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마우리아 제국의 고물상 -2 >
* * *
“내 상점에 온 것을 환영하네. 어떤 종류의 물건을 찾으러 왔는가?”
총 3개 층으로 이뤄진데다, 무척이나 널따란 골동품 상점.
하지만 손님은 이안 한명 뿐이었기 때문에, 상점의 주인이 직접 이안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반쯤 하얗게 센 머리를 가진 중년의 남자는, 이안에게 자연스레 하대를 했고,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아 네, 뭐 찾는 물건이 있어서 들어온 건 아니구요, 원래 골동품에 관심이 많거든요.”
“오호?”
이안의 입에서, NPC의 환심을 사기 위한 거짓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도시를 지나다가, 너무도 멋진 가게를 발견해서 한번 들어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안이 들어온 이 골동품 가게는, 지금까지 봐온 어떤 골동품 가게보다 신비한 느낌을 풍기는 고급스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원래 거짓말은, 진실을 좀 섞어서 얘기해야 설득력이 생기는 법이지.’
그리고 이안의 칭찬에, 가게의 주인은 싱글벙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크으, 젊은 친구가 뭘 좀 아는구만! 그렇다면 정말 잘 들어왔네. 이곳은 내가 450평생 동안 남섬부주를 여행하며 각종 희귀한 물건들을 수집해 모아놓은 곳이니까 말이야. 세상 어디에도 내 가게만큼 멋진 골동품 가게는 없지.”
남자는 이안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이안은 그 손을 맞잡았다.
이안은 손을 맞잡으며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450평생? 그럼 450년을 살았다는 얘기야? 혹시 인간 종족이 아닌가?’
하지만 이안이 남자를 다시 살펴봐도, 그는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다시 소개하지. 나는, 이 가게의 주인인 ‘레노반스’ 라고 하네.”
이안이 대답했다.
“저는 남섬부주를 여행 중인 여행객, 이안이라고 합니다.”
이안의 눈에 우쭐한 표정이 된 주인의 표정이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몇 줄 떠올랐다.
띠링-
[카필라성의 골동품 상점 주인인 ‘레노반스’와의 친밀도가 10포인트 만큼 상승했습니다.]
[골동품을 구입할 때,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1.5%만큼 상승합니다.]
이안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역시, 비위 맞추기는 NPC에게 항상 효과가 있단 말이지. 그런데 1.5%면 어느 정도나 체감이 되려나…?’
이안은 골동품 가게에 있는 물건들을 제법 많이 구입해 볼 생각이었다.
대충 훑어본 결과, 비싼 물건의 경우에는 수백만 골드를 호가하는 아이템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돈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안에게는, 크게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 아니었다.
‘기왕 골동품 겜블을 해보기로 한 거면, 하나 정도는 제대로 된 물건을 뽑아 봐야지.’
이안이 상점의 주인에게 물었다.
“레노반스님. 혹시 제게 추천해 주실 만한 물건이 있습니까?”
이안의 물음에 레노반스가 고개를 갸웃 하며 대답했다.
“자네가 찾는 물건의 종류부터 먼저 말씀해 보시게.”
이안은 잠시 고심한 뒤 대답했다.
“딱히 찾는 물건은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원래 골동품에 관심이 많아서요. 어떤 종류의 물건이든, 멋진 물건을 구입하고 싶을 뿐입니다.”
레노반스에게 얘기한 것처럼, 이안은 딱히 찾는 물건이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뭐 하나 건질 게 없을 까 싶은 마음에 골동품 상점을 들어왔을 뿐.
‘일전에 어떤 녀석은 히든클래스 전직 아이템을 골동품 상점에서 건지기도 했다는데….’
그것은 정말 대박케이스 중의 대박케이스였지만, 원래 도박은 대박을 노리고 해야 하는 법.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후후, 자네… 볼수록 마음에 드는 구만. 어줍잖은 여행객들이 와서 내 상점에서 강력한 무기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네는 다르군.”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울려퍼졌다.
[카필라성의 골동품 상점 주인인 ‘레노반스’와의 친밀도가 10포인트 만큼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레노반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따라오시게. 내, 특별히 자네에게는 3층을 공개하도록 하지.”
그 말에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3층…? 원래는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을 오픈해 주겠다는 건가?’
이안의 눈에 기대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갔었던 어떤 지역보다 레벨대가 높은 숨겨진 지역.
그리고 그 곳의 골동품 상점에 있는 특별한 구역이라니.
기대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삐걱- 삐걱-
레노반스가 발을 내딛기 시작하자,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천천히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가 있을까? 지금 착용한 장비 중에서는 장신구나 신발이 가장 능력치가 떨어지는데… 겜블 대박 한번 났으면 좋겠네.’
그런데 걸음을 옮기던 이안은, 문득 뭔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허전함의 정체는, 바로 카카의 존재였다.
당연히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어야 할 카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음…?”
이안은 계단을 오르다 발고 주변을 둘러보았고, 1층 구석에서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는 카카를 발견했다.
“야, 카카. 빨리 따라 올라와.”
이안의 말에 정신없이 무언가를 보고 있던 카카가 고개를 픽 들더니 끄덕였다.
“알겠다 주인아.”
