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심연의 귀룡, 뿍뿍이 -2 >
* * *
‘젠장…!’
이안은 날아드는 해머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변칙공격을 할 줄이야…!’
지금 시점은, 절대로 보스 패턴이 바뀔 타이밍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런 식의 변칙공격은, 이안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몬스터 주제에 예측공격을 하다니…!’
이안은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저 무식한 쇳덩이에 맞으면 그대로 즉사할 게 분명했다.
타탓-!
몸을 날리던 도중,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벽을 차고 절묘하게 방향을 틀어낸 이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머 공격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흐읍…! 약간 스칠 지도 모르겠는데… 생명력이 조금이라도 남길 바래야 하는 건가…?’
그런데, 바로 그 때.
이안의 앞에 거대한 물의 장막이 솟아올랐다.
촤아아-!
이안과 부딪히기 직전이었던 해머는, 물의 장막에 모든 파괴력이 흡수되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고,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뭐지, 이건? 뿍뿍이의 ai가 스킬을 발동시킨건가?’
그야말로 기가막힌 타이밍에 이안의 앞에 등장한 물의 장막.
이것은 바로 뿍뿍이의 고유능력이었고, 그랬기에 이안은 무척이나 놀랐다.
뿍뿍이의 지능 스텟은 높은 편이 아니었다.
이안이 직업 커맨드를 내려주지 않으면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에 고유능력을 발동시킬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소환수렸던 것이다.
“후우… 후우…!”
운이 좋았던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위기를 넘긴 이안은 호흡을 고르며 심연의 군주를 노려보았다.
물론, 뿍뿍이에게 칭찬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했어, 뿍뿍! 니가 최고야!”
뿍뿍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뿍- 뿌뿍-!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다뿍! 내가 다음에도 주인을 지켜주겠뿍!”
이안은 평소에 칭찬에 무척이나 인색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정도의 칭찬은, 뿍뿍이의 소환수 인생 최고의 칭찬이었던 것.
호흡을 고르고 다시 자세를 잡은 이안은, 소환수들을 향해 분주히 커맨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자책했다.
‘집중하자, 진성아!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끝이야!’
방금의 공격은, 분명히 예측 가능한 범위 밖의 변칙공격이었다.
그 누구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공격.
하지만 이안은, 좀 더 완벽하지 못했던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앞으로 20분…! 20분 안에는 녀석을 잡고 던전을 클리어한다.…!’
마음을 다잡은 이안이 창대를 고쳐 쥐고 다시 심연의 군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심연의 군주의 생명력 게이지 바는, 이제 30%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 * *
중부대륙의 널따란 사막 맵 중 하나인, 마오칸 사막.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대규모의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마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면서, 포탈을 통해 쏟아져 나온 무지막지한 숫자의 하급 마수들과, 그들을 사냥하기 위해 구름같이 모여든 수많은 카일란 유저들 간의 혈투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거의 중부대륙이 처음 열린 직후, 제국 간의 수십만 대군이 처음 맞붙었을 때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하지만 그때와는 사뭇 전투의 분위기가 달랐는데, 그 이유는 유저들을 휘어잡아 통솔하는 제대로 된 지휘관이 없기 떄문이었다.
중부대륙에서 벌어진 제국간의 전투가 체계적인 전쟁을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전투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어지러운 난전의 연속이었다.
깡- 까강-!
그리고 카일란 전역의 온갖 유저들이 다 모이다 보니, 별에 별 유저들이 다 있었다.
“제기랄, 150레벨도 안 되는 쪼랩들은 대체 여길 왜 온 거야?”
“비켜, 비키라고! 지금 네놈이 시야를 가려서 생명력이 반이나 빠졌잖아!”
“하, 이 초딩같은 놈이, 남탓 쩌네? 내가 방금 이쪽에 들어오는 하급마수 하나 잘라먹은 거 안보이냐?”
“아니, 그걸 왜 들어가…! 너만 안 들어왔으면 내 광역기에 싹 다 쓸리는 거였잖아? 하… 노답이네, 진짜 전투 흐름이란 걸 볼 줄 모르는 허접인 듯. 레벨만 높으면 뭐함? 에휴….”
속칭 ‘아니시에에팅’(남탓의 시작을 알리는 말로 "아니"로 시작하여 중간에 "하"가 들어가며 끝은 보통 "에휴"와 같은 탄식으로 끝나는 말.)을 시전하여 다른 유저들의 멘탈을 원심분리 시키는 초딩은 물론.
“신의 가호!”
위잉- 위이잉-
“아니, 이 미친놈이! 왜 마수한테 쉴드를 거는 거야? 으아악!”
의도적으로 적 몬스터에게 쉴드나 힐, 혹은 버프를 걸어 다른 유저에게 빅엿을 선사하는 사이코패스까지.
“큭, 크큭. 이 짓은 언제 해도 재밌단 말이지.”
정말 다양한 미치광이들이 날뛰는 혼돈의 전장이었지만, 그래도 유저들은 꾸역꾸역 마수들을 상대해 내고 있었다.
“화염장벽!”
“성스러운 빛!”
하지만 모든 유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마계 몬스터 웨이브가 생각보다 난이도가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물론 몬스터 웨이브가 처음 열린 지금 시점에서는, 유저들이 큰 차이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오늘이 겨우 웨이브 ‘첫 날’ 이라는 점이었다.
난이도가 가장 낮은 첫날이었기에, 레벨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구경나온 저레벨 유저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그들은 전투가 시작한지 채 한시간도 되지 않아서 모두 전장 밖으로 도망가거나 마수들의 공격에 전멸당했다.
