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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262화 (286/1,027)

< (8). 나태한 드래곤 -2 (11권 완) >

*          *          *

“마계와 중부대륙 이외에, 다른 맵을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사막지대가 대부분인 중부대륙과, 칙칙한 마기가 넘실거리는 검붉은 빛깔 일색인 마계.

그에 비하면, 북부대륙은 정말 천국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맑은 하늘과 청량한 공기!

유일한 단점이라면, 설원지대가 많아서 좀 춥다는 정도.

‘그래도 더운거 보단 역시 추운 게 낫지.’

이안은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제법 타당 명료했다.

‘더울 때 벗는 건 한계가 있지만, 추우면 계속 껴입으면 되잖아?’

하지만 모두가 이안과 같은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주인아, 여기는 대체 왜 이렇게 춥냐.”

이안은 뒤에서 오들오들 떠는 카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카카, 너 북부대륙 처음 와봐?”

카카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와보는 건 아니다, 다만….”

“다만?”

“와본지 최소 1500년 정도는 된 것 같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

그리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가녀린 중생이 하나 더 있었다.

“주인아, 나 너무 춥뿍.”

둥글둥글한 턱을 달달 떨며 어기적 어기적 이안을 따라오고 있는 뿍뿍이.

이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넌 여기 나랑 자주 왔었잖아? 갑자기 왜 춥다는 거야?”

뿍뿍이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때는 따뜻한 등껍질이 있었다뿍.”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히려 그때보다… 지방층이 두터워진 지금이 더 따뜻할 것 같은데….”

찌릿-!

뿍뿍이가 이안을 노려봤지만, 이안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저 능선만 넘으면 마계 차원포탈이 있는 곳이야.”

지금 이안은 다름 아닌, 마계 몬스터 웨이브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안이 가고 있는 곳은, 이안의 영지인 로터스 영지에서 가장 가까운 마계 차원문.

이안이 시간을 확인한 뒤 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오늘 웨이브 오픈까지 15분 정도가 남았으니까… 도착하면 한, 두 시간 정도 지나 있으려나….’

이안은 새로 얻은 행성파괴무기(?)와 전설등급으로 진화한 뿍뿍이를 써 보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물론 전륜성왕의 퀘스트를 바로 하러 가더라도 원 없이 싸울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전투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전륜성왕과 관련된 퀘스트를 하기 시작하면… 분명 또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괴물들을 만나게 되겠지.’

원래 새로 얻은 아이템의 성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선, 지금까지 사냥해왔던 환경과 비슷한 곳에서 사냥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무기로 바뀌어도, 사냥터의 난이도 자체가 올라가 버리면 결국 그 둘이 상쇄되어 버리기 때문.

이안은 시험해 보고 싶은 장난감들이 생겼으니, 지겹도록 사냥했던 마계 몬스터 들을 상대로 원 없이 전투를 치러 볼 생각이었다.

‘마침 로터스 영지 안에 동부대륙 방면으로 워프 할 수 있는 포탈도 있으니까. 반나절 정도만 마계 웨이브란 걸 경험해 보고 차원의 마탑으로 가야겠어.’

계획을 정한 이안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기왕 몬스터 웨이브 사냥하러 가는 거면 1초라도 더 잡아야지.’

*          *          *

“으으… 진짜 빡세네요. 오늘은 슈랑카 평원 뿐만 아니라, 왠지 리벨리아 고원 까지도 뚫릴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3일차인데 벌써 이래버리면, 나중에 20일차 30일차 될 때는 대체 어디까지 밀려 내려올는지….”

북부대륙에 열린 두 개의 마계차원문 중 한 곳이 열린 슈랑카 평원.

그 곳에는 구름같이 많은 유저들이 마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오늘로 마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지는 3일 째.

유저들은 그간 전투에 참여하며 얻었던 팁이라던가 정보들을 서로서로 나누고 있었다.

첫 날에는 정말 난장판에 가까운 전장이었으나, 몬스터 웨이브의 난이도가 어마어마함을 체감한 뒤로 유저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 그나저나 슈랑카 평원에만 유독 랭커들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랭커들이 대부분 중부대륙에 모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북부대륙 방치하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은데….”

“님들, 그게 아니고… 우리 루스펠 제국에 랭커 숫자가 엄청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으음…?”

“잘 생각해 보면, 상위권 유저 대부분이 카이몬 제국 출신이에요. 루스펠 출신 랭커들은 아마 중부대륙에 투입되기도 벅찰 겁니다.”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여러번 설명하지만, 마계 몬스터 웨이브가 열린 곳은, 총 네 곳이며 그 중 두곳은 중부대륙에 있었고, 나머지 두 곳은 북부대륙에 있었다.

그런데 몬스터 웨이브가 생성된 위치가 참 애매했다.

중부대륙의 두 몬스터 웨이브는 멀지 않은 곳에 모여있는 반면, 북부대륙의 몬스터 웨이브는 북부대륙의 양 극단에 생성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서쪽 끝에 열린 마계 차원문은 카이몬 제국의 유저들이 지키게 되었고, 동쪽 끝에 열린 마계 차원문은 루스펠 제국의 유저들이 지키게 된 것.

그래서 카이몬 제국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부족한 루스펠 제국은, 마계 몬스터 웨이브를 좀 더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차원전쟁 방어군 막사의 한 쪽 구석.

전투 준비를 마친 몇몇의 유저가 한숨을 푹 푹 쉬고 있었다.

“휴우… 그런데 우리 루스펠 제국에 정말 랭커가 그렇게 없나요?”

