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악마의 성과 레카르도 -3 >
* * *
마계에 존재하는 마수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마계가 오픈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마수의 종류만 세어도 거의 백 가지가 넘는 수준.
게다가 개발사인 LB사 측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마수의 종류가 훨씬 많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까지 했다.
그런데 LB사 측에서 마수들의 정보에 관해 밝힌 내용 중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설’등급의 마수에 관한 정보.
모든 등급의 마수들 중, ‘전설’등급의 마수만이 정확히 열 다섯 종류가 존재한다고 명시된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유저들은 무척이나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장차 마계에의 듀얼클래스를 얻을 것을 꿈꾸는 소환술사 꿈나무들의 관심은 정말 지대했다.
[크으, 전설등급 마수는 얼마나 강력할까요? 하급 마수들도 이정도로 강한데.]
[윗분, 하급마수들이 강한 건 그냥 레벨이 높아서 그런 거죠.]
[노노, 레벨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인간계에 있는 일반 등급의 몬스터들보다는 하급마수가 강력하다고 하더라고요.]
[아하…? 정말 그런가요?]
[그런데 전설등급의 마수 15종 중에 지금까지 알려진 종이 하나라도 있나요?]
[네, 딱 하나 있죠 아마?]
[오…! 그 종이 뭔가요? 대체 어디서 등장했죠? 전 아직 상급 마수와 관련된 자료가 게시판에 올라오는 것 조차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네, 그거야 당연하죠. 아직 상급 이상의 마수도 등장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럼…? 전설이 등장했다는 말은 무슨 말이죠?]
[처음 마계 업데이트 될 때 영상 기억 안 나세요?]
[음? 영상이요? 분명 보긴 했는데 기억이….]
[크…! 그 간지나는 영상을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실 수가 있죠? 그러고도 소환술사라고 하실 수 있음?]
[아, 뭔데요 그냥 말해줘요.]
[발록. 발록 기억 안 나세요? 영상에서 진짜 엄청나게 포스 있게 등장하는데….]
[맞아요. 저도 지금 아주 생생히 기억합니다. 왜냐면 그 때, 보자마자 발록에게 반해버렸거든요.]
[후후, 맞아요. 충분히 반할 만 하죠.]
[네. 그 때 그 성문을 뛰쳐나와서 다른 마수들을 도륙하던 그 광경이란…! 캬…!]
[맞아요. 진짜 박력 장난 아니었죠. 데미지도 무슨 수십만 씩 띄우던데….]
아직 마계 진입에 성공한 유저조차 얼마 되지 않는 소환술사 유저들은, 마계에 대한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마계 게시판에 올라온 마수들의 정보를 보며, 어떤 나중에 어떤 마수를 테이밍 하면 좋을지 열심히 토론했다.
그러던 그 때, 한 유저가 의문점을 하나 발견했다.
[어? 그런데 님들. 생각해 보니 그 발록 나오던 장면 좀 이상하지 않았었나요?]
[왜요? 뭐가 이상함? 멋지기만 하던데?]
[아니, 그게 아니고… 발록이 막 다른 마족들이랑 싸우고 있었잖아요. 인간이나 다른 종족이랑 싸우는 게 아니고 마족끼리 싸웠던 걸로 기억해요.]
[오…? 그러고 보니…!]
[맞아요. 제가 그 장면 확실히 기억함. 엄청 기괴하게 생긴 핏빛 성벽 앞에서, 발록이 하급 마수들을 학살하던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그 핏빛 성벽이 바로, 지금 이안의 눈 앞에 있는 ‘악마의 성’ 이었다.
* * *
쿵- 쿵- 콰앙-!
온 몸을 두르고 있는 타는 듯이 붉은 털.
거칠게 자라난 뿔마저 검붉은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괴수가 전장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괴수가 거대한 주먹을 휘두를 때 마다 하급 마수가 하나씩 바닥에 나뒹굴었으며, 그 공격 한번 한번이 이루어질 때 마다, 주변에 있던 모든 마수들이 겁화(劫火)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계를 통틀어 단 열 다섯 종 밖에 없는 전설 등급의 마수인 발록.
발록의 위용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무슨 딜이… 30만씩 뜨는 거야? 게다가 스플레쉬 데미지도 십 몇 만이 넘게 들어가잖아?’
어지간한 성인 남성은 가볍게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손을 가진 발록.
