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영약을 찾아서 -1 >
마수 ‘데빌 드래곤’의 등급은, 다시 말하지만 ‘전설’등급이다.
그리고 아이템이건 소환수건 가신이건, 등급이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력해 지는 시스템이 카일란의 특성이었다.
다시 말해, 상급 마수보다 두 단계 더 높은 등급의 마수인 ‘데빌 드래곤’은, 지난번 이안이 두들겨 패서 억지로 포획했던 상급 마수 ‘라키엘’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현재 이안의 스펙을 가지고, 라키엘처럼 무대포로 잡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이야기.
‘하지만 너무 갖고 싶잖아!!’
데빌 드래곤의 정수리에 창극을 박아 넣는 와중에도, 이안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단지 전설 등급의 마수인 데빌 드래곤을 소환마수로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무려 마왕급으로 강력하다는 마룡 칼리파를 만드는 재료가 이놈이었다는데…. 어떻게 테이밍할 방법 없을까?’
그가 데빌드래곤이 갖고 싶었던 이유는, 신화등급의 마수인 칼리파를 만드는 재료가 바로 이 녀석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안은 세르비안이 지나가듯 말했던 합성 공식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최상급, 그러니까 영웅 등급의 마수인 카이온과 켈베로스를 조합하면 데빌 드래곤을 만들 수 있다고 했었고, 데빌 드래곤에 전설등급 마수 하나를 더 추가해서 칼리파를 만들어냈다고 했었어.’
이안이 가진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
이것은 게임에 대한 그의 집착으로부터 나오는 힘이었다.
캬아오! 캬아아오오-!!
결국 이안은, 이 녀석을 포획하기 위해 숨통을 붙여놓는 오만을 부릴 수는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데빌 드래곤을 포획하기는커녕 모두가 몰살 될 것이었으니까.
‘아쉽지만, 잘 가라…! 이 형이 다음에 꼭 잡으러 오마!’
퍼퍼퍽-!
이안은 인정사정없이 데빌 드래곤의 약점을 파고들었고, 결국 데빌 드래곤은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전설의 마수 ‘데빌 드래곤’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명성이 15000만큼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98979881만큼 상승합니다.]
:
:
스르륵- 쿵-!
데빌드래곤의 육중한 몸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제야 일행의 얼굴이 밝아졌다.
“후 아, 뭐 이렇게 괴물 같은 녀석이 다 있는 거죠?”
레미르의 말에, 솔라르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계 전체를 통틀어도 개체수가 많지 않은, 전설 등급의 마수니까요. 다만… 저도 전설 등급의 마수가 소환마석을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안님이 계셔서 괴물 같은 녀석을 잡을 수 있었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전설 등급의 마수가 지키고 있는 줄 몰랐으니까 그 전력으로 여기에 들어왔겠지. 마왕 레카르도 놈도 마찬가지야. 전설등급의 마수가 있는 줄 알았으면 날 여기 혼자 보내진 않았을 거 아냐?’
정말인지, 던전 입구에서 레미르와 솔라르를 기가막힌 타이밍에 만난 것이 신의 한수였다.
이안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데빌드래곤의 시체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카일란에서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 기여한 모든 유저에게 각각 다른 아이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드랍되는 아이템을 가지고 경쟁하는 일은 없었다.
‘자, 전설 등급의 마수는 처음 잡아봤는데… 뭘 주려나…?’
이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드랍 된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크흐흐, 최소 영웅등급 이상 아이템은 나오겠지?’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
[‘데빌 드래곤의 영혼석’ (등급 : 전설) (분류 : 잡화) x7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히든 퀘스트 마지막 지점을 지키고 있는 보스급 몬스터의 경우, 처치했을 때 정말 막대한 양의 아이템과 골드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보통, 보스급 몬스터를 처치하면 시야 한 가득 시스템 메시지로 도배되기 마련이었는데….
‘뭐야, 어떻게 메시지가 고작 한 줄 떠있을 수 있는 거지?’
정체 모를 아이템만 떡 하니 한 줄 떠올라 있는 것이었다.
이안은 구겨진 표정으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어쨌든 획득한 아이템의 정보는 확인해 봐야 했으니까.
‘분류가 잡화 인 걸로 봐서 잡템인 것 같지만… 그래도 전설 등급이니까 또 모르지.’
이안은 실망스런 기색을 애써 감추며, ‘데빌 드래곤의 영혼석’ 아이템의 정보를 오픈했다.
---------------------------------------
- 데빌 드래곤의 영혼석 -
분류 - 잡화
등급 - 전설
* 마기의 농도가 짙은 마계 30구역 이내에서만 서식한다는 전설의 마수, ‘데빌 드래곤’의 영혼석이다.
존재하는 마수들 중, 가장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으며, 브레스에 담긴 마기에 스치기만 해도 쇳덩이도 녹아내린다는 데빌 드래곤.
그가 소멸하기 직전 남긴 이 영혼석을 충분히 수집한다면, 언젠가 데빌 드래곤을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 소환마(召還魔) 전용 아이템입니다.
* 마계 30구역에 있는 ‘마신의 제단’에 가면 비싼 값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
이안이 두 눈을 꿈뻑거리며 아이템의 정보를 읽어내려가고 있던 그 때.
그의 시야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몇 줄 추가로 떠올랐다.
띠링-
[‘데빌 드래곤의 영혼석’ x3을 획득하셨습니다.]
[영혼석의 조각을 모두 모아 영혼이 모두 완성되면, 데빌 드래곤을 소환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보유중인 영혼석 : 7 / 200 (3.5%)]
이안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뭐야, 이거…! 이런 시스템이 있었어?’
