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용의 대지 -1 (13권 시작) >
이안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뭐지? 대체 전륜성왕이라는 이계의 엄청난 거물이 이리엘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게다가 이리엘님이라…?’
이안은 전륜성왕이라는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이안의 AI가 성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법(正法)으로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이, 위대하신 제왕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안은 말을 하며 한쪽 무릎을 굽혀 예를 취해 보였고, 왕좌에 앉아 있던 그가 천천히 일어나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성왕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시오. 그대 또한 이계(異界)의 명운을 책임지고 있는… 존중받아 마땅한 영웅. 나 세이쇼카는 그대가 가진 정의(正意)와 용기(勇氣)를 존경하는 바요.”
성왕, 세이쇼카의 말에, 이안은 굽혔던 무릎을 펴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세이쇼카는, 탁자에 놓여 있던 금빛 상자를 들어 이안에게 건네었다.
“이것이 무엇인지요?”
이안의 물음에 세이쇼카가 대답했다.
“열어보시오. 아마도 그 안에, 그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들어있을 것이오.”
이안, 정확히 말하면 이안의 AI는 상자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 것은, 이안의 손바닥 만한 보패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보패의 한 가운데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에, 오색의 영롱한 빛줄기가 일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보패의 앞면에는, 상하좌우에 각각 한 글자씩 한문이 새겨져 있었다.
[ 주(主) 병(兵) 신(臣) 보(寶) ]
이안은 그것을 집어들며 낯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것이 바로….”
그리고 세이쇼카가 입을 열었다.
“그렇소. 이것이 바로 주병신보. 그대가 나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하지.”
이안이 공손히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성왕이시여. 덕분에 저희 차원계는 마계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왕 세이쇼카가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부디, 그대의 노고가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바라겠소.”
“신보의 힘을 빌렸으니, 성왕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겨내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동안 얘기를 더 나눴다.
그것을 관조중인 이안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로 긴 이야기였다.
‘어후, 벌써 10분 째 얘기하는 거 같은데, 거의 잡담 수준이잖아?’
이안이 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돌연 캐릭터의 통제권이 이안에게로 넘어왔다.
그것을 느낀 이안은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씨 뭐야. 이렇게 갑자기 풀리는 경우도 있어?’
하지만 이안은 지금까지의 얘기들을 빠짐없이 듣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때 맞춰, 세이쇼카의 입에서 이안에게 필요한 정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주병신보는, 그대들의 군대가 완벽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될 때, 혹은 위태롭다고 생각될 때 사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오.”
이안이 재빨리 물었다.
“신보를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에 세이쇼카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이 신보를 사용하면, 차원의 경계를 넘어 성왕께서 신의 군대를 보내주실 것이오. 또한 그대의 군대에게 위력적인 전신(戰神)의 축복이 내려질 것이니… 필히 마계의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오.”
이안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성왕은 자기가 성왕이 아니었나?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이안이 당황한 표정이 되어 있자, 세이쇼카가 웃으며 설명을 부언했다.
“그대는 방금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나보군.”
이안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성왕께서 또 다른 성왕을 언급하시니, 잠시 당황했습니다.”
세이쇼카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분명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는 과분한 칭호를 갖고 있는 마우리아 제국의 황제요. 하나, 이러한 칭호는 역대로 마우리아 제국을 통치하신 모든 성군(聖君)에게 내려지는 칭호일 뿐. 진정한 전륜왕은 오직 신계에 계신 네 분을 의미하오.”
“음….”
이안은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일단 그의 말을 계속해서 경청했다.
“신계에는 금륜왕과 은륜왕, 그리고 동륜왕과 철륜왕. 이렇게 네 분의 신께서 전륜왕의 칭호를 가지고 계시오. 그리고 아마 그대가 신보를 사용한다면, 네 분중 한 분이 축복을 내려주시겠지.”
이안은 그제야 뭔가 아귀가 맞는 것을 느꼈다.
‘아하, 전륜성왕이라는 말은 단지 칭호에 불과한 것이었구나. 그렇다면 전륜성왕의 칠대보라는 것은….’
궁금한 게 생긴 이안은 재빨리 세이쇼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칠보라는 것도, 본래 폐하의 보물이 아닌 신계에 계신 성왕의 보물인가요?”
이안의 물음에 세이쇼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오. 칠보(七寶)는 인간의 물건이 아니야. 신계에 계신 네 분의 전륜왕 중에서도, 금륜왕께서 만들어내신 보물이라 알고 있지. 이것도 정확한 건 아니지만 말이오.”
“아….”
세이쇼카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현재 일곱 가지 보물은, 이 남섬부주를 비롯한 수미사주에 뿔뿔히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 중 하나를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이제 대략적으로 정리가 된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여의주는 남섬부주 외곽에 숨겨져 있었던 거구나. 그렇다면 세이쇼카 왕도 여의주에 대한 정보는 모르겠군.’
주병신보를 얻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뿍뿍이를 어비스 드래곤으로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여의주.
‘차원마력이 다 충전될 때 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하루 하고 반나절 정도…. 그 안에 여의주까지 얻어내야 해.’
이안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이며 세이쇼카에게 말했다.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그렇게 세이쇼카와의 대면을 마친 이안은, 호법사자 마차뮤트의 안내를 받아, 다시 이동마법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법진에 도착하자, 마차뮤트가 이안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의 말에, 이안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겁니까?”
