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두 가지 보물 -4 >
* * *
동승신주의 악마들은 무척이나 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환영.
이안을 시험하고자 소환된 300~350레벨 정도의 악마들의 환영은, 이안은 충분히 궁지로 몰아넣었다.
‘젠장, 몬스터 주제에 너무 영리해.’
게임 초반에는, 유저가 자신보다 고레벨인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
가지고 있는 스킬들에 한계가 있고, 전투에 있어서 변수가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이 후반으로 갈수록, 유저들은 점점 더 몬스터들과의 레벨격차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유저가 몬스터들의 ai보다 훨씬 똑똑하고 영리한 플레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몬스터들도 지능 스텟이 상승하며 ai가 좋아지기는 하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은, 레벨에 오를수록 가진 바 스킬들과 능력들이 다양해지며,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변수를 만들고,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갈수록 좋아지는 장비도 큰 몫을 했지만, 어쨌든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 이안이 고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쇼우타’가 이안을 상대하기 위해 소환한 마수들.
이 마수들은 어쩐지 일반적인 몬스터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다섯 명의 유저를 상대하는 기분인데….’
하지만 그것이 어쨌든, 이안은 지금의 이 상황을 이겨내야 했다.
‘생각보다 너무 큰 피해를 입었어. 이젠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야 해.’
이안 캐릭터 자체의 생명력은, 아직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이안이 거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을뿐더러, 적들이 이안을 노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대신 이안은 빡빡이와 할리를 잃은 상태였다.
물론 이안도 다섯의 악마 중 하나를 제거했으며, 나머지 넷에게도 제법 피해를 입히기는 했다.
하지만 이안은 아직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갈수록 내가 불리해질 거야.’
악마들은 그리 엄청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생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생명력이 조금씩 회복된다는 얘기였다.
이안도 뿍뿍이의 광역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얘기가 달랐다.
뿍뿍이의 힐에는 제법 긴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존재했고, 저들의 회복능력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으니까.
“후우.”
소환수들을 내어줘야 할 정도로 난이도 높은 상대는 오랜만이었기에, 이안은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틈을 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놈들은 유저만큼이나 똑똑하다. PvP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플레이해야해.’
이안은 속으로 작전을 짰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안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버티고 있었을 뿐.
쾅- 콰쾅-!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이안은 냉정히 상황을 파악했다.
‘저 기괴한 낫을 들고 있는 녀석이 가장 위험해. 그리고 저 리치 같이 생긴 놈도.’
이안이 가장 경계하는 적은 남은 넷의 악마 중에서도 둘 이었다.
그 중 하나는 시커먼 후드망토를 뒤집어 쓰고 길쭉하고 기괴한 형상의 낫을 양 손에 들고 있는 악마였으며, 다른 하나는 해골의 형상을 하고 시커먼 완드를 들고 있는 리치였다.
이안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낫을 든 악마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녀석은 평소에는 크게 위협이 되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단일기로 말도 되지 않는 데미지를 집어 넣었다.
그 피해량이 무지막지함의 반증으로, 그의 낫질 한번에 최대 생명력에 가까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던 할리가 즉사했으며, 절반정도의 생명력이던 빡빡이도 단 한방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안은 놈의 낫을 피하면서 생각했다.
‘찰나간이라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저 녀석의 기술은 어둠속성이었던 것 같았어.’
만약 녀석의 필살기를 맞고 할리나 빡빡이가 잠깐만 살아있었더라도, 기술의 속성을 확인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었다.
받은 피해의 속성이 뭔지, 데미지를 입은 대상의 상태를 한번 확인하면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놈의 그 기술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여지없이 이안의 소환수가 죽어버렸으니,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찰나간에 떠오르는 속성 이펙트였다.
‘어쩔 수 없다. 도박을 해 보는 수밖에….’
이안은 그 공격의 속성이 ‘어둠속성’이라는 것을 전제로 도박을 감행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작전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뿍뿍이, 앞으로 나가서 기회 보다가, 내가 저 녀석 공격하면 먹어치워버려. 알겠지?”
이안의 말에, 뿍뿍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뿍!”
뒤뚱뒤뚱 앞으로 걸어나가는 뿍뿍이를 보며, 이안의 어깨 옆에 둥실 떠 있던 카카가 이안을 향해 물었다.
“어떡하려는 거냐 주인아. 저들은 다음 타겟으로 뿍뿍이를 노리고 있다.”
이안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알아.”
현재 뿍뿍이의 생명력은 40%정도가 남아 있었다.
뿍뿍이도 빡빡이 못지 않은 탱킹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분명히 악마의 낫에 버틸 수 없을 만큼의 생명력.
이안이 적들을 향해 달려들기 전에, 카카를 슬쩍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한다, 카카. 악마의 낫이 휘둘러지는 타이밍에, 어둠을 깔아줘.”
“…!”
카카는 무척이나 똑똑했고, 이안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제법 괜찮은 판단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주인. 주인의 판단력을 믿어본다.”
카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이안의 신형은 앞으로 뛰쳐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이 노리는 것은, 저들의 후방에서 강력한 광역 마법을 뿌려대는 리치 형상의 악마였다.
“카르세우스, 핀! 광역 뿌려줘. 라이 넌 따라와!”
“알겠다, 주인.”
꾸룩- 꾸구국-!
