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용의 제단 -2 >
이안은 살짝 당황했다.
‘뭐야, 벌써 가디언이 도착한 거야?’
하지만 다행히, 이안의 짐작과는 다르게 그는 가디언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명체의 모습을 확인한 카카가 말했다.
“용족이다, 주인아!”
“용족?”
카카는 괴 생명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듯 했지만,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지금 이안에게 허비할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코우? 무슨 거대 뱀장어처럼 생겼잖아?’
이안은 놈의 레벨을 확인한 뒤,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영웅등급, 게다가 420레벨… 잡고 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아마 이 놈을 사냥하다가는, 남은 시간이 전부 소진되고 말 것이었다.
아니, 남은 시간 안에 잡을 수 있다는 보장 조차도 없었으며, 어쩌면 지금 전력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일지도 몰랐다.
이안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카르세우스와 카카도 이안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젠장, 할리만 소환할 수 있었어도 세 배는 쉬웠을 텐데.’
할리의 순발력 강화 고유능력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환 해제했던 소환수들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10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쾅- 콰쾅-!
이안이 방 하나를 통과할 때 마다, 여지없이 바닥을 뚫고 한 마리의 괴수가 튀어나왔다.
이안은 이런 미친 난이도의 던전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방 하나 지날 때 마다 네임드급 몬스터가 하나씩 나와?’
레벨 대는 350~450까지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위협적으로 보이는 몬스터 십 수 마리가 이안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체로 느리고 커다란 몬스터들이어서, 이안이 도주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었다.
“카르세우스, 아직 못 찾겠어?”
“이제 어둠의 기운이 멀어져서 그런지, 조금씩 윤곽이 보인다, 주인.”
다급한 상황 탓에 대상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찾는 대상이 여의주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카르세우스는 앞장서서 빠르게 달렸고, 이안 또한 젖 먹던 힘까지 다 해서 달렸다.
소환해제 하기 전에 사용했던 핀의 순발력 버프가 아직 남아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안은 시야 상단에 떠올라 있는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제기랄, 1분 10초?’
그런데 그 때, 앞장서 달리던 카르세우스가, 좌측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다, 주인!”
카르세우스가 가리킨 곳에는, 강력한 반투명한 쉴드 같은 것이 쳐 져 있었고, 그 안쪽에는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철창이 있었다.
쾅-!
카르세우스는 망설임 없이 실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안 또한 정령왕의 심판을 휘둘러 실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실드의 내구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보호방벽의 내구도가 198024만큼 감소합니다.]
[보호방벽의 내구도가 229811만큼 감소합니다.]
:
:
[보호방벽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이안은 보호방벽을 뚫고 들어가서 거칠게 철창을 뜯어 내었다.
투툭-!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 함정이나 트랩이 설치되어 있을 확률도 높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쓸 만큼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시간 - 00 : 00 : 37]
‘어디냐, 제발…!’
이안이 들어온 안쪽에는, 수십 개도 족히 넘어 보이는 금빛 상자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벽에는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장비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고, 구석 한쪽에는 금괴도 쌓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안의 눈에는,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안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여의주 하나 뿐이었다.
‘죽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고, 여의주도 못 찾고 죽으면 홧병이 나서 쓰러져 버릴 거야.’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1초 1초 줄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애간장이 녹을 것 같았지만, 이안은 침착하게 창고를 뒤졌다.
보물창고의 입구에선, 카르세우스가 본체로 현신하여 몬스터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역부족이었기에, 이미 카르세우스도 생명력이 다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때, 반대편에서 보물더미를 뒤지던 카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주인아! 저기!!”
이안은 미친 듯이 내달렸고, 카카가 가리킨 곳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성인 남성의 키 만한 단상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위에 새파란 구슬이 올려져 있었다.
구슬의 내부에는 오색으로 빛나는 광채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이안은 그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주병신보를 휘감고 있던 그 광채와 같아…!’
이안은 그대로 내달려 구슬을 움켜 쥐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이었던 카르세우스를 소환해제 하였다.
“제발!”
이안은 간절함을 담아 소리쳤고, 그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여의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안은 순간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극적인 목표달성이었기 때문.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바로 다음 순간, 제단 전체가 굉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쿠릉- 쿠르르-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제한시간이 전부 소요되었습니다.]
[던전 클리어에 실패하셨습니다.]
[분노한 용신의 혼백이 강림합니다.]
카르세우스가 소환해제 되자, 좁은 입구를 부수고 이안을 향해 달려드는 수 많은 용족(龍族)들.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 새파란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콰앙-!
[감히… 인간이 용신의 보물을 탐하다니….]
묵직하고 칼칼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안이 어떻게 해 볼 새도 없이 모든 생명력이 빠르게 빠져 나갔다.
