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잊혀진 제국을 찾아서 -3 >
* * *
‘탐난다… 가지고 싶어…!’
이안은 차원마력 충전기를 한 손에 든 채, 입맛을 다셨다.
‘이거, 달라고 하면 주려나…?’
그리퍼와 이안의 친밀도는 더 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최상인 상태.
어지간한 아이템은 친밀도가 좀 깎이더라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이 아이템은 왠지 힘들 것만 같았다.
차원마력 충전기 아이템 설명 맨 아래쪽에 있는, ‘그리퍼가 가장 아끼는 물건입니다.’ 라는 부분이 왠지 거슬린 것이다.
‘흐으… 그래도 달라고는 한번 해 봐야지.’
이안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차원 마력 충전기를 다시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자 이안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의 구슬’ 아이템의 사용조건을 충족시키지 못 하셨습니다.]
[아이템이 봉인됩니다.]
“킁.”
이안은 차원마력 충전기에 미련이 남는지 힐끔 힐끔 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퍼의 작업실에는 정말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있었기에, 이안은 아직 절반도 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때, 작업실의 한복판으로부터, 낮은 공명음이 일기 시작했다.
웅- 우웅-!
이안의 시선은 자동으로 그 쪽으로 돌아갔고, 그 곳에는 푸른 빛의 맺히기 시작하더니, 포탈이 하나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포탈 안에서, 그리퍼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휘유, 바로 온다고 왔는데… 오래 기다렸는가?”
그리퍼에게서 삥을 뜯어야(?)하는 이안은,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뇨. 이 정도야 뭐 기다린 거라고 할 수도 없죠. 정말 금방 오셨네요.”
이안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그리퍼 또한 덩달아 밝아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크허험, 그렇지? 그래, 내가 자네 기다릴까봐서, 정말 서둘러 왔다고. 허헛.”
잠시 뜸을 들인 그리퍼가, 이안을 향해 본론을 꺼내었다.
“어쨌든 여기 왔다는 건… 이제 고대의 마우리아 제국으로 가기 위한 자네의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것이겠지?”
이안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차원전쟁에 며칠 참여하고 보니, 전륜성왕의 신물이라는 게 꼭 필요하겠더라고요.”
이안의 말에, 그리퍼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크흠, 역시…! 이안 자네는 이해도 빠르고, 행동도 빨라서 좋아. 옳은 선택일세.”
말을 마친 그리퍼는, 한 손을 펼쳐 허공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허공에는 둥그런 구슬 하나가 떠올랐다.
“이제, 내가 고대 마우리아 제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차원문을 열어 줄 걸세. 차원문을 여는 것 말고 내게 도움이 필요한 것이 혹시 있는가?”
이안은 원래, 퀘스트를 전부 마치고 돌아와서 그리퍼의 자신에 대한 호감도가 최고일 때, 차원마력 충전기를 달라고 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리퍼 스스로가 말을 꺼낼 기회를 줬다면, 그것을 놓칠 이유는 없었다.
“네, 그리퍼님,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흐음…, 말해 보시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이안을 보며, 그리퍼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안과의 친밀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곧바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슬쩍 탁자를 향해 다가가며, 차원마력 충전기를 가리켰다.
“혹시 저 물건… 제게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그 순간, 그리퍼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저 물건이라니…? 뭘 말하는 건가? 정확히 짚어주시게.”
그리퍼의 요구(?)에, 이안은 차원마력 충전기를 덥석 집어 들어 그리퍼의 눈 앞으로 가지고 왔다.
“이 물건이요. 이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퍼님이 저번에 제게 주신 차원의 구슬 있잖아요…? 이 물건만 있으면 그 구슬을 사용할 수 있더라고요.”
“허… 허헛….”
그리퍼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차원마력 충전기에 대한 것은 어떻게 알았는가? 나는 말해준 적이 없는 것 같네만….”
이안이 적절히 거짓을 섞어서 대답했다.
“제 구슬이 이 물건의 근처로 가니까 반응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그리퍼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크흠… 그렇군.”
이안은 슬쩍 그리퍼의 눈치를 봤다.
‘이 정도면, 잘하면 넘어올 수도 있겠는데?’
절대로 줄 수 없는 물건이었다면, 이렇듯 고민을 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굳어지기 전에, 빨리 마음을 돌려버려야 해.’
이안은 뭔가 그리퍼가 혹할만한 제안을 제시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퍼의 부탁을 무상으로 한번 들어주더라도, 이 물건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이안이 재빨리 그리퍼를 향해 말했다.
“그리퍼님, 설마 제가 염치 없이 이 물건을 그냥 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리퍼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오호…? 그럼 자네도 내게 뭔가 줄 것이 있는 겐가?”
이안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 나한테… 그리퍼가 혹할 만한 물건이 있을까?’
이안은 기억을 꼼꼼히 되짚어 보았다.
그간 수많은 마수들과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분명 그리퍼의 흥미를 끌 만한 물건 하나쯤은 얻은 적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분 정도를 생각한 끝에, 이안은 한 가지 물건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맞아! 그게 있었지…!’
이안은 인벤토리 구석에 짱박혀 있는, 계륵과도 같은 아이템이 하나 떠올랐다.
‘소환마로 최초전직하면서 받았던 이상한 알…! 그걸 그리퍼에게 넘겨야겠어.’
그리퍼는 뭔가 베일에 쌓인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그리퍼에게, 이안이 가진 ‘알 수 없는 마수의 알’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물건일 것이었다.
‘거기서 뭔가 엄청난 마수가 튀어나온다면 배가 아파서 쓰러질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선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물건이잖아?’
소환수의 알은, 보통 같은 종의 모체가 되는 소환수가 품어주거나 특정 조건을 충족시킬 때 깨어난다.
