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마계전쟁의 시작 -1 >
* * *
중앙대륙에서 가장 넓다고 알려진 필드인 마톤크 사막지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사막 위에, 다섯 마리의 드래곤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거대하고 기괴하게 생긴 드래곤 한 마리가, 나머지 네 마리의 드래곤과 대치하고 있는 그런 형국.
그리고 그 기괴한 드래곤 옆에는, 새카만 지팡이를 든 마법사 하나가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그의 온 몸에서는 칠흑같이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주위에는 보랏빛 불꽃이 원을 그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후후, 이 몸을 막기 위해 5대 신룡 중 넷이나 모이다니… 정말 영광이군.]
그 마법사는 마치 악(惡)과 마(魔)의 상징과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반대편, 푸른 신룡의 등 위에는, 선(善)의 상징처럼 보이는 백의로브의 마법사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바로 이곳에서. 이 무의미한 차원전쟁은 끝이 날 것이다.]
그 말에, 흑의 마법사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과연…. 신룡의 힘이 강하기는 하지만, 5대신의 힘이 전부 모이지 않은 그 상태로, 칼리파와 이 수많은 발록들. 그리고 이 ‘나’를 막을 수 있을까?]
흑의 마법사의 말처럼, 그와 마룡이 떠올라 있는 발 밑에는, 수많은 마계의 군단이 압도적인 투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백의 마법사는 침착한 모습이었다.
[후후, 5대신의 힘이 전부 모이지 않았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리고 백의 마법사의 말에, 흑의 마법사가 처음으로 동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그게 무슨…? ‘카르세우스’는 분명 내 손으로 직접 죽였건만…. 노옴! 무슨 허세를 부리는 거냐!]
[진정 허세라고 생각하는가?]
이 장면까지 영상으로 재생되자, 유저 채팅방이 또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뭐지? 지금 저 마족 마법사가 ‘카르세우스’라고 한 거 맞죠?]
[헐, 저도 방금 그렇게 들었음. 카르세우스라고.]
[님들 왜요? 카르세우스가 뭐길래 그러는 거예요?]
[크으, 카르세우스를 모르시다니. 이안님이 데리고 있던 거대한 블랙드래곤 이름이 카르세우스잖아요. 그 유명한 파이로 영지 방어전 영상에서 마지막에 갑자기 등장해서 카이몬 제국 박살내던 그 드래곤이요!]
[아, 그래요? 그 드래곤 이름이 카르세우스였어요?]
[네 맞아요.]
[허어, 그럼 이안님 가신에다가 소환수까지 지금 이 어마어마한 영상에 등장하고 있는 거?]
[바로 그런 거죠.]
유저들은 그야말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일개 유저가 게임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클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깐, 님들, 저 방금 소름돋았음.]
[왜요? 왜! 또 뭔데?]
[지금 저 영상에서 나온 대화내용 유추해 보면… 지금 오대 신룡 중에 네 마리의 신룡밖에 등장 안했다는 얘기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저 악마 마법사가, 카르세우스는 분명 죽였다고 하는 말을 보니….]
[헉! 저도 순간 이해됐음!]
[저 잠깐 팬티좀 갈아입고 오겠음.]
[크아아, 그러니까… 이안님의 소환수인 카르세우스가 그럼 남은 신룡 중 하나인 전쟁의 드래곤 이라는 소린가요?]
[빙고, 바로 그거죠.]
[아… 그래서 그 파이로 방어전때 그렇게 됐었던 거구나…!]
[음? 뭐가요?]
[파이로 영지 최후의 일전 때, 카르세우스가 마지막에 등장했었잖아요?]
[그랬죠.]
[그때, 카이자르랑 카르세우스가 무슨 칠흑빛 쇠사슬 같은거로 연결되면서 미친 듯이 카이몬 제국 병사들을 학살하더라구요.]
[맞아요. 둘이서 무슨 버프 같은 것도 걸린 것 같았고….]
[조금 더 유추해 보자면, 카이자르가 전쟁의 신의 사자였고, 카르세우스는 전쟁의 신룡이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던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죠.]
[그런…!]
유저들은 영상 속의 스토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원래 영화를 볼 때에도, 숨겨져 있는 히든피스 같은 것을 찾아내면 영화가 배로 재밌어지지 않는가?
그것처럼, 한국서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유저인 이안과 관련된 비밀을 찾아내는 것은, 유저들에게 제법 큰 흥밋거리였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영상의 스토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마룡의 커다란 입이 천천히 열리며, 중저음의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허세꾼의 말에 넘어갈 것 없다, 샤칸.]
[그렇군, 칼리파.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백의 마법사가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결과가 말해주겠지.]
‘샤칸’이라 불리운 흑의 마법사가 이를 갈았다.
[으드득…! 좋다, 그렇다면 어디 증명해 보도록!]
샤칸이 지팡이를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개전(開戰)한다! 전군 앞으로!! 저 허약한 인간들을 모조리 짓밟아버리자!!]
와아아-!!!
샤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계군단이 일제히 포악한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전설 등급의 마수들 중에서도 가장 흉포하고 강력하다는 마수인 ‘발록’부터, 최상급 마수인 ‘카오스 드레이크’, ‘소울이터’ 등의 무시무시한 마수들이 인간계의 부대를 향해 앞장서 뛰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돌연 하늘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려퍼졌다.
