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마우리아 제국의 고물상 -3 >
* * *
“오호…!”
레노반스를 따라 골동품 상점의 최상층까지 올라온 이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확실히 3층에 진열되어있는 물건들은, 그 외형부터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눈 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카필라 성의 유물상점에 입장하셨습니다.]
[숨겨진 지역에 입장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명성이 3500 만큼 증가합니다.]
숨겨진 지역이기는 했으나 진입 난이도가 어렵지 않아서인지, 얼마 주어지지 않는 명성.
‘뭐야, 병아리 눈물만큼 주네.’
이안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아이템들이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으니까.
꿀꺽-
하지만 이어서 떠오른 메시지에는, 이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유물상점에서는, 한 번 입장 시 세 개 이상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없습니다.]
[유물상점은, 한번 아이템을 구매하고 나면,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다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레노반스를 향해 물었다.
“레노반스님, 한번에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해도 됩니까?”
레노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최대 두 개 까지는 상관이 없네. 하지만 이 최상층에서는, 한 번에 세 개 이상의 아이템은 구매할 수가 없다네.”
“돈이 있어도요?”
“그렇다네. 그게 내 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룰일세.”
“쩝….”
이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물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한번에 최대 두 개 까지의 아이템밖에 구매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인지, 그의 눈빛은 더욱 신중해졌다.
‘무기들의 외형이… 하나같이 화려해. 이 정도면 못해도 유일등급이나 영웅등급은 될 법한 장비들이야.’
카일란도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장비 외형이 멋드러질수록 더 높은 등급의 고급 장비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형만 가지고 좋은 장비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장비 등급이 영웅등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그 화려함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장비 등급이 높다고 해서 다 좋은 아이템인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영웅등급의 장비라도, 옵션으로 달려있는 고유능력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별로 좋은 장비라고 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직 전설등급의 장비 중에서는 옵션이 나쁜 걸 본 적은 없지만 말이지.’
보통 무기에 달릴 수 있는 고유능력 중에서는, 일반공격시 확률적으로 추가 공격이 터지는 옵션을 최상급의 옵션으로 분류한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도 직업군에 따라 선호하는 옵션이 달라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마법 데미지를 주로 입히는 흑마법사나 마법사클래스의 경우, 확률 발동으로 붙어있는 추가 공격은 물리공격을 더 선호한다.
반면에 물리 공격을 주로 선호하는 나머지 클래스의 경우, 추가공격이 마법공격인 장비를 더 선호한다.
그 옵션이 클래스의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해주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모든 스킬 공격이 물리 데미지를 입히는 전사 클래스의 경우, 물리방어력이 높고 마법방어력이 약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무기에 n%의 확률로 마법피해를 입히는 옵션이 있으면, 그런 까다로운 적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안의 무기인 정령왕의 심판에 붙어있는 고유능력, ‘심판의 번개’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심판의 번개는 정령마력에 비례하는 피해를 입히는 추가발동 공격능력이었는데, 이 또한 마법 데미지로 분류되는 것.
소환수들의 고유능력이 대부분 물리공격에 치중되어있는 이안의 입장에서, 이 정령왕의 심판은 무척이나 꿀 같은 능력이었다.
물론 강력한 광역기인 카르세우스의 브레스가 마법공격이기는 했지만, 재사용대기 시간이 무척이나 길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이안은, 자신이 원하는 옵션의 아이템을 건질 수 있길 바라며 장비들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의 어깨 위에 앉은 카카는, 이안이 아이템을 집어들 때 마다 잔소리를 시전했다.
“그 물건은 별로다, 주인아.”
“왜?”
“천년 전 차원전쟁에서 고대 장갑기병들이 쓰던 갑주랑 비슷한 디자인이다. 내구도나 방어력이 뛰어나서 괜찮은 물건이기는 하지만, 너무 무겁고 옵션이 별로일거야.”
“그럼 이건?”
“음… 이것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하이엘프들이 즐겨 사용하던 세인트라니아 장궁인 것 같다. 지금까지 본 물건 중에 최고야.”
“그럼 일단 킵?”
“근데 주인한테는 별로 필요 없는 물건 아니냐.”
“그건 그렇지….”
“빨리 다른 거 보자.”
“오키.”
호칭을 생략한다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지조차 보를 기묘한 두 주종(?)간의 대화를, 레노반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레노반스가 이안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한시간 안에는 물건을 선택하시게. 난 아래층에 내려가 있을 테니 말이야.”
이안은 레노반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레노반스님!”
그리고 레노반스가 내려가자, 카카와 이안은 더욱 적극적으로 장비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유물상점’이라 명명되어있는 골동품 상점의 3층은, 아래층들과 비교해도 그 규모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진열되어 있는 아이템의 종류와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이야기.
이안은 마치 노예시장에서 카카를 찾았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대충 골라버렸으면, 카카같은 복덩이를 얻지 못했겠지.’
이안의 입장에서 카카는, 정말 어마어마한 복덩이였다.
전투능력이 제로에 수렴하기는 했지만, 카카가 가진 지식이라면 그 단점을 여러 번 상쇄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던 것이다.
게임에서 컨텐츠에 대한 정보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특히 이안처럼 선두 클래스에 있는 유저일수록 더욱 그랬다.
대부분의 컨텐츠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입장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건 일단 킵. 다음 거로….”
카카는 유물상점에 있는 물건들 중, 거의 70% 정도의 아이템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에 힘입어, 이안은 정확히 한 시간 만에 구입할 아이템을 두 개 추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픽스?”
이안의 물음에 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주인아.”
