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잊혀진 제국을 찾아서 -1 >
유현은 당황했다.
아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현황판의 기여도랭킹 맨 꼭대기에, 떡 하니 진성의 아이디인 ‘이안’이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놈은 급한 퀘스트 때문에 참가 못한다더니, 북부대륙에 가 있었네?’
유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토벌대 현황을 자세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중부대륙 쪽에서 함께하지 못한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괜찮네. 마침 북부대륙 쪽이 조금 불안했었는데….’
유현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일단 진성이 합류했다면, 어지간한 랭커 몇 명이 들어간 것 보다 훨씬 도움 될 것이었으니까.
진성 본인을 제외하고는 현재 누구보다 그의 전력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유현이었다.
‘에이 뭐야 근데, 그렇게 압도적인 1등은 아니잖아? 진성이라면 2등보다 1.5배 이상은 기여도 차이를 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현의 판단으로, 최상위 랭커도 없는 북부대륙에서 진성의 전력은 압도적이어야 했다.
한데 기여도 2위인 유저와 거의 비슷한 기여도를 가지고 있었으니 조금 실망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현이 미처 체크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진성이 토벌대에 참여한 지는 고작 두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다른 유저들은 네 시간도 넘은 상황이었던 것.
‘뭐, 진성이라고 항상 압도적일 수는 없는 거니까….’
어쨌든 북부대륙과 로터스 영지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어 놓은 유현은, 식사를 다 마치고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오늘 하루는 카일란을 좀 쉴 생각이었다.
* * *
[크아아아악-! 인간들 주제에 감히… 이 나를…!]
무척이나 진부한 대사를 울부짖으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거구의 남자.
상급 마족이자 3일차 몬스터 웨이브의 최종 보스였던 그가 쓰러지자, 유저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야, 끝났어!”
“그러니까! 정말 끝났다구!”
“크으, 오늘 기여도 장난 아니다. 슈랑카 평원 안에서 전투가 끝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게다가 점유율도 74%라고, 74%!”
“내 말이…! 덕분에 오늘 어제 얻었던 포인트의 2배 이상은 얻은 것 같아. 이 정도면 직책 승급도 할 수 있겠어!”
토벌대 시스템에서, 유저들은 모든 전투가 끝나고 나면 총 기여도와 포인트를 합산하여 최종적인 보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합산이 되기 전에, 마계와 인간계의 점유율에 비례하여 포인트를 뻥튀기 받게 되는 것.
지금까지 북부대륙의 유저들은, 항상 슈랑카 평원은 모든 점유율을 마수들에게 넘겨줬으며, 그 다음 구역인 리벨리아 고원도 50~60%의 점유율을 겨우 지키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리벨리아 고원까지 밀리기는커녕, 슈랑카 평원 안에서도 70%가 넘는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달성한 것이었다.
덕분에 유저들은 신이 났다.
“흐으, 이게 전부 이안님 덕분이야.”
“암, 그렇고 말고. 난 이제 누가 이안님 까면 목숨 걸고 쉴드 쳐야겠어. 진짜 오늘 전투 하시는 거 보고 지릴 뻔 했음.”
“미 투.”
유저들이 웅성거리며 저마다 자신의 기여도와 보상을 확인하는 사이, 이안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투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안은 쓰러진 상급마수의 앞에 창대를 쭉 늘어뜨린 채, 허공에 떠올라 있는 결과 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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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벌대 기여도 현황 -
유저 네임 : 이안
직책 : 사병
랭크 : D
보유 포인트 : 28563442
누적 피해량 : 3298749K
초당 피해량 : 220938
누적 회복량 : 378988K
누적 킬 포인트 : 4398
:
:
누적 피해량 랭킹 : 1위 (상위 0.01%)
초당 피해량 랭킹 : 1위 (상위 0.01%)
누적 회복량 랭킹 : 16위 (상위 0.04%)
누적 킬 포인트 랭킹 : 1위 (상위 0.01%)
최종 기여도 랭킹 : 1위 (상위 0.01%)
* 최종 기여도에는 DPS(초당 피해량) 랭킹을 제외한, 누적 피해량과 회복량, 그리고 킬 포인트만이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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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피해량, DPS, 킬 포인트 등 모든 공격포인트에서 1위를 차지한데다, 뿍뿍이 덕에 회복량 랭킹마저 20위권 안쪽으로 들어선 이안.
