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파티사냥, 그리고 관문 -1 >
* * *
남섬부주의 던전들은, 난이도가 무척이나 높았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몬스터들의 레벨 때문만이 아니었다.
높은 난이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던전을 구성하는 몬스터들의 대부분이 인간형 몬스터라는 점이었으니까.
인간형 몬스터들은 대체로 지능이 월등히 높았으며, ai수준이 일반적인 몬스터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400레벨에 육박하는 인간형 몬스터들이다보니, 이안이 지금껏 상대해 왔던 어떤 몬스터들보다도 지능수치가 높았고, 그것이 곧바로 ai수준과 이어진 것이다.
‘젠장, 필드는 편했는데… 필드 몬스터들은 공적치를 너무 조금 주니까….’
남섬부주의 필드는, 던전과는 다르게 전부 동물형 몬스터들이었다.
동물형 몬스터들은 모든 종류의 몬스터들 중 가장 단순한 공격패턴을 보여줬기 때문에, 레벨과 관계없이 사냥하기 수월한 편이었다.
어쨌든 이안 일행은, 영악한 인간형 몬스터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며 던전을 하나하나 클리어 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안 일행이 들어와 있는 던전은, 조금 특이한 형태의 던전이었다.
하늘은 탁 트여 있되, 거대한 바윗덩이들로 양 옆이 막혀 있는 협곡 형태를 한 던전.
저벅- 저벅-
산채의 내부로 향하는 길을 걷던 일행은, 좁은 협곡이 나타자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앞에 멈춰섰다.
파티의 구성원들은 다들 수많은 던전들을 클리어해 본 베테랑들이었고, 던전의 구조를 보고 뭔가 위화감을 느낀 것이었다.
“너무 휑하네요. 던전 클리어율이 90%를 넘은 거로 봐선 네임드 몬스터들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레미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확실히 좀 이상하네요. 함정 같은 게 있을 지도 모르니까 조심히 이동하죠.”
지금 이안 일행이 클리어중인 던전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산적소굴’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락부락한 체형에 무식하게 커다란 박도. 거기에 덥수룩한 턱수염까지.
누가 보더라도 산적처럼 생긴(?) 적들이 출몰하고 있었으니까.
‘꼭 이런 지형에 트랩이 설치되어있단 말이지.’
이안은 인벤토리를 열어 은신탐지 스크롤을 꺼내어 들었다.
은신탐지 스크롤은 무척이나 비싼 소모아이템이었지만,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서 구매해 둔 물건이었으니, 아낄 이유가 없었다.
만약 정말로 트랩이 설치되어 있다면 은신탐지 스크롤에 의해 위치가 드러나게 되고, 위치가 드러난 트랩은 원거리 공격으로 파괴해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잠자코 이안의 뒤를 날고 있던 카카가, 불쑥 이안을 제지했다.
“주인아, 잠깐만.”
“왜, 무슨 일인데?”
“그거 쓰지 말고 기다려 봐라.”
“…?”
이안 뿐만 아니라 모든 일행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카카를 응시하고 있었고, 카카는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앞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이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야, 그쪽에 트랩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 어떡해?”
카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난 트랩이 백만 개 터져도 안 죽는다, 주인아.”
“…?”
그리고 잠시 후, 카카는 통로를 샅샅히 훑으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통로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펑- 펑- 퍼펑-!
이안과 레미르의 예측처럼, 수많은 트랩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카는, 자신이 장담했던 것처럼, 단 1포인트의 생명력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제야 이안은, 잊고 있던 카카의 고유능력이 떠올랐다.
‘아 맞다, 카카 저거… 빛속성 공격 외에는 무적이나 마찬가지지…?’
카카의 고유능력 중 가장 첫 번 째 능력인 ‘어둠의 후예’.
어둠의 후예는, 빛 속성의 공격을 제외하고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으며, 대신 빛 속성의 공격에 격중당하면 50배의 피해를 입게 되는 패시브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트랩 제거에 엄청나게 최적화된 능력이었다.
왜냐면, 트랩 중에는 빛 속성의 데미지를 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빛 속성은 사제 클래스만의 고유한 속성이었고, 사제 클래스의 어떤 스킬 중에도 트랩설치와 관련된 스킬은 없었다.
트랩을 전부 제거한 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온 카카.
이안이 카카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콩-
“아, 왜 때리냐, 주인아.”
이안이 카카의 양 볼을 잡아당겼다.
“야, 그러다가 트랩중에 빛 속성 공격트랩이라도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카카가 발끈 하며 말했다.
