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발록의 비밀 -3 >
* * *
마수(魔數)들은 기본적으로 ‘이지(理智)’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생명체다.
영혼은 있되, 그것이 마기로 가득 차 버려서 결국 본능만이 남게 된 생명체들.
하지만 이러한 마수들도, 영혼의 등급이 높아지면 마기에 잠식되어 있던 자아가 조금씩 깨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상급’ 마수들부터는 조금씩 감정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최상급(영웅 등급)의 마수들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되며, 전설 등급 부터는 못해도 거의 어린아이 이상의 지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전설 등급의 마수 중 ‘발록’은 같은 등급의 마수들 중에서도 가장 지능이 뛰어난 마수로 알려져 있었다.
“발록은 자신보다 약한 마수들의 심령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네.”
레카르도의 설명에, 이안이 되물었다.
“심령…을 다루는 능력이요?”
“그렇다네. 발록이 괜히 마수들의 제왕 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야. 소환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마수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 발록이지.”
발록은 ‘마수들의 제왕(帝王)’ 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곤 한다.
레카르도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발록이 다른 전설등급의 마수들보다 강력한 이유와 관련이 있나요?”
레카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말을 이었다.
“발록이 다른 마수들의 심령을 다룰 수 있는 이유가, 그에게 ‘마기공유’라는 고유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이안은 조용히 레카르도의 말을 듣고 있었고, 어느새 그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은 카카도 레카르도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카카, 이건 너도 모르는 지식인가보지?”
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주인아. 나라고 세상의 모든 걸 전부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둘의 짧은 대화를 들은 레카르도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설명을 계속 하자면, 이 마기공유라는 능력은 대상에게 자신의 마기를 주입시킬 수도, 대상의 마기를 빌려올 수도 있는 능력이야. 그리고 마기가 공유된 대상이 자신보다 약하다면, 그를 조종할 수 있게 되지.”
그리고 잠시 후, 레카르도의 손에 있던 마령보주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러자 놀랍게도 발록이 레카르도의 의지대로 조종당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지.”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그 능력은 발록의 능력을 설명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마왕께서 그 능력을 사용하시는 거죠?”
이번에는 카카가 불쑥 튀어나오며 이안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건 저 마령보주 때문이다 주인아.”
“으음?”
“저 마령보주 라는 물건은 한 가지 고유능력을 담을 수 있는 물건인데, 아마 저 물건에 발록의 고유능력인 ‘마기공유’가 담겨있는 모양이다.”
카카의 설명에, 레카르도가 입 꼬리를 슬쩍 말아올렸다.
“과연… 전설의 종족이라는 ‘카르가 팬텀’이로군. 마령보주를 알고 있는 녀석이 있을 줄은 몰랐어.”
하지만 이안은 아직 궁금증이 다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마기공유라는 고유능력이 정확히 발록을 어떻게 강하게 만드는 겁니까?”
레카르도의 설명이 이어졌다.
“발록은 거느리는 마수들이 많아질수록 빌려올 수 있는 마기량이 막대해지고, 일시적으로 전투에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제야 이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이 주변에 있던 마수들의 힘을 끌어다가 썼다는 말이네? 흐음… 그래서 그렇게 강했던 거였군.’
하지만 레카르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 발록이 특별히 강했던 이유는, 내가 마기공유의 능력으로 내 마기를 발록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이었지.”
“아하….”
그 뒤로도 이안은 레카르도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더 물어보았고, 레카르도는 그에 대해 제법 상세히 답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레카르도님. 덕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별 말씀을. 내 성을 지키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준 자네에게 이 정도 답변은 해주는 게 당연하지.”
대화를 마친 이안은 레카르도의 옆에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발록을 힐끔 보았다.
‘아… 가지고 싶다.’
이안의 시선이 다시 레카르도를 향했다.
“레카르도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레카르도가 대답했다.
“뭔가?”
이안이 발록을 슬쩍 응시하며 대답했다.
“발록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 마수입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살짝 커진 레카르도는 곧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핫, 발록이 가지고 싶단 말인가?”
이안이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레카르도가 실소를 흘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이거 정말 재밌는 친구로군. 그래, 발록이라… 확실히 소환마들에게 발록을 소환마수로 부리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일이지.”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발록은 아직 자네가 꿈 꿀 수 있는 단계가 아니야. 자네는 이제 막 소환마의 길에 입문한 초짜가 아닌가?”
할 말이 없어진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음….”
“지금 발록을 포획하겠다고 ‘그 곳’에 갔다가는 오히려 반대로 자네가 잡아먹히고 말 것이라네.”
“네?”
레카르도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의 영혼이 발록에게 잠식당해 버릴 것이라는 말이지.”
“쩝….”
일반적으로 영혼이 잠식당한다는 의미는, 발록의 꼭두각시가 된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유저인 이안의 영혼이 잠식되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이안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 곳’이 어디인지라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 없다는 듯, 레카르도는 선선히 대답했다.
“마계 15구역, ‘잊혀 진 영혼의 무덤’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걸세.”
* * *
파이로 영지의 영주 집무실.
집무실 가운데 있는 원탁에는 세 여인이 둘러앉아 있었고, 그 원탁을 중심으로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하린이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레비아를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이안이를 만나기 위해 여기 오셨다는 말씀이시죠?”
레비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지금 중요한 퀘스트를 하는 중인데… 이 퀘스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해서요.”
하린이 레비아를 아래 위로 슬쩍 훑어 보았다.