뿍뿍이의 스킬 자체는 토벌대 안에 있던 어떤 사제가 가진 스킬보다도 힐량이 압도적이었지만, 사용하는 모든 스킬이 힐과 관련된 스킬인, 상위 랭커 사제들을 앞질러 1위를 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정도 성적은, 이안으로서도 제법 흡족한 결과였다.
‘후후, 회복량 랭킹까지 최상위권으로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심연의 축복이 확실히 사기 스킬이긴 한가 보구나.’
전투 결과를 확인한 뒤 인벤토리를 정리한 이안은, 유저들을 따라 토벌대의 베이스 캠프로 복귀했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자존심 상하는(?) 사병 D 랭크의 명패를 교환해야 할 때였다.
“큼, 크흠…. 그러니까 자네, 기여도가 몇이라고?”
오늘 오전, 이안을 홀대(?)했던 막사의 NPC.
그의 앞에 선 이안은, 입을 열어 또박또박 자신의 포인트를 얘기했다.
“총 2856만 포인트 정도네요. 이 기여도를 전부 사용하면, 랭크를 어디까지 올릴 수 있죠?”
NPC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그리고 뭔가를 확인하던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2800만 포인트를 전부 사용하면… S랭크의 ‘백인장’ 직책까지는 가능하군.”
이안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전부 사용하도록 하죠.”
NPC가 다시한번 당황했다.
“저, 정말인가?”
그가 당황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2800만 정도의 포인트라면, 골드로 전환해도 200만골드가 넘는 막대한 양의 골드를 얻을 수 있었고, 명성치로 전환하면 15만이 넘는 명성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포인트를 전부 직책 올리는 데 사용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입장에서, 200만 골드나 15만의 명성치 정도는 얻어 봐야 티도 나지 않는 미미한 양이었다.
그 푼돈(?)을 얻는 것 보다, 토벌대의 직책과 등급을 최대한 올려놓는 것이 앞으로 도움 될 부분이 많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카일란을 해 오면서 생긴 일종의 ‘감’ 같은 것이었다.
‘직책이 높으면 보스나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할 기회도 분명 많아질 거야.’
생각을 결정한 이안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마음 바꿀 생각 없으니, 빨리 증명패나 새로 내 놔요.”
“아, 알겠네.”
NPC는 잠시 막사 뒤편에 있는 작은 방으로 돌아 들어가더니, 은빛 패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이안이 본래 가지고 있던 후줄그레한 목패 보다는 확실히 때깔이 좋은 물건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안님. 이제부터 이안님은 S랭크의 ‘백인장’ 이십니다.”
이안이 신분패를 건네받자, 말투마저 달라지는 NPC.
이안은 그의 말투가 왜 달라졌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후후, 같은 백인장 끼리도 랭크의 차이에 따라 계급 상하가 구분되나보군.’
NPC의 직책도 이안과 같은 백인장이었지만, 그는 B랭크에 불과했고 이안은 S랭크였던 것.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NPC에게 하대했다.
“그렇군. 고마워. 그런데 내가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백인장의 위에는 직책이 몇 개나 더 있지?”
백인장은 사병보다 두 단계 업그레이드된 직책이었다.
사병S랭크의 윗단계가 십인장 이었으며, 십인장S랭크의 윗 단계가 ‘백인장’ 이었던 것.
이안은 최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음… 총 네 개의 직책이 있습니다. 바로 위에는 천인장이 있고, 그 위에는 대장군. 대장군의 위에는 사령과 총사령이 있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총사령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포인트는 몇인 거지?”
npc가 대답했다.
“3억 포인트 정도… 일 겁니다.”
“음…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
3억 포인트라면, 오늘의 페이스로 10~12일 정도 전투하면 모을 수 있는 분량.
오를 수 있는 최종 직책이라는 부분을 감안하면, 이안의 입장에서는 쉬워 보일 수도 있는 난이도였다.
하지만 NPC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포인트만 있다고 총사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음… 그럼? 뭐가 또 필요한 건데?”
