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영약을 찾아서 -3 >
* * *
이안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드, 드디어! 이 식충이가 진화를 하는구나!!’
이안은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찔끔 나오려고 했다.
‘크으…! 이 녀석을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하면서 키웠는데! 이런 게 장성한 자식 보는 부모의 마음인가…!’
뿍뿍이가 들었더라면 극구 부정했을 만한 생각을 하며, 이안은 빛나는 뿍뿍이를 계속해서 응시했다.
우우웅-!
등껍질에서 새어 나오는 새파란 빛이 점점 강해졌고, 그럴수록 이안의 기대감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어비스 드래곤이 되는 건가? 아니지. 어비스 드래곤은 여의주가 있어야 된다고 했으니, 그 전 단계인 귀룡이 되겠구나.’
그런데 그 때, 이안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음? 근데 얘는 왜 몸 전체가 안 빛나고 등껍질만 빛나는 거지?’
이안의 시선이 뿍뿍이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뭐지? 이 불안한 느낌은 대체….’
일반적으로 소환수가 진화를 할 땐, 처음부터 온 몸이 빛나지는 않는다.
신체 일부 중 한곳으로부터 시작되어서 빛이 퍼지면서, 결국 몸 전체가 새하얗게 되는 것이 보통.
그런데 뿍뿍이는 등껍질 전체까지 퍼진 빛이, 거기서 더 확장되지 않았다.
이안이 뿍뿍이의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귓속말(?)을 건네었다.
뿍뿍이의 진화(?)에 방해가 될까 싶어 말을 크게 하지도 못했다.
“뿍뿍아…? 진화하는 중인거니?”
지금까지 많은 소환수들을 진화시킨 이안이었지만, 진화하는 중인 소환수에게 말을 건 것은 처음.
이안은 긴장한 표정으로 뿍뿍이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뿍뿍이로부터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뿍- 뿍- 뿌뿍-
이안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야, 너는 진화할 때도 뿍뿍거리는 거냐?”
뿍뿍이가 대답이 없자 안심(?)한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은 표정이 구겨질 수 밖에 없었다.
“뿍, 주인아. 무슨 소리 하는거냐뿍. 나 진화 안했뿍.”
뿍뿍이의 대답과 함께 밀려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
이안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사냥해서 쌓인 피로가 한 순간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후우, 뭐냐 뿍뿍. 진화하는 거 아니었냐?”
그에 입에 남아있던 마령초를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뿍뿍이가 대답했다.
“아직 아니다뿍. 그런데 이제 진화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뿍.”
그 순간, 허탈감으로 우울해 져 있던 이안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밝아졌다.
“크으, 그래? 그렇지?! 진화 할 수 있는거지?”
뿍뿍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뿍. 난 진화할 수 있뿍.”
이안의 말이 곧바로 이어졌다.
“그럼 진화 안하고 뭐하냐. 얼른 진화해라 뿍뿍아.”
그리고 뿍뿍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뿍! 나만 믿어라뿍!”
하지만 이안 소환사 인생 최대의 기대주(?) 뿍뿍이가, 그렇게 쉽게 진화해줄 리가 없었다.
이안의 시야에 느닷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소환수 ‘뿍뿍이’가 진화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어비스 터틀’의 진화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이안의 눈 앞에 주르륵 하고 퀘스트 창이 하나 생성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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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룡의 후예(히든) -
당신의 소환수 ‘뿍뿍이’가 인고의 시간을 노력한 끝에 드디어 진화 조건을 모두 충족하였다.
수백 년이 넘게 자연의 기운을 모아 ‘귀혼’을 완성한 뿍뿍이는, 이제 ‘어비스 터틀’에서 ‘귀룡’으로 진화하고자 한다.
귀룡으로 진화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열쇠인, ‘심연의 인장’을 찾아 ‘뿍뿍이’에게 전해주자.
퀘스트 난이도 : 알 수 없음.
퀘스트 조건 : ‘어비스 터틀’을 보유한 소환술사 유저. / ‘어비스 터틀’의 ‘귀혼’레벨 Max.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어비스 터틀 진화.
* 거절하면 뿍뿍이가 실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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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게 대체 뭐야. 뿍뿍이 이놈이 이젠 나한테 퀘스트도 줘? 아니지. 이 놈이 퀘스트를 준 게 아니라 그냥 어비스 터틀을 진화시키려면 원래 거쳐야 하는 과정인 건가?’
거기다가 퀘스트 창 마지막에 달려있는 한 줄의 문구가 가히 압권이었다.
‘거절하면 뿍뿍이가 실망합니다… 라니….’
이안이 고개를 돌리자 뿍뿍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인아, 나 심연의 인장이 필요하다뿍.”
이안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우… 그래. 이 형이 또 널 실망시킬 순 없지 않겠니.”
“그렇뿍. 주인은 날 실망시키지 않을거다뿍.”
이안이 두 눈을 게슴츠레 떴다.
‘역시… 이 놈이 퀘스트를 준 것 같은 느낌이….’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 심연의 인장인지 뭔지, 어떻게든 구해 보지 뭐. 혹시 알아? 경매장에라도 올라와 있을지.”
뿍뿍이가 얄밉게 대답했다.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없을거다뿍.”
“….”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적어도 이번에는 퀘스트 보상에 뿍뿍이 진화 라고 까지 써 있으니까… 저 인장인지 뭔지를 구하기만 하면 이제 확실히 진화는 할 거야.’
허탈감이 조금 가라앉은 이안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심연의 인장은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할까…?”