“그런 트랩이 어딨냐! 언제 사제가 트랩 설치하는 거 본 적 있냐?!”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일반적으로는 없는 게 맞지만… 어디 이상한 히든클래스라도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
카카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내가 3천년 살면서 그런 트랩은 본 적이 없다, 주인아.”
“….”
3천년 동안 본 적이 없다는 카카의 말에, 이안은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끄응….”
어쨌든 카카 덕에 좁다란 길에 설치되어있던 트랩들을 손쉽게 제거한 이안 일행은, 던전 안으로 빠르게 이동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총 다섯의 네임드 몬스터와 강력한 보스몬스터 하나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쿵- 쿵-!
이안 일행이 도착한 마지막 필드는, 정말 특이한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으아아… 나 고소공포증 있는데…!”
레미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레미르 뿐만이 아니었다.
일행이 도착한 필드 바로 앞에는 천길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고, 단 두 줄의 밧줄만이 보스 존을 향해 이어져 있었으니까.
당황한 표정이 된 헤르스가, 중얼거리듯 이안에게 말했다.
“야, 저 밧줄… 밟고 지나가야 되는 거냐 설마?”
이안 또한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밟고 지나건 매달려 지나건… 어떻게든 지나면 되겠지?”
일전에 하린과 놀이공원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고소공포증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생각지 못한 시련에 눈 하나 깜짝 않는 유저가 있었다.
“다들 뭐 해요. 얼른 움직이죠. 여기서 꾸물대다 보스에게 발각되면 그대로 망하는 거예요.”
건드리면 툭 부러질 것 같이 갸녀린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터프한 모습.
레비아는 그대로 낭떠러지를 향해 뛰어가더니, 밧줄을 밟으며 빠르게 절벽을 건너기 시작했다.
“저, 저런…!”
이안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레비아님 말처럼 시간을 끌면 안 돼.’
하지만 이안은 도저히 저기를 레비아처럼 건널 자신이 없었다.
이안은 얼른 핀의 등 위에 올라 탔다.
“일단 레미르님, 타요.”
이안의 말에, 레미르는 구세주라도 만났다는 표정이 되어, 얼른 그의 뒤에 올라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안의 허리를 꼭 부여잡았다.
“남은 네 분은 제가 건너고 나면 핀을 다시 보내 줄 테니, 타고 차례로 오시면 됩니다. 물론 레비아님처럼 뛰어오실 수 있는 분은 그냥 건너오셔도 좋아요.”
“….”
하지만 레비아만한 담력을 가진 대장부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핀이 차례로 움직여 모두를 보스 존으로 이동시켜 줘야만 했다.
그런데 마지막 두 사람이 핀의 등에 올라타 절곡을 건너던 그 순간.
보스 존에서 커다란 진동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크롸롸롸-! 감히, 내 산채를 겁도없이 침입한 애송이가 누구냐!]
거대한 언월도를 치켜들고 이안 일행을 노려보는 한 그림자.
그는 바로 이 던전의 보스이자 산적두목인 ‘카밀로프’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안이, 재빨리 상황판단을 했다.
“젠장, 일단 우리끼리 먼저 상대해야 해요! 훈이랑 헤르스가 올 때 까지 시간을 좀 끌어 봐요!”
절곡을 건너오는 중인 마지막 두 사람, 훈이와 헤르스는 한 30초 정도는 더 있어야 보스 존까지 당도할 수 있을 것이었고, 그때까지 가만히 위치만 지키고 있다가는 고립될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거칠게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안의 목표는 보스 몬스터인 카밀로프.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이안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놈! 두목님께는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
“침입자들! 네놈들을 처단할 것이다!”
바로 일행의 앞에 다섯의 네임드 몬스터가 나타난 것.
이안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쩐지, 달성률 90%가 넘도록 네임드 몬스터가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니… 가장 까다로운 형태의 던전이었네.’
던전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던전에는 보스를 제외하고 적게는 셋에서 많게는 열 개체 정도의 네임드 몬스터가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던전에 일정 달성률을 달성할 때 마다 하나씩 차례로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렇게 하나도 등장하지 않다가 보스와 함께 모든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가 정말 까다로운 케이스였다.
‘헤르스가 올 때 까진, 빡빡이가 어떻게든 탱킹을 해야 돼.’
이안은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빠지면서, 빡빡이를 앞세워 진영을 재구성했다.
“레비아님, 도발기 쓸 거예요, 알겠죠?!”
“오케이!”
레비아에게는 길게 설명해 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도발기를 쓸 것이라는 한 마디만 해줘도, 빡빡이로 모든 공격을 받아낼 것이라는 사실까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게임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안이 빡빡이를 먼저 앞세운 것이 헤르스가 올때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한 수라는 것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레비아.