호법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남섬부주 안이라면 어디든지 가실 수 있습니다.”
그에 이안은 서둘러 여의주의 위치가 표시된 보도(寶圖)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호법사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세이치’로 가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이안의 말에, 호법사자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세이치… 말입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곳은 분명 남섬부주 안에 있는 곳이고… 이 마법진을 통해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호법사자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안에게 물었다.
“그곳에는 왜 가시려고 하는 겁니까?”
이안은 굳이 여의주에 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대충 얼버무렸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호법사자는 여전히 묘한 표정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떤 사정이 있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십시오.”
“네?”
이안의 반문에, 호법사자가 천천히, 그리고 또렷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곳은 용들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
* * *
마족으로 종족변환에 성공한 유저들이 대거 전장에 투입된 뒤.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던 차원전쟁의 균형은, 완벽히 깨어져 버렸다.
인간계 진영이 마계진영에 급격히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유저들은 마수들과 마족들에 비해 떨어지는 전투능력을 전술로 극복하고 있었는데, 인간 유저들이 마족 진영에 합류하기 시작하니, 많은 전술이 통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었다.
영리한 마족 유저들은, 강력한 마수나 마족이 활약할 때를 틈타, 교묘히 인간 유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계 진영에게 무척이나 치명적이었다.
“빌어먹을.”
중부대륙 토벌대의 참모 회의실.
샤크란이 탁자를 내려치며 이를 갈았다.
“루스펠 제국 소속이었던 쥐새끼들이 너무 많이 마족 진영으로 전향했어.”
샤크란의 말에, 맞은 편에 앉아있던 피올란이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대꾸했다.
“저희 로터스 길드도 루스펠 제국 소속입니다만…. 오히려 카이몬 제국의 소속이었던 다크루나 길드원들이 대거 이탈한 거 아닙니까?”
그에 샤크란이 구겨졌던 인상을 살짝 피며 미안해 했다.
“죄송합니다, 피올란님. 제가 말한 것은 스플렌더와 오클란 놈들이었습니다.”
피올란이 한숨을 살짝 내쉬며 대답했다.
“휴우,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이제는 껍데기 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루스펠 제국 3대 길드 중에 두 곳이 진영을 대거 이탈해 버렸으니….”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늦어도 일주일 정도만 이 흐름이 계속되면, 차원전쟁은 인간계의 패배로 끝나고 말 게 분명했으니까.
특히 샤크란은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라한과의 정면대결에서, 처음으로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1:1의 싸움에서 줄행랑을 쳤으니 그것은 패배나 다름이 없었다.
‘놈을 이기려면 항마력은 필수다. 지금 상태에선 평타에서 터져 나오는 마기를 막을 방법이 없어.’
수뇌부 회의는 약 30분 정도 계속되었지만, 딱히 진척되는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이 이제 포기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유저들은 차원전쟁의 패배를 거의 기정 사실화 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의욕이 없었다.
단지 피올란만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안님이 빨리 돌아오셔야 할텐데….’
피올란은, 이안을 비롯해 레미르와 레비아, 그리고 헤르스와 훈이 등 퀘스트를 위해 떠난 랭커들이 대거 합류하면 어떻게든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안이 진행하는 퀘스트가 마족을 상대하는 것과 관련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올란이 속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어떻게든 조금만 더 버텨보자.’
* * *
위이잉-
이동 마법진을 통과하며 어두웠던 사위가 밝아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세이치 고원 - 용의 대지’에 입장하셨습니다.]
[‘세이치 고원 - 용의 대지’를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지금부터 2일 동안, ‘세이치 고원’에서 얻는 모든 경험치가 2배로 적용됩니다.]
[지금부터 2일 동안, ‘세이치 고원’에 있는 모든 몬스터의 아이템 드랍률이 1.5배로 적용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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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던 이안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쩝… 아쉽지만 지금은 사냥할 시간은 없겠지….”
옆에서 그 중얼거림을 들은 카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자제해라 주인아. 지금은 사냥할 때가 아니다. 얼른 인간계로 돌아가서 마족들을 막아야 한다.”
이안이 품 속에서 여의보도를 꺼내어 툴툴거렸다.
“알아, 인마. 나도 안다고.”
“사냥 중독자 같으니라고….”
“쓸 데 없는 트집 잡지 말고, 지도나 좀 봐줘. 어디로 가야 할까?”
이안은 여의보도를 펼쳐들어 카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일전에 그랬듯, 허공에 반투명한 지도가 떠올랐다.
카카가 지도 한 켠을 짚으며 말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여기다, 주인아.”
지도를 확인한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그리고 여기 써 있는 글씨 보이지?”
카카의 말에 이안은 지도를 다시 한번 자세히 봤다.
카카가 가리킨 곳은 여의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곳의 바로 아래쪽이었으며, 읽을 수 없는 이상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게 뭔데?”
“고대의 언어다. ‘용의 제단’ 이라고 쓰여 있는 거지. 그리고 아마 여기에 여의주가 있는 듯 하다.”
“용의 제단? 뭐냐, 던전 같은 곳이야?”
카카가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몰라. 고대의 글씨를 읽을 수는 있어도… 용의 제단이라는 곳은 처음 들어본다.”
그런데 그 때, 뒤에서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르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용의 제단…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이안과 카카의 시선이, 동시에 카르세우스를 향해 모아졌다.
< (1). 용의 대지 -1 (13권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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