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나태한 드래곤 -1 >
귀룡(龜龍)은, 거북‘귀’자에 용‘용’이 합쳐진 말이다.
말 그대로 ‘거북용’이라는 의미.
그런데 거북이의 상징인 등껍질이 떨어졌다.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뿍뿍이에게 다가갔다.
“야, 뿍뿍아. 이거 떨어져도 되는 거냐?”
이안의 물음에 뿍뿍이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렇뿍. 난 이제 그거 필요없뿍.”
“너 거북이잖아. 거북이가 등껍질이 없는 게 말이 돼?”
뿍뿍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다뿍. 나는 이제 드래곤이다뿍.”
이안은 뿍뿍이의 외모를 다시 한번 아래위로 살폈다.
‘대체 이 놈은 정체가 뭐야?’
거북이라기에는 이제 등껍질도 사라졌고, 그렇다고 용이라기에는 너무 순둥순둥하게 생긴 외모.
일단 눈부터가 동그랗고, 맨들맨들한 입이 뭉뚝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얼굴만 보면 거북이 같기도 했다.
‘흐음… 하마 케릭터같이 생긴 거 같기도 하고….’
아무렴 어떠랴.
이안은 뿍뿍이가 사랑스러웠다.
이안의 소환수를 보는 가장 큰 기준은, 언제나 성능(?) 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뿍뿍이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이안의 시선이 땅에 떨어져 있는 등껍질을 향해 움직였다.
“그나저나 이 등껍질은 어떡하지? 기념으로 가지고 가야 하나…?”
마치 허물을 벗은 것처럼 뿍뿍이의 뒤쪽에 널브러져 있는 등껍질.
이안은 그것을 집어 들어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어디 쓸모가 있는 물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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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룡의 등껍질 -
분류 - 잡화(제작 재료)
등급 - 전설
내구도 - 1/1(내구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전설 속의 신수인 ‘심연의 귀룡’의 등껍질이다.
이 등껍질은 방패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재료로 알려져 있어, 골드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물건을 얻기 위해선, 수백년 이상 묵은 귀룡을 사냥해야 하는데, 아직 귀룡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 단단한 등껍질 -
* 등껍질로 피해를 막아낼 시, 20%만큼의 피해를 흡수할 수 있다.
- 전설의 재료 -
* ‘전설’등급의 재료이다. 제작 시 높은 확률로 ‘전설’등급의 장비를 얻을 수 있으며, 매우 낮은 확률로 ‘신화’ 등급의 장비를 얻을 수 있다.
(전설 등급의 재료는, 제작 숙련도가 ‘마스터’레벨인 대장장이만이 사용할 수 있다.)
*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이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랍되지 않는다.
귀룡의 등껍질로 만든 방패는, 어떤 공격에도 뚫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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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설명을 읽은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쓰라는 거야?’
귀룡의 등껍질.
설명만 읽어봐도 엄청나게 좋은 제작 재료인 것은 분명했다.
심지어는 낮은 확률로 신화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재료!
하지만 문제는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날더러 대장장이 생산숙련도를 올리라는 거야 뭐야…?’
우선 현재의 카일란에는, 어떤 생산직종도 마스터 레벨에 오른 유저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전투 직업에 비해, 생산직업의 숙련도 쌓는 난이도가 2배 가까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야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 최고 레벨의 숙련도를 가진 대장장이는, 그래도 고급 상위레벨까지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한 일년 정도면 마스터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치명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니 재료 아이템에 계정귀속이 붙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오…!! 의뢰를 맡길 수가 없잖아!’
그랬다.
재료아이템에 ‘계정귀속’ 옵션이 붙어 버리면, 다른 생산직업군 유저에게 아이템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 말인 즉, 이안이 직접 제작스킬을 올릴 것이 아니라면, 이 귀룡의 등껍질은 아예 손도 댈 수 없는 물건이라는 말이었다.
‘그것도 마스터 까지 말이지….’
생산직업은 전투직업과 달리 여러 개를 얻을 수도 있다.
이안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부터 대장장이의 길에 들어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가다를 좋아하는 이안이라고 해도, 이 시점에 대장간에 가서 망치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 신이시여….”
안 좋은 손재주 탓에 소환수 전용 부적을 제작하는 것도 무척이나 어려웠던 이안.
그런 그에게 최고의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대장기술은,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후우… 그래도 버릴 수는 없으니까, 가지고는 있어야겠지.’
이안은 귀룡의 등껍질을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피격시 10%정도의 데미지를 흡수해 주는 괜찮은 능력을 가지긴 했지만, 등에 메거나 하기엔 움직임에 제약이 너무 커지는 제법 커다란 크기였다.
‘언젠가는… 내가 카일란을 접기 전에는 정말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 대장기술을 배우게 될 지도 몰라.’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마친 이안은, 아직도 미트볼을 먹고 있는 뿍뿍이를 향해 말했다.
“뿍뿍아, 이제 여기 나가자. 미트볼 좀 빨리 먹어.”
이안은 뿍뿍이를 재촉하기 위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소환수 ‘뿍뿍이’의 고유능력인 ‘먹을 땐 방해하지 마!’가 발동되었습니다.]
[343762만큼의 내구력을 가진 보호막이 뿍뿍이의 주변에 생성됩니다.]
퉁-
반투명한 푸른 보호막이 뿍뿍이의 주변에 생성되면서, 이안의 걸음이 보호막 앞에 가로막혔다.
“…? 이거 뭔데?”
당황한 표정으로 뿍뿍이를 향해 고개를 돌린 이안.