이안은 그러면서 뿍뿍이에게도 손짓을 했다.
그러자 뿍뿍이가 느릿느릿한 몸집으로 이안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판을 짜고 도박을 걸었으니, 성공하길 비는 수 밖에.’
이안은 정말 전력을 다해 리치를 향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악마들이 그가 광역딜러인 리치에게 접근하도록 허용할 리 없었다.
그들은 빠르게 이안의 앞을 막아섰고, 그 위로 카르세우스의 브레스와, 핀의 분쇄가 뿌려졌다.
콰아아아-!
콰콰쾅-!
순간 악마들의 앞으로 생성되는 반투명한 결계!
그것들은 브레스와 분쇄를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었지만, 피해를 대폭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이안의 소환수들이 가진 스킬들 중 가장 강력한 두 개의 광역기가 터졌음을 감안한다면 조촐한 성과.
하지만 이안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이안은 리치에게로 달려들던 몸을 틀어 다시 뿍뿍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분명히 낫을 든 악마가 뿍뿍이를 노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뿍뿍이의 앞에 시커먼 연기가 퐁 하고 피어올랐다.
[키키키- 늦었다, 인간.]
순간적인 공간이동 기술을 사용해 뿍뿍이의 앞에 나타난 악마!
악마는 그대로 뿍뿍이에게 달려들며 낫을 휘둘렀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진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낫은 기이한 기운을 머금은 채 뿍뿍이를 향해 쇄도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랍게도 이안은, 사망 직전에 이른 뿍뿍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뿍뿍아, 욕심많은 포식자!”
“알겠뿍-!”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뿍뿍이의 포식자 능력이 발동됨과 동시에 악마의 기술도 뿍뿍이에게 격중 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뿍뿍이가 살아남는 것은 힘들어 보이는 상황.
하지만 그 때, 전장의 주변으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노예 ‘카카’의 ‘꿈꾸는 악마’ 고유능력이 발동되었습니다.]
[‘어둠의 지배’가 지속되는 동안, 모든 파티원의 공격력이 5%만큼 상승하게 되며, 모든 어둠 속성 피해가 50%만큼 감소하게 됩니다. 또한 반경 안의 모든 은신상태의 적이 시야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안이 노린 것은 바로 이 어둠의 지배 효과였다.
그리고 그 효과들 중에서도, 모든 어둠 속성의 피해를 50%만큼 감소시켜주는 효과가 이안이 노린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소환수 ‘뿍뿍이’의 ‘먹을 땐 방해하지 마!’ 능력이 발동됩니다.]
[343762만큼의 내구력을 가진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뿍뿍이의 ‘욕심많은 포식자’능력은, 당연히 공격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적을 즉사시킬 수 있는 즉사기인데다, 일단 발동하면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기술이니,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이번에는, 이 기술을 사용할 때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또 다른 패시브를 활용한 것이었다.
뿍뿍이가 포식자 능력을 발동시키는 순간 공격을 받는 상태면, 즉발적으로 ‘먹을 땐 방해하지 마!’ 능력이 발동되게 되며, 그것은 뿍뿍이 최대생명력의 50%만큼을 가진 보호막을 생성해 주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약간의 역발상이자 이안에게 있어서 도박과도 같은 비장의 한 수.
이것이 도박인 이유는, 첫째로 상대의 악마의 낫 기술이 어둠속성이 아닐 경우 데미지 감소를 받을 수 없다는 부분이 첫째.
둘째는 50%데미지 감소에 뿍뿍이의 쉴드까지 발동시켰음에도 뿍뿍이가 죽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기술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안의 도박은 성공했다.
퍼억-!
[라테로스의 ‘악마의 낫’ 고유능력이 발동됩니다.]
[소환수 뿍뿍이가 ‘라테로스’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뿍뿍이의 생명력이 100055(-443817)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자마자 낫의 파괴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빡빡이에게는 70만정도, 할리에게는 거의 120만이 박히더니 뿍뿍이에게는 80만이 박히네.’
시스템 메시지 마지막 줄에 있는, ‘뿍뿍이의 생명력이 100055(-443817)만큼 감소합니다.’ 라는 메시지.
여기서 괄호 안의 수치는 카카가 발동시킨 어둠지배 능력으로 인해 감소한 피해량이 분명했다.
그리고 약 34만정도의 내구력을 가지고 있던 보호막이 뚫리면서 뿍뿍이에게 실질적으로 들어온 피해량은 10만 정도가 되어버린 것.
이안은 대충 훑어봐도 그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머리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카카의 광역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은 10분. 그 안에 전부 정리해야 돼.’
그리고 이제는 반격의 시간.
자신의 공격에 뿍뿍이가 살아남자 당황한 악마는, 순식간에 라이와 이안의 합공을 받고 사망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악마의 생명력이 낮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뿍뿍이가 죽지도 않았기에, 포식자 스킬도 적중되었고, 거기에 어둠으로 인한 강화효과를 받은 라이와 이안이 후둘겨 패자 그대로 사망해 버린 것이었다.
욕심많은 포식자 스킬의 즉사 옵션은 발동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의 데미지도 강력했던 것이다.
가장 골칫덩이를 정리한 이안이, 창대를 빙빙 돌리며, 남은 세 명의 악마를 노려보았다.
< (7). 두 가지 보물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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