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뒤집힌 판세 -3 >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이안은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고, 이라한과 이안의 전투영상은 어마어마한 조횟수를 기록하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국 서버의 유저들 뿐 아니라, 해외유저들까지 퍼다 나를 정도로, 전투의 이펙트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유저들은 이라한의 강력함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를 일격에 눕힌 이안에게 더욱 열광했고, 해외 서버의 유저들은 이제 막 마계 컨텐츠가 업데이트 되고 있었기에,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은 마계와 인간계를 대표하는 한국 서버의 랭커였고, 해외 서버 유저들의 입장에서 두 랭커의 격돌은 차후 종족선택에 있어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안의 강함도, 이라한의 허무한 패배도 아니었다.
유저들의 관심은, 대체 이안의 공격이 어떻게 이라한을 한방에 죽일 수 있었으며, 또 이안은 무슨 수를 써서 폭마섬에 맞고 버틸 수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마족으로 이미 종족변환을 한 유저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마족 유저들의 게시판은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게시물이 생성되었고, 채팅방도 수백 개 이상 개설되어 있었다.
- 아니, 이라한님 폭마섬 숙련도 몇임? 영상 아무리 돌려봐도 폭마섬 제대로 맞춘 거 맞는데, 이안 어떻게 살아있는 거임?
- 이라한님 폭마섬이 아마… 너님 폭마섬보다 숙련도 3배 정도는 높을 듯.
- 후, 그렇겠지? 근데 이안은 그걸 맞고 어떻게 살았냐니까요?
- 그러니까 오전 내내 그 얘기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결론은 결국 두 가지 정돕니다.
- 두 가지? 뭔데요, 그 두 가지가?
- 우선은 항마력.
- 항마력? 그거 몇 퍼센트 맞춘다고 그 딜이 버텨진다고?
- 한자릿 수 항마력이야 별 의미가 없겠지만, 이안이 만약 항마력을 30~50%까지 맞춘 거라면?
- 으음….
- 사실 우리가 계산해 보기론, 이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합니다. 50%의 항마력으로도 소환술사는 버틸 수 없어야 정상이거든요.
- 그럼 대체 뭔데요?
- 항마력으로 이안이 그 딜을 버티려면 80~90%항마력은 나와야 되는데…. 이건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 ….
- 그러니까 이 안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거고. 두 번째 결론은….
- 결론은?
- 그냥 이안이라서. 이것밖에 답이 없어요. 걍 걔는 카일란 운영자인 듯.
유저들이 80~90% 항마력이 되어야 폭마섬을 버티는 게 가능하다고 계산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항마력을 제외한 이안의 다른 능력치들을 완벽히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다른 소환술사보다 월등한 레벨과 스텟을 가지고 있었으며, 몇 배는 강력한 아이템들로 전신을 도배하고 있었다.
현재 이안의 레벨은 220이 훌쩍 넘은 상태였는데, 일반 유저들은 이안의 레벨을 190후반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다.
거기에 죄다 2초월 정도까지는 강화해놓은 방어구를 착용 중 이었으니, 일반적인 190레벨대 소환술사보다 2배 이상은 단단한 탱킹력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런 오판을 한 상황이니, 거의 90%의 항마력을 가져야만 폭마섬을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었다.
결국 커뮤니티에서는, 그 누구도 이안과 이라한의 전투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을 내지 못했고, 의미 없는 갑론을박만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 와중에, 유저들은 이라한과 이안이 다시 붙기를 희망하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머지않아 리매치가 성사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라한은 자존심과 승부욕이 강한 유저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 * *
북부대륙, 로터스 영지의 영주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 방의 주인인 이안이 전투를 나가기 위한 정비를 하고 있었다.
귀환 첫날 중부대륙에서 어마어마한 전공과 기여도를 올린 이안은, 북부대륙으로 이동해 왔다.