이안과 눈이 마주친 뿍뿍이는 느긋한 자세로 천천히 식사를 마무리했다.
“뿍, 원래 밥 먹을 땐 거북이도 안 건드리는 거다뿍.”
“….”
이안은 그렇게, 뿍뿍이의 식사가 끝날 때 까지 얌전히 기다려야만 했다.
* * *
몇 시간인지 헤아리기도 힘든 긴 시간을 캡슐 안에서 보낸 진성.
진성은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침대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으… 지금 몇 시지?’
낮과 밤의 구분까지 희미해진 진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깥은 밝고, 9시 반인 것을 보니까… 새벽 9시 30분인가….’
카일란 오픈 초반, 규칙적인 올바른 게임 플레이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진성.
하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고난이도의 퀘스트를 많이 진행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밤낮이 바뀌는 것은 비일비재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느새 올빼미가 되어버린 이안에게, 아침 9시 30분은 새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예 20시간 정도 자야겠어. 누적된 피로를 다 풀어버리고, 맑아진 정신으로 다시 접속해야지.”
20시간 뒤인 새벽 5시 정도에 알람을 맞춰 놓은 진성은, 그대로 잠에 곯아 떨어졌다.
* * *
“그러니까… 저희 길드에 들어오고 싶으신 거예요?”
눈을 동그랗게 뜬 헤르스의 앞에는, 붉은 빛깔의 로브를 두른 한 여성 마법사가 서 있었다.
타는 듯이 붉은 머리를 가진 적발의 마법사, 레미르는 고개를 저으며 헤르스에게 대꾸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마계 몬스터 웨이브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로터스 길드와 함께 하고 싶다는 거예요.”
“아하….”
이안과의 지옥같았던 4일간의 사냥.
그 때의 악몽을, 레미르는 잊을 수 없었다.
‘뭐 그렇게 악마 같은 놈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최소한의 휴식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모든 시간을 사냥하는 데 쓰는 것은 기본.
‘게다가 나중에는 내 액티브 스킬들의 쿨타임까지 다 외워 버렸어.’
패시브 스킬의 경우에는 발동 이펙트가 크지도 않고, 파티원인 이안이 정확한 발동시점을 알기 힘들었다.
하지만 공격마법과 같은 액티브 스킬의 경우, 당연히 시전자 본인이 아니더라도 발동여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파티원의 스킬 쿨타임을 체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안은, 처음 하루 정도의 사냥이 끝나자, 레미르의 엑티브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모조리 알고 있었다.
‘그게 말이 쉽지, 내 엑티브 스킬이 몇 갠데 발동 시점을 전부 다 알 수가 있는 거냐고.’
심지어 이안은, 단순히 시간만을 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킬이 발동될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원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그게 그저 전투감각이라고 생각했던 레미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이안에게 물어봤던 것이었다.
[이안님, 어떻게 제 스킬 타이밍을 그렇게 정확하게 아는 거예요?]
[아, 그거요. 레미르님 스킬들 재사용 대기 시간을 전부 다 외웠거든요.]
[…?]
[잉걸불은 3분 30초 정도, 빙하의 장막은 2분 15초쯤. 화염폭발은 25초 정도인 것 같고….]
이안과의 대화가 잠시 떠오른 레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대체 여기를 왜 온 거야?’
사냥이 끝난 직후, 레미르는 다시는 이안과 파티를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자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사냥하는 동안의 고통(?)은 어느새 잊혀지고, 경험치 게이지에 들어찬 경험치들과 인벤토리에 가득한 마정석, 그리고 높은 등급의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안, 그 괴물 같은 놈과 함께가 아니면 이런 수준의 미친 사냥은 불가능 해.’
로터스 길드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까지는 아직 없었지만, 이안과의 파티 사냥을 한번쯤은 더 해보고 싶었던 레미르.
마침 로터스 길드의 영지인 파이로 영지가 몬스터 웨이브와 멀지 않은 위치에 자리해 있었고, 레미르는 이안과의 사냥을 한번 더 경험(?)해 보기 위해 파이로 영지를 찾아온 것이었다.
레미르가 헤르스를 향해 말했다.
“제가 함께 있으면, 그래도 짐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가요, 제 제안을 받아 주시겠어요?”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헤르스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랭킹 1위 마법사를 돈 안 들이고 고용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기회를 차 버리는 건 말도 안 되지!’
헤르스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희야 레미르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면, 영광입니다.”
“고마워요, 헤르스님.”
잠시 곱상한 레미르의 얼굴을 응시하던 헤르스의 뇌리에 문득 이안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우리 길드 전력에 랭킹 1위가 클래스 별로 셋이나 생기는 건가?’
며칠 전에 피올란에게 찾아온, 사제 클래스 랭킹 1위 유저인 레비아.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마법사 클래스 랭킹 1위 유저인 레미르.
마지막으로 압도적인 소환술사 랭킹 1위인 이안까지.
“근데 이안 이 녀석은, 대체 언제 합류하는 거지?”
헤르스의 중얼거림에, 레미르가 반응했다.
“이안님이 지금 여기에 안 계신가요?”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이안이 못 본지가 오래됐네요. 지금 무슨 중요한 퀘스트 한다고 바쁜가봐요. 조만간 합류하기로 했으니, 아마 올 거예요.”
이안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지만, 레미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군요.”
어차피 이안이 없더라도, 파이로 영지만큼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하기에 훌륭한 구조를 가진 방어요새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레미르는 천천히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하며, 이안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 (8). 나태한 드래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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