그러자 이안의 옆에 둥둥 떠있던 카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인아.”
“응?”
“그때 그 탐험가를 한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
“탐험가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카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때, 그 탐험가 있잖아. 주인이 천년 전의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 줬던… 그 인간 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탐험가.”
카카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이안은, 곧 손뼉을 탁 치며 일어섰다.
“아, 그래! 릴슨이라고 했었나? 그 사람이라면 심연의 인장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을 지도 모르겠어.”
‘탐험가’클래스는, 직업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대륙 곳곳을 샅샅히 뒤지고 다니는 방랑벽에 걸린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최고봉인, 랭킹 1위의 릴슨이라면, 물의 인장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카카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 때 내가 가지고 나왔던 ‘유물’을 감정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꼭 한번 만나야만 한다 주인아.”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어차피 한번은 무조건 찾아가야 하는 인물이었어.”
이안은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릴슨이라는 유저가 뿍뿍이의 진화를 캐리해 줄 히든카드가 되겠네.’
카카가 이안의 꿈 속에서 가지고 나온 유물 또한, 어차피 ‘여의주보’의 위치가 담겨 있는 고대의 지도였다.
릴슨을 찾아가 고대의 지도를 감정하고, 그에게서 심연의 인장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다면, 뿍뿍이를 단숨에 ‘어비스 드래곤’까지 진화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되면, 정말 소원이 없겠는데….”
중얼거리는 이안의 앞에서, 뿍뿍이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거냐뿍.”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 별 것 아니야. 네게 줄 심연의 인장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뿍뿍이의 말이 이어졌다.
“역시 주인밖에 없뿍! 얼른 인장을 찾으러 가자뿍. 나 빨리 진화하고싶뿍!”
이안의 발치까지 다가와 머리로 종아리를 부비며 재촉하는 뿍뿍이.
그 귀여운 모습에, 이안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조금만 기다려 짜샤, 그 전에 먼저 가 볼 데가 있어.”
뿍뿍이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뿍, 알겠뿍!”
이안은 뿍뿍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퀘스트 정보창을 열었다.
‘어디 보자, 마룡 칼리파 퀘스트가 어디에 있었더라…?’
이안은 릴슨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이리엘이 있는 사랑의 숲에 들를 생각이었다.
‘히든 퀘스트를 두 번이나 놓칠 수는 없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따로 제한시간이 없었음에도 마룡 칼리파 퀘스트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 퀘스트는 소멸하지 않고 다른 퀘스트로 바뀌었고, ‘10일’이라는 시간제한이 붙었다.
‘어디보자… 이제 한 4일 정도 남았네?’
해야 할 일이 많아진 이안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으… 이 던전, 뭐 이리 으스스한거야?”
바로 엊그제.
레벨 180을 찍은 전사 클래스 최상위 랭커인 로플리는, 중부대륙 구석에 있는 고대의 던전을 돌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중부대륙 중앙지역에서도 가장 강력한 몬스터들이 출몰한다고 알려진 던전이었기에, 아무리 180레벨이더라도 던전 솔플은 무리였다.
“그러게요. 우리 파티… 여기 벌써 다섯 번 째 트라이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에요.”
파티의 유일한 사제 클래스인 헤리아의 말에, 파티원들은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마치 마계로 가는 포탈이라도 열릴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인데…?”
“마계요? 저는 오히려 공동묘지 같은데요. 좀비라도 나올 것 같은….”
어쩐지 사방에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고, 원래 누런 빛을 띄고 있던 던전의 전체적인 색상이 불그스름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일행은 사냥을 계속했다.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쾅- 콰쾅-!
“헤리아님! 여기 힐 좀 주세요!”
“알겠어요, 잠시!”
“람플님! 뒤쪽에 미라들좀 처치해줘요!”
“오케이!”
그리고 그렇게 사냥을 하며, 한 시간여 정도가 정신없이 흘렀을까?
던전의 후반부에 있는 밀실에 들어선 일행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어? 여기 있어야 할 보스가 대체 어디 간거지?”
“음…?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분명 던전 리셋 된거 아니었나요?”
“그러니까요.”
“혹시 전 타임 돌았던 파티가 보스만 쏙 빼먹고 나간 거 아닐까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랬더라면 여기까지 올 동안 일반몬스터들이 이렇게 멀쩡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일행이 갈팡질팡 하고 있던 그 때.
보스가 생성되어야 할 밀실의 한 가운데서, 뜬금없이 새빨간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로플리는 당황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뭐지…? 정말 내 말대로 마계 포탈이라도 열리려는 건가?”
어쨌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일행 모두는 긴장한 채로 각자의 무기를 손에 쥔 채 붉은 기류를 응시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 붉은 기류는 거대한 악마의 형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보스 룸 전체를 감싸고 도는 엄청난 위압감!
그런데 그 때, 밀실 한복판에 나타난 악마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약한 인간들이여….]
일행은 슬금슬금 서로의 눈치를 봤다.
“저기… 여기서 빨리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 그러게요. 저 하급 마수도 겨우 잡는데, 저건 무슨 마왕 같이 생겼는데… 우리 파티 몰살 당하겠어요.”
그리고 악마의 말이 이어졌다.
[내게 영혼을 맡긴다면, 그대들에게 강력한 힘을 주겠노라.]
이어서 일행의 시야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악마의 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퀘스트를 성공한다면, 완전한 마족인 ‘진마’가 될 수 있으며, 퀘스트를 수락한 후에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 Y / N )]
< (4). 영약을 찾아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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