그리고 그 손을 휘두를 때 마다, 지옥으로부터 빨려 나온 지옥불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그 주변을 수놓고 있었다.
콰앙- 쾅-!
발록이 전투하는 데 있어서 기교 같은 건 없었다.
아니, 기교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발록의 전투방식은, 단지 보이는 모든 것들을 전부 때려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안은 그 위압감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레벨은 분명 얀쿤보다 낮은데… 전투력은 얀쿤을 훨씬 상회하는 느낌이잖아? 이게 바로 태생 등급의 차이인 건가…?’
얀쿤은 강력했다.
현재 이안의 일행 중에 가장 강력한 전력이 바로 그였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었다.
‘레벨당 스텟 성장수치를 계산해 보면… 얀쿤은 카이자르에게도 머지않아 따라잡힐 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어.’
현재 얀쿤의 레벨은 362. 반면에 카이자르의 레벨은 295였다.
레벨이 70계단이나 차이나지만, 둘의 전투능력의 차이는 고작 10%정도.
능력치를 합산해 봤을 때, 얀쿤은 카이자르의 전투능력의 110%정도를 가지고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는 카이자르가 320레벨 정도만 되더라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
이안은 이 이유를, 둘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등급의 차이에서 찾았다.
‘카이자르는 태생 자체가 전설등급이야. 반면에 얀쿤은 영웅 등급의 가신이지.’
그리고 그 등급 하나의 차이가, 둘의 능력치 성장속도에 차이를 만든 것이 분명하다고, 이안은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안의 시선이 슬쩍 발록을 향했다.
‘저 녀석도 카이자르만큼, 아니 카이자르 이상의 포텐이 있다는 건데….’
이안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가지고 싶다…!!’
물론 이안은 이미 전설등급의 소환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카르세우스와 핀, 그리고 라이에 빡빡이까지.
이 소환수들은 분명 발록과 비교해도 전혀 꿀릴 것 없는 뛰어난 포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안은 발록이 너무 탐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잠재력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의 전투력을 봤을 때, 발록이 압도적으로 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으… 레벨차이가 진짜 크기는 커.’
이안의 다른 소환수들은 아직 190레벨 언저리에 불과했는데, 그에 반해 발록의 레벨은 300도 넘었으니, 전투력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었다.
‘크으, 진짜 300레벨 넘는 전설등급 소환수 하나 생기면, 전력이 최소 1.5배는 강해지겠지?’
전설등급의 소환수를 하나 보강하는 것은, 가신을 얻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가신들은 완벽히 각자의 AI로 전투하는 반면, 소환수들은 이안의 컨트롤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안은, 가신보다 소환수에게 더 큰 매리트를 느꼈다.
발록같이 강력한 마수가 100%이안의 뜻대로 움직여 준다면, 정말 전투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 잡을 방법 없으려나…?’
그렇게 이안이 입맛을 다시며 발록을 구경하고 있을 때, 한 차례 신나게 적들을 쓸어 담던 얀쿤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안, 그대는 발록을 처음 보는군.”
이안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확실히 엄청난 전투력이네.”
이안의 말에, 얀쿤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발록은 그야말로 폭군이지. 어지간한 노블레스 마족이라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존재니까.”
이안이 발록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얀쿤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악마의 성 안에서, 어떻게 갑자기 발록이란 녀석이 튀어나온 거지? 발록은 일반 마수들과 달라?”
이안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얀쿤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주군.”
“그러니까, 마수들은 원래 마계 곳곳에 서식하는 자유로운 존재들이잖아. 그런데 마족들의 성 안쪽에서 튀어나오니까 어찌 된 건지 궁금해서 그러지.”
얀쿤이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역시 주군도, 발록이 탐이 나는 거군.”
이안이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부정하지 않겠어. 저 위용을 보고 탐이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얀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거의 모든 ‘소환마’들의 꿈이, 바로 발록을 테이밍하는 것이지.”
그리고 발록을 한번 더 응시한 얀쿤이, 설명을 이어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록은 분명히 테이밍할 수 있는 존재야.”
“그래?”
얀쿤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발록을 가리켰다.
“바로 그 증거가 저기 있잖아?”
“으음…?”
이안은 얀쿤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자세히 보았다.
그의 손가락은 발록을 가리키고 있는 듯 했지만, 자세히 보니 발록의 뒤쪽에 둥둥 떠 있는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얀쿤의 입이 다시 천천히 열렸다.