한데, 이 ‘알 수 없는 마수의 알’ 이라는 물건은, 이안이 틈 날 때 마다 부화시킬 방법을 찾아보려 했음에도, 아무런 단서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어떤 마수의 알인지라도 알아야 부화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텐데, 정말 이름 그대로 어떤 마수의 알인지조차 알 길이 없는 그런 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굳힌 이안이, 인벤토리 안에서 ‘알 수 없는 마수의 알’ 아이템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퍼님, 제가 마계 50구역에 있는 전설등급의 마수들과도 싸우면서, 힘들게 얻은 아이템 중의 하납니다. 이 알을 그리퍼님께 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말을 하며 이안은 그리퍼의 눈치를 다시 살폈다. 과장을 조금 섞은 게 찔린 탓이었다.
‘전설등급의 마수를 사냥해서 얻은 알은 아니지만… 마계50구역까지 간 것도 맞고, 전설등급의 마수를 사냥했던 것도 맞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잖아?!’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시전한 이안은, 그리퍼에게 알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리퍼의 시선은, 이미 이안이 내민 알 수 없는 마수의 알에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호오…. 이것은, 한 눈에 봐도 무척이나 희귀한 물건이군!”
그리퍼의 감탄사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치, 엄청나게 희귀한 물건이긴 하지. 최초로 마수 연성술사가 된 유저에게만 지급되는 물건이니까 말이야.’
이안에게서 알을 받아든 그리퍼는, 그것을 요리조리 살피며, 열심히 탐구하기 시작했다.
“크으, 이 매끈하고 불그스름한 질감 하며… 안에서 은은히 새어나오는 빛까지…. 부화만 시키면 정말 엄청난 마수가 나올 것도 같군.”
그리퍼의 중얼거림에, 이안의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호, 혹시… 정말 엄청난 전설등급의 마수라도 안에 들어있는 건 아니겠지?’
그리퍼의 한마디에 바로 흔들리는, 팔랑귀 이안.
이안은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아냐, 그렇게 쉽게(?) 얻은 아이템이 막 그렇게 어마어마한 아이템일 리 없어.’
차원마력 충전기 쪽으로 마음을 굳힌 이안은, 자신의 알에 흥미를 보이는 그리퍼를 향해 빠르게 쐐기를 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도 확실히 엄청난 마수가 들어있을 것 같은 알이었습니다.”
그리퍼가 물었다.
“그런데 이걸 나에게 줘도 되겠는가?”
이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도 아깝긴 하지만… 제 능력으로는 어떻게 부화시켜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대현자이신 그리퍼님이라면 이 알을 부화시키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현자’라는 말에 그리퍼의 광대가 승천하기 시작했다.
“흠, 음핫핫. 대현자라니, 아닐세. 내게 과분한 말이야. 허헛.”
이안의 아부신공이 연달아 발동되었다.
“아닙니다. 일전에 고대의 소환수들을 복원시킬 때도, 전설의 소환수인 그리핀을 부화시킬 때도 그리퍼님의 지혜 덕에 가능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리퍼님만이 이 신비한 알을 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진 그리퍼는, 싱글싱글 웃으며 탁자 위에 놓여있던 차원마력 충전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안이 기다렸던 말을 내뱉었다.
“좋아. 자네가 이렇게 귀한 물건까지 내 능력을 믿고 맡긴다는데… 차원마력 충전기 정도는 줄 수 있지. 오랜 세월동안 공들여 만들어낸 물건이기는 하지만… 한번 만들어 본 이상 다시 제작하는 건 더 쉬울 테니까.”
이안은 그리퍼가 내민 차원마력 충전기를 냉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이안의 시야에 몇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차원의 마도사 ‘그리퍼’에게, ‘알 수 없는 마수의 알’ 아이템을 건네었습니다.]
[차원의 마도사 ‘그리퍼’로부터, ‘차원마력 충전기’ 아이템을 양도 받았습니다.]
[‘차원의 구슬’ 아이템의 사용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아이템이 봉인이 해제됩니다.]
[차원의 마도사 ‘그리퍼’가 아이템 교환을 무척이나 흡족해 합니다.]
[‘그리퍼’의 친밀도가 5만큼 상승합니다.]
이안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그리퍼의 친밀도가 더 오를 게 남아 있었어?’
NPC와의 친밀도는, 대상 NPC의 정보창을 열거나 해서 확인할 수는 없는 스텟이었다.
아무런 교류가 없는 NPC와의 기본 친밀도가 50으로 설정되있다는 사실과, 지금까지 추가로 오른 친밀도들을 기억해서 현재의 친밀도를 추정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리퍼와의 친밀도가 언제 어떻게 올랐었는지 정확히 기억했고, 그 기억에 의하면….
‘오늘 오른 친밀도까지 해서 정확히 105포인트네.’
그리퍼와의 친밀도가 100을 넘어선 것이었다.
‘친밀도는 100이 되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구조인 줄 알았는데….’
어쨌든 목적을 달성한 이안은,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한 후, 그리퍼를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퍼님. 이 차원마력 충전기가 있다면, 전륜성왕의 신물을 찾는데도 훨씬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퍼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후훗, 나도 자네에게 그 물건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구만. 사실 힘들게 만들어낸 발명품인데, 내게는 큰 쓸모가 없던 아이템이었거든.”
이안과 그리퍼는, 그 뒤로도 짧게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퀘스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퍼는 자신이 타고 들어온 작업실 중앙의 포탈을 닫고, 새로운 포탈을 오픈했다.
그것은 바로, 고대 마우리아 제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차원의 포탈이었다.
‘자, 그럼 이제 한번 들어가 볼까…?’
이안의 입 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이제는 전륜성왕을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 (2). 잊혀진 제국을 찾아서 -3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