카카는 곧바로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라 이안을 향해 날아왔다.
그런데 날아오는 카카의 손에는, 낡아보이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카카에게 물었다.
“그건 뭔데? 왜 가지고 온 거야?”
카카가 이안에게 말했다.
“주인아 이거 사자.”
밑도 끝도 없는 카카의 말.
이안은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어 물었다.
“그게 뭔데?”
카카가 어깨를 으쓱 하며 대꾸했다.
“아니 주인아. 골동품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데, 뭔지 알고 살 방법도 있냐?”
그 말에 이안이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런가?”
하지만 이안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었던 것.
단지 항상 게임 내 지식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카카라면, 뭔가 골동품 상점에서도 진귀한 물건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아무튼 사자, 주인아.”
“으음….”
그래도 이안은, 카카가 저렇게 흥미를 보이는 물건이라면,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안이 물건을 정보를 한번 확인해 보았다.
[이름 - 알 수 없는 고대의 기록서 / 분류 - 잡화 / 등급 - ??? / 가격 - 875000골드]
다른 것보다 가격부터 확인한 이안은, 제법 비싼 골동품의 가격에 조금 고민했다.
‘장비류도 아니고 낡아빠진 종이쪼가리 주제에 거의 백만 골드라고?’
87만 골드는, 이안에게 그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코 아무 생각없이 지출할 만한 액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안은 카카를 믿고 한번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그래 알겠다. 들고 있어. 있다가 한번에 구매하게.”
카카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주인아.”
카카가 이안의 어깨 위에 사뿐이 내려 앉자, 이안은 다시 레노반스를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레노반스는 둘이 대화하는 동안 잠시 멈춰 있었는데, 흥미로운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구경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던 레노반스가, 뭔가 생각난 게 있는지 슬쩍 뒤를 돌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이안의 어깨 위였다.
“흐음…? 그러고 보니, 자네를 따라다니는 저 녀석은… ‘카르가 팬텀’이로군.”
레노반스의 말에, 이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 카카의 정체를 알아봤다…?’
카카와 함께한지도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저는 물론 NPC를 통틀어도 아무도 카카의 정체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던 것.
정확한 정체를 꿰뚫어보기는커녕, 카카도 이안의 소환수 중 하나라고 대부분이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란 이안과는 달리, 카카는 별로 동요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카카가 입을 열었다.
“맞다, 역시 선택받은 인간들은 내 정체를 알아보는군.”
레노반스는 피식 웃어보인 뒤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이안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응시했다.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그런 이안의 심중을 알아차린 카카가, 짧게 한 마디를 해 주었다.
“너무 궁금해 하지 마라 주인아. 곧 알게 될 테니까.”
그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카카가 말한 ‘선택받은 인간’ 이라는 단어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이 골동품 상점의 숨겨진 장소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 * *
쾅- 콰쾅-!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널따란 고원.
그리고 대부분이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진 대형 맵의 여기저기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깎아지듯 아슬아슬한 바위 봉우리의 여기저기에서 번쩍거리며 스킬 이펙트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전자의 입장에서나 감탄할 만한 광경이었지, 이 안에서 전투중인 유저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곳은 리벨리아 고원이었고, 북부대륙 차원전쟁의 현장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다음 방어진영으로 후퇴해요! 여긴 더 이상 무리에요!”
이안이 사라진 이후, 북부대륙의 전투 지휘는 다시 서희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마 여기저기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고, 장비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후우, 오늘도 조금만 더 힘내면, 리벨리아 고원은 지켜낼 수 있겠어.’
이안이 자리를 비우고 이틀 뒤.
토벌대는 마계진영의 맹렬한 공세에 슈랑카 평원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허무하게 내어준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후퇴에 가까웠기 때문에, 유저들의 사기가 떨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확실히 이안님의 빈 자리가 크긴 해.’
정말 아무런 장애물 없이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슈랑카 평원은, 마구잡이로 날뛰는 마족들을 상대하기에 좋지 않은 맵이었다.
반면에 리벨리아 고원은, 전략만 잘 짜면 효율적으로 더 비교우위에 있는 적들을 막아낼 만한 장소였다.
서희는 이안과 함께 전투를 하며 느낀 부분이 많았고, 그것들을 응용하여 훌륭히 북부지역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여기도 길어야 5일을 더 버티지 못하겠지.’
이제 차원전쟁이 시작된지도 삼주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초반과는 느껴지는 난이도 상승폭이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후우… 여기 뚫리고 나면 제국 국경까지는 순식간일거야.’
리벨리아 고원은 차원문이 오픈된 맵인 슈랑카의 바로 다음 지역이었고, 제국 국경까지는 그 뒤로도 세 개 정도의 맵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맵들은 그리 마계진영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으며, 맵 자체도 넓은 편이 아니었다.
서희는, 리벨리아 고원이 뚫리는 순간 하루나 이틀 내로 국경까지 뚫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이안님이 돌아오셔야 할 텐데….’
이안은 분명히 돌아온다고 했고, 북부대륙의 랭커들은 그 말만 믿고 있었다.
차원전쟁은 토벌대 연합의 승리로 마무리되어야만 했다.
마계군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북부대륙 유저들의 터전이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 (4). 마우리아 제국의 고물상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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