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용의 제단 -1 >
* * *
원래 이안의 전투스타일은, 무척이나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항상 사냥할 수 있는 최고레벨의 사냥터에서 사냥하기에, 높은 리스크를 즐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례로, 이안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데미지 계산이었다.
일반적인 유저들은 전투에 임할 때,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내가 입게 될 피해에 대해, 대략적인 감으로 판단한다.
저 기술을 맞았을 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렇다면 얼마정도의 생명력이 남을지.
이런 것들에 대해 대체로 감에 의존한다는 말이었다.
샤크란이나 레미르, 이라한 등의 뛰어난 실력을 가진 랭커들 또한 거의 그런 편이었다.
그들은 단지, 일반적인 유저들보다 그 ‘감’이라는 것이 몇 배로 뛰어날 뿐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달랐다.
그는 처음 들어서는 사냥터에서는 극도로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플레이한다.
이안은 적 몬스터에게 맞았을 때의 피해량을 철저히 수치로 기억하며, 실제 전투에서 그러한 정보들을 전부 활용했다.
또한 무리 지어있는 적이라면, 한 개체씩 유인해서 공방을 교환해 보며, 그의 전투패턴과 전투 능력치 정도를 파악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런 꼼꼼하고 변태스러운 플레이 성향이, 지금의 이안을 있게 해 준 것이기도 했다.
자잘한 전투효율에서 보는 미세한 이득들이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기 시작하면, 엄청난 차이가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안은, 원래의 플레이 스타일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사전정보조차 하나도 없는 ‘타임어택’던전은, 이안에게 공격적이고 위험한 플레이를 강요했다.
“카카, 너는 계속 20m정도 앞서 움직여. 일정한 속도로. 절대로 멈추면 안 돼. 알겠지?”
“알겠다 주인아.”
이안이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전투전력은, 핀, 그리고 카르세우스 뿐이었다.
그마저도 카르세우스는, 본체로 현신하기에 공간이 너무 좁아 비교적 약한 인간 형태로 싸우는 중이었고, 핀 또한 좁은 공간 때문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좁은 전투 환경은 오히려 이안에게 득이 되었다.
‘오직 앞만 뚫고 나간다. 뒤는 신경 쓸 필요 없어.’
통로는 핀이 날개를 펼치기도 힘들 정도로 좁았다.
그렇기에 핀은 금방 데미지가 누적되었고, 이안은 핀마저 소환해제 해 버렸다.
핀을 지키면서 싸운다면 더 안정적으로 전투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동시간이 지체될 수 밖에 없다.
‘최대한 빠르게, 카르세우스만 데리고 뚫어야 해.’
깡- 까강-!
이안은 삼지창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어인(魚人)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던전 내부에 있는 적들의 레벨이, 이안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었다.
‘최소 300대 후반 레벨을 생각했는데….’
몬스터들의 레벨은 270~300정도.
이안은 필드 난이도에 비해 던전 몬스터들의 레벨이 낮은 이유가, 시간 내에 클리어 해야 하는 ‘타임어택 던전’이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카르세우스, 적당히 길이 열리면 바로 앞으로 나아가. 전부 죽이고 움직일 시간은 없다.”
이안의 말에 카르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주인. 그렇지 않아도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디언들의 기운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이안은 모든 공격스킬을 ‘상태이상’스킬들 위주로 세팅했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전류증식 스킬부터 시작해서, 상태이상 옵션이 달린 장비도 바꿔 착용했다.
이안의 목적은 적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하층부로 내려가는 입구에 도달한 이안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문을 뻥 하고 차 버렸다.
[용의 제단 9층에 입장하셨습니다.]
[남은 시간 - 00 : 09 : 28 ]
이안이 이를 악물었다.
‘퀘스트에 실패할 땐 실패하더라도, 여의주만큼은 무조건 얻어야 해.’
처음 이안이 던전에 진입했을 때, 그곳은 용의 제단 25층이었다.
이안은 19분이 남았을 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면 40초 정도에 한 개 층을 돌파한 셈.
최하층까지 가기 위해서는 총 9개의 층이 남았으니 단순히 생각하기에는 제법 시간적 여유가 있는 듯도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용의 제단은, 하층부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맵이 넓어지는 구조였으니까.
그 말인 즉, 밑으로 내려갈수록 돌파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였다.
‘빠듯하다. 괜히 쿼드라S 난이도가 아니야.’
이안은 숨이 가빠왔지만,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차원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조각 한 개를 눈 앞에 두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너무도 짧게 느껴지는 20분.
타임어택 던전을 돌파하는 그 20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느낄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퀘스트를 진행 중인 이안에게만큼은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20분이 마치 20시간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한 사람 있었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퇴근한 새벽 4시의 LB사 본사.
모니터링실에 홀로 앉은 나지찬은, 식은땀마저 줄줄 흘리며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초조한 표정이었고, 거의 화면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 목을 쭉 빼고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길, 이건 아니야. 이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라고.”
나지찬은 항상, 여유 있게(?) 이안의 영상을 시청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마치 영화 관람하듯 이안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번에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기획팀인 내가 모르는 퀘스트가 발동했어.’
이안은 나지찬의 예측대로 거의 움직였다.
