~25% 정도는 맞췄다는 얘긴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에게 남아있는 항마력은 50%에 육박하는 수준.

이라한은 결코 이안을 당해낼 수 없었다.

[마계 유저 ‘이라한’을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벌써 세 번이나 이안에게 사망한 이라한.

그리고 그 다음날.

이라한은 이안에게 또 다시 찾아왔다.

“뭐냐. 설마 또 싸우자고?”

당황한 이안이 오히려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지만, 이라한은 이안과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후후, 설마. 그 정도 해 봤으면 안 된다는 것 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이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왜 온 건데?”

“너와 싸우지 않더라도, 여기 내가 상대할 유저들은 많기 때문이지. 날 묶어두고 마음껏 인간계 놈들이 활개 치는 건 볼 수가 없어서 말이야.”

이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널 그냥 둘 것 같아?”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이라한이 씨익 웃으며, 상급 귀환석 아이템을 꺼내들어 보였다.

“네놈이 날 노린다면, 난 이걸 사용해서 마계로 가 버리면 돼. 네놈은 지금 마계에 들어올 방법이 없을 테고, 이 귀환석만 있다면 난 안전하겠지.”

이안은 그제야 이라한의 생각을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이 녀석, 나에게 천리향을 제안할 때부터 여기까지 생각해 뒀던 거였어.’

현재 마족을 제외한 다른 유저들은, 마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었다.

차원전쟁이 시작되면서, 마계로 통하는 차원의 문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마계와 인간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은,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마족 유저들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라한은, 천리향이 있더라도 이안이 자신을 죽이러 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에게는, 이라한이 생각지도 못 한 아이템이 있었다.

‘후후, 내게 차원의 구슬이 있다는 걸 알면, 아주 기절하겠군.’

이안이 가진 차원의 구슬은, 이안이 한 번 가 본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었다.

그 말인 즉. 이안은 마계로 통하는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안이 창대를 휘휘 돌리며, 이라한을 향해 말했다.

“3일 동안 세 번 죽였고. 천리향이 사라지기까지는 27일이 남았네? 앞으로 정확히 26회 더 죽여주지. 좀 빠듯하긴 하지만, 데스 패널티 끝날 때 마다 칼같이 가서 잡으면 되지 않겠어?”

이라한이 코웃음을 쳤다.

“어디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시던가.”

말을 마친 이라한은 이안이 없는 다른 전장을 향해 몸을 날렸고, 이안은 망설임 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이렇게 까지 도발을 하는데… 잡아주지 않으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그것은, 처절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          *          *

“자, 잠깐!”

마계 100구역.

그리고 분노의 도시 정문 앞에 있는 한 공터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한 명은 지금 막 데스 패널티가 끝나 접속한 이라한이었고, 다른 한명은 시간 맞춰 자판기(?)를 뽑아먹기 위해 도착한 이안이었다.

“왜, 뭐가 또 잠깐이야.”

이안이 이라한을 향해 창극을 겨누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오늘의 유언은?”

하지만 그 장난스러운 말투가, 이라한에게는 공포스럽기 그지 없었다.

벌써 3일 째.

마계에서 사냥당한지도 벌써 3일이나 된 것이었다.

이안에게 지금까지 죽은 횟수는 총 6회.

220레벨대였던 이라한이 210레벨대로 떨어지는, 생각만 해도 암울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이안에게 상납한 전설 템만 해도 족히 열 개는 될 것이었다.

이라한이 분노와 억울함으로 부들부들 떨며, 이안에게 말했다.

“이제 이삼일 후면 차원전쟁이 끝난다. 그 때 까지만 불가침조약… 안 되냐?”

하지만 이안이 그런 엉터리 같은 제안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한번만 더 죽여보고 생각할게.”

짧게 대답한 이안은, 곧바로 이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악…!”

그리고 그렇게, 이라한의 7번째 사망이 결정되었다.

[마계 유저 ‘이라한’을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이안은 먼지 쌓인 갑주를 툴툴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이정도 했으면 이제 포기할 때도 됐는 데 말이지.”

이안이 집요하게 이라한을 공략한 이유에는, 이라한에 대한 괘씸함 때문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차원전쟁에서 이라한이라는 강력한 마계 전력을 배제시키기 위함이었다.

“후우, 이정도 했으면 이제 돌아가도 되려나…?”

사실 이안의 차원의 구슬에도 함정이 하나 있었다.

한번 사용하고 나면, 차원마력이 차는 데 필요한 일주일 동안은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이안은 3일 동안 마계에 죽치고 앉아 사냥하며 이라한이 젠(?)되기를 기다렸고, 마을에서 나올 때 마다 사냥(?)했던 것.

하지만 이제는 차원전쟁에 합류하기 위해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7레벨이나 깎였으면, 미쳤다고 다시 기어나오지는 않겠지.”

이안은 상급 귀환석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들었다.

한번 저장해 놓은 부활지점으로는, 차원의 문이 없더라도 상급 귀환석만 가지고 있으면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단지 상급 귀환석이 무지막지하게 비싼 아이템이기에, 어지간해서는 사용하는 유저가 잘 없었을 뿐.

‘상황이 좀 여유로우면 일주일 기다렸다가 포탈 열어서 가겠지만…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는 게 맞겠지.’

이안은 귀환석을 사용했고, 파이로 영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차원전쟁이 종료되기 3일 전의 일이었다.

< (5). 집요한 추격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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