“제국 황제폐하의 권위가 담긴 물건이 필요합니다. 루스펠 제국이던, 카이몬 제국이던 상관 없습니다. 황제의 권능이 담긴 물건이면 됩니다. 이 차원전쟁의 총사령이라면 그 정도의 권위는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황제의 권위가 담긴 물건이라….”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그가 손뼉을 살짝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아, 그 외에도 방법이 하나 더 있네요.”
“…?”
“잊혀진 제국의 황제인 ‘전륜성왕’의 신물 같은 것도 가능합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안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삼일 동안 풀 타임으로 토벌대에 참여한 이안.
그는 총 1억에 가까운 포인트를 모을 수 있었고, S랭크의 천인장까지 계급을 올릴 수 있었다.
이는 북부대륙에서는 최고의 계급이었으며, 중부대륙에 있는 모든 토벌군까지 통틀어도, 순위권을 다툴 정도로 높은 계급이었다.
며칠 늦게 토벌대에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안은, 삼일간의 전투를 통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이거… 이대로 가다가는 20일차가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마수 사냥에 도가 튼 이안은, 다른 유저들보다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에 대한 체감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이안이 보기에 지금의 난이도 증가폭은, 절대로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6일차 정도인 지금까지야, 그래도 상대할 만한 녀석들로 마수들이 구성되어 있었지만, 이 페이스로 난이도가 올라가면 20일차 쯤에는 발록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빠르게 퀘스트를 마치고 오는 것이 좋겠어.’
그리퍼와 이리엘은, 주병신보만 있으면 마계 침략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건의 정확한 능력은 이안이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돌아가는 정황으로 봐서는, 그 물건이 꼭 필요할 것만 같았다.
이안은 북부대륙의 토벌대를 둘러보며 대략적인 전력을 가늠해 보았다.
‘당장 내가 빠지더라도 이제 한동안은 버틸 수 있는 전력이야. 적어도 일주일 안에 유저들의 영지가 있는 곳 까지 마수들이 밀려들지는 않겠지.’
이안이 토벌군에 합류한 뒤, 북부대륙의 토벌군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일단 유저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으며, 이안으로부터 얻은 정보로 인해, 마수들의 공격패턴과 스킬들에 대한 지식도 다들 숙지한 상태였다.
게다가 제법 이름 있는 랭커들도 여럿 합류한 덕에, 아예 다른 집단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전투력이 향상된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기여도를 올리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전륜성왕 퀘스트를 마치고 돌아와야겠어. 기여도는 이후에 올려도 충분해.’
주병신보를 얻고, 여의주를 얻어 뿍뿍이를 어비스 드래곤으로 진화시킨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강력한 전력으로 마수들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음을 정한 이안은, 토벌대의 부대장인 서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서희님.]
[서희 : 네, 이안님. 무슨 일이시죠?]
[이안 : 제가 내일 토벌대부터는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토벌대장을 다시 서희님께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서희 : …네에?!]
[이안 : 제가 급히 마무리지어야 할 퀘스트가 있어서… 한 일주일 정도만 어떻게 버텨 주시면,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서희 : 으음… 가능 할까요…?]
[이안 : 제가 처음 왔을 때 보다 전력이 훨씬 강해져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유율이 좀 떨어지더라도 무리만 하지 말고 막아 주세요. 떨어진 점유율이야 다시 찾으면 되는 거니까요.]
[서희 : 음… 네, 뭐 알겠습니다. 이안님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
:
그렇게 서희에게 인수인계를 마친 이안은, 곧바로 동부대륙을 향해 이동할 채비를 시작했다.
‘퀘스트가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될 텐데….’
퀘스트의 내용 상, 마계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기 전에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어야만 하는 퀘스트였다.
퀘스트의 마지막에 있는 주병신보는, 마계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물건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안은, 충분히 빨리 해 낼 수 있는 퀘스트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다만,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
이안은 로터스 영지로 돌아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각자의 임무를 주어 뿔뿔이 흩어놨던 가신들을 전부 불러 모았으며, 소환수들의 상태도 꼼꼼히 점검한 것이었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난이도인 만큼, 준비는 철저해야 했다.
‘좋아, 이제 출발해 볼까?’
동부대륙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차원의 마탑은 포탈을 타고 이동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안은 쉴 틈 없이 곧바로 차원의 마탑을 향해 움직였고,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탑에 도착하자마자, 예기치 못했던 난관(?)이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 (2). 잊혀진 제국을 찾아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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