퀘스트 진행속도가 기가 막힐 정도로 빨랐을지언정, 용의 제단까지 가는 과정은 나지찬이 예측했던 대로였다.
심지어 핀의 등에 올라 하층부의 숨겨진 입구를 찾았던 것도, 나지찬에게는 어느 정도는 예측범위 안이었다.
‘하지만 타임어택 던전은… 내 기억에 전혀 존재하지 않아.’
원래 하층부의 숨겨진 입구는, 여의주와 관련된 소환술사 퀘스트를 클리어하다 보면 알게 되는 ‘지름길’과 같은 역할이었다.
유저가 NPC에게 얻은 정보를 통해 찾아낼 수 있게 설계된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일련의 과정 없이, 게이머로서의 직감과 추론, 그리고 ‘운’으로 그 지름길까지 찾아버렸다.
여기까지 본 나지찬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는 이안의 팬이었고, 그가 아는 이안의 능력이라면, 지름길을 찾은 이상 여의주는 무리 없이 손에 넣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컨텐츠가 빨리 소모된다면 일은 늘어나겠지만, 나지찬은 기쁜 마음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숨겨진 ‘지름길’에 들어선 순간, 나지찬도 알지 못하는 이벤트가 발동해 버렸다.
‘원래 가디언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어떤 이벤트도 발동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리고 명석한 나지찬은, 몇 분 정도가 지나자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추측해 낼 수 있었다.
‘이건 이안이 여의주를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다. 아마 몇몇 간부들이 단독으로 개발팀에 지시해서 임시로 만들어낸 이벤트겠지. 그러니까 이런 미친 짓을 해 놨겠지. 그리고 이안의 역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
하지만 여기까지라면 문제될 게 없었다.
새로운 이벤트를 급조해서라도 이안을 저지하고 싶었을 개발팀의 마음을, 나지찬은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문제는 이 타임어택 던전이 급조되었기 때문에,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안이 그렇게 움직일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정말 결계를 파괴하는 데 성공하고 차원의 문으로 들어간다면….’
차원의 문이 열리는 순간, 카일란 내부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말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지금 열려서는 안 되는 차원의 문이었으니까.
하지만 개발팀이나 상부에서는, 정확한 기획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이안이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안이 여의주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개발이 끝난 시스템 구조를 짧은 시간 내에 완벽히 바꾸는 것은 무리일 것이었고, 개발팀은 기존의 시스템을 살짝 비틀어서 난이도를 올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일 터였다.
그것이 가진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리라.
나지찬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스크린 앞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제발 이안. 차원의 문에는 관심 끄고 여의주를 찾아줘. 부탁이야.’
나지찬은 스크린 구석에 떠 있는 남은 시간과, 이안의 진행 속도를 계속해서 대조해 보았다.
그리고 2분여의 시간이 남았을 때.
쿠쿵- 쿵!
최하층을 막고 있던 석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오픈되었다.
* * *
‘남은 시간은 2분 20초.’
최하층에 들어선 이안은, 빠르게 맵의 구조를 살폈다.
구불구불한 통로가 끝 없이 이어져 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최하층은 수 많은 방들이 바둑판처럼 쪼개져 있는 구조였다.
아직 맵을 전부 밝히지 못한 이안으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눈 앞에 보이는 정보만으로도 어느 정도 추론은 가능했다.
“제길, 어느 쪽으로 가야하지?”
이안이 처음 들어선 방에는 다음 방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의 문은 좌측으로 나 있었으며, 다른 하나의 문은 정면으로 나 있었다.
이안의 어깨 위에서 날던 카카가 불쑥 앞으로 튀어나오며 말했다.
“주인아 저 쪽에서 어둠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둠의 기운?”
“그렇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본 기운 중에 가장 강렬한 어둠이다.”
이안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둠? 어둠이라고…? 여의주는 어둠의 기운과는 관련이 없을 텐데….’
이안은 그것이 타임어택 던전의 클리어 조건인 ‘차원의 문’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이안이 카르세우스를 향해 물었다.
“카르세우스, 아직도 여의주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카르세우스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다, 주인. 서쪽에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사이한 기운이 너무 강력해서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사이한 기운이란, 카카가 말했던 어둠의 기운을 말하는 것일 터.
이안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서쪽으로 움직인다.”
그에 카카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은 북쪽이다, 주인아. 아마 그 쪽에 결계가 있을 것이고 그걸 파괴하지 못하면 주인은 살아 나갈 수 없을 거다.”
이안은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대꾸했다.
“한번 쯤 죽더라도, 지금은 여의주가 더 중요해, 카카. 잔말 말고 따라와.”
카일란 세계관 안의 NPC들은, 유저들의 죽음이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소환수나 가신들이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시스템이니, 그것을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었다.
“쳇, 그래도 죽기는 싫은데….”
카카는 구시렁거리며 이안의 뒤를 따랐고, 카르세우스는 묵묵히 이안의 앞에서 길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쾅- 콰콰쾅-!
이안의 눈 앞에서 멀쩡하던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피해!”
이안과 카르세우스는 양 옆으로 갈라지며 바위파편이 튀는 것을 피했고, 그 안에서는 처음 보는 거대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기어나오고 있었다.
< (2). 용의 제단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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