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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294화 (317/1,027)

< (4). 뒤집힌 판세 -1 >

이안의 압도적인 강력함은, 전장의 분위기 자체를 뒤집어 놓았다.

방어적인 진형을 고수하던 인간계 진영의 유저들도, 점점 더 자신감 있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약했던 전력이 갑자기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고, 우왕좌왕하던 마족들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안 또한 처음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날뛸 수는 없었기에, 조금 후방으로 빠져 있었다.

적들에게 ‘이안의 전력’에 대한 인지가 어느 정도 생긴 이상, 적진 한복판을 휘젓는 것은 이제 위험했다.

후방으로 빠진 이안은 이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전장 전체를 통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미르나 피올란, 헤르스와 훈이 등등의 랭커들이 이안의 메시지를 전달받아 각자의 구역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안은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며, 밀린다 싶은 쪽에 힘을 실어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미세하지만 조금씩 승기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어.’

지금의 차원전쟁은, 과거 중부대륙의 대규모 전투보다도 더 큰 규모의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이안 혼자서 한쪽을 아무리 휘집어 놓아도, 다른 곳이 다 뚫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후방에서 지켜보다가, 마족 랭커들이 보이면 가서 끊어줘야겠어.’

이안의 시선은 쉬지 않고 전장 전체를 훑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핀’의 존재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쾅- 콰쾅-!

여기저기서 마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이 폭발음의 대부분은, 마족의 마법사 클래스인 ‘마군(魔君)’ 유저들이 사용하는 ‘마기폭발’이라는 스킬이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마기폭발은 마족 마법사들의 가장 기본적인 스킬이었지만, 소모값이 무척이나 적었고, 순수한 ‘마기’량에 비례하는 고정피해를 입히는 공격스킬이었다.

기본 데미지는 7천~1만 정도로 큰 수준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고효율’의 스킬.

게다가 항마력이 0에 수렴하는 인간계 유저들에게는, 그 7천~1만이라는 수치가 거의 깎이지 않고 고스란히 들어오기 때문에 제법 피해가 있었다.

이안은 전장에 난무하는 마기폭발 스킬을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저게 인간계 진영에 너무 압박이네. 방법이 없을까?’

이안의 항마력이라면 2~3천 정도의 피해밖에 들어오지 않아서 전혀 무섭지 않겠지만, 그 세 배가 넘는 고정피해가 연달아 들어오는 다른 유저들에게는,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컨트롤이 좋아 보이는 마군 클래스부터 하나씩 제거해야겠어.’

이안은 핀을 조종해, 전장의 허공에서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리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고지대로 움직인 뒤, 인벤토리에서 전설등급의 활 한 자루를 꺼내었다.

전장 깊숙한 곳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마군 클래스의 유저들은 원거리 공격이 아니면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어디 바위 위에라도 내려서 활을 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활을 쏠 만한 각이 나오지 않았다.

‘내 궁술이 그동안 녹슬지는 않았겠지?’

왼손에 활대를 쥔 이안은, 미스릴 화살이 가득 담겨 있는 활통을 꺼내어 등에 메었다.

이안이 화살을 시위에 걸며 씨익 웃었다.

“돈지랄을 한번 시작해 볼까?”

미스릴 화살은 개당 1500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한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너무나도 비싼 가격.

랭커 궁수들조차도 무척이나 비싸서 잘 추천하지 않는 화살이었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백 발 정도 구매하는데 15만 골드 정도가 드는 셈이었는데, 이안은 충분히 쓸 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안이라고 해도 마구잡이로 난사해서 수천 발씩 소모하면 부담이 될 가격이었지만, 그것은 이안의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공격력 +15%에, 방어력, 마법방어력 관통 옵션까지 달린 화살인데… 게다가 좀 두루뭉술하지만 마족과 언데드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는 옵션도 달려 있고.’

이안은 대략 20분 정도 후방으로 빠져 있었기에, 어그로가 많이 빠져있는 상황이었다.

핀의 등 위에 올려 져 있는 안장을 양 발로 꽉 눌러 몸을 고정시킨 이안은, 첫 번째 타겟을 향해 천천히 활 시위를 당겼다.

‘한 발에 한 놈씩…!’

이안은 절반 이하의 생명력이 남아있는 유저들만을 조준했다.

화살을 맞고 죽지 않는다면, 피격 대상이 이안으로부터 받은 공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어그로가 쏠릴 것이었고, 그러면 마음 놓고 저격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

온 정신을 집중해 타겟을 조준한 이안은, 망설임 없이 화살을 놓았다.

피이잉-!

이안의 활 시위를 떠난 미스릴 화살이, 공간을 찢으며 마기폭발을 캐스팅중이던 마군 유저에게 날아갔다.

푸욱-!

왼쪽 가슴으로 빨려 들어가듯 틀어박히는 미스릴 화살!

[유저 ‘밀리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미스릴 화살의 공격력 증폭 효과로 인해, 데미지가 15%만큼 추가로 들어갑니다.]

[‘마족’종족의 유저를 공격하여 추가로 9%만큼의 신성 피해를 입힙니다.]

약점포착으로 표시된 붉은 지점에 정확히 화살을 박아 넣은 이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케이! 이 맛에 활질 하는 거지. 미스릴 화살 생각보다 더 성능이 좋은데?’

마법을 캐스팅 중이던 마족 유저는 영문도 모른 채 사망해 버렸고, 이안의 저격은 계속되었다.

전장은 난전에 가까울 정도로 정신없는 환경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허공에서 날아든 화살의 정체에 대해 신경쓸 수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공격당한 것도 아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피잉- 푸슉-!

피이잉-!