‘으음… 왜 이렇게 예쁜 여자가 또 꼬이는 거야 진성이 녀석은…!’
하린은 지금 심기가 불편했다.
왠 처음 보는 여자가 퀘스트를 핑계(?)로 이안을 찾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예쁜 점은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이안은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여자 보는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예쁜 건 상관 없지만… 사제 랭킹 1위 유저라면 나랑은 비교도 안 되게 게임을 잘 할 거 아니야?’
하린은 무려 한 클래스의 랭킹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게임 잘하는 여자가 이안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한 것이었다.
하린이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퀘스트인지 저도 좀 알 수 있을까요…?”
하린의 물음에 옆에 있던 피올란이 오히려 흠칫 놀랐다.
‘음… 랭커들에게는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피올란은 하린과 완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베일에 싸여 있던 사제 랭킹 일위가 이렇게 제 발로 우리 길드에 찾아오다니… 영입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전력이 될 텐데, 하린이가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피올란의 염려와는 다르게, 레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뭐 어려울 것 없죠.”
그리고 다음 순간, 하린과 피올란의 눈 앞에, 생각지도 못 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유저 ‘레비아’로부터 ‘대지의 신, 샌디애나의 부름(히든)(연계)’ 퀘스트를 공유받으셨습니다.]
[퀘스트 공유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 / N)]
* * *
마왕 레카르도와 발록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이안은 곧바로 퀘스트를 진행했다.
세라핌으로부터 받은 서신을 레카르도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서신을 읽은 레카르도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흐으음… 이런 일이 있었군. 그래서 갑자기 파괴마들이 기승을 부리는 거였어.”
레카르도는 이안에게 마계의 정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마계 안에는 크게 두 개의 세력이 존재한다네.”
그의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했다.
1. 마계를 이루고 있는 마족들은 크게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뉜다.
2. 마족들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 마족이 온건파이며, 10% 정도의 세력이 중립세력. 나머지 40% 정도 되는 파괴마들이 바로 강경파에 속한다.
3. 파괴마들은 차원계의 순리를 거스르고 다른 차원계를 침략해 약탈하고 싶어 하고, 일반 마족들은 그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4. 한데, 최근 파괴마에 속하는 마왕 몇몇이 상위 서열까지 진급하는 데 성공했고, 그로 인해 다시 차원전쟁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안은 궁금한 점에 대해 물었다.
“그렇다면 파괴마들은 어째서 침략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레카르도가 대답했다.
“그 이유야 간단하지. 마족들은 영혼을 소멸시킬 때 마다 그 영혼이 가졌던 힘의 일부를 마기로 얻어낼 수 있으니까. 그들은 마계에 비해 비교적 허약한 다른 차원계에 쳐들어가 좀 더 쉽고 빠르게 강해지기를 원하는 거다.”
레카르도의 말을 이해한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니 또 다른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음… 그럼 온건파가 그걸 반대하는 이유는요?”
레카르도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지.”
“예?”
“결국 마계가 다른 차원계를 공격해 식민지로 삼다보면, 다른 수 많은 차원계들의 공공의 적이 될 수 밖에 없어. 그렇게 되면 그 땐 오히려 마계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테니까 말이야.”
이안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흐음… 파괴마들은 다른 차원계들이 연합하더라도 상대해서 이길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겠군요.”
“바로 그렇다네.”
이안은 이 대화로 인해 마계의 세계관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강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마족들 답네.’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는 다음 연계 퀘스트를 받아야 할 차례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인간계를 침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이안의 물음에, 잠시 멈칫 하던 레카르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음… 아쉽게도, 이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져 버렸다네.”
“네에…?”
“내가 천년 전, 암연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두었었던 마룡 칼리파가 깨어나 버렸기 때문이지.”
“…?”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은 이안은 말 없이 레카르도를 응시했고, 그가 설명을 마저 해 주었다.
“원래 인간계로 침공하기 위한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서열 십위 안에 들 정도로 강력한 다섯 이상의 마왕이 힘을 합쳐야만 하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말을 이었다.
“한데 현재 서열 십위 이내의 마왕들 중에는, 파괴마가 총 네 명 뿐이지.”
레카르도 또한 서열 7위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마왕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들은 마음대로 차원의 문을 열지 못했었어.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자리를 채워줄 존재가 봉인에서 풀려나 버린 것이지.”
“…!”
그 말에, 이안은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마룡 칼리파가 그렇게나 강력한 존재였어…?’
이안은 마룡 칼리파와 관련된 퀘스트를 100레벨도 되기 전에 받았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칼리파를 조금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 이리엘이 준 퀘스트가 칼리파를 죽이라거나 하는 퀘스트면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진 이안을 향해, 레카르도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제, 파괴마들이 인간계를 침공하는 것은 우리로서도 막을 방법이 사라졌다네.”
“그… 렇군요.”
그리고 레카르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특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마족의 태동 Ⅲ (히든)(연계)’ 퀘스트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마족의 태동 Ⅲ (히든)(연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클리어 등급 : A]
[명성치를 25만 만큼 획득합니다.]
:
:
이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칼리판지 뭔지 그 녀석은 갑자기 왜 깨어나 버린거야? 연계 퀘스트는 전부 다 클리어해야 최종 보상이 어마어마한데….’
그런데 입맛을 다시는 이안의 눈 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몇 줄 추가로 떠올랐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어, 새로운 히든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 (2). 발록의 비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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