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마우리아 제국의 고물상 -1 >
성왕의 제단에 도착한 이안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경비대장 시크가 알려준 위치로 찾아가서, 양털 20개를 공양(?)하고 나니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었다.
띠링-
[‘질 좋은 양모(羊毛)’ 아이템을, 성왕의 제단에 공양합니다.]
[‘마우리아 제국의 시민권 획득’ 퀘스트를 완수하셨습니다.]
[‘마우리아 제국의 시민권’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을 1만 만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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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기다란 턱수염이 허리까지 내려온, 선풍도골의 노인.
이 제단의 관리인인 듯 보이는 노인이 이안을 향해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안 군이라고 했는가….”
“예, 그렇습니다.”
“우리 마우리아 제국의 시민이 된 것을 축하하네. 이렇게 질 좋은 양모를 이만큼이나 많이 얻으려면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수고가 많았어.”
노인의 말에, 이안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암, 수고가 많았지. 양털 주제에 드랍률이 어찌나 저질이던지….’
하지만 물론 이안의 입에서는, 속내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아닙니다, 어르신. 마우리아 제국의 시민이 될 수 있어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허허…. 확실히 마우리아 제국의 시민이 된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기는 하지.”
그 후, 노인과 몇 가지 덕담을 더 나눈 이안은, 그에게서 나무로 된 낡은 신분 패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받아 든 이안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이거 뭔가… 얼마 전에 토벌대에서 받았던 목패랑 오버랩 되는데…?’
바로 며칠 전에, D등급의 사병이라는 굴욕적인 신분패를 받았었던 이안.
‘또 평민 D등급 이런 식으로 명시되어있는 건가?’
사실 이번에는, 토벌대에 있을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했다.
이안이 참여했던 차원전쟁의 마계 토벌대는, 애초에 이안이 귀족인데다 영주라는 신분을 갖고 있는 북부대륙의 토벌대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안으로서는 더 자존심이 상했었던 것.
하지만 이 마우리아 제국에서, 이안은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받게 된 계급이 평민이라고 해도 크게 기분 나쁠 것은 없었다.
이안은 노인으로부터 받은 목패 아이템의 정보를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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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우리아 제국 시민권 -
등급 : 일반
분류 : 잡화
시민 계급 : 수드라
랭크 : D
마우리아 제국에 소속됨을 증명하는, 제국의 시민권이다.
시민권을 소지하고 있으면, 마우리아 제국의 구성원들과 기본 친밀도를 유지할 수 있다.
*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이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랍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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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패에 쓰여 진 내용을 전부 읽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 했다.
‘음…? 뭐지? 여기는 계급이 되게 특이하네?’
이안은 시민계급 옆에 ‘수드라’라고 쓰여진 부분에 시선을 다시 옮기고는, 눈을 게슴츠레 하게 떴다.
‘흐으음… 뭘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 같기도 하고….’
어감이 뭔가 묘하게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민이나 사병 보다는 괜찮다고 여긴 이안은, 신분 패를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자… 이제 시험의 관문인지 뭔지… 거기로 가면 되는 건가?’
이안은 경비대장에게서 들었던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정리하며, 성왕의 제단을 빠져나왔다.
이안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카가 이안을 불렀다.
“주인아.”
“오래 기다렸냐.”
바위에 걸터앉아 뒹굴거리던 카카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뭔데?”
카카는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이안의 앞까지 날아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우리아 제국의 신분패 받는 데는 성공한 거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성공했어.”
카카가 다시 물었다.
“혹시, 무슨 계급의 신분패를 받은 거냐?”
“음… 처음 보는 계급이름이었다.”
“원래 마우리아 제국의 계급들은 이름이 특이하다, 주인아.”
“뭐였지, 수드라였나…. 뭔진 모르겠지만 묘하게 어감이 안좋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카카가 사레라도 들렸는지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풉…! 푸웁…! 크크큭…!!”
그에 이안은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야, 뭔데. 뭐가 문젠데? 왜 그러는 거야?”
알 수 없는 불길한 이 기분!
한참을 혼자 낄낄대며 웃던 카카가, 이안을 향해 한 마디를 남겼다.
“주인아, 수드라가 뭔지 알려줄까?”
이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얌마, 너 요즘 많이 기어오른다? 아는 거 많다고 주인을 무시하면 되냐, 노예가?”
이안의 그 말에, 카카는 더욱 끅끅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카카는 한참을 데굴거리며 웃더니,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크큭, 주인아, 이제 나랑 친구 먹어야겠다. 큭큭”
‘수드라’는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하층민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쉽게 말해, 마우리아 제국의 노예나 천민이 속하는 계급이 바로 ‘수드라’였던 것.
물론 마우리아 제국에는, 계급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천민은 천민이었다.
그러니, 카카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수드라가 뭔지 모름에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이안은, 카카를 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 봐야 하나…?’
마침 잘 시간이 되기도 해서 로그아웃할 예정이었던 이안은, 다시 접속하기 전에 검색을 한 번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하아… 내가 노예, 천민이라니….’