아이템을 고르는데 성공한 둘은, 계산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안은 그냥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1층과 2층에는 아이템 구입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아 보이는 아이템을 닥치는 대로 집어든 것이었다.
카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다 살거냐, 주인아?”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산다.”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니야?”
“이 정도 사면 한 두 개는 얻어 걸리겠지.”
“….”
어쨌든 일층으로 내려와 레노반스를 찾은 이안은, 가지고 온 모든 아이템들을 전부 계산했다.
[‘알 수 없는 고대의 철검’아이템을 구매하셨습니다.]
[1756800 골드를 소모합니다.]
[‘신비한 명사수의 장궁’아이템을 구매하셨습니다.]
[2217000 골드를 소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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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구매하고 나니, 가지고 있던 모든 골드가 바닥나 버린 이안!
물론 길드 보관함 같은 곳에 훨씬 많은 양의 골드를 따로 보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순간에 수천만이 넘는 골드를 사용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딱히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계정귀속 옵션 안 붙어있는 전설장비 하나만 먹어도 이득이니까…!’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진 전설장비는, 현 시세로 못해도 6~7천만 골드 이상을 호가했다.
그런 아이템 하나만 먹으면 방금 쓴 돈은 가볍게 회수하는 것이었고, 이안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카카.”
“불렀냐, 주인아.”
“이제 한번 까볼까?”
“좋다.”
계산을 마친 둘은, 골동품 가게의 구석에 비치되어있는 의자에 앉아서 구매한 아이템을 쭉 늘어 놓았다.
그리고 이안의 겜블(?)이 시작되었다.
* * *
띠링-!
[골동품 감정 완료!]
[전설등급의 아이템을 감정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이안의 손에 쥐여져 있던 갑주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뛰어난 아이템을 감정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안목’ 능력치가 5포인트 만큼 상승합니다.]
[‘행운’ 능력치가 1포인트 만큼 상승합니다.]
:
:
골동품을 감정하는 데에는, 딱히 감정스킬 같은게 필요하지 않았다.
누구든 감정 주문서만 가지고 있으면 곧바로 감정이 가능한 게 골동품이었다.
그래서 전설등급의 아이템을 감정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감정스킬의 레벨이 오른다거나, 탐험가 클래스의 숙련도가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골동품이 높은 등급의 아이템으로 감정되면, ‘안목’스텟과 ‘행운’스텟이 상승한다.
‘안목’ 스텟은 높아질수록 적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할 때나 감정되지 않은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때 더 많은 정보가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행운’ 스텟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이템 드랍율이나 겜블의 성공확률 등, 운과 관련된 요소에 영향이 있는 능력치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은 스텟이었다.
둘 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조능력치들.
이안은 신이 나서 골동품들을 계속 감정하고 있었다.
‘크으, 이거 플루크인가? 내가 이렇게 운이 좋을 리가 없는데?’
사실 이안이 운이 좋은 것은, 이안 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어쨌든 이안은, 벌써 두 개나 되는 전설등급의 장비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쓸 만한 영웅 등급의 장비도 열 개가 넘게 획득한 상황.
이미 손익분기점은 한참 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겜블을 너무 무시했나봐, 카카.”
“그게 무슨 말이냐, 주인.”
“앞으로 적극적으로 도박을 애용하겠다는 소리지.”
“아서라, 주인아. 그냥 오늘이 운이 좋았던 거다. 게다가 30% 싼 값으로 구입했기에 이득 보는 거지, 원래 가격으로 샀으면 지금 그다지 이득도 아니야.”
“그… 그런가?”
이안은 남은 장비들을 전부 감정했지만, 영웅 등급의 장비만 두어 개 더 챙겼을 뿐, 전설등급의 장비는 더 이상 얻을 수 없었다.
이안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 졌다.
“에이… 한 개 정돈 더 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쉬워하는 이안을 보며, 카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네….”
이안이 카카를 째려봤다.
“야, 내가 잘되면 너도 좋은 거야 인마. 같이 아쉬워 해 주진 못할망정….”
“내가 뭐가 좋은건지 설명해줘라 주인아….”
이안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음… 그건….”
카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됐으니까, 이제 최상층에서 구입한 아이템 두 개나 얼른 까 보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지막에 액땜 많이 했으니, 이건 대박 날지도 몰라.”
이안은 감정이 끝난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대충 집어넣어 놓고, 최상층에서 구입한 두 개의 물건을 조심스레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숨겨진 장소인 ‘유물상점’에서 구입한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감정했던 아이템들과는 기대치 자체가 달랐다.
이안이 이안이 어깨 위에 앉아있는 카카를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잘 산거 맞겠지?”
카카가 자신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 못 믿냐, 주인아?”
“아니, 믿지.”
“그런데 왜 불안해 하냐.”
“아니 불안한 건 아닌데….”
불안하다기 보단, 최상층에 있었던 수 많은 화려한 장비들이 눈에 밟히는 것 뿐이었다.
한 차례 입맛을 다신 이안은 감정을 위해 첫 번째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이안의 손바닥 만한 크기의 낡은 ‘목함(木函)’ 이었다.
이안은 절대로 고르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카카가 우겨서 고르게 된 물건.
‘꽝일 것 같은 물건부터 먼저 감정해야지.’
표면에 디테일하고 화려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고급스런 목함이기는 했지만, 워낙 낡은 데다 너무 평범해 보이는 외관.
이안은 큰 기대 없이, 아이템 감정 스크롤을 쭉 하고 찢었다.
< (4). 마우리아 제국의 고물상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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