[내 손에 죽음을 영광으로 알라.]
그 말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이안의 시야가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더러운 기분… 오랜만인데.’
하지만 이안의 중얼거림과는 반대로, 그의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여의주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여의주가 계정귀속 아이템이 아니라면 죽어서 드랍될 확률도 있긴 한데…. 설마 그렇진 않겠지?’
일반적으로 전설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70% 이상이 계정귀속 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여의주는 당연히 전설등급 이상의 아이템일 것이었고, 더해서 거래가 될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으니 계정귀속일 것임이 확실했다.
이안은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캡슐을 열고 나왔다.
“휘유, 오랜만에 하루 푹 쉴 수 있겠네.”
이안은 창 밖을 한번 본 뒤 시계를 확인했다.
시각은 새벽 4시가 넘은 한밤중이었다.
“일단 푹 자고, 내일 낮에는 오랜만에 하린이랑 데이트나 해야겠어.”
이안은 빠르게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 좁은 원룸 안에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다들 빨리 도착했네요?”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한 레비아는, 공터에 모여 있는 인원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에 바위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던 레미르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후, 이런 야심한 새벽시간에 모이라고 하다니, 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헤르스가 하품을 쩍 쩍 하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이안 놈이 퀘스트 하다가 사망했다는데….”
훈이도 투덜댔다.
“나 이 형 사망패널티 받는거 처음 봤는데… 하필 이렇게 중요할 때 죽고 난리야.”
원래 이안이 차원의 문을 열어주기로 한 시점은, 13시간 정도 전인 오후 3시였다.
한데 이안이 전날 새벽에 사망해 버림으로 인해 24시간동안 접속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덕분에 약속시간이 12시간이나 밀려버린 것이었다.
12시간 밀린 시각은 꼭두새벽이었지만,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인간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시간에 모인 것이었다.
차원전쟁은 해가 떠야 시작되지만, 그 전에 전투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이 대참사(?)의 주범인 이안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푸드득- 푸드득-!
이안은 핀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 약속장소로 올 수 있었다.
마우리아 제국 황제로부터 인정받고, 거기에 크샤트리아의 작위를 얻은 귀족인 이안을 건드릴 npc는 아무도 없었기에, 이안은 편히 허공을 가로질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들 모였네요. 아직 안 오신 분은 없는 거죠?”
이안의 말에 레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이안님.”
훈이와 헤르스, 그리고 레미르가 핀잔을 주었지만, 이안은 실실 웃을 뿐이었다.
지금 이안의 기분은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여의주…! 드디어 여의주를 얻었어! 으흐흐!’
이안은 여의주의 정보창을 다시 한번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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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주(如意珠) -
분류 - 잡화
등급 - 신화
정확히 누구에 의해 만들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보주(寶珠)이다.
여의주는 전륜성왕의 7가지 보배중 하나이자, 용족의 힘을 담은 신비로운 구슬이며, 그 어떤 보물과 비견해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신령스런 물건이다.
용족(龍族)이 이 보물을 손에 넣으면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으며, 그 격(格)이 한 단계 상승된다.
또, 군주(君主)가 이 보물을 손에 넣으면, 올바른 길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여의주는 광명을 비추는 보주이다.
* 매력과 통솔력 능력치를 15%만큼 상승시켜 준다. (봉인)
* 모든 마법 피해를 17%만큼 무효화시킨다. (봉인)
* 지능 능력치를 30%만큼 상승시켜 준다.
* 지니고 있을 시, 용족들과의 친밀도를 10만큼 상승시켜준다.
*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이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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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흐… 신화 등급에, 붙어있는 옵션이 아주 기가 막히잖아?’
특히나 봉인되어있는 첫 번째 옵션과 두 번째 옵션은, 뿍뿍이에게 여의주를 주기 아까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옵션이었다.
이안은 흥얼거리며 차원의 구슬을 꺼내들었다.
“다들 준비는 되셨죠?”
“오케이.”
“빨리 가자고, 난 이동한 다음에 잠 좀 더 자고 올 거야.”
“빨리, 빨리!”
이안은 차원의 구슬의 차원마력 충전량을 확인했다.
‘오케이, 풀차징 되어있고.’
그리고 이안이 구슬에 마나를 불어넣자, 구슬이 보랏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차원의 구슬’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이동할 좌표를 선택해 주십시오.]
이안은 파이로 영지의 영주성을 선택했고,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중부대륙 (1275, 1982) 위치를 선택하셨습니다.]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이안의 앞에 시커먼 공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은 잠시 후 커다란 차원의 문을 만들어 내었다.
“가시죠.”
가장 먼저 이안이 차원의 문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인원들도 곧바로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보름이 넘는 긴 여정을 마친 이안이
드디어 중부대륙으로 귀환했다.
< (2). 용의 제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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