이안은 분노(?)했다.
‘돈 내고 하는 게임에 이런 계급을 만들어 놓는 게 말이 돼?!’
하지만 분노한다고 해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곳은 경비병들의 레벨이 350이 넘는, 무지막지한 동네였으니까.
‘후우, 그래도 뭐… 퀘스트 깨다 보면 천민은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겠지….’
사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제대로 구현해 놓았더라면, 신분상승은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곳은 게임 안이었고, 단지 계급의 이름만 카스트 제도와 비슷하게 해 놓았을 뿐이었다.
이안에게 주어진 신분은, 그저 이 마우리아 제국의 세계관 안에서 통용되는 유저등급 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신분고하에 따라 NPC들과의 기본 친밀도가 달라지며, 받을 수 있는 퀘스트의 질 또한 달라진다는 정도?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어떻게 플레이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신분상승(?)의 기회는 있을 것이었다.
“야, 카카. 그만 웃으랬지.”
아직까지도 피식 피식 웃고 있는 카카에게, 이안이 협박(?)했다.
“너 자꾸 그러면, 이제 밥 안 줄 거야. 네 몫의 미트볼은 앞으로 없을 줄 알아.”
하지만 카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내가 뿍뿍인 줄 아냐, 주인아. 하나도 안 무섭다.”
그에, 가만히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뿍뿍이가 발끈했다.
“뿍, 미트볼을 무시하지 마라뿍!”
“….”
진화를 했음에도 미트볼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르는 뿍뿍이.
어쨌든 티격태격하던 이안 일행은, 마우리아제국의 거대한 도시인 ‘카필라 성’의 번화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필라 성은 거대 제국인 루스펠의 수도와 비교해도 전혀 규모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주변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던 이안은,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카일란 개발사에는 정말 인력이 얼마나 많은 걸까? 이런 숨겨진 지역마저 이렇게 꼼꼼하고 방대하게 세계관이 짜여 져 있을 줄이야.’
이안의 생각처럼, 카일란은 어디 한 구석 대충 만들어진 부분이 없었다.
이안은 계속해서 감탄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플레이하면서 컨텐츠가 한 번도 안 떨어진 게임은 처음이야. 좀 더 분발해야겠어.’
아마 LB사의 기획팀에서 이안의 이 생각을 들었다면 단체로 거품을 물고 쓰러졌으리라.
이안은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라면 바로 시험의 관문을 향해 가야 했지만, 이 번화가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퀘스트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런 곳은 한번쯤 뒤져볼 필요성이 있어. 어떤 히든피스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이 번화가 안에서, 이안이 처음으로 들어선 곳은 바로 작은 골동품 가게였다.
* * *
이안은 ‘템빨’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아이템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강력한 장비는 랭커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부분이었고, 이안 또한 무척이나 신경 쓰는 부분이었으니까.
다만, 이안이 싫어하는 ‘템빨’이라는 말은, ‘게임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템만 좋은’ 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안은, 자신을 결코 템빨 유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안은, 아이템이 자신의 실력빨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정령왕의 심판도, 내 손에 들려있으니까 행성파괴 무기가 된 거지. 암, 그렇고 말고….’
이안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
어쨌든 이안이 고물상에 들어온 이유는, 좋은 아이템을 건져보기 위해서였다.
이안은, 눈을 부릅뜨고, 골동품 상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흐음… 뭐 하나 건졌으면 좋겠는데….’
카일란에서, 골동품 상점은 ‘고급 겜블상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파는 아이템의 정보는 구입하기 전까지 봉인된 상태였으며, 일반 겜블상점보다 가격대가 10배 이상 비싸게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
하지만 골동품 상점이 일반 겜블상점보다 좋은 점은, 유저의 안목으로 물건을 판단할 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겜블 상점에서는 물건의 품목과 지불액만 정하면, 정말 랜덤으로 아이템이 구입되게 된다.
하지만 골동품 상점은 구입할 물건의 외관은 전부 확인한 뒤 결정할 수 있었다.
최소한 수십만 골드를 내고 ‘녹슨 철검’이나 ‘낡은 가죽갑옷’ 따위의 아이템을 구입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흐음… 확실히 처음 오는 동네라 그런지, 신기하게 생긴 물건이 많은데? 가격이 좀 많이 비싸기는 하지만….’
사실, 물건의 가격은 상관 없었다.
요즘 돈 쓸 일이 없었던 이안에게, 자원은 무척이나 풍족했으니까.
게다가 마우리아 제국 최초발견 특전으로 인해, 모든 마우리아 제국의 상점에서 30%만큼의 할인혜택을 받고 있는 지금이, 바로 소비생활을 즐길 타이밍이었다.
이안은 눈을 빛내며 골동품 상점의 물건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안의 바로 뒤에, 이안보다 최소한 세 배 정도는 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건들을 둘러보는 생명체(?)가 하나 있었다.
* * *
< (4). 마우리아 제국의 고물상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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