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신분상승 -3 >
* * *
이안과 약속된 시간에 영주성의 앞에 모인 인원은 총 여섯 이었다.
그들 중 레미르와 훈이는 이안이 직접 연락을 넣어 영입한 케이스였고, 나머지 다섯은 헤르스에게 부탁을 하여 괜찮은 랭커들로 모집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급조된 이 파티에 직업별 최고랭커가 무려 넷이나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일단 자타공인 소환술사 랭킹 1위인 이안과, 마법사 랭킹 1위인 레미르. 그리고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비공식 흑마법사 랭킹 1위가 거의 확실한 훈이. 마지막으로, 헤르스에게 제안받아 파티에 합류하게 된 사제 랭킹 1위인 ‘레비아’까지.
초 호화 파티가 구성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머지 세 유저도 각각 직업랭킹 100위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들이었지만, 이런 파티구성 안에서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안형은 왜 안 오는 거야? 이제 약속시간까지 2분도 채 안 남았는데….”
구시렁거리는 훈이를 향해, 헤르스가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이안이가 언제 약속시간 늦는 거 봤냐, 꼬맹아? 아마 시간 되면 칼같이 어디서 나타날걸?”
헤르스는 현재 기사 랭킹 80~90위권 정도에 랭크되어있을 정도로, 괄목할 성장을 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이안도, 주저없이 헤르스를 파티에 끼워 넣었다.
피올란이 헤르스보다 더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중부대륙을 지키기로 했다.
한창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전장 한복판에 있는 파이로 영지.
그곳의 영주인 피올란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법사 포지션에는 이미 레미르라는 최고의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뭐… 그렇기는 하죠.”
훈이는 은근히 헤르스에게 순종적이었다.
아직 훈이가 정식 길드원은 아니었지만, 거의 길드원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고, 헤르스는 길드의 마스터였기 때문이었다.
훈이가 아직 길드원이 되지 못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로터스 길드에 아직까지도 자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역량이 부족한 길드원 하나를 강퇴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헤르스의 길드 운영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로터스 길드에는, 장부를 넘겨 하나하나 세어 보기도 힘들만큼 엄청나게 많은 길드가입 대기 인원이 있었다.
헤르스는 로터스 길드의 등급이 대영지나 국가로 승급되는 순간, 일정 기준을 적용시켜 그들을 전부 받을 예정이었다.
대영지부터는 한번 승격될 때 마다 영입가능 길드원 최대치가 수 백 명씩 늘어나기 때문에, 충분한 여유가 생길 것이었다.
“흐음, 이게 뭐라고 은근 긴장되네….”
레미르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레비아가 물었다.
“뭐가 긴장되신다는 거예요, 레미르님?”
레비아의 물음에, 레미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손사레를 쳤다.
“아뇨,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혼잣말…. 그나저나 레비아님은 어쩌다가 이 파티에 끼게 되신 거죠?”
레비아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멍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음… 제가 진행중인 퀘스트를 위해선 이안님이 꼭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안님을 도와드리면 이안님도 절 도와주셔야… 아니, 도와주시지 않겠어요?”
“음… 그렇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특이한 인물이라 생각하며, 레미르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이안과의 하드코어한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필수였다.
“이너피쓰….”
그런데 그 때.
약속한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여섯 유저가 모여있는 바로 앞의 대기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웅- 우우웅-!
그것을 발견한 훈이가 당황한 표정이 되어 스컬 완드를 내뻗었다.
“뭐, 뭐지? 여기에 새로운 웨이브라도 열리는 건가?!”
사뭇 진지한 훈이의 표정을 보며, 헤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안이 여는 포탈이야, 조금 기달려.”
헤르스의 말에, 모두가 신기한 표정으로 공간이 뒤틀리는 광경을 구경했고, 10초 정도가 더 지나자, 일그러진 공간에 푸른 빛의 포탈이 생겨났다.
위이잉-!
그리고 그 안에서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남자가 한 명 튀어나왔다.
“읏차!”
그의 정체는 물론 이안이었다.