고레벨 유저들도 힘겹게 싸우는 마당에, 그들을 지켜줄 유저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쯤 되자, 양분되어 있던 커뮤니티의 여론이 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두 개의 몬스터 웨이브 포탈을 파괴한 이안과 레미르를 옹호하는 여론이 급격히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었다.
- 이안님 욕하던 놈들 다 어디로 버로우 탐?
- 그러니까요, 미친…! 이 정도 난이도 웨이브가 두 개 더 있었다고 생각해 봐요. 진짜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 맞아요, 제가 현재 170레벨 정도 되는 전사클래스 유저인데, 오늘 사냥중에 최소 서너번 정도는 죽을 뻔 했다니까요?
- 아니, 님들. 왜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거임? 예상보다 몬스터 웨이브 난이도가 높았다고는 하지만, 네 군데 웨이브 중 첫 번째 지역에서 밀려나온 곳은 한 군데도 없잖음? 웨이브 두 개 쯤 더 있었어도 충분히 막아냈을 법 하구만….
- 오늘이 웨이브 첫날인 건 생각 안 합니까? 한달 동안 지속될 몬스터 웨이브 중에, 가장 난이도가 저질인 첫 날의 몬스터 웨이브였다구요.
- 쯧쯧… 저 님 분명 오늘 몬스터 웨이브 구경도 못 해본 쪼랩 유저가 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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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첫 날의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마계 몬스터들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가 풀리기 시작했고, 유저들은 그에 맞춰서 발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첫 날의 전투가 정말 아무런 계획도, 전략도 없는 무식한 주먹구구식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파티도 구성하고 조금씩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심각성을 느낀 상위권 유저들은, 앞장서서 역할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카일란의 모든 유저들이 마계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분주한 이 시점에,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던전을 클리어 중인 유저가 하나 있었다.
* * *
콰르릉-! 쾅- 쾅- 쾅-!
허공에서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들!
이안은 정신없이 그것들을 피해 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게 뭐야! 내가 지금 RPG게임을 하는 건지 슈팅 게임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뿍뿍이의 상향된(?) 지능지수 덕에, 한 차례의 위기를 모면한 이안은, 그 뒤로 무난하게 전투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심연의 군주의 생명력이 5% 밑으로 떨어진 시점부터, 갑자기 전투 난이도가 확 올라가 버렸다.
거인이 커다란 함성을 지르더니, 허공에 무식하게 커다란 얼음덩어리들이 소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덕분에 이안은 덩치가 큰 빡빡이와 카르세우스를 재빨리 소환해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진짜 치명타 한 방이면 끝이야…!’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얼음덩이들의 패턴을 파악한 이안은, 라이와 할리를 컨트롤하여 조금씩 거인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10초 뒤에 페이즈가 바뀌는 타이밍을 노린다…!’
이안은 거인의 주변을 빙빙 돌며 완벽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떨어져 내리는 얼음덩이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할리, 라이, 지금이야!”
크르릉-!
이안과 그의 소환수들이 동시에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거인도 가만히 이안의 공격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방진 인간…! 죽어라…!!]
심연의 군주의 양 손에 새파란 빛을 내뿜는 한기가 모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있는 이안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할리! 이쪽으로!”
이안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자체 순발력 버프를 받은 할 리가 쏜살같이 이안을 향해 달려왔고.
콰아앙-!
거인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간 냉기의 광선은, 이안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반면에 거인의 논타겟 스킬을 멋지게 피해 낸 이안은, 할리의 등 위에 오른 채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지막이다…!!”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허공으로 치켜 들고는, 그대로 거인을 향해 투척했다.
이 한 방으로 거인을 무조건 처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면,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무모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데미지 계산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푸우욱-!
약점포착 스킬로 인해 표시된 거인의 약점에, 정령왕의 심판이 정확하게 틀어 박혔으며,
[‘심연의 군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심연의 군주’의 생명력이 463782만큼 감소합니다.]
그 공격으로 인해 정말 바닥까지 떨어진 거인의 생명력은, 뒤쪽으로 돌아 들어온 라이에 의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소환수 ‘라이’가 ‘심연의 군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심연의 군주’의 생명력이 273687만큼 감소합니다.]
[‘심연의 군주’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심연의 비동’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명성을 35만 만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7687만 만큼 획득했습니다.]
:
:
쿠웅-!
비밀 던전의 숨겨진 보스 몬스터인 ‘심연의 군주’.
그의 거구가 바닥에 쓰러지며 굉음이 울려 퍼졌고, 이안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천천히 거인을 향해 다가갔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
이안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심연의 군주가 지키고 있던 인장도 인장이지만, 그를 처치함으로서 얻은 보상 또한 생각보다 훨씬 짭짤했기 때문이었다.
‘하긴, 350레벨의 전설등급 보스를 처치한 건데, 보상이 적은 게 더 이상한 거겠지.’
새까맣게 변해 있는 보스의 사체에서 드랍된 아이템들을 수거한 이안은, 이제 그 뒤쪽에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둥실둥실 떠 있는 심연의 인장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심연의 인장은 릴슨이 말했던 것처럼, 연하늘 색의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물방울 모양의 보석이었다.
그 바로 앞까지 다가간 이안은, 자연스레 인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생각지 못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획득할 수 없는 형태의 아이템입니다.]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획득할 수 없는 형태라는 말은 또 처음 들어 보는데?”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뒤를 졸졸 따라온 뿍뿍이가, 심연의 인장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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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심연의 귀룡, 뿍뿍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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