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용의 대지 -3 >
* * *
“이곳의 드레이크들은 내가 알던 드레이크들과는 다른 것 같은데….”
용의 대지는 넓었다.
그 말인 즉, 도착했다고 해서 곧바로 용의 제단에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이안은, 거의 반나절을 소모해서 필드를 뚫고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이안이 싸워야 할 상대들은, 350레벨도 넘는 드레이크들이었다.
카르세우스가 짧게 대답했다.
“용의 대지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주인. 이곳은 용신의 축복을 받은 대지이고, 여기서 힘을 쌓은 드레이크들은, 깨달음을 얻어 드래곤이 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군, 어쩐지 지능 수준이 남다른 것 같았어. 활용하는 스킬들 중에 마법피해를 주는 능력들도 제법 보였고.”
드레이크는 무척이나 광포한 맹수다.
이들의 물리적 전투 능력은 드래곤에 비견될 정도로 강했으며, 드래곤 브레스 만큼은 아니지만, 브레스도 제법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드래곤과 드레이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존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마법능력과 지능이었다.
드래곤은 본체일 때 사용할 수 있는 고유능력들 이외에도, 간단한 마법능력들을 구사할 줄 안다. 게다가 드래곤의 비늘은 마법저항력이 무척이나 강력해서, 어지간한 공격마법은 기스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달랐다.
물리 방어력은 드래곤만큼 강력했지만, 마법방어력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마법사 클래스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냥터가 바로 크루피아 설산 이었다.
이곳은 북부대륙에서 가장 고레벨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사냥터로, 드레이크들이 많이 출몰하는 곳이었다.
이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알고 있는 곳이었다.
일전에 북부대륙에서 오클리의 퀘스트를 진행할 때 그에게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크루피아 설산은, 바로 전설의 드래곤 테이머인 오클리의 고향이었다.
쾅- 콰쾅-!
이안은 눈 앞에 달려드는 드레이크를 힘겹게 처치한 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어쩌면 크루피아 설산 보다도 드레이크가 많이 출몰하는 곳일 지도….’
대부분의 공격력이 물리공격력에 치중되어있는 이안에게, 물리방어력이 강력한 드레이크들이 떼거지로 서식하는 이런 사냥터는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안은, 사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더욱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저기가 용의 제단인 것 같지, 카카?”
이안의 말에 지도를 들고 대조해 보던 카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주인아. 이제 내부로 잠입할 방법을 찾아야겠지.”
카카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이안이 되물었다.
“혹시 이렇게 위험한 방법 말고… 내가 가진 물건 중 어떤 것을 용신의 제단에 바치고 대가로 여의주를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이안의 말에, 카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불가하다, 주인아. 나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괜히 용신에게 우리의 존재만 노출시키게 될 것 같다.”
“음… 내 인벤에 제법 희귀한 아이템들이 많은데… 용신은 이런 물건들을 좋아하지 않나?”
이번에는 카르세우스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주인. 주인이 가진 물건 중에는 용신이 좋아할 만한 물건이 많지.”
“그런데?”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용신에게 있어 여의주만한 가치를 가지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것은 짐작이 아니고 거의 확신이다.”
확실히 여의주는 모든 드래곤에게 꿈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용족이 그것을 얻게 되는 순간, 그의 격 자체가 한 단계 상승하기 때문.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럴 것 같기는 하네. 좋아. 처음부터 강행돌파를 생각하고 온 건데… 여기서 약해질 수는 없지.”
이안이 카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카카, 정찰을 좀 부탁한다.”
카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게 맡겨두라고.”
씨익 웃어 보인 카카는, 허공을 날아 용의 제단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카가 작은 점으로 보일 만큼 멀어지자, 이안과 카르세우스도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 속성의 공격 외에 모든 공격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카카는, 최고의 정찰조라 할 수 있었다.
* * *
용의 제단은 무척이나 높이 솟아 있었다.
아득한 절벽 아래서부터 솟아올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뻗어있는 탑과 같은 형태.