물론 다른 파티원의 스킬이 어떤식으로 발동하는지 아는 것은 기본 센스 중의 하나였지만, 기본이면서도 지켜지기 쉽지 않은 것 중에 하나였다.
쿵- 쿵-!
빡빡이가 양 앞발을 땅에 박으며 고유능력을 발동시켰다.
캬아아오-!
[소환수 ‘빡빡이’의 고유능력, ‘귀룡의 포효’가 발동됩니다.]
[산왕 ‘카밀로프’의 움직임이 15%(-25%)만큼 느려집니다.]
[산적 두목 ‘체일스’의 움직임이 35%(-5%)만큼 느려집니다.]
:
: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곧바로 적들의 움직임을 계산했다.
‘역시 보스몬스터라 그런지 상태이상 저항이 꽤 세네. 움직임이 15%밖에 안 깎이면… 너무 무리한 공격은 할 수 없겠어.’
나머지 네임드 몬스터들도 저항력을 갖고 있었지만 보스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
그것은 적들의 움직임만 살짝 봐도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안은 먼저 좌우에 고립되어있는 네임드 몬스터부터 잘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훈이! 날 좀 도와줘! 나머지 분들은 보스 좀 막아 주세요!”
이안의 말에 파티원들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르스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보스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버텨낸 빡빡이는 뒤로 살짝 빠졌고, 그 자리를 헤르스가 메꾼 뒤, 보스 몬스터가 이안에게로 접근하지 못하게 길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이안의 앞에 고립된 하나의 네임드몬스터.
이안은 뿍뿍이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훈이, 알지? 처음부터 극딜로 가는거?”
“오케이!”
이안은 창을 휘두르며 빠르게 네임드 몬스터에게로 접근했다.
그는 빡빡이의 도발기인 ‘귀룡의 포효’에 격중당해, 이동속도가 무척이나 느린 상태였다.
‘이제 도발 풀리기까지 20초도 안 남았을거야.’
그 전에 신속하게 한 놈을 지워버리는 것이, 이안의 계획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범위 안이었다.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이안이 창을 뻗었고, 그 사이 훈이가 주문을 외자, 창날에 기이한 묵빛 기운이 스며들어갔다.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이, 파티원 ‘간지훈이’의 스킬, ‘어둠의 인장’효과를 받았습니다. (5초간 지속)]
[어둠의 인장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정령왕의 심판’의 공격력이 137%만큼 상승합니다.]
[어둠의 인장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치명타로 들어간 모든 공격에 ‘어둠의 표식’이 새겨집니다.]
[‘어둠의 표식’이 새겨진 적은, 피해량의 33%만큼의 암흑 데미지를 7초간 추가로 입게 됩니다. (암흑 데미지는 중첩됩니다.)]
이안은,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 파티플레이를 하며 많이 보아온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푸욱-!
네임드 몬스터, ‘체일스’가 반응할 새도 없이, 이안의 창이 그의 어깻죽지를 뚫고 지나갔다.
[산적 두목 ‘체일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산적 두목 ‘체일스’에게 ‘어둠의 표식’이 새겨집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뭉텅이씩 빠져나가는 네임드 몬스터의 생명력!
‘체일스’는 400레벨이 넘는 네임드 몬스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안과 훈이의 팀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형! 두 대만 더!”
훈이가 이안에게 소리쳤고, 이안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표식이 3중첩이면 폭발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고 했지?’
훈이로부터 받은 ‘어둠의 인장’효과의 지속시간은 단 5초.
이안은 침착하게 창을 뽑아들고 연달아 체일스의 상체를 타격했다.
퍽- 퍼퍽-!
깊숙히 찔러넣는다면 더욱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지만, 이안은 그러지 않았다.
패시브 능력인 ‘약점포착’이 있는 한, 정확한 약점에 공격만 성공시킨다면, 깊히 찌르지 않더라도 ‘치명타’는 터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공격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산적 두목 ‘체일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산적 두목 ‘체일스’에게 ‘어둠의 표식’이 새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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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그대로 5초가 채 지나기 전에 이뤄진 이안의 연격(連擊)에, 체일스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체일스의 생명력 게이지를 힐끔 확인했다.
‘생명력이 한 2/5정도 빠졌네. 여기서 표식폭발이 들어가면…!’
표식폭발은 훈이의 단일 공격스킬 중 가장 강력한 스킬 중 하나였고, 이안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훈이는 이안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다.
< (6). 파티사냥, 그리고 관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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