그는 원래 차원의 구슬이 전부 차징될 때 까지 눈을 붙이려고 했었지만, 그 시간마저 아까워 결국 지금까지 사냥을 하다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안이 유저들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었다.
“와, 다들 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복받으실겁니다.”
“….”
레미르는 이안의 몰골을 확인하자마자 뭔가 잘못 됐다는 걸 깨달았다.
‘으… 저 괴물은 쉬고 올 거라더니 결국 지금까지 사냥을 하고 온 게 분명해.’
그리고 한편, 레비아를 발견한 이안은, 고개를 갸웃 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안이라고 합니다. 제가 기억력이 좀 안좋아서 그런데… 혹시 저희 길드원이신가요?”
이안의 물음에, 레비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뒤쪽에 있던 헤르스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소개를 대신 해 주었다.
“몇 주 전부터 우리 길드를 도와 차원전쟁에 참여하고 계셨던 레비아님이야. 무려 사제 랭킹 1위시지.”
“오… 그래…?”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났지만, 랭커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이안으로서도 레비아 라는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분명히 엄청난 전력이 되어 줄 것이라고, 이안은 생각했다.
‘좋아, 이 정도 파티면 6천 공적치 정도 가뿐하게 모을 수 있겠어.’
이안이 포탈을 향해 손을 척 뻗었다.
“자, 다들 이 포탈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서둘러 주세요, 유지시간이 2분밖에 되지 않는 포탈이라 빨리 들어가야 해요.”
이안의 말에 파티원들은 서둘러 포탈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안 또한 그들을 따라 다시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인원이 포탈 안으로 들어가자, 십초쯤 뒤 포탈의 문이 서서히 작아지더니, 언제 열려 있었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 * *
“자, 지금부터 제 계획을 말씀해 드리죠.”
이안 자신을 제외하고 총 여섯 명의 인원을 성공적으로 남섬부주에 데려온 이안.
이안은 일단 전원을 파티에 초대하고 퀘스트를 공유하는 작업부터 진행했다.
그리고 퀘스트에 대해 제법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결론은 결국, 빡센 사냥에 대한 2차 어필이었다.
“그러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잡아야 합니다.”
“음….”
“이 차원의 구슬이 다시 충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 전 그 안에 제국의 공적치를 총 6천 포인트를 모을 생각입니다.”
이안의 설명을 듣던 헤르스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우리도 그럼 그 공적치를 모아서 마우리아 제국의 신분을 상승시키면 되는 거냐? 그리고, 그랬을 때 이점이 뭐가 있지?”
헤르스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신분상승을 위해서는 먼저 신분패를 받는 퀘스트를 선행해야 하는데… 지금 그럴 시간은 없어. 나 말고는 공적치로 계급 랭크를 올릴 수 없다는 뜻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적치가 쓸모 없는 건 아니야. 무관에서는 공적치로 신분을 상승시켜주기도 하지만, 좋은 아이템들과 교환도 할 수 있게 해 주더라고.”
“아하….”
그 후 이안의 몇 가지 설명이 추가로 이어졌고, 가만히 듣고 있던 레미르가 이안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안님.”
“예.”
“그럼 저희는요….”
“말씀 하세요.”
“이안님이 포탈 안 열어 주시면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건가요?”
모두의 시선이 이안의 입을 향해 모였고, 이안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빙고…!”
“허얼….”
절망하는 레미르를 보며, 이안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우리 빨리 사냥합시다. 공적치 6천만 다 모으고 나면, 가기 싫다고 해도 전부 돌려보내 드릴 거예요. 여러분은 빠른 시일 내로 돌아가셔서 마계 침략군을 막아야 하는 중요한 자원들이니까요.”
레미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다행히 그건 인지하고 계시네요.”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자, 그럼 움직여 볼까요? 여러분이 오시면 공략하려고 아껴둔 던전이 몇 개 있습니다.”
가만히 있던 훈이가 이안에게 물었다.
“던전 평균랩이 몇인데, 형?”
이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세… 한 350~400 정도?” “…?!”