이안은 활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안이라고 움직이는 상대를 전부 명중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일격에 사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아직 위치가 들통 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삼십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안이 가져온 100개의 미스릴 화살이 거의 다 떨어져갈 즈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열 진형 재정비!”

“이라한이다! 조심해!”

전투가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등장하지 않던 이라한이, 드디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이안은, 망설임 없이 활 시위를 당겼다.

이안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참교육을 한번 시작해 볼까?’

남은 화살은 열두 발 정도.

이안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열두 발의 화살을 전부 쏘아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라한에게 화살을 쏘는 순간 위치가 드러날 테고, 화살만으로 놈을 죽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핑- 피피핑-!

이안은 엄청난 속도로 속사를 시작했다.

첫 번째 화살이 이라한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세 번째 화살을 쏘아낼 정도였으니, 거의 묘기를 보는 수준이었다.

*          *          *

이라한은 몸이 달아있는 상태였다.

‘어제 새벽까지 무리해서 사냥을 하는 게 아니었어.’

그는 차원전쟁이 끝나고 나면, 저녁부터 새벽까지 항상 마계를 돌며 사냥했다.

마기를 1이라도 더 파밍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제는 너무 늦게까지 사냥하는 바람에 늦잠을 자 버렸고, 그래서 차원전쟁 전투 시간에 1시간이나 늦은 것이었다.

“이제 오늘 하루 풀타임이면 정말 노블레스 승급 조건 전부 충족이다.”

일전에 받았던 인간 유저 사냥 퀘스트는 이미 끝냈지만, 추가로 공헌도 퀘스트가 발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만 끝내면 노블레스로 승급시켜주겠다는 마왕의 확답을 받은 상태였고, 그렇기에 이라한은 마음이 급했다.

전장에 뛰어들자마자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최전방에서 날뛰기 시작한 이라한.

하지만 곧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뭐지? 언제부터 이 머저리들이 이렇게 체계가 생긴 거지?’

원래 자신이 달려들면 혼비백산하며 붕괴되었던 진형이, 제법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이라한을 견제하고 있었던 것.

몇몇의 유저가 이라한의 공격에 사망하기는 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그런데 그 때, 이라한의 어깻죽지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푸욱-!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어깨를 관통한 것이었다.

[유저 ‘이안’의 공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77940만큼 감소합니다.]

이라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뭐야? 7만이라고?’

어지간한 근접공격에 격중당했을 때 만큼이나 강력한 피해량을 확인한 이라한은, 고개를 돌려 화살의 근원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연달아 두 발의 화살이 이라한을 향해 추가로 날아들었다.

쐐애액- 퍽-!

이라한은 한 발의 화살을 피해냈지만, 나머지 한 발을 허리춤에 추가로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야, 시스템 메시지에 떠 있는 이안이라는 유저의 아이디를 확인했다.

‘이안? 이 미친놈이 이제 궁수 코스프레라도 하는 거야 뭐야?’

이라한은 ‘이안’이라는 이름이 은근히 반가웠다.

중부대륙의 전투에서 루스펠 제국의 유저들 중, 유일하게 자신과 비등하게 싸웠던 유저가 바로 이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반가움은 호적수를 만난 데 대한 반가움이 아니었다.

과거에 비등했던 유저를, 이제는 힘으로 찍어 눌러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반가움이었다.

이라한은 추가로 날아드는 화살들을 빠르게 검으로 쳐내었다.

깡- 까가강-!

하지만 이안의 속사는 일반적인 속사보다 1.3~1.5배 가량 빠른 속도였고, 이라한은 추가로 몇 발의 화살을 더 허용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 이라한은, 사자후 스킬을 사용해 크게 소리쳤다.

“이안, 이 쥐새끼 같은 놈! 숨어서 활이나 쏠 셈이냐!”

그리고 이라한의 그 사자후에, 다시금 전장의 모든 이목이 이안과 이라한에게 집중되었다.

“뭐야, 이라한이랑 이안이 싸우는 거야?”

“정말? 제기랄, 이거 전투할 때가 아닌데, 둘이 싸우는 거 구경해야 하는데.”

“멍청아 있다가 밤에 티비로 재방송 보면 되잖아. 일단 눈앞에 있는 마족들에 집중하라고.”

많은 유저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이라한을 응시했고, 이안이 이라한의 도발에 응수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이안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휘이잉-!

허공에 커다란 바람소리가 일더니, 커다란 그리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핀은 빠르게 이라한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고, 그 위에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러자 그 위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

그의 정체는 물론 이안이었다.

이라한이 자신의 쌍수검을 휘휘 돌리며 이안을 향해 이죽댔다.

“등장이 너무 요란한 거 아닌가, 이안?”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쓸 데 없이 도발하지 말고 덤비기나 해. 마족이 된 걸 후회하게 해 주지.”

어느새 무기를 창으로 바꿔 든 이안은, 이라한에게 창극을 겨누며 히죽 히죽 웃었고, 그것을 본 이라한은 곧바로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지난번처럼 봐주는 일은 없을 거다, 이놈!”

“중부대륙에서 싸우다 물러났던 얘기를 하는 거라면… 그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이안은 단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이라한의 신경을 지속적으로 건드렸다.

그리고 양 진영의 최고 랭커인 두 유저가, 전장의 한복판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과 이라한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전쟁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둘의 전투가 궁금하지 않은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덕분에 마치 약속하기라도 한 듯, 모두가 싸움을 중단한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유저들 뿐 아니라 양 진영의 npc들도 그러한 움직임에 동참했다는 부분이었다.

양 진영은 각각 20m정도씩 뒤로 물러섰고, 두 진영의 사이에 모세의 기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넓은 공간이 생겼다.

깡- 까강-!

그리고 전장에는, 이안과 이라한의 무기가 부대끼는 소리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4). 뒤집힌 판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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