이안은 흥분한 표정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데빌 드래곤을 얻는 것도 불가능 한 일만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의 시선이 레미르를 향해 슬쩍 돌아갔다.
‘혹시… 레미르도 영혼석을 얻었을까?’
‘소환사 전용 아이템’이라는 부가옵션이 박혀 있었기에 레미르가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으나, 이안은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레미르님.”
이안의 부름에, 인벤토리를 확인하고 있던 레미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왜 부르시죠?”
이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다른게 아니고… 혹시 방금 이 녀석 잡아서 뭐 드랍 되셨어요?”
이안의 물음에 레미르가 대답했다.
“뭐, ‘데빌 드래곤의 영혼석’이라는 아이템 먹었네요. 한 3개 정도 나왔군요.”
그에 반사적으로 환호성(?)을 내지를 번 한 이안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이안이 운을 떼자, 레미르가 피식 웃었다.
그의 속내가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레미르가 품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돌조각들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게 필요하신 거죠?”
이안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렇죠 뭐….”
레미르도 정보창만 열어보면 이안이 탐낼 만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 터인데, 괜히 속내를 숨길 이유도 없었다.
“혹시 제게 그 것들… 파실 수 있을까요?”
이안의 물음에, 레미르는 빙글거리며 대답했다.
“음… 어디보자…. 읽어보니까 이거 여러 개 모으면 데빌 드래곤을 소환할 수도 있는 엄청난 물건이네요?”
레미르의 말에 이안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렇죠.”
“흐음… 이걸 과연 얼마에 팔아야 할까요?”
레미르의 두 눈이 활처럼 휘어졌다.
이런 상황이 아닌 평소에 그녀의 눈웃음을 봤다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을 터였지만, 지금 이안의 눈에, 그 눈웃음은 더없이 사악해보였다.
‘홍염의 마도사가 아니라 마녀였어 마녀…!’
이안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창고에 들어차 있는 아이템들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사냥하면서 얻은 아이템들 중, 마법사 전용의 무기나 방어구들을 하나씩 기억해 내는 중이었다.
‘생각해보자… 분명 레미르가 탐낼 만한 물건이 있을 거야.’
그런데, 이안이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그 때.
레미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대체 얼마나 좋은 제시를 하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시는 거죠?”
당황한 이안이 말을 더듬었다.
“자, 잠시 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이럴 시간 없어요, 이안님. 빨리 소환마석 파괴하고 여길 나가야 해요.”
“잠시만…!”
머리를 쥐어 짜는 이안을 보다 못한 레미르가, 실소를 흘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안님, 그럼 제가 제시를 하죠.”
“예, 말씀하세요.”
레미르는 돌연 뒤를 돌더니 손가락으로 멀찍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곳에는, 보랏빛의 기운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수정’ 같은 것이 있었다.
“우선, 제가 소환마석을 파괴하게 해 주세요.”
의외의 제안에, 이안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네에?”
“말 그대로예요. 저 소환마석… 제 손으로 부술 수 있게 해 달라구요.”
이안은 의뭉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뭐지…? 퀘스트에 꼭 자기가 저 돌을 파괴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나? 아니면 저 돌을 파괴하면 얻을 수 있을 명성 같은 게 탐이 나는 건가?’
이안은 정확히 레미르의 의중을 알 수는 없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에게는 전혀 손해볼 게 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우선’ 이라고 하신 걸 보면 조건이 추가로 있는 것 같은데….”
레미르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요.”
“말씀… 해 보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 이안이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레미르의 말이 이어졌다.
“이 퀘스트 마치고, 마계 닫히기까지 남은 4일 정도 동안, 저랑 파티해서 쉬지 않고 사냥해 주시는 거예요.”
“…!”
레미르의 제안에, 이안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거야말로 이안이 하고 싶었던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레미르… 엄청 좋은(?) 여자였어!’
이안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레미르 또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혼석을 내밀었다.
“후훗, 그럼 거래는 성립된 걸로!”
쿨내가 진동하는 레미르의 거래에, 이안은 몹시 행복해졌다.
‘크으으… 이게 왠 떡이냐!’
한편, 싱글벙글 웃는 이안과 별개로, 레미르 또한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소환마석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흐흣, 별 쓸모도 없는 잡템 세 조각 주고 이런 완벽한 거래를 하다니…!’
사실 레미르가 소환마석 파괴를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소환마석 파괴는, 결과적으로 보면 마계 웨이브 중 하나를 막은 어마어마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월드메시지로 최초달성 같은 문구가 서버 전체에 퍼질 것이고, 그것을 이안에게 빼앗기기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고급인력을 4일 동안 부려먹을 수 있게 됐잖아?’
누가 누구를 부려먹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레미르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소환마석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마석을 향해 손을 뻗은 레미르.
퍼엉-!
그녀의 손에서 시뻘건 화염이 퍼져나가 소환마석을 바스라뜨렸고, 그녀의 예상대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환마석’을 성공적으로 파괴하셨습니다!]
[‘태양신의 힘 Ⅲ(히든)(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명성을 35만 만큼 획득하셨습니다.]
:
:
하지만 다음 순간, 카일란 서버 전역에 떠오른 월드 메시지.
[유저 ‘이안’과 ‘레미르’가, 제 4 구역의 몬스터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저지했습니다.]
레미르의 표정은 한 순간에 구겨지고 말았다.
< (4). 영약을 찾아서 -1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