그리고 이안은, 비슷한 구조의 건축물을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훈이의 임모탈 퀘스트를 위해 갔던 첨탑… 임모탈의 원혼이 잠들어 있던 그곳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그 기억을 떠올린 이안은, 용의 제단 또한 백층 혹은 그 이상으로 높은 층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휘젓고 다니다가는… 여의주를 손에 넣기도 전에 저지당하겠지.’
이안은 카르세우스를 향해 물었다.
“카르세우스. 혹시 제단 내부에 진상받은 물건들을 모아놓는 창고 같은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어?”
카르세우스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그런 것 까지 알지는 못한다. 다만… 최하층이 아닐까 짐작은 할 수 있겠군.”
“음? 어째서?”
“용의 제단은 총 77층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최상층인 77층에 용신이 강림하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지. 그리고 최하층인 1층에, 어디론가 통하는 차원의 문이 있다고 알고 있다.”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차원의 문이 있는 게 창고의 위치와 무슨 관련이 있는데?”
카카가 끼어들며 말했다.
“아마도 용신의 가디언들이 그 차원의 문을 지키고 있겠지. 그리고 가디언들이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보물들을 모아둔 창고가 있을 확률이 높은 거고.”
확실히 그럴싸한 추리.
이안은 수긍하며 카르세우스를 향해 시선을 옮겼고, 카르세우스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바로 그렇다. 역시 카르가 팬텀의 일족은 두뇌가 비상하군.”
카르세우스의 칭찬을 받은 카카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그것을 본 이안이 핀잔을 주었다.
“얘 너무 칭찬해 주면 안돼 카르세우스. 자꾸 그러면 자기가 정말 천재인 줄 안단 말야.”
그 말에 카카가 발끈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주인아. 나는 천재가 맞다.”
“시끄러.”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는 카카의 말을 한 마디로 일축해버린 이안은, 구석에 앉아 깃털을 다듬고 있던 핀을 불렀다.
“핀, 이리 와봐.”
꾸룩-?
핀은 곧바로 이안의 바로 앞으로 날아왔고, 이안은 카르세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해제했다.
카카가 이안을 향해 물었다.
“어쩌려고 그러냐 주인아.”
이안이 멀찍이 보이는 제단의 입구를 슬쩍 보며 카르세우스에게 물었다.
“아마 저 입구로 들어가면… 대략 40층 정도에 들어가게 될 텐데, 그렇지 카르세우스?”
지금 이안 일행이 서 있는 곳은 깎아지듯 높은 절벽 위였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솟아있는 탑은, 절벽 아래서부터 뻗어 올라, 저 높은 곳까지 솟아있는 형태였고, 제단의 입구는 탑의 중간 정도 높이에 만들어져 있었다.
입구는 이안이 서 있는 절벽과 기다란 징검다리를 통해 이어져 있었고, 이안이 가리킨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렇기에 이안이 입구로 들어갔을 때 40층 정도라고 추측한 것이었다.
카르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아래쪽 층이 층고가 낮아 보이는 것을 감안한다면, 50층 정도일 수도 있겠군.”
이안이 씨익 웃어 보인 뒤 핀의 등 위에 올라탔다.
“카르세우스, 카카. 얼른 타라고. 저기로 들어가서 정면 돌파를 하다가는 여의주 그림자도 구경 못해볼 거야.”
이안은 핀을 타고 날아서 아예 탑의 최하층으로 곧바로 진입할 생각이었고, 카르세우스와 카카는 곧바로 그 말을 이해하였다.
카르세우스가 이안에게 말했다.
“좋은 계획이다, 주인.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다.”
“뭔데?”
카르세우스가 깎아지듯 한 절벽 아래를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저 아래 탑 최하층 쪽 주변을 휘몰아치는 물줄기 보이는가?”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저건 뭐지?”
카르세우스가 대답했다.
“수룡의 결계다. 지금 우리의 능력으로는 잘못 접근했다가 그대로 저 안에 빨려들어가 갇혀버리고 말겠지.”
“흐음….”