쿠르릉- 쾅- 쾅-!!
[뭐지? 갑자기 이게 무슨…!]
샤칸이 당황한 목소리로 굉음이 울려퍼진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놀랍게도 그 새파랗고 맑은 하늘에,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치고 있었다.
쾅- 콰콰쾅-!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히 메우기 시작했고,
쏴아아-!
뜨거운 사막 위에 때아닌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먹구름 사이가 원형으로 갈라지더니, 새하얀 빛줄기가 그곳을 통해 내려들었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먹구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새하얀 빛줄기.
이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광경에, 잠시 모든 이들은 넋을 잃었고, 잠시 후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아아오오-!
한 마리의 푸른 빛 드래곤이, 그 빛을 타고 유유히 내려오고 있었던 것!
그 드래곤의 생김새는 네 신룡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길쭉한 목과 날렵하게 생긴 머리. 그리고 뾰족하게 생긴 갑각(岬角)이 등판을 완벽하게 뒤덮고 있는 형태.
그것은 마치 동양 신화의 사신수(四神獸)인 현무와 청룡을 섞어놓은 듯 한 모습이었다.
조금 당황한 듯 보이는 샤칸을 향해, 백의 남자가 씨익 웃어보였다.
[어때, 이제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는가, 샤칸?]
샤칸이 입을 악물었다.
[확실히 허세는 아니었군. 인정한다. 하지만 어비스 드래곤이라고 해서, 카르세우스의 빈 자리를 메울 수는 없을 텐데? 어비스 드래곤이 강력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저 녀석이 5대신의 힘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백의 마법사, ‘솔라르’가 어비스 드래곤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비스 드래곤의 등 위에 타고 있는 남자라면… 그 빈 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솔라르의 말이 끝난 바로 그 순간.
어느새 신룡들의 바로 앞까지 날아온 ‘어비스 드래곤’이 커다랗게 포효했다.
크아아오오!!
그리고 그의 등 위에 서 있던 한 남자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남자, ‘카이자르’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5대신의 맹약을 발동하겠다!]
쿠오오오-!
그리고 샤칸은, 새하얗게 질린 표정이 되었다.
[이… 이게 무슨…!]
카이자르를 중심으로 네 마리의 신룡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이자르가 들고 있던 대검에 새하얀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고, 그 대검에 맺힌 하얀 빛은, 사슬처럼 뻗어나가 네 마리의 신룡의 몸을 휘감았다.
우우웅-!
그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공명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전쟁의 신, 마레스의 대리인으로서, 나 카이자르가 5대 신의 맹약을 이행한다.]
[어둠의 신, 카데스의 대리인으로서, 나 루가릭스가 5대 신의 맹약을 이행한다.]
[바람의 신, 미로의 대리인으로서, 나 노르피스가 5대 신의 맹약을 이행한다.]
[태양의 신, 헬레나의 대리인으로서, 나 라노헬이 5대 신의 맹약을 이행한다.]
[대지의 신, 샌디애나의 대리인으로서, 나 밀라이카가 5대 신의 맹약을 이행한다.]
드넓은 사막 위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새하얀 심판의 빛이 한 가득 내려앉았다.
콰아아앙-!
그리고 내려앉았던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막의 절반을 뒤덮고 있던 수많은 마수들과 마족들의 몸이 하얗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솔라르가 지팡이를 번쩍 치켜들었다.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길고 길었던 차원전쟁의 끝을 보리라!!]
* * *
사방을 메우는 가득한 함성 속에서, 카카는 누렇게 뜬 양피지 한 장을 손에 들고는 재빨리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꿈, 이 꿈에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했지?”
카카는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그는 몽마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발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서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 꿈에서 나가려면, 고대 서적에서 본 몽마의 능력에 대한 내용들을 기억해 내어야만 했다.
“이제 곧 있으면 주인놈이 분명 꿈에서 깨어날 거야. 그 전에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카카는 손에 든 양피지를 강하게 움켜쥐며 눈을 부릅떴다.
“이건 사라지고 말겠지.”
그렇게 잠시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카카가, 마침내 생각난 것이 있는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래! 거기로 가면 되는 거였어!”
카카는 자신이 처음 꿈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장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빠르게 그곳에 도착해야만 했다.
* * *
탐험가 ‘릴슨’으로 인해 공식 커뮤니티에 대문짝만하게 뜨게 된 하나의 영상.
이것은 엄청나게 큰 파장을 불러 모았다.
이 영상은 장장 한시간이 넘는 스토리였고, 이 안에서 마계에 대한 너무도 많은 정보들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정보들은 무척이나 많고 방대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굵직한 것들만 종합하면 이러했다.
1. 마계의 최종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5대신의 힘을 한 자리에 모아야만 한다.
2. 마계의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중앙대륙과 북부대륙은 ‘마계화’될 것이다.
3. 또한 ‘파괴마’들이 마계의 권력을 잡으면서, 지금껏 유저들이 누리고 있었던 마계 컨텐츠는 물론, 중부대륙과 북부대륙의 컨텐츠들도 당분간 즐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뜬 이안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절대로 그럴 순 없지.”
이안이 씨익 웃었다.
“내가 파이로 영지에 투자한 게 얼만데 말이야.”
이안의 한쪽 입 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 * *
< (8). 마계전쟁의 시작 -1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