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236화 (261/1,027)

< (7). 폭풍전야 -2 >

*          *          *

마계 90구역의 관문.

다행히 90구역의 관문은, ‘상급마족’의 신분으로 프리패스가 가능한 구간이었다.

덕분에 이안은 스트레이트로 85구역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난이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게 체감되긴 하지만… 아직은 할 만 해…!’

85구역까지 내려오는 동안, 이안은 당연히 마수 포획과 연성을 쉬지 않고 계속 했다.

덕분에 마수 연성술의 레벨도 어느덧 2레벨.

경험치가 오르는 속도는 극악이었지만, 연성하는 마수들의 등급을 좀 더 상위등급으로 바꾸고 난다면, 다시 또 경험치가 잘 오를 것이다.

‘재료 수급이 훨씬 힘들어지겠지만 말이지.’

이안은 미트볼을 열심히 먹으며 자신의 발 앞에서 알짱거리는 뿍뿍이를 슬쩍 응시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을 다시 불러들이고부터… 뭔가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난 느낌이야.’

사실 겉으로 보기에 이안의 일행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력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었고, 행선지가 바뀐것도 아니었으며, 새로운 퀘스트를 얻거나 아티펙트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신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이안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으음… 저 녀석을 빨리 진화시키려면 경매장에서 영초란 영초는 전부 사다가 먹여야 하는 건가…?’

사실상 루스펠 제국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게 된 로터스 길드.

그리고 로터스 길드의 영지 중, 가장 경제력이 큰 영지인 로터스 영지의 주인이 바로 이안이었기 때문에, 이안은 돈이 넘쳐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안의 수중에 쓸 수 있는 골드는 별로 없었다.

‘이번에 방어탑 건설을 위해 쟁여놨던 예산 중에 한 1%정도만 빼다가 뿍뿍이 줄 약초를 좀 살까….’

그는, 세금으로 번 대부분의 돈을 다시 영지발전을 위해 투입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80구역에 있다는 악마의 성으로 가는 게 우선이야.’

이안이 수행중인 마계 메인 퀘스트.

그것을 하기 위해 이안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뿍뿍이를 얼른 진화시키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퀘스트의 제한 날짜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 다들 일어나! 다음 맵으로 빨리 넘어 가자고.”

이안의 명령에 소환수들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가신들은 곧바로 전투준비를 마치고 열을 맞춰 이안의 앞에 도열했다.

“80구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악마의 성에 도착하면, 쉬게 해 줄 테니까 조금만 더 힘들 내자고.”

*          *          *

중부대륙 중앙지역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영지.

파이로 영지는, 중부대륙에서 머물고 있는 유저 뿐 아니라,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거점이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 중에는, 파이로 영지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부대륙에 있는 그 어느 거점보다도 완벽한 방어요새를 갖춘 튼튼한 요새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제국의 거대영지에 버금갈 정도의 ‘안전지대’라는 말에 손색이 없는 파이로 영지.

중부대륙에서도 양대 제국과 가까운 위치인 동부와 서부지역은 안전한 영지가 많았지만, 전장 한복판이자 가장 위험한 몬스터들이 많이 서식하는 중앙지역에는 딱히 안전지대랄 만한 곳이 없었다.

정말 파이로영지만이, 유일하게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었다.

“휘유, 파이로 영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탐험가 숙련치를 올리기가 정말 힘들었을 거야.”

100레벨 초반대 정도의 궁사이자, ‘탐험가’라는 생산직업을 가지고 있는 릴슨은 파이로 영지의 잡화상점에 아이템들을 처분하고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카일란 유저들과는 달리, 전투보다는 카일란의 다른 컨텐츠들을 더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그가 좋아하는 것은 ‘탐험’ 이었다.

‘이 넓은 대륙에서 신비한 아티펙트를 찾아내고,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고대의 유물들과 역사의 조각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정말 흥미진진하지.’

그렇기에 그는 전투클래스보다 생산클래스에 더 많은 투자를 한 유저였고, 덕분에 카일란 초기부터 플레이했음에도 아직 100레벨 초반 대 밖에 되지 못하는 낮은 레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레벨은, 중부대륙을 탐험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북부대륙에서는 더 이상 탐험가 숙련도를 올리기 힘든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탐험가 숙련도 랭킹 1위 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중부대륙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 중부대륙에 왔을 때, 로터스 길드원들을 만났던 게 정말 행운이었지.’

그런 그가 중부대륙에 오자마자 선택한 것은 바로 파이로 영지였다.

중앙지역보다 더 안전한 서부지역을 버리고, 과감히 중앙지역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서부지역보다는, 몬스터 밭의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파이로 영지야말로 탐험가 숙련도를 올리기에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파이로 영지의 치안대에 들어오고 나서, 탐험가 숙련도가 정말 많이 오른 것 같아.’

파이로 영지의 치안대는 매일 일정 시간만 되면 영주인 피올란을 필두로 인근의 던전탐험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유적이나 탐험경험치가, 정말 엄청나게 쏠쏠했던 것.

그리고 릴슨은, 바로 오전에 있었던 던전 탐험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유물을 얻을 수 있었다.

‘크으… 이 녀석을 감정하는 데 성공하면, 탐험가 경험치가 얼마나 올라갈지 정말 상상도 되지 않는군.’

릴슨은 손에 들려있는 묵직한 책을 애틋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알 수 없는 고대의 기록서 / 유물등급 : 전설]

탐험가 랭킹1위 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 해 오면서, 유물등급이 ‘전설’인 아이템은 처음 만져보는 릴슨.

그는 파이로 영지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여관으로 들어가서, 고대의 기록서를 탁자 위에 얹어 놓았다.