이안은 턱을 만지작거렸고, 카르세우스가 대답했다.
“저 결계를 통과하는 것은 무리다. 적당히 10층 정도까지만 내려가서 진입을 시도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 수 있나. 그렇게 해야지 그럼.”
의견이 모아진 이안 일행은 망설임 없이 핀의 등 위에 올라탔고, 이안은 능숙하게 핀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핀은 빠르게 날아 탑의 주변을 빙빙 돌며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절벽은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아찔하게 높았지만,
그리고 휘몰아치는 물의 소용돌이가 가까워질 즈음, 이안은 탑 외곽 쪽에 보이는 특이하게 생긴 창을 발견했다.
그곳은 마치 던전의 입구 같은 생김새였고, 유일하게 핀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창이었다.
이안은 잠시 망설여졌다.
‘저건 마치 누군가에게 들어오라고 열어놓은 문처럼 생겼잖아? 뭔가 기분이 찜찜한데….’
하지만 더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지금 핀의 발 밑에서는, 우악스럽게 휘몰아치는 물줄기가 이안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안은 그 곳을 가리키며 핀에게 명령했다.
“핀, 우리를 저 안쪽에 내려줘.”
꾸륵- 꾸륵-!
핀은 그대로 쏜살같이 날아 건물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일행은 성공적으로 탑 내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눈 앞에 생각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용의 제단’ 던전 (타임어택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용의 제단’ 던전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던전 클리어 시 아이템 보상을 제외한 모든 보상을 2배로 획득하게 됩니다.(최초발견 버프는, 던전 트라이 횟수나 시간의 경과에 상관 없이, 최초로 던전을 클리어하는 유저에게 적용됩니다.)]
[남은 시간 - (00 : 19 : 59) ]
[던전 난이도 - SSSS]
[제한 시간 내에 용의 제간 최하층에 있는 차원의 결계를 파괴하고, 차원의 문을 열면 던전이 클리어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할 시, 용신의 혼이 강림하여 도전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
:
이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이건 대체 뭐야?’
이안은 타임어택 던전을 처음 겪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임어택 던전이 등장한 상황 자체가 무척 뜬금 없는 타이밍이었고, 던전 클리어 조건도 예상 범위 밖에 있는 조건이었다.
게다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쿼드라S등급이라는 미친 난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렇게 되면, 이 알 수 없는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할 시 그대로 사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망으로 인한 패널티보다도,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게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이 던전 안에서 여의주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안은 재빨리 판단했다.
‘다시 나가야 해.’
이안은 핀의 고삐를 잡아 방향을 돌렸다.
하지만 이안이 들어온 입구는, 어느새 결계로 막혀 있었다.
“제길.”
이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이 타임어택 던전을 통과하는 수 밖에 없었다.
카르세우스가 이안을 향해 말했다.
“주인아, 이 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음…?”
이안의 눈 앞에는 좌우에 두 개의 통로가 있었다.
둘 중, 좌측은 하층부로 내려가는 길 이었으며, 우측은 상층부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카르세우스는 우측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서 강력한 드래곤의 기운이 느껴진다.”
“드래곤의 기운?”
“용신의 가디언들이 우리의 침입을 알아차린 것 같다.”
“으….”
이안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저놈들이 나를 잡기 전에, 빠르게 최하층까지 뚫고 내려가 결계를 부숴 다른 차원계로 넘어가야 하는 게 이 타임어택 던전의 목표군.’
남은 시간은 이제 19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1분이나 소모된 것을 본 이안은, 곧바로 좌측 통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이자, 핀, 카르세우스!”
“알겠다 주인.”
꾸룩- 꾸꾹-!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렇게 되면 카르세우스와 핀 만으로 여길 뚫어야 하는 거잖아?’
원래 이안은, 용의 제단에 잠입한 뒤 다른 소환수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될 때 까지 숨어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발동된 타임어택 던전으로 인해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안은 창대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정말 오랜만에 기분 나쁜 검정 화면을 만나야 할 지도 모르겠어.’
< (1). 용의 대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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