“네, 정말 없죠. 알려진 유명한 랭커인 이라한이나 샤크란, 세일론 등등 대부분의 강력한 유저들이 카이몬 제국에 포진해 있으니까요. 루스펠 제국의 알려진 랭커라고 해 봐야, 사무엘진, 로이첸, 마틴 정도인데…. 로이첸님은 그나마 아직 전체 5위권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마틴님은 9위였나? 거의 10위권 끝자락으로 떨어졌고 사무엘진님은 아예 10위 밖으로 밀려났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궁사 클래스 랭킹도 2위로 떨어 졌구요.”

그의 말에, 근처에 앉아 잠자코 듣고 있던 한 소환술사 유저가 대꾸했다.

“님, 근데 방금 빼먹으신 루스펠 소속 랭커분이 몇 명 있네요.”

“음…?”

“레미르님과 이안님을 빼먹으셨어요. 정말 중요한 두분을요.”

남자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그 두 사람은 몬스터 웨이브에 나타난 적이 아예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레미르 님이야 자타공인 마법사 랭킹 1위의 유저니까 분명 엄청난 활약을 하실 텐데… 이안님은 클래스 랭킹 1위라고는 해도 고작 소환술사 랭킹 1위인데 나와서 뭘 하겠어요?”

그 말에, 지금까지는 소극적으로 듣고 있던 소환술사 유저가 발끈하며 대꾸했다.

“헐, 이분 최소 이안님 전투영상 한 번도 안 보신 분이네.”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당연히 봤죠. 그리고 저도 감탄했습니다. 전투센스가 어마어마한 유저인 건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결국에는 소환술사에요. 레벨 업 난이도가 극악이라는 소환술사. 지금 소환술사 공식 랭킹 1위의 레벨이 170도 채 되지 않던데… 그 레벨로 뭘 하겠어요?”

소환술사 유저가 다시 한번 발끈했다.

“이안님은 달라요…! 제 생각에 이안님 레벨은 못해도 180~190 정도는….”

그의 말에,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휘유, 소환술사 유저들 사이에서 이안님이 거의 신처럼 추앙받는 건 알고 있는데, 사실 몇 몇 영상 때문에 너무 부풀려 진 것 같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이안님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공식 랭킹 1위랑 레벨차이가 10 이상 날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건….”

“제 생각에는요, 만약 이안이 여기 지금 나타난다고 해도… 아마 방어군 딜량 순위 10위권도 힘들 거예요.”

“으음….”

남자의 일목요연한 정리에, 이안을 옹호하던 소환술사 유저는 풀이 죽어 버렸다.

‘절대 그럴 리 없는데… 이안님이 여기 오시면 분명 하드 캐리 가능할 거야.’

그는, 얼른 이안이 차원전쟁 방어군에 참여해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휘유, 고달픈 소환술사 게임인생이여….’

그런데 그 때, 멀찍이서 커다란 북이 울리기 시작했다.

둥- 둥- 둥-

“전투 시작 3분 전입니다! 모두들 정비 끝내시고 전투 태세로 전환해 주세요!”

*          *          *

띠링-

[차원전쟁 방어군 막사에 합류 하셨습니다.]

[전쟁에 참여하려면, 토벌대원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이안은 최대한 서둘러 움직였지만, 전투가 시작한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막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뭐야, 등록도 해야 되는 거였어?”

한 시라도 빨리 사냥을 하고 싶었던 이안은, 생각지 못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 얼굴을 찌푸렸다.

‘어디보자… 저쪽인가?’

이안은 후다닥 움직여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막사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npc 하나가 꾸벅꾸벅 졸며 앉아 있었다.

‘요 놈인 거 같은데….’

이안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그에, 잠에 취해 있던 npc가 화들짝 놀라며 이안을 응시했다.

“뭐야? 아직도 막사에 남아있으면 어떡해? 전투가 시작된 지 언젠데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이안이 곧바로 대답했다.

“차원전쟁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전쟁에 참여하려면 신규 대원으로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해서….”

이안의 말이 끝나자 마자, npc는 귀찮다는 듯 나무로 된 패 하나를 던져주며 얘기했다.

“이 패 들고, 저기 저 서류 보이지? 저기에 서명하고 가면 돼.”

그리고 이안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몇 줄 떠올랐다.

띠링-

[슈랑카 평원의 ‘마계침략군 토벌대원’으로 등록되셨습니다.]

[직책 - 사병]

[등급 - D]

[모든 직책에는 S~D까지의 다섯 등급이 존재하며, 전투에 참여하여 높은 전공을 올릴수록, 높은 직책과 등급을 얻게 됩니다.]

[직책과 등급이 높을수록, 몬스터 웨이브가 끝날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좋아집니다.]

:

:

이안은 손에 들려있는 나무패를 슬쩍 응시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조악한 글씨로 D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이안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뭐야…? 사병인데다, D등급?’

무려 ‘후작’이라는 지고한 신분을 가진데다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공작’을 넘어 ‘대공’이 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명성치를 모아 둔 이안.

그랬기에 이안은, npc의 이런 푸대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쌓여 있는 명성만 천만 단위가 넘는데… 이쯤 되면 알아볼 법도 하지 않나?’

어쨌든 시스템 상 토벌대의 직책은 명성과 상관이 없어 보였고, 이안은 바닥부터(?)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

원래는 잠깐 동안만 맛보기로 참여해 본 뒤 퀘스트를 하러 갈 생각이었던 이안이었지만, 이렇게 되자 알 수 없는 반발심(?) 같은 게 생겨버렸다.

D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목패를 품 속에 대충 쑤셔 넣은 이안은, 막사를 나서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계획 변경이다…!”

마계 몬스터 웨이브에 반나절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었던 이안.

‘딱 3일 정도만 투자해 보자. 그때까지 공적치 쌓으면 그래도 괜찮은(?) 등급은 받을 수 있겠지.’

이안의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8). 나태한 드래곤 -2 (11권 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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