“후우, 좋아. 최상급 감정석을 서른개나 준비했으니… 이 정도면 감정에 성공할 수 있겠지?”

릴슨의 ‘유물감정’스킬의 레벨은 무려 고급 8레벨이었다.

생산직업 스킬레벨인 것을 감안했을 때 그야말로 엄청난 레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등급 유물의 감정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릴슨은 심호흡을 한번 한 뒤, 기록서의 감정을 시작했다.

“감정!”

[‘알 수 없는 고대의 기록서’ 유물의 감정을 실패하셨습니다.]

[최상급 감정석을 1개 소모하셨습니다. (남은 감정석 : 27개)]

[‘알 수 없는 고대의 기록서’ 유물의 감정을 실패하셨습니다.]

[최상급 감정석을 1개 소모하셨습니다. (남은 감정석 : 2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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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릴슨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계속해서 감정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

감정석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그는 드디어 전설등급 유물의 감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띠링-!

[‘알 수 없는 고대의 기록서’의 감정에 성공하셨습니다.]

[탐험가 경험치가 985740만큼 상승합니다.]

[‘유물감정’ 스킬의 숙련 경험치가 191824만큼 상승합니다.]

[‘유물감정’ 스킬의 레벨이 고급8레벨에서 고급9레벨로 상승합니다.]

[최초로 전설 등급의 유물을 감정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명성을 40만 만큼 획득합니다.]

:

: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릴슨은 벅찬 감동 속에 빠져들었다.

‘크으으…! 이거지! 이 맛에 그 고생을 해 가면서 유물을 발굴하는 거지!’

사냥에 도움 되지 않는다며 파티에서 항상 무시당하던 설움이 한 번에 날아가는 기분!

그런데 그렇게 릴슨이 감동에 빠져 있던 그 때.

그의 시야에 보라색 빛으로 빛나는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유저 ‘릴슨’이 최초로 전설등급의 유물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천년 전, 인간계와 마계의 차원전쟁이 기록되어 있는 역사서인, ‘마계전쟁기록서 Ⅰ’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10초 후, 천년 전의 역사가 눈 앞에 펼쳐집니다.]

[영상을 보지 않으시려면, 메시지를 꺼 주십시오.]

릴슨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멍하니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고, 잠시 후 그의 눈 앞이 캄캄해졌다.

*          *          *

이안은 월드메시지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 했다.

‘음…? 마계전쟁기록서…? 이게 뭐지?’

가끔 새로운 던전이 발견되거나, 어떤 고대의 기록들이 발견되면 이런 메시지가 월드 메시지로 날아오고는 한다.

하지만 사냥할 시간도 항상 부족하다 여기는 이안은, 언제나 그런 메시지를 보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워버리곤 했다.

‘그렇지만 이건 좀… 봐야 할 것만 같은데?’

마침 한 타임 사냥이 끝나기도 했고, 마계와 관련된 정보는 지금 무척이나 크리티컬한 부분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안은 메시지를 지우지 않았다.

‘잠시 쉬어갈 겸 영상이나 한번 볼까?’

그렇게 앉아있던 이안의 시야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          *

이안의 시야에 처음 나타난 장면은, 시뻘겋게 타오르는 붉은 지팡이를 쥔, 무척이나 아름다운 한 여인와, 카르세우스의 몸집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한 레드드래곤의 모습이었다.

“깨어났느냐, 라노헬.”

붉은 지팡이의 여인는,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태양신이시여….”

그리고 놀랍게도, 드래곤이 그녀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 시점에 신룡의 각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르겠어.”

태양신이라 불리운 여인의 말에, 레드 드래곤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가야 할 곳이, 제가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느껴집니다, 헬레나님.”

‘헬레나’라고 불린 그 여인은, 말 없이 전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르륵-

그러자 그녀의 바로 앞에, 붉은 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포탈이 하나 열렸다.

“다녀오거라.”

“예, 헬레나님.”

“부디 이 길고 길었던 차원전쟁을 마무리지어다오.”

“알겠습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레드 드래곤은 포탈 안쪽으로 사라졌고, 장면은 다시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의 눈 앞에 새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그 장면 안에는, 새카만 블랙 드래곤 한 마리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둘 중 한 인물은 이안도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임모탈이었다.

“임모탈, 그대가 루가릭스를 도울 수 있겠는가.”

두 사람 중, 백발에 흑의 로브를 두른 남자가 입을 열자, 임모탈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둠의 신이시여.”

임모탈의 대답에 남자가 끄덕여 보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거대한 블랙 드래곤이 앉아 있었다.

“루가릭스, 너도 잘 할 수 있겠지?”

‘루가릭스’라고 불리운 블랙 드래곤 역시,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카데스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둘의 뒤편에 커다란 포탈이 하나 생성되었다.

그리고 임모탈과 루가릭스.

둘의 신형이 빨려 들어가듯 포탈 안쪽으로 사라졌다.

여기까지 말 없이 지켜본 이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들이 카카가 말했었던… 나머지 네 신룡 중 둘인가 보네.’

그 다음으로 이어진 광경은 비슷했다.

바람의 신과 함께 등장한 ‘노르피스’라는 이름의 드래곤.

대지의 신과 함께 등장한 ‘밀라이카’라는 이름의 드래곤.

두 장면이 더 지나고 나자, 이질적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리, 장면 어디에도 드래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이안이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한 인물이 그 속에 있었다.

“오클리는 날 실망시켰지만… 너는 그렇지 않으리라 믿는다, 카이자르.”

그 남자는 바로, 카이자르였다.

< (7). 폭풍전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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