이안의 말에, 레미르와 레비아를 제외한 모든 인원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레미르는 이미 이안과 300레벨 후반대의 전설등급 마수를 사냥해본 전적이 있으니 크게 놀라지 않은 것이었고, 레비아는 그냥 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당황한 헤르스가 말을 더듬으며 이안에게 물었다.
“야, 그거… 너무 좀 위험한 거 아냐?”
이안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노우, 노우. 충분히 가능해. 이 전력이 손발만 잘 맞추면, 350레벨대가 아니라 450레벨대 던전도 공략할 수 있어.”
“….”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쯤 부터는 더 상위던전으로 갈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나… 괜히 왔나…?”
헤르스의 자조 섞인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이안은 뒤 돌아서 던전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이제껏 툴툴거리던 레미르와 훈이, 그리고 헤르스의 눈빛이 곧바로 달라졌다.
그렇게 이안 파티의 스파르타 사냥이 시작되었다.
* * *
“훈이, 광역 슬로우 걸어놓고 뒤로 빠져! 데스나이트 생명력 관리해! 레미르님은 이제 광역기 캐스팅 시작하시구요!”
“알겠어, 형.”
“예, 이안님.”
파티 플레이라는 건, 인원이 많아질수록 손발 맞추기가 당연히 더 힘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의 포지션에 맞게 역할을 찾아 수행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지만, 이안이 원하는 파티플레이는 그런 기초적인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거기서 망자의 보복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훈이 이놈이 확실히 게임센스가 있어.’
하지만 이안의 파티는 일반적인 파티가 아니었다.
정말 직업별로 최상위 랭커들이 모여 있는 파티였고, 이들은 이안의 구체적인 지시가 없어도 효율적인 사냥을 위해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거기에 뛰어난 각자의 개인기까지.
이안의 파티는 정확히 30분 정도가 지나자 팀웍이 거의 이안이 원하는 궤도까지 올라왔다.
‘적어도 답답이는 하나도 없는 것 같네. 헤르스가 제일 구멍처럼 느껴질 정도니 말이야.’
이안의 파티는 총 7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가신들과 소환물들까지 합하면, 거의 칠팔십 정도 되는 규모의 파티라고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소규모 전쟁을 연상케 하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저쪽에 보스인 것 같아요, 이안님!”
전방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힐을 넣고 있던 레비아가 이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 방향을 돌아본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황금빛 두건을 쓴 거인이 하나 등장해 있었고, 딱 봐도 던전의 보스임을 알 수 있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제일 쉬워 보이는 던전부터 들어오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다들 실력이 훨씬 좋은데?’
던전의 보스가 생성되었다는 것은, 클리어율이 못해도 95%가 넘었다는 반증이었고, 이는 이안이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빠른 진행속도였던 것이다.
특히 이안은, 레비아의 능력에 엄청나게 놀라는 중이었다.
지금껏 이안은, 제대로 된 랭커급 사제클래스와 함께 사냥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일전에 파이로 영지 수성전에서 몇몇 랭커 사제들이 이안을 도와주기는 했었지만, 워낙에 대규모 전투였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체감하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사제랭킹 1위라는 레비아는, 그들과 비교하더라도 차원이 다른 컨트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오버힐(overheal)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평범한 사제들은, 난전 상황에서 힐 스킬을 무척이나 낭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파티원이 많을수록 힐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많아졌고, 정신없이 스킬을 뿌리다 보면 이미 생명력이 가득 찬 아군에게 힐 스킬을 사용하는 실수를 많이 범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비아는 달랐다.
그녀는 가장 기초적인 회복기술까지 단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완벽히 효율적으로 회복스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컨트롤은 발컨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안이 보기에도, 레비아의 컨트롤 수준은 무척이나 대단했다.
‘좀 더 과감하게 플레이 해도 되겠어.’
이안은 할리를 불러서 등 위에 오르고, 정령왕의 심판을 뽑아 들었다.
지금까지는 후방에서 전체적인 전투지휘와 서포팅을 위주로 플레이했지만, 이제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전방을 휘저을 생각이었다.
이 파티라면 어느 정도 뒤를 맡겨놓고도 마음껏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 (5). 신분상승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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