중부대륙의 인간계 유저들은 이제 기세를 탔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버텨낼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제 하루 동안 중부대륙의 인간계 진영은, 무려 대형 필드 두 개 정도를 수복했고, 그로인해 충분히 안정감이 생겼다.
물론 곧 사망 패널티가 끝날 이라한이 중부대륙에 다시 가세한다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낙관할 수 만은 없었다.
이안에게 당하기는 했지만 이라한은 여전히 강했고, 이안을 제외하면 이라한을 상대할 만한 유저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리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이안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놈은 억울해서라도 날 잡으러 북부로 오겠지. 그리고 이라한이 없는 중부대륙의 마계 전력이라면… 내가 없어도 충분할 거야.’
이안은 중부대륙과 북동부 전장을 오가며 전력을 보탤 생각이었다.
북서부에 하나의 전장이 더 있기는 했지만, 그곳까지 챙기는 것은 이안으로서도 무리였다.
중부대륙에 있는, 합쳐진 두 개의 전장과 북동부의 전장만 승리로 이끌어도, 결국 전쟁은 인간계의 승리로 끝날 것이었다.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조심스럽게 손질하며 앞으로 진행될 전쟁의 양상을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남은 날짜는 5일 정도…. 그때까지 지켜내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이안의 시선이 옆에 있는 탁자를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영롱한 오색 빛이 감도는 보패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안이 고생해서 구해온 주병신보였다.
‘이건 아무래도 마지막 날에 쓰는 게 최선이겠지…?’
마족 유저들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차원전쟁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강력한 마수들과 마족 npc들이 등장할 게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병신보는, 최대한 아꼈다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용해야 가장 큰 효과를 볼 것이었다.
주병신보로 불러올 수 있은 ‘신의 군대’가 얼마나 강한 전력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의 히든카드가 되어줄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안의 시선이, 주병신보의 바로 옆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주병신보 만큼이나 영롱한 오색빛이 꿈틀대고 있는 보주, ‘여의주’가 있었다.
이안은 여의주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용신이라는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간 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어느 방향으로든 결론이 날 수 밖에 없겠지.’
지금까지 카일란이 보여준 세계관, 그리고 시나리오의 전개 상, 차원전쟁의 마지막 날이 되기 전에는 용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리고 그 시점이 최대한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안이었다.
‘희망고문은 그만 하고… 여의주를 회수해 갈 거면 회수해 가던가, 봉인을 풀어줄 거면 풀어 주던가.’
한 차례 툴툴거린 이안은, 장비를 챙겨 문 밖으로 나섰다.
현재, 중부대륙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한 북부대륙을 캐어하려면, 더욱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이었다.
* * *
위이잉-!
마계 100구역.
그리고 그 곳의 중심에 존재하는 분노의 도시.
도시의 광장 한복판에서, 붉은 빛이 솟아 오르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다름아닌, 이안에게 당해 사망했던 이라한이었다.
이라한이 사망 패널티 24시간이 지나 다시 접속한 것이었다.
“후우.”
낮게 심호흡을 한 그는, 들끓는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놈이… 죽지 않았다는 말이지.”
사망 패널티로 인해 접속하지 못하는 동안, 이라한은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과 이안의 전투결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적잖은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무승부라고 생각했던 대결의 결과가, 이안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들을 믿을 수 없었지만,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커뮤니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자신과 이안의 전투영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이안의 전투영상은 발에 치일 정도로 수도 없이 퍼져 있었으며, 그것이 보일 때 마다 이라한의 분노게이지는 더욱 상승했다.
무승부인줄 알았을 때도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는데, 실상은 이안의 압도적인 승리였다니.
게다가 흔한 커뮤니티의 어그로꾼들은, 그동안 이라한의 전투력이 부풀려져 있었다며 그를 조롱하기도 했다.
커뮤니티에서 본 게시물들 중,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한 문장이 있었다.
[근데 이러한 그거, 지금까지 대체 왜 못잡은 거냐? 소환술사가 소환수도 안 쓰고 잡았는데…ㅋㅋㅋ 소환수 안쓰는 소환술사랑은 내가 싸워도 이기겠다.]