“저분이 바로, 지금 우리의 눈 앞에 있는 괴물같은 발록의 주인이시지.”
이안이 눈을 크게 떴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시커먼 그림자의 실루엣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마족은 누구지…?”
얀쿤이 짧게 대답했다.
“주군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음…?!”
이안의 시선이 다시 검은 그림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림자는 점점 이안의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라면….’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안은 상대의 모습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두운 회백색의 망토에, 불그스름한 철제 갑주와 은빛 머리장식을 착용한 남자.
“저 마족이 바로… 악마의 성의 주인…?”
얀쿤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다. 저 분이 바로, 마계 서열 7위이신 마왕 ‘레카르도’님 이시지.”
이안은 그제야 모든 정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발록이… 마왕이 테이밍한 마수라는 이야기인 거지?’
이안은 발록과 마왕을 번갈아가며 한번씩 응시했다.
그리고 기분이 살짝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마왕 레카르도의 클래스가… 소환마 라는 말이겠지?’
이안과 레카르도의 두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어쩐지 저 마왕이라는 녀석한테 빼먹을 수 있을 건덕지가 엄청나게 많아 보이는데 말이야….’
기분이 좋아진 이안은 싱글실글 웃기 시작했고, 그 사이 마왕 레카르도가 이안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레카르도는 무척이나 미남형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결코 얀쿤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기지 않았으며, 굳이 비유하자면 뱀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살벌하고 창백한 외모였다.
이안의 앞에 선 레카르도가 느릿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마(半魔)로군.”
굵직하지는 않은 목소리였지만, 좌중을 압도하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무게 있는 목소리.
이안은 마른침을 살짝 삼키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왕 레카르도님 이십니까?”
이안의 물음에 레카르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나를 알고 있군.”
이안이 말을 이어갔다.
“세라핌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이안의 말에, 냉막하기만 하던 레카르도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변화가 생겼다.
“으음… 세라핌이? 그가 무슨 일로?”
이안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파괴마’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세라핌님께서 전달해 주신 서신이 있으니 그걸 받아 보시면….”
“‘파괴마’라니…?”
역시나 레카르도는 ‘파괴마’ 라는 말에 곧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이안이 인벤토리에서 서신을 꺼내려고 하자, 그는 한쪽 손을 들어 이안을 저지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잠깐.”
“…?”
“일단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는 잔챙이들부터 싹 다 정리한 뒤에, 이야기를 마저 하도록 하지. 여기서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말에 이안이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아… 그것도 그렇군요.”
그리고 레카르도가 시선을 슬쩍 돌려 아직까지도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발록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혼자서 전부 상대하는 데는 무리가 있거든. 얼른 도와줘야겠어.”
그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제가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안의 말을 들은 레카르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물론. 그대의 전투능력이라면 제법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군.”
레카르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안의 눈 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마왕 ‘레카르도’의 친밀도가 15만큼 상승합니다.]
[마왕 ‘레카르도’가 당신에게 파티를 신청했습니다.]
[NPC와의 파티에서는 유저 파티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의 50%만큼밖에 획득할 수 없습니다.]
[마왕 ‘레카르도’의 파티신청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약간의 경고성(?) 문구 같은 것이 떠올랐지만, 이안은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파티를 수락했다.
‘아니, 이런 꿀 같은 기회를 차버리는 멍청이도 있을까?’
이미 오래 전, 황실기사단부터 해서 강력한 NPC의 버스를 여러번 타 본 적이 있는 이안은, 레카르도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걸로 200레벨은 확정이나 다름 없어!’
싱글벙글한 표정이 된 이안에게, 레카르도가 손을 내밀었다.
“내 성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줘서 고맙네.”
이안은 그 손을 맞잡으며 공손히 대답했다.
“당연히 도와드렸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안의 대답에 레카르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이안을 흡족하게 하는 메시지가 한번 더 떠올랐다.
[마왕 ‘레카르도’의 친밀도가 1만큼 상승합니다.]
친밀도의 상승은 곧, 이안이 해당 NPC에게서 뽑아먹을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짐을 의미했다.
이안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음모(?)를 짜기 시작했다.
‘저 마왕 녀석을 어떻게 빨아먹어야 잘 빨아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이안은 무려 마왕 씩이나 되는 선배(?) 소환마 NPC를 귀찮게 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1). 악마의 성과 레카르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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