이라한은 정말 치욕적인 기분이었다.
저 문장을 보는 순간, 이안이 소환술사였고, 소환술사의 주 전력인 소환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방심했어. 놈에게 숨겨둔 한 수 쯤은 있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지.”
이라한은 자신이 이안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자신보다 위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폭마섬과 같은 단일기에 대처할 수 있는 어떤 스킬 같은 게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미친 무기…. 그걸 조심해야 겠어.”
이라한은 다혈질이기는 했지만, 앞뒤 분간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단 한순간이라도, 공식랭킹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라한은 사망 패널티로 접속하지 못하는 동안 이안에 대한 정보들을 꼼꼼히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이안의 무기가 4초월 무기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단 한방에 말도 안 되는 데미지가 들어온 것을 수긍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력을 가졌다 해도… 맞아주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 어떤 변수를 가지고 와도, 이안이 자신보다 민첩성 스텟이 높을 수는 없었다.
이라한은 그 이점을 이용해, 천천히 이안을 무너트릴 계획이었다.
‘이제 방심은 없다. 단 한방도 맞지 않고 천천히 농락해 주도록 하지.’
등에 교차되어 꼽혀 있던 쌍검을 뽑아 든 이라한은, 차원이동 포탈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차원전쟁이 시작한지 두 시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고, 한 시라도 빨리 이안에게 찾아가 설욕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이라한은, 이안이 오늘의 전투에서 중부대륙이 아닌 북동부 지역으로 참전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북부대륙으로 도망 가셨겠다.’
이라한이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따라가 주도록 하지.’
이안은 생각할수록 얄미운 존재였다.
이라한은, 이안이 꼼수를 사용해 자신을 한 번 이겨놓고, 자신의 주 전쟁터가 아닌 북부 전쟁터로 몸을 피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 * *
“이안님, 기다렸어요.”
전장 한복판에서 마주친 서희의 인사에, 이안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북부대륙에는 랭커가 부족해서 정말 힘드셨겠어요.”
북부대륙의 전쟁터는 중부대륙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중부대륙은 마계의 진영도 어느새 30%가 넘는 제법 많은 비율의 병력이 유저들로 바뀌어 있었다.
전쟁의 구도가 PVE에서 PVP로 거의 넘어오는 분위기였던 것.
하지만 북부대륙의 마계진영은, 아직까지 마수들과 npc들 위주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숫자가 열세인 마계 유저들이, 전부 중부대륙에 모여 힘을 합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부대륙이 더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마계 진영의 유저들이 없는 만큼, 인간계 진영에도 유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유저들과 npc로 구성된 루스펠 제국의 토벌대 병력.
이들이 북부대륙을 겨우겨우 지켜오고 있었다.
퍼엉-
날아드는 마기 화살을 쉴드로 막아낸 서희가, 이안을 향해 말했다.
“이안님 가시고… 훈이님까지 가셨을 땐 진짜 좀 암담했죠.”
이안은 계속해서 적들을 상대하며, 한편으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북부대륙의 소중한 전력이었던 훈이까지 퀘스트를 위해 일주일 빼간 것은 조금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하하… 뭐, 그래도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서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라한을 피해서 도망오신 건 아니구요?”
터엉-!
달려드는 마수 한 마리를 처치한 이안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피식 웃었다.
“도망이라구요?”
그런데 그 때.
서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에 대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럼, 도망이 아닌가, 이안?”
순간 이안과 서희의 시선이 곧바로 그 곳을 향했고.
“맙소사.”
서희는 창백한 표정이 되었으며, 주변 인간계 진영의 유저들 또한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여유 넘치는 표정을 한 것은, 오로지 이안 한 사람 뿐이었다.
이안이 손을 들어보이며 이라한에게 말했다.
“여, 하루 잘 쉬고 왔냐?”
< (4). 뒤집힌 판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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